1958년이었으니까 자유당 이승만 시대의 말기였다.
고 3때였다.
사회시간에 첫 번 들어선 자그마한 체구에 단단한 몸집, 흰 이마에 안경너머 날카로운 눈빛을 한 육군 대령제대의 박영호 선생님의 학생에 대한 영향은 아주 큰 것이었다.
‘파루크라는 썩어빠진 놈이 왕으로 앉아있었을 때야. 썩고 썩어서 더 이상 썩을 여지가 없는지라 청년 낫쎌은 젊은 장교들과 모여 밤마다 공부를 하며 이 정권을 어찌할까 고민했어. 그리고는 군대를 동원해 뒤집어 엎었어. 꾸데따야. 썩은 왕정을 엎어버리고 대망의 공화정부를 세운거야. 그때의 얘기, 그때의 의논, 그때의 포부를 적은 것이 바로 저 유명한 ‘국가와 혁명’이란 책이지. 영어로 번역 돼있어. 영어공부 잘하면 읽어 볼 수 있지. 불후의 명작이야 명작! 아! 그 열정과 패기와 지성!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있어야 해!
지금의 자유당 정권은 파루크보다 더 썩었어. 자네들, 내 얘기를 똑똑히 들어! 귀로 듣지 말고 가슴으로 들어! 뜨거운 피가 용솟음치는 가슴팍으로 들으란 말이야!
지금 자네들같은 순수한 청년들이 아니면 세상을 고칠 수 없어! 썩은 것을 수술하는 데엔 예리하고 순수한 칼밖엔 없지!
자네들마저 이 현실을 외면한다면 절망밖엔 없어! 자! 눈을 감고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해봐! 거리에서 떨고있는 어린 거지들을 생각해봐! 자, 눈을 감고 고향 농촌에 두고 온 늙고 가난한 부모님들을 생각해봐!’
그렇다.
우리는 조마조마해서 숨도 못쉬고 듣고 있었다. 괜찮을려나? 박영호 선생님이 잡혀가면 어찌하나?
그렇게 대담하고 용기있는 사람을 나는 예전에 본적이 없다. 박영호선생님은 그렇게 크고 당찬 분이었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을까? 두 해 뒤의 저 4월혁명이 아니었는가?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박선생님은 진정한 군인이요 진정한 선생님이었다.
나는 그 뒤 선생님을 뵌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4년 전에 일산의 우리 사는 아파트 앞 슈퍼 근처에서 난데없이 선생님을 뵈었다. 목사님이 돼 계셨다.
그래.
그때나 지금이나 앞장서 가르치시는구나. 박선생님 때문이라도 목사님들께 잘해야겠지. 개신교 흉 함부로 보아선 안되겠지. 그렇지. 암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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