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중학교 뒤편은 미군용 비행장이 있는 허허벌판이었고 그 벌판너머엔 눈쌓인 치악산이 있었다.
은혜를 갚으려고 쇠북에 머리를 짖쪼아 죽는 꿩과 뱀의 전설이 있는 산 태백산중의 영검스런 봉우리들을 간직한 채 영월군과 원성군 중간에 불쑥 솟은 치악산.
양길과 궁예가 웅거했던 영원산성이 있고 고려말, 이조초의 시인 원천석(元天錫)이 은둔했던 산 치악산.
내게 있어 치악산은 외로울 때마다 바라보고 찾아가는 ‘무지개 거울’ 같은 산이었다. 새벽부터 온종일 수십가지 빛깔로 변색하는 오묘한 산이었다. 금강산이 그가 품은 수십가지 광석들 때문에 햇빛에 수십가지 빛깔로 반사한다는데 치악산 역시 그러하였다. 나의 여러 시에서 포옹과 위로의 산으로 이미지를 내어준 그런 산이기도 하다.
그 산중턱에서 고등학교 때 전봉흥과 함께 기이한 한 털보도사를 만났고 또한 고등학교 때 그 최고봉인 시루봉에 올라 영월 쪽으로 뻗어나간 굽이굽이를 보며 아득한 산악의 낭만에 젖었었고, 대학 때는 그 산 반대편 신림(神林) 숲속에 들어가 여러 친구들과 함께 천주학의 옛 자취에 관해 얘기를 나눴었다.
그러나 치악산을 생각할 때면 마지막에 반드시 덮쳐오는 싫은 기억이 한가지가 꼭 있다.
내 생애 최초로 학교 친구와의 싸움에서 목숨을 걸고 허공에 주먹질을 해대다가 도리어 몹시 얻어맞고 기절했던 일이 바로 그 치악산 자락의 비행장 근처에서 벌어진 것이다.
나를 때린 것은 당시로도 학생깡패였는데 나를 전라도 놈이라고 끊임없이 놀려대며 사투리를 흉내내는 데 격분하여 눈을 딱 감고 사방을 향해 주먹질을 발길질을 해대다가 스스로 자빠져버려 끝내는 오지게 얻어터진 사건이 전학한 지 얼마 안돼서 일어났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기억이다.
그러나 한가지 기이한 것은 애들이 그 사건 이후부터 나를 존엄하게 대우하기 시작했으며 다시는 사투리를 흉내내거나 놀려대는 일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아아!
비록 얻어터지더라도 싸울 때는 싸워야 하는구나!’
그때 깨달은 것은 그것이었다.
치악산은 그래서 훗날 나에게 ‘투쟁의 불가피성’을 알게 해준 첫 자연이기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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