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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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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67>

미술

그때
중학 1학년 무렵.
예술이라기보다 예술의 예감, 예술의 조짐 같은 것이 있었다.

유년기에 그림에의 한(恨)같은 것이 있었는데 중학에 가면서 모르는 새 억압이 되었다. 그래 별로 심하게 그림에 기울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끔 그리기는 그렸다. 우선 미술선생이셨던 양수아(梁秀雅) 선생님이 생각나고 미술반장이었던 김용기 형이 생각난다.

롱구화 한 켤레를 수채로 그린 것이 목포지구 중학생 전시회에 입선되었는데 그 무렵 죽동(竹洞) 유달산 밑에 있는 양선생님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거기서 김용기 형을 만났다. 양선생님은 이름처럼 우아하고 청결하게 생긴, 그야말로 예술가였고 김용기 형은 우락부락한 체육기질인데도 정이 많고 재주 많은 재담가(才談家)였다.

자그마한 일본식 목조가옥의 안방이었다. 거기서 양선생의 젊은 부인과 그 부인의 누드화를 함께 보았다. 나는 그 때문에 내내 어쩔줄을 모르고 당황했던 것이 기억난다. 저녁 무렵 붉은 노을이 창으로 비껴들어와 커다란 누드 화면에 비쳤는데 누드는 곧 살아나 춤을 출 듯 생생해지는 것이었다. 크게 당황하면서도 예술이란 이런 것인가 내심 크게 놀라고 있었다. 김용기 형이 눈치채고 떠들어댔다.

‘왔다! 참말로, 예술이란 것은 무서워라우 잉! 무서워 잉!’
양선생님이 눈치채고 빙긋이 웃으셨다.
‘영일이는 앞으로 그림 할라냐?’
‘아니요.’
‘그래? 소질은 있는데 잉-!’
‘……’

훗날 내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미학과에 입학한 뒤 회화과에 있는 한 친구와 함께 이화동 입구의 한 음식점에서 양선생님을 만났을 때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영일이는 그림에 소질이 있는데 잉-!’

김용기 형은 미학과 선배였다.
용기형은 배고플 때 밥도 사주고 출출할 때 술도 사줬으나 무엇보다도 고마운 것은 내가 절망할 때 그 부리부리한 눈에 불을 달고 그 능란한 언변으로 내게 희망을 퍼부어 주었던 것이다. 용기형도 또 그 말을 했다. 침침한 어느 닭도리탕 집에서였다.
‘영일이는 그림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잉-!’

미술. 그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내겐 한(恨)인가? 결국 그림으로 돌아가고 말 것인가? 비록 문인화지만 요즘 란초에 열중하여 하루 한 시간 두 시간이라도 란치는 일을 못하면 무엇을 크게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인가? 알 수 없다. 예술이란 것이 삶과 맺는 관계가 무엇인지 날이 갈수록 더 알 수가 없다.

***문학**

중학 1학년 여름방학 무렵에 학교 교지에 수필 한편을 거의 강제로 써서 실린 적이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그것을 보셨다. 외가에는 그렇지 않아도 항도여중의 조희관 선생이라는 유명한 수필가와 예총의 차재석이란 분이 있어서 시 동인지 ‘시정신(詩精神)’이란 앤쏠로지를 발간해내는 것이 늘 증정돼 오곤 했다. 미당 서정주나 신석초, 신석정, 김현승 등의 이름을 안것도 그 책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우리의 토박이 말과 미묘한 전라도 사투리의 매력을 처음 깨달은 것도 조희관 선생의 그 무렵의 수필집 ‘철없는 사람’에서였다.

그랬다. 아마 외할아버지는 조선생과도 친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외할아버지가 나를 앞에 앉혀놓고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글을 쓰려거던 똑 이렇게 써라. 한 놈이 백두산에서 방귀를 냅다 뀌면 또 한 놈이 한라산에서 ’어이 쿠려‘ 코를 틀어막고, 영광 법성포 앞 칠산 바다에서 조기가 펄쩍 뛰어 강릉 경포대 앞바다에 쾅 떨어진다. 요렇게!’

아마 이 무렵이 내 문학의 배태기였을까? 그러나 이런 미학적 크기로 본다면 ‘오적’과 ‘대설’이외엔 별로 참문학의 성취랄 것이 없었던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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