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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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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66>

대전

전쟁은 끝이났고 휴전으로 남북은 항구적 분단 상태에 들어갔다. 아버지는 그 무렵 강원도 원주에 정착하셨다. 육군 군예대에서 직영하는 원주 군인극장에서였다. 아버지를 보러 원주로 가는 길에 꼭 하룻밤 묵어가야 했던 대전의 한 허름한 역전 여인숙이 생각난다. 다른 것이 아니다.

캄캄한 밤 마루에 나앉아 어머니와 그 여인숙 주인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졸던 생각인데, 한 이야기 내용 때문이다.

소문인데, 한 여자가 개울에서 목욕을 하던 중 커다란 뱀에게 감긴 뒤 지금까지도 그렇게 감겨있다는 거며 뱀의 생식기가 여자의 그것에 들어가 여자가 뱀을 배었다는 거였다.

끄벅끄벅 졸면서 캄캄한 밤중에 들은 얘기라서 더욱 그런 것인지, 도무지 음산하고 칙칙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꼭 그 무렵의 시절 같았다. 아무 희망도 없고, 그저 목숨하나 사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던 시절의 캄캄한 정신풍경이 그런 소문을 낳았을 거란 생각을 한다. 꼬리 여럿달린 여우 얘기며 귀신 얘기며 그 무렵은 왜 그리도 기괴한 소문들이 많았던지!

원주는 허허벌판이었다.
융단폭격과 남북의 끊임없는 쟁탈전으로 인한 포격 바람에 남아난 집이 없었고 군부대와 판잣집들 뿐이었다. 극장도 나무로 지어올린 판잣집이었다.

아버지는 그 극장앞 쬐끄만 판잣집 한 귀퉁이 방에 묵고 계셨다.
쬐끄만 판잣집 한 귀퉁이 방.

극장의 딴따라들이 모두 모여 미군의 고기통조림을 풋고추에 섞어 난로에 볶아대면서 위스키를 마시던 그 쬐끄만 방 한 모퉁이에 끼어앉아 아아! 나는 그러나 고향에 온 것을 알았다.

아버지 계신 곳이 내 고향이었던 것이다. 한없는 한없는 안도감속에서 빙긋이 미소짓는 한 쬐끄만 소년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러기에 떠날 때는 퉁퉁 부어 인사도 제대로 안하고 연극 쎄트를 실은 군예대 트럭 뒤에 타고 청주까지 가면서 내내 엉엉 울었던 것이다. 사태가 심각함을 눈치챈 군예대 아저씨들에 의해 나는 돌아가는 차편으로 원주에 다시 가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은 아버지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2학년부터 원주로 오도록 나의 전학을 결정한 것이었다. 나는 중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 강원도 원주에로 전입하게 된 것이다.

***여자들**

나의 목표시절 주변엔 여자들이 많았고 이모할머니들과 이모들 그리고 고모. 모두들 내게 깊은 영향을 준 사람들이다. 나는 어쩌면 어머니보다 고모와 이모들에게서 더 깊은 모성애와 자애로움을 느끼고 자랐는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유행가까지도 웬만한건 다 배워 불렀는데 그것과 함께 대중소설과 애정소설들 모두 다 큰 이모 덕이었다. 고모에게서는 또다른 어머니의 모성을 느꼈는데 서민적이고 생활적이며 노동하는 여성 대중의 그것이었다.

나는 어머니보다 고모나 이모의 빤빤한 젖가슴을 더 자주 만지며 자랐으니 내 안에 있는 아니마는 젖가슴이 빤빤한 올곧은 소년티 나는 소녀이기 쉽다.

그러나 나는 이모나 고모들과 어울려 놀며 대지와 자연과 삶의 침침하면서도 익숙한 아름다움에 눈떴고 마치 캄캄한 한 밤중의 반딧불처럼 소리 없는, 그러나 깊고 깊은 생명의 비밀을 모르는 사이에 체질 깊숙이에 받아들이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대학 2학년 때 노자의 도덕경을 읽으며 전혀 낯설지 않고 오히려 익숙한 느낌에 잠긴 것도 바로 이 유년과 소년기의 쓸쓸한 모성과 활달한, 그러나 아직은 소년같은 여성성으로부터의 습윤(濕潤)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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