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65>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65>

천승세(千勝世)

여기까지 이르니 기억의 한 모퉁이에서 중학생 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타고 우리 살던 연동에 바람처럼 나타났다 또 번개처럼 사라지곤 하던 한 소년이 떠오른다.

천승세.
소설가 천승세씨다.

내가 국민학교 6학년때 중학생으로 내 작은 외삼촌 정일성의 동급생이었다. 말투가 괴상하고 표정이 재미있어 늘 반가워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집앞에 서서 칡뿌리를 질겅질겅 씹어먹고 있을 때 휙 나타나 대뜸 묻는다.
‘니 머 묵냐?’
‘칡’
‘임마, 나무뿌리 아니여?’
‘왜?’
‘임마, 뿌리는 못 묵는 것이여. 니같으면 뿌리가 말하자믄 부모님인디, 부모님을 씹어묵어? 나무가 살겄냐, 죽제!’
‘어?’
‘니 주뎅이가 그것이 멋이냐?’
‘칡물’
‘임마, 천하의 환쟁이 김영일이가 주뎅이가 그것이 멋이여?’
‘히히히’
‘칠하는 것만 그림이 아니여, 닦는 것도 그림인께, 닦아라 닦아! 아나 손수건!’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길갓에 앉아 작대기로 땅바닥에 새를 그리고 있을 때 어느새 나타나 나의 새 그림 주둥이에 비행기 프로펠라를 얼른 그려넣고 저만큼 물러난다.

‘새가 먼 프로펠라랑가?’
‘임마, 요즘 새는 다 그래!’
‘나는 못 봤는디-’
‘니만 못 봤제, 나는 봤다. 다 봤다.’
‘옴메 새가 으뜨케 기계가 된당가?’
‘요새끼 보소! 꽤 똑똑헌디! 임마, 똑똑할라면 아조 똑똑해부러! 요즘 기계는 모도 다 살아있어야! 산 것도 진짜 산 것은 기계여 기계! 기계도 상등기계는 모도 다 산 것이여 산 것! 알것냐? 요 맹초야!’
‘어-?’

이런 일도 있었다.
‘영일아! 니 국군 수복 때 서부학교로 공부 댕겼지야? 느그학교 해병대 줬응께?’
‘응’
‘서부를 꺼꿀로 읽으면 멋이여?’
‘부서(물고기 이름)’
‘이런 노래 들어봤냐?
요번 공습에는
부서 허리가 끈지러지고-’
‘부서허리?’
‘그래 서부학교 중간이 폭격맞았제잉- 봤지 잉-?’

문제는 그 다음에 있었다.
‘영일아
니 서부학교 뒤에, 뒷개 앞에, 압해도 바다 한복판에 멋이 있디?’
‘몰라’
‘임마, 거기 흰 돛단배 있디 안!’
‘그래 맞어’
‘그 돛단배 주인이 누군질 알어?’
‘몰라’
‘임마, 나여나! 이 승세 성님이 그 흰 돛단배 주인이여!’
‘………’
‘니 이런 노래 알지야?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돛배에
계수나무 한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나는 아직도 잘 모른다. 승세형의 가족관계를. 그러나 형이 불운하다는 것만은 안다. 그러나 아마도 그것이 형의 문학의 밑거름이 아닐까? 더욱이 자기 불운 앞에서 그렇게 늠름했으니 그 불운이 제가 거름이 안되고 베기겄냐? 안그래? 잉-!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