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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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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59>

흉년

전쟁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전쟁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형편없는 구닥다리 유물론자, 그것도 관념적 유물론자에 지나지 않는다.

전쟁은 인간과 신 사이는 물론이고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도 진행된다. 전쟁 때는 반드시 흉년이 겹쳐들고 자연의 재난이 기필코 따라온다.

3년 동안의 흉년이었다.
갯뻘에 그 숱하던 꼬막마저 집단폐사하고 뒷산의 솔껍질마저도 말라붙었다. 쌀은 구경할 수조차 없었고 보리기울에 보리떡이 고작이었으며 그것도 하루 한끼, 또는 두끼였다. 굶주림이 상습이 돼있던 연동에서도 죽겠다는 소리가 연이어 터져나왔다.

머얼건 보리기울죽 한그릇 먹고 학교엘 가면 눈앞이 샛노오래서 선생님 목소리가 잘 안들리고 쉽게 지쳐 엎드려버린다. 그런데도 시내쪽에서 오는 애들은 어디서 났는지 허연 쌀밥을 싸오는 애들이 있었다.

내 짝이었던 행식이도 그랬다.
하루는 행식이가 점심시간이 되자 펼쳐놓은 도시락을 곁눈질해 보는 나의 목젖이 침을 삼키는데에 따라 오르락 내르락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허연 쌀밥에 새빨간 멸치볶음과 노오란 계란말이가 곁들인 도시락을 내 앞으로 밀어놓으면서
‘먹어!’
했다.

나는 도시락을 슬그머니 싸들고 일어서 교실을 나가 뒷산으로 올라갔다. 바쁘면서도 신중한 걸음이었다. 보리밭 한 귀퉁이에 살며시 앉아 그 귀한 도시락을 제치고 흰 쌀밥을 한입 잔뜩 집어 먹었다. 천천히 계란말이와 함께 조금씩 씹었다.

아아, 꿀맛이었다.
나는 이제껏 그토록 맛있는 밥을 먹어 본 적이 없다. 그때를 생각할 때마다 행식이가 고맙고 그 뒤 그 애를 다시 찾아보지 못한 나 자신이 미웠다.

또한 그 무렵의 일이다.
굶주림이 새카만 파리새끼처럼 인간의 존엄을 여지없이 낮추는 예가 내 주변에 있었다.

나는 거의 외가살이였는데 친가보다는 조금 나은 편이었던 외가에서도 내 조카 진국이의 분유, 우유 따위를 사기는 힘들었던 것일까?

우리가 먹는 보리죽 따위를 먹이는데 젖이 없고 밥도 없어 해골만 남은 간난장이가 내내 징징대고 울고만 있었다. 죽을 떠먹일 때 이외에는 내내 울었다. 내내다.

전쟁뒤의 인심은 유년(幼年)마저도 거칠고 잔혹한 것이어서 외가에서는 집안에서까지 피골상접한 진국이를 두고
‘실락콩 모가지 장구통 배야지!’
라고 놀려먹었다.

그 애,
내내 울기만 하고 보리죽에 껄덕거리던 그 애 진국이는 마침내 영양실조로 굶어죽고 말았다. 그날 밤 뻘밭에 진국이의 송장을 뭍고 온 외할아버지는 마루끝에 앉아 숨죽여 우시었다.

잔혹한, 잔혹한 그 흉년이 3년을 내리 계속되었다. 갯뻘에 그 숱하던 꼬막마저 집단폐사하고 뒷산의 솔껍질마저도 말라붙었다. 전쟁 때문이었다.

그래.
결국은 인간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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