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51>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51>

뱀과 개구리

큰 뱀이 큰 개구리를 삼켰다.
개구리는 발만 안들어가고 온 몸이 뱀에게 삼켜졌다. 삼켜진 채로 독을 뿜는가보다. 뱀이, 그 큰 뱀이 동시에 죽어간다. 몇 시간, 아니 하루종일 걸리는 것 같다.

우리가 피난한 집의 큰 집마당 한 귀퉁이에서 뱀과 개구리가 그러고 있다. 그것을 보고있던 나는 연신 큰집 대청마루를 흘끔흘끔 돌아다보곤 했다. 어쩐지 거기 그 대청마루에서도 또 하나의 살육 사건이 진행되는 듯해서다.

목여중이었던가 검은 쎄일러복을 입은 중학생인 한 말만한 처녀가 마루위에 간난장이 어린애를 앉혀놓고 큰집 부엌에서 얻어온 밥을 물에 말아 떠먹이고 있었다. 어떤 사이일까? 자식일까? 조카일까?

여학생은 예쁘게 생겼는데 불행한 마음 탓인지 누우렇고 핼쓱했다.
그런데 대청마루 저만큼에 캪을 쓰고 탱크바지에 흰 와이샤츠를 입은 한 남자가 마당에 서 있는 한복입은 다른 한 남자와 이상하게 불량스런 눈짓을 서로 주고받으며 여학생의 젓가슴이나 엉덩이께를 핥듯이 집요하게 쳐다보며 거듭거듭 질문을 퍼붓고 있었다.

‘어디서 왔다냐?’
‘신분이 무엇이여?’
‘여학생 맞어?’
‘저 아이는 누구아이여?’
‘직접 나은 아이 아니지?’
‘왜 여길 왔어?’
‘혹시 반동가족 아니여?’
‘왜 대답을 시원시원 못혀?’
‘여기 오늘 어디서 잘꺼여?’
‘어디로 갈꺼여?’
‘너 도망온거지?’
‘솔직히 말해! 너 반동이지?’
‘저 애 니가 난 아이지?’
‘저 애 애비는 지금 어디었어?’

개구리가 다리마저 모두 삼켜졌다. 그러나 뱀은 이제 거의 죽어가는 듯 했다. 저녁 그늘이 마당에 넓게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조금 떨어진 모퉁이에서 건너다보아도 여학생 콧잔등에 땀방울이 송송 맺혀있다. 남자들은 떠나지 않고 있다. 먹이를 발견한 날쌘 짐승처럼 눈빛을 번뜩번뜩 빛내고 있었다.

왠지 알 수 없으나 이상하게 마음이 아파왔다. 불행의 감각. 여학생이 불쌍하다. 그리고 개구리가 불쌍하다. 그러나 밤도 죽어간다. 모두 다 불행하고 어둡고 사악하다.

그 큰집은 부줏머리 인민위원장 집이었는데 훗날 소문에 의하면 국군수복 후 그 집 식구들 전체가 몰매를 맞아 죽었다고 한다.

오감리 입구의 그 시커먼 감나무.
그 밑에 함부로 쌓인 돌덤부락.
돌덤부락 위에 아구리 벌린 가마니 속에서 반쯤 나온 피투성이 어린아이의 시체.
여기저기 찢어지고 으께진 살점이 너덜너덜한 그 시체. 그 어린애 시체. 그때 들은 기억으로는 오감리 경찰 집구석의 아이라 했다. 굉이 돋친 솔몽둥이로 때려죽여서 갖다 버린 것이라 했다.

그러면 국군수복 후 부줏머리 인민위원장 집 식구들의 시체는?
혹시 그 무렵 언젠가 둥구섬 건너 갯가에서 보았던 가마니 덮힌 그 파리떼 구더기떼 들끓는, 그때 보았던 그 송장? 그 송장처럼?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