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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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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47>

소년단

자주 끼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 덕택에 명목상으로는 소년단 간부였다. 공습이 있어 등화관제로 캄캄했던 어느날 밤 나는 소년단 사무실에 아이들 여럿이 함께 있었다.

연동에서 가장 미남이고 로맨티스트로 소문나있던 영진 형이 한 간난장이를 무릎에 올려놓고 캄캄한 중에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나는 적 앞에서 끝까지 조국에의 충성을 지키기 위해 제 팔을 불에 태우는 한 군인의 애국심 이야기였고, 다른 하나는 화란의 한 소년이 저지대의 제방에 바닷물이 새어들어오는 것을 막기위해 제 손가락과 손과 팔이 다 못살게 될 때까지 분투노력하는 눈물나는 이웃사랑 이야기였다. 밖에서는 훤한 조명탄 불빛속에 폭격음이 연거푸 들려왔고 캄캄한 소년단실 안에서는 어린 마음 안에 국가란 무엇이며 사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초발심(初發心), 그렇다, 초발심을 자극하는 선전(宣伝)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그 말 잘하는 멋쟁이 영진형을 생각할 때마다 한 포스터를 떠올린다. 흰눈 쌓인 높은 산맥을 배경으로 푸른 스즈끼 작업복을 입은 젊은 남녀가 손을 잡은 채 머언 미래를 미소를 띤 채 바라다보는 공산주의 포스터다. 그 무렵 만화 같은 숱한 포스터들, ‘타도하자 미제!’같은 엉성한 선전물들 홍수 속에서 그런 수준 높은 포스터가 있었던 것이 희한하다. 그 포스터의 낭만성, 특히 그 배경의 흰눈 쌓인 산맥의 모습과 젊은 남녀의 사랑이 영진 형의 기억에 연결되고 또 훗날 산악 게릴라들의 이미지에 연결되는 것도, 생각해보니 모두 다 저 캄캄한 공습의 밤에 들었던 애국심과 사회사랑에 관한 이야기와 그로 인해 촉발된 어린 가슴속의 초발심 때문인 듯 하다.

6.25이전의 남한의 포스터들, ‘파쑈를 몰아내자!’나 ‘너는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 도 좋은 포스터들이었지만, 그러나 이 포스터처럼 로맨틱한 것은 없었다. 어린 눈에는 바로 이런 것들이 어떤 의미의 양식(糧食)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인민군**

나는 시간에 대해서, 역사와 구별되는 생성에 대해서, 민중의 내면성과 소망의 카오스적 시간에 대해서 내 생각을 말한 바 있다. 그런데 또 한가지 내 기억 속에, 민중과 역사, 즉 살아있는 민중의 소망과 공산주의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한 사건이 내 기억 속에 그야말로 시커먼 카오스처럼 크게, 깊게 자리잡고 있다.

인민군들은 그때 길을 지키고 있었다.
수송로로서도 행군로로서도 길은 중요한 자본이요 시설이니까.
구멍가게나 사탕집 안에 둘씩 짝지어 앉아서 길을 지키며 우리같은 애들에게 이야기도 해주고 노래도 가르쳐주곤 하였다. 스물 전후의 까까머리 인민군들은 엄격한 군율 탓인지 철저한 교육 탓인지 소위 인민이요 민중인 우리에게 따뜻했고 폐를 끼치지 않았다. 하긴 죽은 국군이나 미군의 송장에서 뺏어 온 시계를 넷 다섯씩 팔목에 차고 다니는 희극을 연출하고 말투와 행동역시 낯설었었고 노래란 것도 대개 러시아 것이었지만.

국경을 지키는 용사
카츄샤와 좋아해…

카츄샤 가는 높은 언덕길에
노래소리 좋아해…

사과꽃이 만발하게 피는…

이 노래는 아마도 우리 나이 또래 사람들은 거의 다 기억할만큼 6.25 이후 널리 퍼졌었고 아름다운 민요로 기억돼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날!
공습이 있었고,
비행기들은 터진목너머 지금의 통운미창, 쌀창고를 때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렇다!
인민들이, 하나 둘씩 길에 나오기 시작했다. 웬일일까? 누구 지휘도 선구도 없이 그저 자연발생적으로 꾸역꾸역 몰려나와 일제히 미창(米倉), 터진목 너머 쌀창고로 가기 시작했다.

사과꽃이 만발한 높은 언덕, 국경을 지키는 카츄샤의 연인인 인민군 병사들은 따콩총을 겨누고 위협하며 소리소리
‘썅 간나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간!’

소용없는 일이었다.
인민들은 비행기의 쉬임없는 폭격, 폭발 불꽃과 연기 속에서도 아랑곳 하지 않고 미창 창고로부터 쌀가마를 끌어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한 가마씩 지고 이고 끌고 낑낑거리며 사력을 다해 집을 향해서 내빼던 것이었다.

폭격도 죽음도 따콩총도, 그 어느 것도 쌀 앞에서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인민군들이 드디어 따콩총을 쏘기 시작했다. 물론 공포였지만 인민군의 총은 분명 인민을 향해 있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 총부리가 겨누어진 방향에 우리 가족도 나도 있었다.

마르끄스주의자들의 말처럼 그것은 그저 룸펜 프로의 폭동일 뿐인가?
그래서 룸펜 프로는 혁명과 무관한 것인가? 그뿐인가?
지금 몇 해째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무엇인가? 그것도 룸펜 프로의 무질서한 폭동일 뿐인가?

러시아에서 동구라파에서 진행된 역사, 그 찬란한 공산주의 혁명 역사와 카오스 같은 내면성의 소망의 생성과 막을 길 없는 갈증으로 인한 인민의 반역 사이의 시간들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인민군.
공산주의자를 아버지로 두고 나 자신이 소년단 간부이면서도 이 사건은 나의 감성 안에서 내 가족, 이웃, 인민, 민중, 그 가난한 연동 뻘바탕의 삶 자체와 인민군 사이의 커다란 거리를 인식시켰다.
물론 폭격기와 우리의 거리 역시 거리라기보다 삶과 죽음의 문제였지만.

그래.
그 무렵 ‘만열네’ 패거리에서는 이 쌀 사건이 흥분과 토론의 주제였던 것이 날카롭게 내 기억위에 떠오른다. 우리들 얘기를 다 들었을 연동의 붉은 어른들도 아무 말이 없었다. 연동은 그런 동네였다. 중력과 은총의 관계를, 천민과 성자의 관계를 탁월하게 분석한 시몬느 베이유의 깊은 시각 정도가 아니면 연동 뻘바탕은 이해 못한다. 하물며 책 몇 권으로 공산주의자가 된 자칭 진보적 지식인 따위가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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