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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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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41>

우리집 마당은 신작로.
밤에 길에 나와 앉아 있으면 기이한 생각이 들곤했다. 왼쪽 저편은 후미끼리, 건널목 너머무수한 도시의 불빛, 오른쪽 곧게 뻗어간 길은 컴컴한 수돗거리를 지나 일로(一老)의 새카만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내가 앉아있는 나직한 고갯길은 빛과 어둠의 중간이었다. 그러나 도시의 불빛 그 끝에는 거대한 밤바다가 가로놓여 있고 어두운 일로(一老) 저 너머는 사람이 북적대는 반도의 내륙, 또 그 너머는 아득한 대륙이다. 오른쪽을 보고 있으면 늘 뭔가 크고 끈적끈적 하고 무서운, 그러나 뜨거운 원시적인 것이 뭉글뭉글 다가오는 듯한 어두운 예감이 들었고 왼쪽을 보고 있으면 문화의 얼굴을 가진 섬세하고 세련된, 그래서 내겐 오히려 서먹서먹한 어떤 눈결정이나 종이꽃처럼 차갑고 화사한 것이 사각사각거리며 가까이 오는 듯한 생각이 들곤 했다.

빛과 어둠의 양 극이 엇섞이는 한 어린 얼굴이 떠오른다. 문화와 야만, 야수와 신성(神性)의 두 얼굴을 가진 원형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리고 하늘에 별이 가득한 밤의 검은 어둠 사이로 난 외줄기 흰 길, 나의 인생은 이 이미지, 이 흰 길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길은 내 운명이다.

“누니이이이임…”
왼편 시내 쪽 밤길에서 굵고 힘찬 목소리로 외치며 누군가 뛰어오고 있었다. 200미터도 더 넘는 거리인데도 어머니는 곧 알아차렸다.
“오메 대진아!”
“누니이이임…”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뛰어와 어머니 앞에 우뚝 서 차렷 자세로 거수경례를 붙이는 우람한 사나이, 국방경비대 이등 상사인 대진이 삼촌.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우렁우렁 하고 따뜻한 목소리, 후리후리한 키, 굵은 눈썹, 검고 큰 두 눈, 흰 이를 드러내며 그가 거기 기적처럼 서서 웃고 있었다. 작대기 세 개 위에 갈매기 두 개, 푸른 군복 위에 새빨간 계급장이 흐린 불빛을 받아 튀기듯 타고 있었다. 씩씩한 삼촌! 군신(軍神)의 이미지!
“영일이 많이 컸구나”
순식간에 내 몸은 허공중에 들려 올라갔다. 별 하늘과 불빛들, 검은 산그림자들이 크게 흔들리는데 그러나 커다란 바위 위에 선 듯 든든하고 행복했다.
“으짠 일이래?”
“휴가 나왔습니다”

6.25는 내 기억의 체계에선 대진이 삼촌의 이날 밤으로 시작한다. 그는 그 순간 이후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영원히! 그러나 삼촌의 추억은 그 뒤 나의 그 기이할 정도로 끈질긴 군인 숭배를 만들어 놓았다. 내가 군인 숭배라니!

길.
왼편 길은 내겐 도시의 얼굴이었다. 그 무렵 어느 날 한적한 오후 시내 중심가를 태환 형 손을 붙잡고 걷고 있었다. 형의 키가 엄청나게 커서 자꾸만 쳐다보며 발걸음을 빨리하던 생각이 난다. 태환 형은 큰고모 아들인데 목포에서도 이름난 수재요, 미남에 멋쟁이로 목포중학교 학도 호국단장이며 농구반 주장이었고 그때는 성균관대학 정치과에 다니고 있었다.

형은 상해식당에서 맛있는 짜장면을 사줬다. 짜장면을 먹으면서 둘이 나눈 이야기 한 토막.
“성, 이상해라우. 배가 바다로 갈 때 으째서 똑바로 안가고 빙빙 돌아간다우?”
“하하하. 영일이가 눈이 맵구나. 어디 알아 맞혀봐. 그거 알면 니는 어른이다, 어른.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인디 잉, 하하하”
“인생?”

열 살짜리에게 인생이란 아직 너무 어려웠다. 그러나 산다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면 그것이 퍽 무섭고 슬픈 것이라는 건 조금은 알고 있었다.

그 무렵에 본 <돌아온 어머니>라는 영화. 독립운동가인 아버지가 중국으로 망명한 뒤 뼈를 저미는 고생을 하다 마침내 가슴앓이 병을 얻고 그것을 진정시키려다가 아편쟁이로 전락하고 마는 어머니. 그 어머니 약값을 벌기 위해 구두닦이로 나서는 내 또래의 소년.

슬펐다. 어머니에게 약을 사다드린 뒤 아편쟁이가 즐겨하는 눈깔사탕을 입에 넣어주는 소년. 한없이 울었다. 드디어 해방이 되고 아버지는 돌아왔지만 어머니는 아편으로부터 돌아오지 못하고 골방에 갇혀 몸부림친다. 산다는 것이 너무도 무서웠다.

그 슬픔과 무서움은 내 자신의 유년의 표랑과 겹쳐진 것이지만, 하나 그때 거기에는 거리가 있었다. 그것은 영화였고 문화였으니까. 나는 조마조마한 안도의 숨을 쉬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길.
시내 중심가의 길은 우리집 앞길은 아니었다. 거기엔 꽃바구니들이 있었고 풍성한 과일가게들, 온갖 상점들, 관공서들, 예쁜 사슴그림이 그려진 크레파스며 컴퍼스며 공책들을 파는 큰 문방구, 모형기선이나 글라이더 따위를 진열한 과학기구 상점, 그리고 부두엔 진짜 멋진 기선들이 깃발을 펄럭이며 정박해 있었다.

목포극장에서 있었던 예술제의 기억. 번쩍이는 투구에 갑옷을 입은 이순신 장군이 칼을 휘두르면 펑펑 대포소리가 연이어서 터지고 거북선 아가리에서 붉은 연기가 막 쏟아져 나오는 장관. 그러나 그보다 더 예리하게 내 뇌리에 박혀있는 것은 내 또래 자그마하고 예쁜 춤추는 계집애들의 화장한 초립동이 모습과 목여중생들의 합창이다.

초립동이 모습은 앙증스럽고 너무 화사해서 나같은 더러운 뻘짱뚱이는 도저히 가까이 갈 수 없는 아득히 먼 세계, 유복한 도시 아이들만의 세계, 학예회 때마다 늘 나를 괴롭혀온 동경과 열등감이 동시에 일어나는 그 서먹한 세계.

그러나 목여중생들의 합창은 그와 전혀 다른 것이었다. 흰 줄무늬가 있는 곤색 세일러복의 단정함 순결함 밑에서 들먹이는 말만한 처녀들의 그 부푼 젖가슴과 허옇게 살찐 종아리들의 기괴한 모습 때문에 나는 갈팡질팡하며 숨이 가빴던 것 같다. 장엄한, 하나의 아득한 낯선,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그 합창이 지금은 내 귀에 기이한 느낌을 주며 울려온다.

찬양하라 노래하라 창조자의 영광을
뻗어나는 새싹들은 쉬지 않고 자란다.

길.
오른쪽 길의 원시적인 어둠 속에선 그때 무엇이 내개 다가오고 있었을까? 그것은 현실로 오지 않았다. 그것은 꿈으로 다가왔다.

첫 꿈. 새빨간 노을이 가라앉는 검은 산정리 뒷산에 빠알간 불점의 불연속선이 가로 위 아래 두 줄로 끝없이 교차하며 긴급한 무선전신의 ‘쓰쓰또또’ 소리가 한없이 증폭하면서 이어지는 꿈.

둘째 꿈. 컴컴한 다리둑 밑 시커먼 뻘밭에 시뻘건 관을 등에 지고 목에 새끼줄을 걸친 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한 사내가 거꾸러졌다 일어섰다 허우적거리며 끝없이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똑같은 꿈을 두 번인지 세 번인지 거듭 꾸었다.

무섭고 흉측했다. 어른들에게 꿈이야기를 했더니 모두 픽픽 웃어 버렸는데 얼마 안있어 6.25가 터지고 대살육을 겸험한 뒤 큰집 어른 누군가가 그 꿈 이야기를 들먹이며 날더러
‘참 이상한 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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