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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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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35>

큰 집<1>

인격실현의 첫 문이 무참히 닫혀버렸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철제문처럼 그렇게 무참히 닫혀버리는 인생은 없는 법. 생명은 기계와는 전혀 다른 융통성이 있는 어떤 것이다. 여기서 닫히면 저기서는 꼭 조그맣게나마 열리는 법. 그 때문에 사람은 억압에 의해 기형으로 성장하면서도 독특한 자기 생명의 중심을 유지해서 결국 언젠가는 반드시 자기 치유의 큰 동통을 통해 본래의 자기를 회복하는 법이다.

그 무렵 나는 한번 큰집에 가면 늘어붙어서 좀처럼 돌아오려하질 않았던 것 같다. 분명 내 삶의 원형이 큰집과 가까이 있는 것을, 어렸지만 상처받은 작은 동물처럼 민감하게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 큰집에 갈 때의 언제나 정해져 있는 그 절차가 생각난다.

우선 판자 울타리 틈새로 무서운 할아버지가 마당에 계신지 안계신지 빠끔히 들여다본다. 다음엔 얼른 뛰어들어 부엌 근처에서 일하시는 곰보할매 치맛자락 뒤에 가 숨어 재차 빠끔이 이번엔 집안을 살핀다. 이어 안전하다고 생각되면 그때부턴 마음놓고 나의 그 유명한 ‘부잡’이 시작된다. ‘부잡’이란 이런 것이다.

내가 기술자 내림이어선지 그림솜씨와 마찬가지로 손재주가 좋았고 우리집이나 외가에서 그림길이 막히니까 큰집에 가 뚝딱뚝딱 뭐든지 물건 만들어 내는 데에 온 신명을 쏟았다. 할아버지, 큰아버지, 우리 아버지와 작은 숙부가 모두 기계 기술자여서 집안에 가득 쌓인 게 연모다. 장도리 망치 펜치 커터며 줄톱, 쇠톱들이 여기저기 연모통에 가득가득해 공연히 즐거워서 큰 부자나 된 듯 가슴이 뿌듯.

또 큰집 살림은 본디 동학내림의 엄격한 경물(敬物), 하기야 그 무렵 우리 겨레가 대개 그랬었다지만 일체 물건을 공경하고 뭐든 버리지 않고 거두어둬 아끼는 것이 바탕이라 헛간에 가면 크고 작은 나무토막이며 짧은 쇠대롱이며 굵은 철사며 뭐든 내 바라는 대로 장난감 따위 만들 좋은 마련이 수북, 아주 신나는 판이었다. 다만 할아버지가 안 계시는 동안만!

그래 뚝딱뚝딱 뭐든 묘오한 물건을 떠억하니 만들어 가지고 이리보고 저리보고 혼자 즐겨보지만 그걸 남에게 자랑하지 않고 배길 도리가 있나! 외가로 가지고 간다. 가서 내또래 외삼촌에게 뻐기며 자랑을 한다. 그때는 참말 너무너무 행복하다. 하나 그것은 순간뿐, 곧 행복 끝 불행 시작이다. 물건이 멋지면 멋질수록 위험!

내 외삼촌이란 사람이 내 물건 빼앗는데는 이골이 난 도사라! 순식간에 빼앗아 가버리는데도, 그런데도 멍청하게 서서 한마디 대들지도 못하고 손깍지만 그저 손깍지만, 잔뜩 비벼대며 죽어라 하고 손깍지만.

참 등신이었지. 하지만 어떡하나! 코가 쑤욱 빠져 느적느적 걸어서 큰집으로, 큰집 연모통 곁으로 도로 돌아가 또다시 망치를 들고 뚝딱 뚝딱 뚝딱.

스물 세살적 여름. 서대문 감옥에서다. 잡범들과 합방이었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 안씨라는 따통꾼, 절도전과 13범. 아편으로 새카맣게 타서 찌들어버린 얼굴, 아랫배만 뽈록 맹꽁이 같은 몸집. 자기 말로는 만주에서 마적질을 했다고 거품을 물고 주장하는데 아무래도 뻥튀김이다. 한데 이 사람 빵손 좋은 것이 사등식 보리밥알로 돼지를 만들거나 칫솔대를 깎아 여자의 나체상, 거웃을 뽑아 조리 따위를 만드는 등 기막힌 재주였다.

밥을 먹을 때 남겨둔 보리알을 손등에 얹고 몇시간이고 문질러대면 똑 고무랜드처럼 된다. 이것을 요리조리 주물러 아주 세세한 잔손질로 눈을 가늘다랗게 뜨고 공을 공을 들여서 돼지 한 마리를 떠억하니 만들어 놓았는데 하하, 가히 일품이었다. 노을 무렵 쇠창살 밑에 갖다 세워 놓으니 바알간 빛살을 받아 돼지가 꿈틀꿈틀 살아나는 것이 아주 신기한 영물!

감방식구가 모두들 감탄감탄, 한동안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는데 뒤에서 덜커덕 문이 열리며
“이리내!”
교도관의 널찍한 손바닥이 쑥 들어온다. 안씨 태도가 더 일품이다. 입을 새촘하게 다물고 다소고옷하고 야암전하게 마치 보물이나 다루듯 조심조심 돼지를 들어다 손바닥 위에 고대로 세워놓는다.

덜커덕! 욕 한마디 불평 한마디 없이 차분히 앉아 남은 보리알을 손등에 얹고 또 문질러대기 시작하는 안씨.
“아니 안 선생, 부아도 안나요?”
“무슨 부아? 징역깼으면 됐지.”
징역깬다? 그걸로? 누가 뺏어가든 상관없다?

안씨의 얼굴은 다시 거기에 몰두하며 진지해진다. 몰두 한다는 것, 온갖 징역살이 고통, 갖은 잔근심 다 잊어버리고 몇 시간이든 망아(忘我) 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이면 만족이라는 것. 그래 그것은 일종의 환상적 탈옥이다. 그리고 수천년 이어온 노예들의 유일한 종교다. 옛 장인(匠人)들의 그 짐작할 수 없는 기이한 마음의 세계다. 세상은 그것을 깊은 비애라고도 하고 형편없는 아편이라고도 한다. 어떻든, 그때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생각이 내 어린 시절에 미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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