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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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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34>

내 가까운 친구들은 다 잘 아는 일이지만 내겐 지금도 여러 가지 해괴한 버릇이 있다. 내 이마 왼쪽의 눈자위 바로 윗부분은 오른쪽보다 훨씬 꺼져있는데 그 움푹 꺼진 부분을 손가락으로 끊임없이 누르는 버릇, 아주 진저리가 나도록, 머리가 띵해오도록 누르는 버릇. 또 있다. 내 왼쪽 귀바퀴 중간쯤에 톡 튀어나온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을 손가락으로 끝없이 만지고 침까지 묻혀가며 요리조리 만져대고 비틀어대서 빨갛게 썽이나고 점점 커지게 만드는 버릇. 또 있다.

너무나 잘 알려진 버릇인데 오른쪽 엄지 손가락 등을 물어뜯는 버릇이다. 고등학교 때던가 거기 어쩌다 가시박힌 걸 뽑아낸 뒤 길고 가느다란 머얼간 상처가 생겨났다. 이게 보기 싫었든지 어쨌든지 계속 물어뜯기 시작해서 아주 커다랗게 시커멓고 징그러운 굳은 살덩이가 달라 붙어버렸다. 징그러우니까 또 물어뜯고 물어뜯으니까 더욱 징그러워지고 침이 잔뜩 묻어드는 중에 물어뜯으니 마알간 게 송알송알 수 없는 알갱이들이 송송 돋는 기괴한 모양이 되어 들여다 보면 내 스스로도 소름이 쭉쭉 끼친다.

간혹 찻집 같은 데서 무료할 때 나도 모르게 물어뜯고 있으면 항용 친구들이 왈 “요즘 뭐가 잘 안돼?”
물어뜯지 않고 있으면 왈 “오늘은 기분이 좋군!”
심지어 어떤 친구는 만나자마자 내 손을 붙잡고 엄지를 들여다보며 가라사대 “자네 형편이 어떤지 한번 보세.”

그때. 그 여덟 살 무렵에 도대체 무슨 버릇이 갑자기 생겨나서 지금껏 평생을 일관하는 걸까? 그것은 두 손을 깍지끼고 끝없이 비벼대는 버릇이다. 끈질게 끈질기게 비벼 나중엔 손가락 마디 여덟 개가 모두 껍질이 홀랑 벗겨져서 머큐로크롬을 잔뜩 처바르고 붕대를 칭칭 감아두고, 허나 다 소용 없었다. 야단치고 욕하고 매질을 해도 다 헛일이었다.

하다못해 언젠가는 어머니가 내 두 손을 굵은 노끈으로 며칠씩 꽁꽁 묶어 놓기도 했다. 밥 먹을 때만 풀어주고 또 묶어놓고 또 묶어놓고 그러나 역시 막무가내. 내가 일부러 그러는 줄 알고 어머니는 내게 울며불며 하소연하기까지 했다. 하나 내 대답은
“으째 그란지 나도 모른디.”

사실 몰랐다. 스스로 그러지 않으려 애를 써봤지만 도무지 소용없는 일. 영리하신 어머니는 내게 그림을 그리도록 슬그머니 부추겼고 나도 좋아라하고 그림을 그렸지만 그 버릇은 여전히 조금도 줄지 않고 계속하여 영영 불치의 버릇이 되고 말았다.

내 손은 시인의 손이 아니라고들 한다. 똑 땔나무꾼이나 머슴 농부의 손처럼 마디가 굵디굵은 게 몹시 울퉁불퉁하다.

우스운 이야기 하나. 대학 다니던 시절이다. 1960년대 초니까. 부르주아니 프롤레타리아니 하는 좌익용어들이 마치 지식인 신분을 나타내는 매우 고상한 어휘처럼 즐겨쓰던 그런 때다. 누구더러 부르주아라고 부르면 매우 화를 냈고 반대로 프롤레타리아라고 불러주면 은근히 좋아하곤 했다. 그 무렵 어떤 친구가 내 손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햣! 너는 프롤레타리아로구나.”
어떤 선배는 왈
“김형 기본 출신이군.”

기분 좋기는커녕 씁쓸했다. 허나 웃지도 못하고 괴상한 기분을 느낀 적이 한번 있다. 옛날 좌익하던 백발노인 한 분이 어쩌다 나와 함께 막걸리를 마시다가 사발을 입에 갖다댄 내 오른손을 한참 쳐다보고는 나직이 씹어 뱉어낸 말이다.
“숙청은 면하겄다.”

'갑옷 없는 기사'. 그때 떠오른 것이 이 영화다. 러시아 10월 혁명의 혼돈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는 검문소의 콤미사르가 통행인의 손을 들여다보고 두 줄로 편을 가른다. 죽일 놈과 살릴 놈, 손이 희고 가늘고 부드러운 놈과, 손이 검고 굵고 거친 놈, 6.25때도 똑 그랬다. 그 노인의 말투는 무엇을 뜻하는 건가? 나는 요즘의 소련을 보며 “저렇게 끝장날 일을 그렇게 무지몽매하게 제 살과 남의 살을 잔인하게 물어뜯으며 미쳐 날뛰도록 만든 차르시대의 어둠은 도대체 어느만큼 깊은 것이었을까?” 생각하곤 한다.

손! 손이라는 것.손은 분명 자기 삶의 역사다. 선조의 삶까지도 함축한 뚜렷한 역사의 표현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런 파악에서만 끝나지 않는다는 데에 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나는 가끔 내 못생긴 손을 들여다보며 혼자 웃을 때가 있다. 그것은 혹독한 노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스꽝스럽게도 그 보다도 더 가혹한 콤플렉스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손은 단순한 노동의 자취만은 아니다. 손은 정신의 표현이다. 노동을 통해서마저 강렬하게, 무섭게 나타나는 속일 수 없는 정신의 역사인 것이다. 그리고 또 죄의 역사이기도 하다.

1987년 그 혹독하게 추웠던 겨울, 나는 정신병동에 있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유리조각으로 동맥을 끊고 실신했다가 치료를 받고 회복된 뒤 어느날 탁구장에 들어가 멍청하게 앉아서 환자들 탁구치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을 때다. 여섯 살쯤 된 어린아이가 그 무렵 입원해 있었는데 그 아이가 왼손에 배트를 들고 쉽게 차례 오지 않는 공을 초조하게 기다리며 오른손, 아 그 오른손의 엄지손가락! 엄지손가락을 자근자근 끝없이 깨물고 있었다. 곁에서 이걸 지켜보던 간호원,
“저게 문제야, 저게 문제!”

그때 나는 소스라치듯 깨달았다. 내 평생의 손버릇이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그때 그림을 통해서 막 열리고 있었던 내 인격실현의 문이 너무도 무참하게 닫혀버린 바로 그 참혹한 좌절과 상실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그리고 끝없이 현실에 적응하라는 주문(呪文)의 억압적인 훈련의 지겨움에 의해 도리어 계속 강화되어 왔다는 것. 그 누구의 죄도 아니며 다만 그것은 그토록 섬세하고 복잡 미묘한 인간정신의 깊이에 대한 우리 모두의 캄캄한 무지의 탓이라는 것. 자기학대와 생명 경시는 바로 여기서부터 비롯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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