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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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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33>

그림

그림, 나의 한(恨).
끝끝내 이루지 못한 나의 꿈.
평생을 떠나지 않는 좌절한 첫사랑의 깊이 파인 그늘 같은 것.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태생이 시인쪽보다는 그림쟁이다. 두꺼비 흉내를 내고 참새 흉내를 내고 고개숙인 해바라기 모양이며 할미며 온갖 산 것은 다 흉내내려 했으니 그 첫 조짐이다. 무슨 물건이든 그 특징이 먼저 눈에 들어와 박혔고 그걸 그리고 싶어 안달을 했고 그리면 그렇게 신명이 났다. 종이와 연필이 귀할 때다. 흙 마당에 돌팍으로 그리고 회벽에 숯이나 부지깽이 끝으로도 그렸다.

돌아오는 것은 구박과 매. 그럴 때면, 그래도 그리고 싶어 못견딜 때면 방바닥에 맨 손가락으로도 그리고 마루 위에 물을 찍어 그리기도 했다.

왜 그리도 그리고 싶어했을까? 그림이란 도대체 뭘까? 단순한 모방 충동일까? 아니면 누를 수 없는 어떤 깊은 그리움일까?

일학년 때의 그 일요일, 여선생님에게 이끌려 흰 돛단배를 그리고 난 뒤부터는 점차 밤낮이 없어졌고 재료도 대상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였다. 욕을 먹고나서도 또 그리고 매를 맞고 혼이 나고 나서도 역시 막무가내였다. 뭣이 씌었다고들 했다. 뭣이 씌었을까?

여덟살 그 무렵 이런 일이 있었다. 수돗거리 뒤편 한 깊은 골목에 정환 형이라고 먼 친척 형님이 한분 살고 있었다. 남농(南農)과 쌍벽이라는 소송(小松) 문하 제자였는데 그때 스무 살쯤 청년으로 가늘고 자그마한 몸집, 희누르고 갸름한 얼굴에 긴 리젠트머리를 기름발라 단정히 빗어 넘기고는 단벌 정장을 언제나 반듯이 차려 입고 옆구리엔 커다란 그림판, 꼭 다문 작은 입. 눈은 잔뜩 내리깐채 옆도 안돌아보고 아침이면 똑같은 시간에 북적대는 수돗거리를 천천히 지나서 시내로 들어가곤 했다.

동네에선 괴짜 취급이었다. 사실이 괴짜였다. 자기 방에 꼭 틀어박혀 동네사람들과 일절 어울리질 않았으니까. 사람들은 ‘가난뱅이 환쟁이’라고 놀려댔고 고생문이 훤히 열렸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사실이 가난뱅이였다. 굶기를 밥 먹듯,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했으니까. 요즘이야 화가들이 되레 떵떵거리는 부자지만 그땐 그랬다. 헌데 내가 그 무렵 바로 그 형에게 몰래 드나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침침하고 눅눅한 골방이 생각난다. 그 방에서 정환 형은 화본(畵本)을 펼쳐놓고 말이며 소, 갖가지 사람모양을 내게 그리게 하며 이것은 이렇게 하지말고 저렇게, 저것은 또 이렇게 그리라고 자상하게 가르쳐 주었다. 때론 목단초화에 빛깔을 칠해 넣어 보라고도 했다. 그 빛깔들의 화사한 느낌이라니! 그 빛깔들을 칠할 때의 떨리는 충족감이라니!

나의 기쁨은 단순한 기쁨 이상의 기쁨. 스승을 만난 감격, 신을 본 사람의 황홀감 같은 어떤 것. 내 앞에 찬란하고 신기한 세계가 열린 것이다. 꿈만 같았다. 온종일 그 방을 생각했고 형 만나는 시간만 조마조마 기다렸다. 그 깊은 골목을 들어갈 때는 가슴이 둥둥 뛰었고 거의 완벽한 나의 행복이 거기 있는 것처럼 느꼈다.

형은 나를 무척 소중하게 대했다. 나의 재주를 아꼈고 외로워서이기도 했겠지만 그냥 친척동생이 아니라 마치 친구처럼 인격적으로 대했다. 나는 형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영산강 한복판 벽돌섬에 흙을 먹고사는 이상한 사람이 있다는 것도 처음 듣는 놀라운 이야기였고 동구섬 상여간에서 밤마다 웃음소리가 나와 바다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며 비녀산 뒷등성이 너머 옹달샘 안에 물속에서만 피는 파아란 달꽃이 있다는 이야기도 처음. 그리고 솔거의 신령한 소나무 그림 이야기와 자기 그림에 불평을 늘어놓는 양반 앞에서 자기 눈을 뽑아버린 최칠칠이의 그 괴팍한 이야기도 그때. 어른들 옛날이야기나 친구들 귀신이야기와는 퍽 달랐다.

가난하고 불행하지만 자유롭고 깊고 옹골찬 예술가의 세계 그 입구 근처를 머뭇거리고 있었다. 문고리를 쥐고 있는 것은 형! 내 마음에 싹튼 소중한 우정과 한없는 신뢰. 그래! 우리는 동네사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비밀한 우정을 맺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그만 우리 관계가 들통나고 말았다. 형이 큰집 숙부에겐가 무심결에 내 재주를 칭찬한 말이 흘러 어머니 귀에 들어가버린 것이다. 치명적인 그것! 북적대는 수돗거리 한복판에서 어머니는 정환 형을 가차없이 매도해버린 것이다.

“지 혼자 가난하면 됐지, 남의 집 귀한 자식을 또 가난뱅이 만들라고 살살 꼬솨?”
상처! 그 시절 그 세상에서 자식 아끼는 마음에 어머니는 당연한 말을 한 것이고 정환 형에겐 그저 잠시 무참한 일일 뿐이었겠지만 내겐?

형은 그 뒤 내게 눈도 주지 않았다. 형을 만나지 않겠다는 그 거듭거듭된 다짐, 그리고 또 거듭된 그 말.
“그림 그리면 가난하다!”
“그림 그리면 가난하다!”
“그림 그리면 가난하다!”

거듭거듭거듭되어 귀에 못이 박히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내 넋 속에 날카로운 쇠꼬챙이로 깊이깊이 박혀버린 어머니의 그 지겹고 무서운 주문(呪文)에 질려서였을까. 아니면 큰 상실감과 슬픈 절망감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 뒤부터 그림을 잘 그리지 않았다. 공부에만 달라붙었다. 칭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부터 내겐 괴상한 버릇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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