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원래 얼짜여서 그랬겠지.
세 살이나 손아래였는데도 성미가 똑 송곳 같아서 사소한 일에도 바르르르, 꽥꽥 소리를 지르며 발을 동동 구르며 시퍼런 눈자위를 치곤두세우고 막 대들며 청자는 내게 무시로 성깔을 부리곤 했는데, 늘 저만 두둔하는 할머니를 믿고 그랬을까? 생각하면 참 우습다. 그 자그만 애를 못이기고 슬그머니 집을 빠져나와 언덕 위 늙은 솔 밑에 가 소리없이 울며 우두커니 앉아있곤 했으니, 산너머 또 산너머, 상공리 너머 시아 바다 건너 먼 목포쪽 하늘을 바라보며 마냥어머니를 그리고 있었으니.
“괜찮다-괜찮다-괜찮다.”
늙은 솔. 그 점잖은 어른이 하루는 날 그렇게 달래는 듯했다. 쳐다보니 구부구부 휘어진 가지들이 손을 흔들며 또
“괜찮다-괜찮다-괜찮다.”
등걸에 귀를 가져다 대보아도 마찬가지.
그 소리를 한번 입속으로 흉내내 봤다. 마음이 느긋해졌다. 자주 하니까 편안해졌다. 입으로 그 소리를 중얼거리며 언덕에서 내려오는 날 보고 마당에 섰던 할머니가
“무엇이라고?”
“괜찮다-괜찮다-괜찮다.”
“허 그놈 참.”
그 후로 내 별명이 영감이 되었다. 산이면 그집 뒤 솔숲 언덕 위 지금도 거기 그대로 그 어른 살아계실까?
해남을 떠나기 전날이던가, 전전날 저녁이던가? 큰이모할머니네 시댁이 해남 그 유명한 민씨 집안인데 오가시 시동생댁에서 우릴 대접한다고 개를 잡았다. 난생 처음 먹어보는 개, 꺼무꺼무하게 불에 그을린 구수한 껍질이며 고기를 찬물 바가지에 손 적셔가며 죽죽 뜯어 자꾸만 내 앞에 갖다 놓는데 원 세상이 이렇게 맛있는 것도 있나 싶었다. 허겁지겁 초된장에 찍어 얼마나 많이 처먹었는지 배꼽이 벌떡 일어서고 배가 봉긋 솟아오른 게 속이 아주 그윽했다.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느긋한 기분으로 잠에 곯아 떨어졌는데 한밤중에 타는 듯 목이 말라 잠에서 깨어났다. 모두다 쿨쿨 코를 골며 깊은 꿈속이고 물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있나. 캄캄 칠흑 중에 더듬더듬 부엌을 찾아나가 어찌어찌 손에 닿는 물항아리 속에 대가리를 처박고 찬물을 얼마나 퍼먹었는지. 하여간 시원했다. 살 것 같았다.
한데 그만 탈이 나고 말았다.
모두들 고기 먹느라 정신이 없었던지 개고기 먹고 찬물 먹으면 배탈난다는 소릴 채 내게 안 해준 것이다. 우르릉 쿵쾅 뱃속에 냅다 구라파전쟁이 터지고 우당탕탕 뛰쳐나가 마당 한 구석에다 좌르르르-.
애고애고 소리 멕이며 기신기신 방으로 기어들어와 간신히 몸을 눕히면 또 느닷없이 우르릉 쿵쾅-터지고 우당탕탕 좌르르르 애고애고. 우당탕탕 좌르르르 애고애고. 우당탕탕 좌르르르 좌르르르 좌르르르-.
도대체 몇 차례를 쌌나. 한 열두 번쯤 될까? 그 집은 큰 대숲으로 빙 둘러싸인 집인데 둥근 마당 한 쪽 귀퉁이에서 다른 쪽 귀퉁이 끝까지 빙 돌아가며 반원형으로 똥을 쌌다. 나중엔 완전히 탈진해서 애고 소리조차 못내고 마당을 그저 이리저리 엉금엉금엉금!
가물가물하는 눈에도 아 그날밤 밤하늘은 왜 그리도 아름다웠던지! 주먹같은 별떨기가 온 하늘에 가득차 번쩍번쩍, 바람은 대숲에서 쏴쏴 파도소리를 내고 있었고 시커먼 집그늘과 새하얀 흙마당이 울렁울렁 들며나며 대지는 깊은 숨을 쉬고 파르스름한 투명한 공기가 부르르부르르 떨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살아 있는 대지는 어째서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만 그 생생한 모습을 계시하는지!
나 떠난 뒤, 뒤에 남은 상공리 앞 시아 바다 붉은 노을, 높이 출렁이는 검붉은 물결, 그 거친 물결 속에서 황금빛 물고기들이 한 줄로 꼬리를 물고 하늘로 올라갔다. 올라간 뒤 적막한 밤이 문득 바다에 들고 사방은 붉고 푸른 도깨비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목포에 돌아온 내게 어머니는 등물을 해주셨다.
“어이 차!” “어이 차!” 푸푸거리며 나는 입에서 해남을 몽땅 뱉어내고 있었다. 아주 개운했다.
그러나 그날밤 꿈속에서는 나 떠난 뒤의 붉은 시아 바다, 황금빛 물고기들의 승천, 그리고 밤바다의 붉고 푸른 도깨비들의 춤을 다시 보았다.
뒷날 객지를 떠돌면서도 해남 그 여름 대지의 영상은 내내 내 마음 속에 외로운 신앙처럼 살아 있어 단순한 향수의 차원을 넘어 온갖 아름답고 심오한, 때로는 참혹하고 무서운 상상들을 자아내곤 했다. 내 초기 서정시에 자주 번뜩이는 뜨겁고 풍요로운 생명력 넘치는 남쪽의 이미지들은 대개 목포 쪽보다는 해남의 여름 영상에 닿아 있다.
그리고 나의 그 아까운 죽은 자식들, 지금에 와 겨우 생각나는데 1965년 겨울쯤이니까 스물네 살 때던가 당시 청맥(靑脈)지로부터 청탁받아 삼백 행까지 써나갔다가 갈기갈기 찢어버린 갑오동학혁명 주제의 대형서사시 '우슬치', 그리고 서른 살 때 메모와 초고 일부를 다 잃어버린 장편 서정서사시 '살포쟁이 숲속의 여름'이 모두 그 영상으로부터 뿜어 나온 것들이다. 우슬치는 해남의 들목이며 살포쟁이 숲은 해남 학동 근처 상공리쪽 길목에 있다.
해남을 다녀온 뒤 그 무렵 언젠가 밤에 외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 한 토막.
옛날 동학꾼 5천 명이 싸움에 져서 도망치다 해남 우슬치를 넘어왔단다. 고개에서 또 싸움이 붙었는데 그만 져서 몽땅 죽었다. 그래 그 뒤로는 그 고개에서 밤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노래가 들리고 바람이 불고 달이 뜨면 여기저기 하얀 뼈다귀에서 피리소리 피리소리가 한없이 한없이 났더란다.
바로 이 이야기가 서사시 '우슬치'의 시작이었다. 허나 동학꾼 5천 명이 전멸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슬치가 아니라 대흥사 입구 구림이다.
1985년 나는 실천문학사의 송기원씨가 기획한 ‘민중사상 기행’차 남행했다가 해남에 잠깐 들른 일이 있다. 작가 황석영씨가 동행했는데 그날 좀 이상한 일이 있었다.
해남 친구들이 우리를 대접한다 해서 밤에 대흥사 입구 구림에 있는 한 요리집 방에 가 좌정했다. 한데 영 심기가 불안했다. 마음이 춥고 떨리고 슬프고 무겁고 숱한 바늘이 몸을 콕콕 찌르는 듯 좌불안석.
그때 건너편에 앉아있던 황석영 씨가 신경이 있는대로 곤두선 얼굴로
“이 집 참 이상한데, 영 맘에 안들어.”
“꼭 무덤같지?”
“맞소”
“자, 나가세.”
자리를 털고 나오면서 해남 친구들에게 이 집 자리가 예전에 어떤 곳이냐고 물었더니
“동학꾼 5천 명이 몰살한 자리 아닙니까.”
역시 그랬다. 구림은 대흥사와 땅끝, 그리고 해남 읍내쪽 세 길이 갈라지는 병풍산 밑 골짜기. 거기서 포위 섬멸됐다는 거다. 지금도 거기 누가 텐트라도 치는 날이면 꼭 한밤 꿈에 누더기 동학꾼들이 나타나 배고프다 울며 하소연하고 코펠이나 배낭에 든 음식이 싹 없어진다는 거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굶주림! 실패한 개벽의 꿈! 어디 해남뿐이랴! 아름답고 풍요한 대지 곳곳에 동학의 그 큰 뜻과 슬픈 역사는 아직 발굴되지도 못한 채 그대로 묻혀 있다. 하나 그것이 바로 이 대지의 신비요,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나의 생명종교인지도 모르겠다. 뭍에 얹힌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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