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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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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30>

종교

외할머니를 따라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한없이 덜컹거리며 무안 어딘가 쬐끄만 절에를 간 적이 있다. 사방이 시뻘건 민둥산이었다. 시뻘건 흙 위에 막대기 꽂은 것처럼 검은 나무등걸이 숭숭 박혀 있었다. 뿌우연 하늘이 낮아직한 그날, 예불이 끝나고 외할머니가 다른 보살들과 주지 스님을 모시고 법당에서 이야기를 하고 계실 때 나는 절 안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벽에 그린 그림을 따라 법당 뒤쪽 벽에까지 돌아갔다. 거기 한 그림이 있었다.

아마 지옥변상이었나 본데 아주 쬐끄맣고 새빨간 마귀새끼들이 눈 흰창을 희번덕거리며 온갖 기괴한 짓들을 다하고 있었다. 사람 배때기에 들어가 창자를 끊어먹는 놈도 있고 대가리 속 골수를 갉아먹는 놈도 있고 똥구멍을 파먹는 놈, 심장에서 피를 빨아먹는 놈도 있었다. 그걸 보자 속이 메슥메슥했다. 시뻘건 놈들이 그림에서 막 튀어나와 그 묘한 눈깔을 히번덕거리며 내 몸 속으로 스멀스멀 기어 들어올 듯 했다.

몇 놈은 오똑서서 사팔뜨기같은 눈을 치켜뜨고 날 가만히 노려보다가 내 눈동자 속에 딱 들어와 앉은 듯, 속이 느글거리며 마귀새끼들 몸이 불어났다 줄어들었다. 황량한 민둥산에 박힌 검은 나무등걸들이 모두 시커먼 마귀뿔로 보이고 벽이 온통 기우뚱거리며 뿌우연 하늘이 커다란 마귀들 눈 흰창같이 히번덕거리고 나는 비실비실 절 마당으로 도망쳐 나왔다. 허나 눈 속에 달라붙은 시뻘건 그림은 꼼짝달싹 않고 있었다.

사방에 이상한 울음소리가 웅웅 울리기 시작했다. 다시는 집에 돌아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사람 사는 세계가 나로부터 까마득히 멀어지는 듯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이가 꽉 악물려지고 버스를 타고 오면서도 집에 와서도 눈을 감아도 떠도, 꿈속에서도 시뻘건 마귀들, 그리고 그 황막한 민둥산이 내 눈에 박혀 거기 꼼짝않고 있었다.

또 한 번은 유달사다. 외할머니에게 억지로 끌려갔는데 들어서는 입구에서 이미 질려버렸다. 흉악한 얼굴의 거대한 장사들이 큰 칼을 빼들고 날 내리찍으려 덤벼들었다. 눈앞이 온통 시뻘갰다. 명왕이니 사천왕이니 하는 것들이겠는데 하여튼 그 뒤부터는 ‘불교’하면 소름부터 끼쳤고 그 온통 시뻘건 빛깔부터 우선 눈에 덮이곤 했다. 그 뒤 다시는 절에 따라가지 않았다.

천주교도 마찬가지. 작은 고모에게 끌려 솔개산 위에 있는 성당 새벽 미사에 간 일이 있다. 써늘하고 컴컴한 성당 안에 모두 흰 너울을 쓰고 마룻바닥에 꿇어앉아 있었다. 그게 그러니까 모자이크, 알록달록한 창유리로 희미한 첫 아침빛이 새어드는데 그 빛에 번쩍하고 빛나는 신부 눈이 퍼어런 게 똑 유리알 같았다. 제단 뒤에, 사방벽에 벌거벗은 쌔하얀 남자가 칙칙하게 검붉은 피를 줄줄 흘리고 있고 쏼라쏼라하는 꼬부랑말이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길게 한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도무지가 낯설고 고통스럽고 무서웠다. 그리고 그 마룻바닥의 찬 느낌이라니! 성당 역시 그 뒤로 다시는 가지 않았다.

후미끼리 건널목 철뚝 밑에 있는 예배당에 친구따라 구경간 것도 생각난다. 너무들 촐랑거려 대뜸 맘에 안 들었다. 손바닥만 내내 치고 앉아 노래로 시작해서 노래로 끝이 났다. 노래 말인데 그 놈의 곡조, 그 무슨 놈의 곡조가 그 모양인지 하도 요상스러워 흉내내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입구의 그 신발들! 그 무렵 쪼무래기들 흔히 종알거리던 노래처럼 “연애하러 갔더니 신발훔쳐 가더라” 그것!

그래. 불교 천주교 예수교 셋이 다 내겐 아예 취미 없었다.
외갓집 그 잔뜩 격식차린 유교식 제사 또한 한없이 낯설기만 했고 내가 그래도 좀 편안하게 맘 붙일 수 있는 건 겨우 친가의 그 소탈한 제사 분위기뿐이었다. 제사 도중에도 곧잘 곰보할매가 음식을 집어다 내 입에 얼른 틀어 넣어주곤 했는데

“이놈아 제사끝날 때까진 주둥이 꽉 다물고 참어!”
할아버지가 이리 나를 무섭게 윽박지르면 늘 할머니는 나를 감싸나서며
“사람 먹는 것이 중하지, 귀신 먹는 것이 중하겄소?”

지금 생각해도 할매는 진짜배기 동학이 아니었나 싶다. 해월 선생의 향아설위(向我設位)를 그대로 실천하고 계셨으니.

헌데 괴상한 것은 친가의 그 ‘꺼먹제사’다. ‘꺼먹제사’란 촛불을 안켜고 캄캄한 중에 제사 지내는 건데 까닭이사 말로는 그렇게 캄캄해야만 혼백이 오신다는 거지만 난 그것뿐만 아닌 듯 싶다. 혹시 기독교의 카타콤 시대처럼 지하(地下)시대 동학의 한 제사 특징이 아닐는지? 왜냐면 해월 환원 이후 동학의 제사는 대낮 정오에 지내도록 되어있으니. 그렇다면? 그렇다면?

아아, 참으로 험난한 동학의 역사요, 기구한 우리 집안의 내력이다. 어둠 속에서만 밥 드시러 오는 증조부의 혼령, 똑 6.25때 낮엔 마루밑창이나 굴 속에 숨어있다 밤에만 한 술 얻어 먹으러 집안에 스며들던 그 숱한 중음신같은 왼손잽이, 또는 오른손잽이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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