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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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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9>

정치

산정국민학교 그 넓은 운동장에 가득히 떨어져 굴러다니던 흰 전단들이 내가 처음 본 정치의 얼굴이다. 덥수룩한 머리에 배짝 마르고 창백하고 키만 덜렁 큰 서른서너 살 쯤 돼보이는 젊은 사람 하나가 후줄그레한 낡은 두 단추 양복을 걸치고 나와 유세하는 모습이 내가 본 첫 정치가다.

“저는 여러분과 똑같은 돈 한푼 없는 빈털터리 무산자올시다. 그러나 내 가슴 속에는 여러분이 모두 하루 세 끼 흰 쌀밥에 기름진 고깃국을 먹고 모두 다 국가의 당당한 주인이 될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뜨거운 정열이 가득 차 있습니다. 여러분! 나는 후보등록에서부터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단 한푼도 돈이란 건 써 본 일이 없습니다. 사실 쓸 돈도 없습니다. 여기 보시오” 호주머니를 홀랑 뒤집어 보인다. 아무 것도 없다. 박수 박수, 웃음소리, 또 박수.

“그렇지만 민주주의란 것은 무엇입니까? 돈이 없어도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신념만 있다면 당연히 국회로 나갈 수 있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인 것입니다. 제가 입후보한 것은 바로 이것이 민주주의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알리기 위해섭니다. 낙선해도 좋습니다. 좋단 말이오. 내가 돈을 못써서 낙선한다면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없는 것이고 여러분은 대한민국 국민의 자격이 없다는 증거올시다. 만약 이래도 나를 낙선시킨다면 여러분은 똥친 막대기요. 모두 선거고 지랄이고 집어치우고 당장 집구석에 가서 여편네하고 그 짓이나 하고 자빠지시오, 엥, 여러분!”

“잘한다, 잘해! 니가 제일이다!”
박수, 박수, 웃음소리에 또 박수, 야유에 욕설에 박장대소! 잔치였다. 그들이 바로 신성한, 신성한 한 표들! 결국 그 후보는 단 세표가 나와 낙선되었다. 본인이 한 표, 마누라가 한 표, 어떤 미친 놈이 또 한 표였다고 사람들이 낄낄대며 말하는 것을 나중에 들었다.

또 한 사람의 정치가의 얼굴을 보았다. 얼굴이 버얼겋고 기름이 자르르 흐르고 머리가 희끗희끗, 점잖은 신사틀에 위 아래로 말쑥하게 빼입은 새카만 양복, 나중에 당선자가 된 아무개 씨다.

“인물이 저마안 해야지라우 잉-.”
“학식도 높고요, 집안도 좋고라우, 돈도 솔찮히 있는 갑디다. 하아따 저런 양반 안 찍으면누구를 찍겄소?”
“그라아제 잉-.”

다른 정치도 있었다.
대성동 파출소가 습격당하고 이사람 저사람 여럿이 포승에 묶여 질질 끌려가고 거의 매일 얼굴이 누우렇게 들떠 입술은 허옇고 붉은 눈꼬리가 위로 칙 치켜올라간 수십 명의 흰 와이셔츠 바람의 청년들이 머리에 띠를 질끈 두르고 냅다 팔뚝을 흔들어대며 잔뜩 목쉰 소리로 악을 박박 써
“비겁한 자야, 갈테면 가라. 우리는 붉은 깃발 지킨다아아아-”

노래가 채 끝나기도 전에 우당탕 퉁탕, 우직끈 뚝딱, 아이고 데고 소리소리, 순식간에 여기저기서 박터지고 골터지고 허리 다리에 팔 우두두두둑 부러지는 소리. 우락부락 웬 난데없는 패거리들이 와크르르르 쏟아져 들어와 몽둥이야 야구방망이야 쇠파이프야 사정없이 휘둘러 온통 박살을 내는데 그 중에 웬 중늙은이 멱살을 냅다 긁어쥐고 꼰아 잔뜩 추스르며
“너 이 새까이 빨갱이디! 칵 직사시켜 버리가서!”
와지끈 뚝딱!
아이고 나죽네에에에!
‘아부지!’
나는 그런 광경에 부딪칠 때마다 늘 속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속소리로만 부르는 버릇이 그 때 부터다.

어느날 저녁 무렵이다. 사방에서 타앙-타앙-총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멀리 보려고 동네 뒤 흙어덩 위에 올라가 있는데 국방색 정복입은 간수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냅다 후다닥닥닥 튀어 뻘바탕으로들 이리저리 흩어져 달아나고 조금 있다 시커먼 수염에 퍼어런 죄수옷 입은 사람들이 수십 명씩 떼를 지어 와크르르르 몰려가고 또 와크르르르 몰려가고 와크르르르 와크르르르, 타앙-타앙-총소리는 자꾸만 여기저기서 들려쌌고.

그랬다, 목포형무소 탈옥사건이다.
‘아부지!’
아버지는 이미 피신하고 안계셨다. 이무것도 몰랐지만 나는 입을 삐죽이면서 울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가슴이 편한게 안심이 되었다.

며칠 뒤 한밤중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는데 나는 한반의 뻘바탕 친구 창남이네 집 앞에 서 있었다. 창남이 어머니가 마루 위에서 한 손으로는 마룻바닥을 치며 다른 한 손으로는 연해 연방 달을 가리키며 꺼억 꺽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통곡하며 울부짖고 있었다.
“차앙남아아아- 차앙남아아아-”
“느그 아부지이이이 왼짝 발 복송씨에에에 혹이 있어야아아아 혹이 있어어어어-”
“차앙남아아아- 얼른 가그라아아아-”
창남이 아버지는 남로당원이었는데 탈옥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영산강가 성자동 근처에서 집단으로 총살 매장되었다. 시체를 찾아오라는 거였다.

그래.
이것이 그 무렵 내가 본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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