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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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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2>

12. 어머니

어머니의 성함은 정금성(鄭琴星), 일제때 창씨개명한 뒤 고치지 않고 오늘까지 공적으로 쓰이는 함자는 천대자(千代子).

너무나 많은 고통이 어머니의 인생을 일그러트렸고, 배우지 못하고 괄시받는 여자의 숙명이 다름아닌 어머니의 한(恨)이었다.
그 위에 아버지로 인한 한, 아들로 인한 한이 겹쳐 결국은 참으로 한많은 노인네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지난 민주화 운동과정에서는 민가협(民家協)의 투사로서 우뚝한 공을 세워 많은 여성들의 존경을 한몸에 모았고 어려운 국면마다 대담한 리더십을 보여주었으니 그 한을 반은 풀었다고 할만도 하다.

어머니는 오지랖이 넓은 분이라 아들인 나로서도 잘 모르는 친구분들이 많다. 그리고 비밀이 많으신 분이다. 때론 어머니가 어떤 분인지 모르게 될 때도 있다. 그럴때마다 아득히 먼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어머니는 나와는 다른 자기만의 큰 세계를 가진 분이라 일체 알고저하지 않았다.

다만 한가지.
어머니에 관해 생각할 때마다 꼭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석양이다.
인민군이 목포에 들어온 첫날 저녁, ‘호줏기!’
당시엔 제트기를 이렇게 불렀는데 당시 대통령이던 이승만씨의 처가가 오스트리아라고 하니까 오스트랄리아 즉 호주로 잘못 알고 그 호주에서 보내준 비행기라 해서 ‘호줏기’라고 불렀다.

그 ‘호줏기’들이 목포역에 있던 미창, 쌀창고와 기관차를 넣어두고 수리도 하는 기관고를 마구 폭격할 때다. 놀란 연동 사람들이 집에 들어앉아있으면 다 죽고, 넓은 훤한데 있으면 군인 아닌 민간인인걸 알고 폭격을 안할거라는 생각에서 모조리 넓은 뻘바탕으로 뛰어나와 엎드릴 때다.

성미 급한 엄니가 나를 끌고나와 다짜고짜 뻘구덩이에 밀어넣고나서 등을 자꾸 두드리며 왈
‘아이고 내 새끼! 아이고 내새끼! 내 새끼 죽지마라! 내 새끼 죽지마라!’ 연해연방 소리치던 장면이다.

그런데 그 때 어머니의 눈빛이 아무래도 이상했던 것이 늘 생각난다.
원시적인 모성이었다.

그러나 그 때 어머니의 그 이상한 눈빛과 내 새끼 외침은 다름 아닌 6.25 전쟁 때 이 민족 모든 어머니들의 초상이었던 것이다. 슬프고 가슴아픈 모성이었고 죽임당하기 직전의 필사적인 생명의 울부짖음이었다.

그것,
그것이 곧 나의 어머니다.
강열한, 어느것에도 패배당하지 않는 불굴의 원시적인 모성.
그것이 나의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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