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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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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8>

8. 외가

1896년.
갑오동학 농민혁명이 일본군의 크루프포(砲) 아래 참담하게 좌절된 뒤 두 해.

해월 최시형 선생은 상주(尙州) ‘높은 터’에 숨어 동학재건을 도모하고 계실 때요, 을미로부터 시작해서 온 산하에 항일의병의 아우성이 가득찬 해이자, 아관파천(俄館播遷)의 해다.

친로파 내각이 성립되자 앞서 민비시해의 음모를 사전에 알고도 방관했다는 탄핵을 받고 친일파로 몰려 이듬해 제주도로 유배당한 개화파 일당이 있었다. 김윤식(金允植) 일당이다.

이 일당 중에 본관이 동래(東萊)인 정(鄭)씨 성 가진 천주교신자 한 사람이 있었다. 이 분이 바로 나의 외증조부시다.

함자도 기억 못하겠고 전설도 내겐 별로 없다. 다만 귀양살이란 것이 본디 평상심으로는 견디기 힘든 고달픈 것이지만 그 위에 친일파라 하여 더욱 고달펐고 그 위에 설상가상 제주도는 유독 천주학이라면 치를 떠는 고장인지라 한결 더 고달펐다는 이야기만 전해온다.

제주도는 크고 작은 폭포가 많은 곳. 귀멍멍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한 작은 폭포 위에 띠풀과 생나무로 정자를 짓고 그 위에 앉은 외증조부란 분, 남 못듣는 중에 주기도문 사도신경 묵주신공을 소리소리 현송하며 신심으로 평화를 얻어 귀양살이 고달픔을 겨우 이겨내 그날 그날을 잔잔한 기쁨으로 살았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온다. 슬기로운 분이셨나 보다.

한데 이분이 그만 그곳에서 어느날 갑자기 돌아가시고 말았다. 불시에 천지간에 오똑 사고무친의 고아가 돼버린 분이 곧 나의 외할아버지 정인화(鄭寅和) 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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