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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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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

글머리에

오늘이 무슨 날인가?
오늘,
단기 4334년, 서기 2001년 6월 25일.
음력으론 신사년(辛巳年) 단오(端午)날이다.
오늘
인터넷신문 '프레시안'과 나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를 오는 9월 하순 그 창간 때부터 게재하기로 합의한 날이다.
전 3권으로 예정된 분량중 제1권분을 먼저 게재키로 한 것이다.
10년 전 동아일보에 게재되었던 제1권 중 제1부 서두의 '앞글'이 들어가기 전에 새로운 머리글이 또 하나 있어야겠기에 우선 그것을 쓰고자 책상머리에 앉아 망연히 생각에 잠긴다.
오늘,
오늘이 무슨 날인가?
신사년(辛巳年) 단오(端午).
만물(萬物)이 새로이 바뀌는 큰 변화의 해 신사년(辛巳年) 중에도 새 양(陽)의 기운이 크게 움직이는 기운생동의 단오명절이다. 그러니 하수상한 날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수상쩍은 날 단오가 또한 바로 6월25일인 것이다. 평소의 6.25가 아니고 작년(昨年) 6.15 이후에 뒤이어 오는 6.25이다. 남북정상이 만나 분단을 청산하고 평화와 화해 그리고 연합과 통일을 얘기함으로써 민족을 들뜨게 하고 세계를 놀라게 한 그 일년이 지나 다시금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캄캄 칠흑의 정세로 반전되는 듯하여 민족이 발만 구르고 있는 그런 6.25, 바로 오늘이다.
이 하수상한 날에 나의 회고록 게재를 합의한 것 자체가 도무지 하수상하다.
왜냐하면 6.25전쟁은 물론 대변화(大變化)의 신사(辛巳)와 기운생동의 단오(端午)와의 깊은 연관 속에서 나의 회고와 회상이 전개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선 글머리에 간단히 세 가지 점을 말하고 싶다. 나는 나의 과거를 회고함에 있어 시간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반영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시간은 선(線)적인 것이 아니고 기승전결과 같은 극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역사주의나 상승주의적인 알파와 오메가의 시간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것은 무수한 역류와 함께 움직이는 혼돈한 삶 자체이며 지금 여기 나의 삶에서 부단히 과거와 미래에로 확장되면서 동시에 다양한 차원변화와 함께 과거와 미래를 지금 여기 나의 현재의 삶에로 이끌어 들여 생동시키는 그런 카오스적인 시간이다.
그러나 앙드레 말로의 반(反)회고록적인 시간이나 칼 융의 확충적(擴充的)인 시간으로 나아갈 생각은 없다. 시간은 선(線)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는 대로의 어떤 면에서는 선(線)적이기도 하다.
대충 선적인 사건의 순서를 따르되 기억에 되살아나는 나름 나름의 의미망에 따라 탈 중심적으로 분절해체되고 현재와의 연관 속에서 진행되는 네트워크 방식을 취할 것이다. 아니 취한다기 보다 자연히 그렇게 기억되고 스스로 그렇게 의미가 주어진다고 말하는 편이 옳겠다.
또 하나는 5년 전 돌아가신 내 아버님에 관한 것이다.
10년 전 동아일보에 게재된 제1부에서는 엄밀히 말해서 가족사와 내 개인사의 진실은커녕 최소한도의 사실마저도 정면에서 온전하게 부딪치지 못한 채 금기(禁忌)의 장벽과 타협하고 말았다. 그래서 6.25전쟁이 가까워지는 시점에 가서 나의 회상은 마침내 큰 장애에 부딪쳐 중단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마당(未堂)은 일찍이 그의 '자화상(自畵像)'에서 '아비는 종이었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나는 이 글에서 '아버지가 공산주의자였다'고 분명히 말하고자 한다. 이 명백한 한마디가 없이는 나의 회상은 전체적으로 그 회상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나의 회고록을 나 자신과 사실고백 중심의 살벌한 자서전으로 쓰고 싶지 않다. 어떤 의미가 생성하는 문학적 탐색으로 밀고 가고자 한다. 그것만이 온갖 형태의 억압과 자기검열로 인해 봉인된 내 삶의 깊은 시간의 비밀이 변화 속에서 참으로 스스로 개봉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나는 나 자신이 쓴 10년 전의 회고록 위에 가해진 내 자신의 검열을 해제할 것이다. 마치 어두컴컴한 정신병동에서 어느 날 아침 문득 일어서 터덜터덜 걸어 나와 바깥 오뉴월의 눈부신 신록과 비온 뒤의 광풍(光風)을 흠뻑 들이마시듯이 그렇게.
오늘
오늘은 내게 중요한 날이다.
10년 전 시도하다 중도반단된 회고록을 다시 쓰기로 하고 억압 없이 내 과거를, 내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하는 날이다.
나와 가족과 이웃에 대한 최소한의 예절과 배려 외에는 안팎의 어떠한 검열이나 억압도 모두 해제하고 솔직담백하게 되돌아봄으로써 내 스스로 스스로의 정신을 치유하고자 하는 날이다. 그래서 오늘은 내게 있어 다시 사는 날, 거듭 나는 날이 되는 것이다. 이 글은 철저히 "나", "김영일 현상"에 대한 회상이다. 모로 누운 돌부처는 그 현상, 그 운명의 상징이다. 그래서 제목을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라고 붙였다.

신사년(辛巳年) 단오(端午)날 밤 11시
일산(一山)에서
김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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