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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자소서, 모아서 책 내 볼까요?"

[내가 기다리는 책] 폴더 속 그 서류들의 수집


'프레시안 books'는 2014년 신년호로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나오길 바라는 미래의 책들에 대한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일곱 명의 필자들에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책, 당신이 읽고 싶은 책, 번역되길 바라는 책과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울러 지난해 12월 13일 송년호에서 예고했던 페이지 개편은 기술적인 문제로 1월 17일부터 구현됩니다. 예고한 대로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독자 여러분, 2014년에도 프레시안 books를 사랑해주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연말연시에 결코 해서는 안 될 멍청한 일 중 하나는 외장하드의 '옛날 서랍' 폴더를 열어보는 일이다. 사람에 따라 폴더 이름은 '백업문서', '잡동사니', '지빠귀' 등으로 다르겠지만, 어쨌든 누구에게나 시효가 지난 데이터 보관소가 있게 마련이다. 그곳의 문을 열면, 이미지로만 남은 추억, 첫줄부터 실패한 시 나부랭이, 청산하지 못한 온갖 기억들과 기억 속에서조차 사라진 줄로 믿고 있었던 미완의 역사들이 줄줄이 튀어나온다.

▲ 우리 모두의 컴퓨터 속 폴더.
그 중에서도 클릭해서는 안 될 가장 끔찍한 폴더가 바로 작성하다 만 각종 서류를 모아 둔 폴더다.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서 해 온 여러 시도의 흔적들이 얼굴을 내민다. 입학 원서, 취업 원서, 공모전 혹은 아르바이트 지원 서류, 자기소개서, 연구계획서, 등등. 맙소사. 종이라면 누렇게 빛이라도 바랠 것을, 디지털 기록들은 시간이 흘러도 너무나 멀쩡히 보존되어 있다. 비록 세상에 공공연하게 노출되는 일은 없지만, 언제라도 '사회적 부름'이 있으면 상황과 맥락에 맞게 재활용될 수 있도록 하드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것이다.

자기소개서 유의 글들은 대부분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에 따라 쓰인다. 최소한 그렇게 믿는 와중에 쓰인다. 그러나 타인의 눈으로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민망함을 감출 수가 없다. 처음에는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밝히기 위해 고심하며 골랐을 그 문장들은 결국 일련의 진부한 자기광고와 쇼맨십이 되고 마는데, 거기서 발견할 수 있는 건 자기 이해의 안간힘과 광고 문법 사이의 크나큰 괴리뿐이기 때문이다. '최종본' 이전의 문장들은 언제나 어설프고, 충분히 전략적이지 못하다. 심지어 일정한 객관화와 자기검열을 거친 최종본들의 경우에도 상황은 그리 나아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의 글쓰기 실력 탓이 아니라, 제출용 자기소개서라는 장르가 애초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문학의 역사 이래로 자기 자신에 관해 쓴다는 건 늘 도전적인 글쓰기이며, 그 어떤 글쓰기보다 성찰을 필요로 하는 작업일 테다. 그러나 '삼포 세대'니 '비정규직 1000만 시대'니 하는 와중에, 사회가 요구하는 직무에 부합하는 인간으로 스스로를 어필해야 하는 마케팅 전쟁터에서 진짜 하고 싶은 얘기에 집중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한 개인의 일생을 몇 줄의 연대기적 경험치로 환산해야 하는 양식이, 누가 더 불행한지를 경쟁적으로 기술해야 하는 장학금 신청서 유의 가정형편 기입란이, 자신에 관해 제대로 쓰는 것을 점점 더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 취업 컨설턴트는 "취업, 3일만 투자하면 감 잡을 수 있다"는 카피가 붙은 저서(<취업 앞에서 머뭇거리는 당신에게>(안시우 지음, 지식공간 펴냄))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자기소개서의 오류가 글의 주인공을 '나'로 착각한다는 점이라고 진단 내렸다. 자기소개서의 주인공은 언제나 '직무' 그 자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라는 특수한 개체는 포장되어야 할 존재도 아니고, 아예 소거되어야 할 존재로 전락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 청춘 앞에 던져진 괴상한 아이러니다. 한편에서는 '진정한 나를 찾아 떠나라'고 윽박지르고 다른 한편에서는 '나라는 건 없다'고 어깃장을 놓으니.

▲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서동진 지음, 돌베개 펴냄). ⓒ돌베개
더 나은 기회를 붙잡기 위한 개인의 노력조차 거대한 경쟁 시스템에 포섭된 현실이 이제 와 새로울 것은 없다. 서동진의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돌베개 펴냄)가 자기계발을 내면화한 이 시대의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그려 보인 것이 이미 몇 해 전이다. 신자유주의의 첨병 역할을 맡은 자기계발담론에 대해 수다한 비판이 줄을 지어왔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서점가에 범람하는 자기계발서의 유행은 지금도 식을 줄 모른다.

그러나 진짜 비극은 자기계발서의 판매 수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기계발 권하는 사회 특유의 이중성까지 학습하고 있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억지 눈감기를 시도한다. 저따위 자기소개서를 쓰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저기에 쓴 것은 가짜라고, 내 안에는 진짜가 남아 있다고, 그래서 두 개의 자아를 조화롭게 운영할 수 있다고 자위하면서 말이다.

바야흐로 '내가 나를 경영한다'는 신자유주의적 믿음의 정점인 것이다. 그러나 그 믿음은 대체로 착각이다. 자기소개서 안의 '나'는,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창조물이거나 미래지향적 플랜의 일부인 것이 아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오히려 내 안의 쌍생아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언어는 분명 퇴행적이지만, 그래서 일독의 가치가 있다. 우리가 세상과 불화하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역설적으로 암시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글들은 가짜가 아니다. 끝끝내 직면해야 할 대상이다. 한 가지 환기할 필요가 있는 점은, 이건 결코 과장이 아닌데, 우리가 자기소개서를 쓰는 태도로 세상살이의 많은 부분에 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기소개서는 회사나 학교, 모집 광고를 띄운 각종 기관의 사무실에 우르르 모여 들었다가 채점, 취사선택의 과정을 거친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단체로 폐기된다. 나는 가끔 궁금하다. 그렇게 폐기될, 혹은 여전히 누군가의 하드 디스크 속에서 대기 중일 익명의 내용들이. 그 서류들을 무작위로 수집한 뒤 사진과 이름을 지우고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다면 어떨까. 안녕한 척하지만 안녕하지 못한 목소리들의 모음이라는, 꽤 흥미로운 사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잘 하면 거기서 자기계발 신화에 희생되지 않은 몇몇 소중한 단어들을 희미하게나마 엿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진짜로 그런 책이 출판될 가능성은 없을 테니, 오늘밤 각자 자신의 하드 디스크라도 한 번 뒤져보기로 하자. 낯뜨거움과 두려움을 감수하고, 잠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는 거다. 끝도 없이 나열된, 본래의 맥락을 상실한 취향의 목록을 읽어보자. 무분별하게 집어넣은 겸손과 가공된 자신감, 그것들을 선별하고 검열하는 과정에서 당신도 모르게 덧붙이거나 삭제한 내밀한 욕망과 망설임들을 만나자. 신년 미션으로 그리 나쁜 경험은 아닐 것이다. 상자의 마지막에 무엇이 남겨져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니까.

확실한 것 하나는,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서류가 도착할 곳에서는 이런 것들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으리라는 사실이다. 그 모든 말들의 행간을 골똘히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소개서의 작성자, 우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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