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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세의 동반자 <주역>? 영어 제목이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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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세의 동반자 <주역>? 영어 제목이 열쇠다!

[내가 기다리는 책] 더 많은, '변화를 위한 책'


'프레시안 books'는 2014년 신년호로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나오길 바라는 미래의 책들에 대한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일곱 명의 필자들에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책, 당신이 읽고 싶은 책, 번역되길 바라는 책과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울러 지난해 12월 13일 송년호에서 예고했던 페이지 개편은 기술적인 문제로 1월 17일부터 구현됩니다. 예고한 대로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독자 여러분, 2014년에도 프레시안 books를 사랑해주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14년 갑오년(甲午年) 새해에는 이런 책이 출간되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하는 책을 이야기해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청탁받은 뒤로 이런 궁리, 저런 궁리를 계속했다. 한 편으로 지난 2007년 '새물결' 출판사가 모두 15부의 시리즈로 야심차게 추진하다가 10부, 11부만 4권으로 출간하고 멈춰버린 <캠브리지 중국사>(존 킹 페어뱅크·류광징 엮음, 김한식·김종건 옮김)의 나머지 시리즈가 진행되길 바란다고 쓸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결국 출판이란 그 시대의 가장 아픈 곳, 그 시대의 가장 간절한 소망을 담아내는 작업이란 생각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우리 시대, 시급하고 간절한 소망이 어디 한두 가지겠느냐만, 돌고 돌아 다시 서게 된 지점은 민주주의의 문제였다.

무망(無望)의 정치, 무망(无妄)의 정치

해마다 신년이면 사람들은 <주역(周易)>에 의존하여 그 해의 운세를 보는데, 이 책의 영어 제목이 "The Book of Changes"란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은 드물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인 동시에 가장 난해한 글로 일컬어지지만, 공자는 이 책을 높이 받들었고, 주희(朱熹) 역시 '역경(易經)'이라 칭하며 숭상하여 오경 중 으뜸으로 손꼽았다.

▲ <주역>의 일부. ⓒ(출처 Wikimedia Commons)
<주역>은 모두 64괘(卦)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스물다섯 번째 괘가 '무망괘(无妄卦)'이다. 무망괘는 하늘의 성격과 본질적 기능을 뜻하는 건괘(乾卦)와 비(雨)와 땅의 흔들림을 뜻하는 진(辰)괘가 만나 우레가 쳐서 사물을 진동시키는 진괘(震卦)가 겹친 것이다. 무망괘는 이처럼 하늘 아래로 비와 번개가 내리치는 형상이다. 이때 '무(无)'는 '무(無)'의 옛 글자이며, '망(妄)'은 '허망(虛妄)' 곧 '거짓됨'을 뜻하는 글자로서 '무망'이라 함은 '거짓 없는 진실함'을 뜻하니 공자가 말한 '사무사(思無邪)'와도 의미가 통한다.

주자(朱子)는 <중용(中庸)>에서 천도(天道)의 본질은 '성(誠)'이며 성은 '진실무망(眞實无妄)'이라 하였다. 무망이란 이처럼 거짓이 없는 것이니, 도리(道理)의 자연적인 상태를 말한다. 하늘에서 우레가 칠 때 사람들은 두려워 거짓된 마음과 허위의식을 버리기 때문에 진실해지고, 그 마음 그대로 하늘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면 그것이 바로 거짓 없는 참된 행위, 곧 '무망(无妄)'이다.

이와 반대로 사사로운 욕심으로 움직인다면 거짓된 행위, 곧 '망(妄)'이 된다. 그러나 무망(无妄)은 동시에 무망(無望)이기도 하다. '망(妄)'은 '망(望)'과 같은 뜻으로도 해석되기 때문에 '무망(无妄)'은 '바라지 않음'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무망(無望)이란 세상사의 길흉화복은 하늘의 이치(天道)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인간이 의도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그런데 동양에서 '하늘(天)의 도리(道)'란 전통적으로 백성의 소망과 의지를 뜻한다.

지난 2013년 한 해를 어떤 이는 박근혜 정부 1년으로 부르지만, 나는 2013년이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이어진 통치 6년째 되는 해라고 생각한다. 오랜 권위주의 통치를 이겨내고 성취한 민주화 10년의 공과(功過)를 냉정하게 평가한 유권자들은 권력을 다시 이전 정권으로 되돌렸다. 과연 우리 국민은 지난 한 해, 아니 지난 6년의 정치는 하늘(국민)의 뜻에 따른 무망(无妄)의 정치였을까? 아니면 국민으로 하여금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게 만든 무망(無望)의 정치였을까?

민주화, 주변인의 민주주의

서구에서 민주주의의 기원으로 추앙받고 있는 그리스지만 사실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들은 도리아족이 남하하면서 본래 거주하던 원주민들을 무력으로 복속시켜 만들어진 정복국가였다. 지배계급으로서 도리아 부족은 소수였으나 그들은 시민의 권리를 갖고 있었다. 플라톤의 말처럼 생산 활동은 노예들에게 맡기고 시민은 정치와 철학, 예술만 하는 사회체제였다. 이민족의 지배를 받아들이고 종속적인 지위를 감수한 자들은 참정권을 제외한 신분상의 자유와 더불어 다른 권리들을 인정받는 '페리오이코이(Perioikoi)'가 되었고, 이에 끝끝내 저항한 자들은 '헤일로타이(Heilotai)'라는 노예 신분이 되었다.

당시 스파르타에는 자유 시민 1인당 15명의 노예가 있었다고 추산하는데, 그 수가 25만 명에 이르렀다. 노예인 헤일로타이는 귀족계급인 시민과 국가로부터 노동을 강요받았고, 공물을 내야 하는 부자유스러운 존재였다. 이들은 다수였지만 지배질서를 전복시키지 못했다. 그 이유는 같은 종족으로 구성된 중간계층인 페리오이코이들이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데 이바지했기 때문이다. 페리오이코이란 말은 '주변인'이란 뜻이다.

지난 20세기 인류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경험했다. 전체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서구 사회가 지켜내고자 했던 것은 자본주의와 함께, 이제 막 시작된 민주주의 체제의 보존과 유지 그리고 재건에 대한 의지였다. 인류의 역사에서 현대의 민주주의는 '대중'이라는 새로운 존재의 감각들이 만들어낸 그만큼 젊고 역동적인 체제였으나 구체제에 안주하고자 했던 기득권 세력과 그 주변인들은 민주주의와 대중의 성장에 두려움을 느꼈고, 그 두려움이 전체주의의 온실이 되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서구 자본주의 세계는 세상에서 가장 커다랗고 화려한 식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압축적 근대화란 말이 잘 상징하듯 이 커다랗고 화려한 식탁의 가장 끄트머리 한 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수 있었다. 일본의 근대화가 고도의 산업화만 추구하고 민주화는 이룩하지 못한 결과 군국주의로 귀결되었다면 한국의 근대화는 비록 분단 때문에 보통국가 체제로의 진입은 아직 성취하지 못했으나 권위주의 독재, 군부독재를 거치며 대중의 치열한 열망과 투쟁으로 절차적 민주주의에 간신히 턱걸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화려한 식탁의 한 자리를 간신히 차지할 수 있었다고 안도하고 있을 때, 그 자리가 때로 전쟁보다 잔인하고 혹독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아귀다툼'이 벌어지는 자리란 걸 깨우치게 해준 것이 바로 IMF 외환위기 사태였다. 이 아귀다툼은 때로 '동과 서'라는 진영에 의해 구분되기도 했으나 사실은 적과 동지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했었음을 냉전 당시 상황에서 우리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나마 말뿐이었던 진영 간의 체제경쟁이 종지부를 찍은 뒤로는 식탁 위에서 서로 지켜야 할 에티켓도 매너도 사라졌고, 국가는 더 이상 식탁의 주도자가 아니었다. 그 식탁 위에서는 자기가 앉은 자리가 최전선이었기에 누구도 자리를 비울 수 없었고, 도망치려는 시도조차 무의미해졌다. 먹고 살기 위해 앉은 식탁에서 우리는 서로를 잡아먹고 있었다. 민주화 이후 우리는 민주주의의 '주역'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주변인'에 불과했다. 깨우침은 언제나 너무 더디게 온다.

구세주(救世主) 정치를 넘어 일상의 정치로

신자유주의 이후 국가 권력은 자본 권력이나 경제 권력과 비교하면 약화되었다지만, 그 중요성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대중의 정치 혐오 증세는 그 뿌리가 매우 깊고 오래된 것이다. 몇 해 전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기밀 해제된 1956년 2월 13일 자 한국에 대한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정치는 다음과 같은 전형적인 태도들에 기초해 있다고 한다.

1) 파벌주의 : 내 파가 아니면 다른 파
2) 실용주의 : 나와 내 가족을 위한 것인가
3) 허무주의 : 정부와 관련된 모든 것은 나쁘다
4) 개인주의 : 너는 나에게 이것을 해줄 수 없다.
5) 정책보다는 지도자들에 대한 사적인 충성심
6) '거물'이 되고자 하는 희망
7) 한국의 통일을 향한 열망
8) 민족주의 또는 더 정확하게 인정(忍情)의식
9) 전통적인 유교사상 잔재의 영향
10) 서양 정치이론의 영향.

여기에 1950년부터 내려온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와 불신이라는 건강한 사고만이 추가되어 있을 뿐이다. 이러한 태도들로 인해서

1) 새로운 그룹에 표를 던지지 않으며 빨리 불신하게 되는 현상
2) 단기적인 안전 또는 만족을 위해 이상을 내던져버리는 현상
3) 즉각적이며, 눈에 보이는 보상을 제공하지 않는 그룹을 지지하지 않는 현상 등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전쟁>(박태균 지음, 책과함께 펴냄)에서 재인용)


▲ <한국전쟁>(박태균 지음, 책과함께 펴냄). ⓒ책과함께
나는 지금껏 읽었던 우리나라의 어떤 정치학자보다 당시 한국에 주재하면서 우리 상황을 파악해 보고한 이름 모를 미국 공무원의 이 보고서가 단독정부 수립 이후 현재에 이르는 대한민국 정치사의 현실과 전개과정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의 정치 혐오는 우리가 '시민'으로 살아온 역사보다 '백성'으로 살아온 역사가 더 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한편으로 정치를 혐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정치인 한 개인에게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기대한다. 87년 대통령 직선제 시행 이후 국민들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에 이르는 세 명의 대통령들에게 커다란 열망을 품었다. 임기 초반에는 누구나 높은 지지율을 얻었고, 이들 세 명의 대통령은 마치 저주라도 받은 양 임기 말에 이르러서는 모두 실망의 악순환을 반복했다. 많은 사람이 민주화 이후 5년마다 되풀이되는 대통령 선거 때마다 변화와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이처럼 변화와 미래가 외부로부터 온다고 믿는 것은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신영복 선생은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이며 "미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변화와 미래가 외부로부터 온다는 의식"이 바로 노예근성이기 때문이다. 공화국에서 권력의 주체는 시민이며, 공화국의 권력은 우리들 자신에게 있지만,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의 숙명을 '만든다.' 숙명이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 있는 어떤 특성으로 인해 스스로 자신이 처한 현실이 숙명이 되게끔 방치한 결과이다. 우리는 5년에 단 한 차례만 정치적 인간이 되는 방식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결과 앞으로 5년 뒤 정치에 대한 환멸 속에서 또 다시 새로운 구세주를 찾아 나서려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변화를 위한 책(The Book of Changes)

우리는 한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노래했다. 그런데 과연 주권은 권리이기만 한 걸까? 정치의 문제가 언제나 현실을 긴박(緊縛)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먹고 사는 문제만으로도 피곤한 우리, 잘 살게 되기를 희망하고, 당장 내일의 끼니를 고민해야 할지 모를 우리지만, 그런 우리라서,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은지 이미 오래되어버린 세상이라 더욱더, 정치를 나와 상관없는 세상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만 맡기기엔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닐까?

정치에 대한 혐오, 정치에 대한 환멸이나 냉소가 우리를 현대의 쿨하고 멋진 인간으로 만들어줄 리 없건만 우리는 1년 365일 동안 정치에 대해 비웃다가 어쩌다 주어진 선거일 하루만 '주변인'에서 '주권자'로 나서고 있진 않은지 말이다. 정치에 대해 바라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도 저절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그도 아니면 어차피 희망이 없다고 냉소해버리고 마는 무망(無望)의 정치를 끝내지 못한다면 과연 우리에게 어떤 희망이 남아있을까?

<주역>은 단순히 점괘나 보는 책이 아니라 천하의 도리를 일깨워, 때로는 통치의 정당성을 제공하기도 하고, 때로는 역성혁명의 명분을 제공하는 책이었다. 신년 점괘 중 무망괘가 나왔을 때, "무망은 크게 형통하고 바른 도리를 굳게 지켜야 이롭다. 만일 동기가 바르지 못하다면 재앙이 있을 것이니 나아가는 것이 이롭지 못하다"고 한다. 또한 참된 마음이 있더라도, 그 실천 역시 올바른 이치에서 어긋난다면 허망(虛妄)한 결과를 초래한다니 만약 우리 정치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나 세력이라면 내적인 진실과 더불어 외적인 합리성까지 함께 갖추어질 때에야 비로소 모든 재앙을 극복하고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갑오년 올해에는 이처럼 내적인 진실과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담은 책들이 부디 많이 출간되어 우리를 뜨거운 화쟁(和爭)의 사회로 이끌길 바란다. 그런 점에서 2014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변화를 위한 책(The Book of Change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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