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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그대' 김수현이 한국어를 모른다면 … ?

[내가 기다리는 책]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지구 언어 대백과사전

'프레시안 books'는 2014년 신년호로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나오길 바라는 미래의 책들에 대한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일곱 명의 필자들에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책, 당신이 읽고 싶은 책, 번역되길 바라는 책과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울러 지난해 12월 13일 송년호에서 예고했던 페이지 개편은 기술적인 문제로 1월 17일부터 구현됩니다. 예고한 대로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독자 여러분, 2014년에도 프레시안 books를 사랑해주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뭘 연구하셨다고요?"
"까치 소리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까치의 음성 신호에 의한 의사소통과 어쩌고저쩌고'이지만, 어떻게 대답하든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첫째, "……"('이건 뭔 소리?'), 둘째 "와, 신기한데요?"('세상에, 별 걸 다 '연구'하는구나!') 한 집안 어르신은 "고 녀석 참 싱거운 놈일세"라는 말씀을 주시기도 하셨지요.(아마도 제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음, 그래서 그걸로 무얼 할 수 있죠?"

실제로 학위 논문을 발표하던 날, 그 자리에 계셨던 교수님 중 단 한 분께서 질문을 던지셨는데, 비슷한 맥락의 질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 일본에서 고양이 소리를 통역해 주는 기계가 개발되었다고 하는데, 까치 소리도 그게 가능한가요?"

물론, 제 대답은 "'원리적으로는' 가능합니다."였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그래서, 그걸로 무얼 할 수 있냐?'는 질문을 받게 되면, 제 안에 있는 아주 실재적인 답변(주로 프로젝트 제안서 등에 넣곤 했던)에서부터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좀 많이 나아간 답변까지 다양한 스펙트럼 상에 있는 것들 중 하나를 골라냅니다.

제대로 나아간 답변은 이렇습니다.

"나중에 외계인을 만나면 외계인과 대화를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앞마당에서 뛰어놀던 개, 우리 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던 길고양이, 결국에는 그 길고양이에게 잡아먹혔지만 한동안 아름다운 지저귐을 선사해 주었던 문조와 앵무새 한 쌍, 책상 밑을 활보하던 엄지발가락만 한 바퀴벌레, 그리고 여름 바다에서 불운하게 만난 해파리 등등. 나와는 다른 생명체들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려 동물 행동학의 세계에 들어섰습니다.

특히 제가 관심을 가진 것은 의사소통 행동이었습니다.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행동이기도 했고, 우리네 인간처럼 둘 이상만 모이면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것이 도대체 무슨 얘기들을 주고받는 것일까, 녀석들의 삶에서 중요한 이슈는 무엇일까,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려니 정말 궁금해서 도무지 참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둘리틀 박사만큼은 안 되더라도 잘하면 어설프게나마 녀석들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을 것 같았고요.

▲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SBS

사실 까치 소리는 아주 작은, 아니 매우 희박한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합니다. 외계 생명체가 탤런트 김수현을 닮았으며(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우리말을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이 지구상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식물 이외에도 엄청나게 많고 다양한 생명체들이, 다양한 환경 조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간에 의해 기록된 생물 종 수는 200만 여 종이고, 학자들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1000만 여 종에 달하는 생물들이 이 지구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정확한 계산이 아니라 추정인 이유는 탐사 기술의 발달과 인간의 생활 영역의 확장 등으로 그전에는 인간의 발길이 닿지 못했던 환경들이 점차 노출되기 시작하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종들이 발견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중에 외계 생명체와 닮은 녀석이 있다고 해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심해 물고기나 심해 거대 오징어 등이 포획될 때마다 '괴생명체'니 '외계 생명체'니 떠들어 대는 것으로 봐서 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 듯도 하고, 또 실제로 심해저나 화산 근처 같은 고온 고압의 극한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미생물 등에서 외계 생명체의 단서를 찾는 우주 생물학자도 있다고 하니까요.

그렇다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 수백만 종에 달하는 생물들이 내는 각기 다른 의사소통 양식을 상세히 연구하고 기록으로 차곡차곡 모아 둔다면, 언제일지는 모르겠으나 미지의 외계 생명체와 조우하게 되었을 때 적어도 그들과 말문을 트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등장하는 바벨 피쉬에 관한 BBC의 상상도. ⓒ출처http://hitchhikers.wikia.com/wiki/Babel_Fish

먼 미래에는 그 어떤 언어를 집어넣더라도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변환해서 알려 주는 우주 최강의 바벨 피쉬(Babel Fish,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등장하는 서로 다른 우주 언어를 자동으로 번역해 주는 외계 생물이자 검색 엔진 야후에서 제공하는 자동 번역 프로그램)를 개발할 수도 있겠지요. 그 기초를 다지는 작업으로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를 담은 지구 언어 대백과사전을 편찬할 것을 제안합니다.(인간 이외의 생명체가 의사소통 시에 사용하는 수단들을 감히 언어라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치열한 논쟁 중이지만, 편의를 위해서 이 글에서는 언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지구 생물들이 거주 환경이나 생활 방식, 생김새 등이 다양한 만큼, 의사소통에 사용하는 수단들 또한 무척 다양합니다. 우리 인간은 주로 소리와 몸짓, 거기에 더해 표정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지요. 간혹 페로몬 같은 화학 신호를 사용하기도 하고요. 전체 지구 생물들이 사용하는 의사소통 양식은 크게, 몸짓이나 표정, 신체 부위의 색상 혹은 색상의 변화 같은 시각 신호와 노래, 초음파, 부르짖음(call) 등의 청각 신호, 그리고 털 고르기(grooming) 같은 촉각 신호, 화학 신호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인간 언어에 비교해서 훨씬 못 미친다지만, 다른 지구 생물들이 사용하는 언어들 또한 정교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아프리카 사바나에 사는 원숭이들은 갑자기 등장한 포식자가 풀밭 위를 기어가는 뱀이냐, 하늘을 나는 독수리냐, 표범이냐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경고음(alarm call)을 낸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는 애리조나에 사는 다람쥣과 동물인 프레리도그에서도 동일하게 밝혀진 바입니다.(포식자의 접근 전략이 다른 만큼, 포식자를 피하는 행동 또한 달리 나타나야 하기에 각각에 해당하는 서로 다른 경고음을 진화시킨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오징어와 갑오징어는 피부 표면에 있는 색소 세포를 변화시켜 몸 전체를 뒤덮는 무늬만 31종류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이러한 피부 빛깔로 자신의 성별과 경쟁 상대에 대한 경고 및 과시 신호, 그리고 짝짓기 신호 등을 전달합니다. 사회적 유대가 강한 돌고래는 자신의 이름에 해당하는 고유한 서명 휘파람(signature whistle) 소리를 내며, 어둡고 침침한 물속에서 사는 전기뱀장어는 약한 전기 신호로 방향을 탐지하고 다른 전기뱀장어와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노래하는 새들과 침팬지 등에서는 지역에 따른 사투리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요.

언어가 개별 생명체의 신체적 특성과 한계, 그리고 주변 자연 환경 사이에서 오랜 기간에 걸친 조율을 통해 나온 산물인 동시에 생존에 필수적인 정보들을 담고 있는 매개체라는 걸 고려하면, 한 생명체를 이해하는 데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큰 역할을 담당함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언어에서 주로 사용되는 신호가 무엇인지에 따라(시각 신호인지 청각 신호인지 등등) 서식지 환경의 특성(육상인지 물속인지 등)과 신체적 특성(눈이나 귀가 있는지, 있다면 위치가 어디인지 등)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이와 성별, 사회적 지위 등 개체 특성과 행동할 당시의 감정과 의도, 목적 등을 알아낼 수도 있습니다.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권진아 옮김, 책세상 펴냄). ⓒ책세상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백만 생물들의 언어를 모두 기록하는 작업은 분명 만만치 않은 일일 것입니다. 어쩌면 지구상의 모든 현장 생물학자, 동물 행동학자들이 달라붙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외계 생명체와의 대화라는 원대한 목표를 내세우기는 했지만 많은 생명체들이 발견됨과 동시에 또 다른 많은 생명체들은 사라져 가고 있는 지금, 외계 생명체만큼이나 우리 인간에게는 역시 미지의 존재들인 다른 수많은 지구 생명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지구 언어 대백과사전을 만드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어쩌면 다른 언어에 대한 무지로 어느 SF 소설(<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처럼 돌고래가(혹은 다른 지구 생물들이) 계속해서 보내오는 경고의 메시지를 알아듣지 못한 채 우리 별 지구와 함께 인류 전체가 멸망의 길을 걷는 불운한 결말을 맞게 될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언어가 인류가 지금껏 살아온 환경과 문화, 개개인의 생각과 마음, 인간 본성을 들여다보는 좋은 창이 되어 주기에, 어느 언어학자는 현재 인류가 쓰고 있는 7000개의 언어를 곧 7000개의 우주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 지구상에는 1000만 여 종의 생명체와 그들이 오랜 시간 공들여 일구어 온 1000만 여 개의 우주가 있습니다. 새로운 우주의 가능성을 찾아 우리가 만든 탐사선들이 막 태양계를 벗어난 이때, 우리 곁에 있는 1000만 개의 우주에 대해서도 함께 본격적인 탐사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이 글을 쓰며 재미있게 읽은, 혹은 다시 읽은 책들
<동물의 언어>(스티븐 하트 지음, 이용철 옮김, 김영사 펴냄)
<동물들의 비밀 신호>(울리히 슈미트 지음, 장혜경 옮김, 해나무 펴냄)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다>(제프리 베넷 지음, 이강환·권채순 옮김, 현암사 펴냄)
<희망의 자연>(제인 구달·게일 허드슨·세인 메이너드 지음, 김지선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권진아 옮김, 책세상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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