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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진짜 '훈남'들이 여기에…샘나고 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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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진짜 '훈남'들이 여기에…샘나고 또 고맙다!

[2013 올해의 책] 이정철의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

'프레시안 books'는 개편 작업을 준비하며 예년보다 1주 일찍 송년호를 꾸렸습니다. 이번 송년호(170호)에서는 '프레시안 books'의 기자, 기획위원, 연재 필자 열두 명이 각자가 꼽은 '올해의 책'을 이야기합니다. 판매 순위나 화제성보다는 책과의 만남의 밀도, 이 사회에 던지는 화두를 중심으로 꼽은 '올해의 책'과 함께 2013년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프레시안 books' 다음 호는 사이트의 전면적인 디자인 개편 작업이 끝난 뒤 2014년 1월 3일 금요일 저녁에 발행됩니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집짓기

"학문은 항상 이기는 바둑과 같다. 바둑은 한 사람이 한 번씩 번갈아 두지만, 학문은 한 사람이 서너 수 씩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몇 년 전에 별 생각 없이 학생들에게 했던 비유이다. 그 비유는 부적절하였다.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학문은 집짓기와 같다. 서로 힘을 합쳐 살만한 집, 아름다운 집, 아늑한 집을 짓는 것이다." 물론 벽돌 놓을 곳에 깨진 돌조각을 놓아서 두 번, 세 번 다시 손을 보아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래도 학문은 함께 집을 짓는 데 비유되는 편이 적절하다.

공부를 하다 보면, 어떤 주제를 꼭 다루어보고 싶은데 다른 공부하다가 놓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주제가 있으면 늘 마음 한 켠이 무겁고 찝찝하다. 누가 해주면 좋으련만 사람들의 관심이 그리 이심전심인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운이 좋아 나는 여러 번 그런 행운을 얻었다. 특히 정치사, 사상사 논문에 그런 신세를 많이 졌다. 실록의 봉안에 대한 글(건국대학교 신병주 교수)은 지금도 체증이 내린 느낌을 기억하고 있다. '실록 봉안 정리해야 하는데…' 하면서 손이 안 갔는데, 그 논문 덕분에 손도 안 대고 코를 풀었다. 그 고마움에 지금도 내가 곧잘 인용하곤 한다. 최근엔 전남대학교 김경호 교수의 <동양적 사유는 어떻게 탄생했는가>(글항아리 펴냄)라는 책이 체계적으로 성리학의 발생과 전개를 정리해주어 비슷한 즐거움을 느낀 바 있다.

두 번째 선물

▲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이정철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역사비평사
이번에 추천하는 책의 저자는 이미 내게 <대동법 - 조선 최고의 개혁>(역사비평사 펴냄)이란 책으로 나의 오랜 숙원을 해소해주었다. 그 고마움으로 2010년 12월 10일자 '프레시안 books'에 서평을 썼다. 그때 나는 이렇게 썼다. 마침 오늘 소개하는 책에도 적용되어 그대로 옮겨본다.

"나는 이정철의 <대동법>에서 두 가지 희망, 역사학의 새로운 현실을 발견했다. 그 하나는 저자가 조선 시대를 자기 문제의식을 수립하고 설명하고 결론 내리는 과정에서 자신의 고민과 밀착되면서도 소화된 언어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과학 담론에 기대고 사료 얼마를 덧붙여 입론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저자 자신의 고민을 밀고 들어가서 보편적인 인간과 제도에 대한 질문을 풀어내는 언어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둘째, 이러한 저자의 글쓰기는 그동안 근대주의 역사 해석, 즉 조선 후기를 해체기로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결코 확보할 수 없었던 조선 시대사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망국, 식민지, 전쟁, 분단이 남긴 20세기형 트라우마나 콤플렉스를 발견할 수 없는 글이 근대주의적 조선사 해석의 세례를 받은 역사학자의 손에서 나왔다." (☞서평 바로 가기 : 공자도 놀랄 '민생 살리기'…누가 '조선의 힘'을 비웃나?)


재미라는 말

사실 나도 역사학자지만 역사책이 어지간히 재미있지 않고서는 손에 잡고 바로 다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평생 읽은 역사책 중에서 그런 역사책은 손에 꼽을 정도일 뿐 아니라, 내가 쓴 책마저도 독자들에게 언감생심, 그런 대접 받기를 바라지 않는다.(근데 놀랍게도 내 책을 단숨에 읽었다는 독자도 딱 한 분 있었다.)

재미있다는 것은 자신의 삶, 관심과 닿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재미는 사람들마다 다르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재미는 뭔가의 보편성을 띠게 된다. 민생 문제를 핵심으로 하여, 조선후기 몇몇 인물들의 세상을 운영하는 방법, 즉 경세(經世 Statecraft)에 대한 고민을 들어보면서, 나는 개혁, 경제 민주화, 좌절, 민심, 관료, 정치, 책임, 희망 등 내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삶의 감정과 현실을 돌아볼 수 있었다.

등장인물은 네 분이다. 율곡 이이, 오리 이원익, 포저 조익, 잠곡 김육. 인물의 평전이지만 위인전은 아니다. 시대라는 조건, 개인의 역량, 우연한 사건의 결합이 빚어내는 역사의 한복판을 여행하는 느낌이다. 과도하지 않은 배경 설명, 상황 설명과 함께 듣고 있자니, 이야기에 빠져들면서도 가끔은 질투가 난다.

저자의 말

이정철의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에 대한 나의 소개는 줄이려고 한다. 대신 그의 책 중에서 내 가슴에 닿았던 '씨앗문장'(화두, 좋은 문장, 생각거리라는 의미)을 골라 독자들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그것으로 판단하시라는 뜻이다. 걱정이다. 잘못 골라서, 이 좋은 책이 독자들에게 거부감을 주면 어떻게 하나?

"뒷날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갈등할 때, 동인이 서인을 비판하는 핵심 논리는 심의겸이 외척이고 서인들과 결탁했다는 것이었다. 겉으로 보면 그 논리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선조 대 초반의 정치적 명분은 문정왕후 시대의 척신 정치를 타파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논리는 정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비겁하기까지 한 면이 있다. 심의겸이 이량의 계획을 저지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심의겸 자신이 강력한 외척이었기 때문이다."(55쪽)

"더구나 을사사화에 대해 이준경이 이이와 다르게 생각하고 있지도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구체제에 대한 체험의 정도와 국정 운영에 대한 책임이었다. 가혹한 경험이나 책임은 사람을 신중하게 만드는 법이다."(69~70쪽)


"남에게 인정받는 일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비슷한 연배의 뛰어난 동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일이다."(78쪽)

▲ 율곡 이이의 영정. ⓒwww.pajucc.or.kr
"이이는 동료 관료들에게서도 지지를 얻어내지 못했다. 어찌 보면 그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이가 요청한 민생 정책들은 향약처럼 사대부들의 경험 세계 안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보통의 인간은 생활공간을 달리하는 타인의 처지를 온전히 이해할 정도로 강한 지각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98쪽)

"어떤 정부의 본질은 어떤 형벌 제도와 세금 제도를 가지고 있는가에서 결정된다. 이이는 천하 국가가 저절로 안전한 것이 아니고, 반드시 안전하게 만들어야만 안전해진다고 말했다. 이 말은 그가 관성적인 현실 인식에 안주하지 않고, 현실 그 자체의 역동적 가변성과 위험성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가 동료와 후배 사림들처럼 국가를 윤리적 비판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민생이라는 목표를 위해 적극적으로 운영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음을 보여준다."(117쪽)

"승문원 부정자 시절에 이원익은 중국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145쪽)


"중앙의 승인 없이도 (평안도) 감사가 예하 지방관(인 안주 목사 이원익)의 요청에 따라 (1만 석이라는) 상당한 규모의 조적곡을 지급할 수 있을 정도로 조선의 곡물 운영이 체계적이었다는 점이다. 이런 일은 상당히 정비된 행정 체계에서만 가능하다. (…)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부분은 이원익의 행정 처리가 조선의 그런 시스템 위에서 가능했다는 점이다."(154쪽)

"조선은 임진왜란에서 승리했는가? 선뜻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조선은 지지 않았다. 물론 '지지 않았다'는 말에는 당대인들이 감내해야 했던 말할 수 없는 비극적 고통이 배어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당시 조선과 일본의 군사적 조건을 객관적으로 볼 때 조선이 지지 않은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다."(157쪽)

"친근한 사람들 사이에도 사회적 위계가 내면화된 심리적 위계가 있는 법이다. 그 위계의 위족에 있던 사람이 어느 순간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그것을 억지로라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169쪽)

"이원익은 가장 숙련되고 경험 많은 관료였다. 또 공물 변통 개혁은 그 세부 내용의 많은 부분이 기존 정책과 경험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대동법의 어떤 부분은 그런 수준의 개혁과는 다른 이념적이고 실험적인 내용을 포함했다. (……) 사실 개혁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그 결과를 기존 경험 속에서 모두 확증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 때문에 개혁에는 본질적으로 특정한 가치를 향해, 위험을 내포한 도약이 포함되기 마련이다."(216~217쪽)


"조선시대에 대해서 이제까지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뜻밖에도 제도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많지 않다. 그 원인의 일부는 우리가 갖고 있는 '제도' 그 자체에 대한 부적절한 인식 때문일 것이다. 흔히 제도는 법이나 행정 규정의 조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것도 제도의 중요한 일부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제도는 그것보다 훨씬 넓고 깊다. 법과 행정 조문이 물 밖에 드러난 빙산이라면, 관련된 관행은 물 아래 숨겨져 있는 빙산 같이 거대하다. 법이나 행정 규정은 제도의 일부만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나아가 제도는 빙산 같은 무기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하는 유기체에 가깝다. 유기체가 그렇듯이 제도도 진화의 전 단계를 거치지 않고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다."(226쪽)

여기까지. 이이와 이원익 부분까지 내가 뽑은 '씨앗문장'이다. 이번 서평의 분량을 넘기기도 했지만, 문득 내가 독자들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스포일러(spoiler)가 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뒤로 조익과 김육이라는 매력적이고 걸출한 인물이 남아 있다. 독자들께서 직접 '씨앗문장'을 골라보시기 바란다.

약점

사실 꽤나 미감(美感)이 있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는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만족할 수 없었다. 며칠은 굶은 듯한 노인인지 중년인지 모를 남자가 표지에 박혀있었는데,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호감이 가질 않았다. 이 책 주인공 중의 한 분인 잠곡 김육의 초상이다.(잠곡께 죄송!) 그 배경으로 깐 행장(行狀)인 듯한 글도 맥락을 잘 모르겠다. 혹시 독자들께서 후진 표지 때문에 책을 놓치시면 안 될 듯하여 노파심에 첨언해둔다.(단, 표지만 빼면 안의 편집은 훌륭하다. 편안한 글씨, 적절한 그림과 해설 등 노고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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