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왜 우리 사회에 때 아닌 화학 조미료 유해 논쟁이 생겨났을까. 그리고 정말 우리 식생활 깊숙이 들어와 40여 년 전부터 즐겨 사용해왔던 MSG(MonoSodium Glutamate)는 유해한 것일까? 그동안 공중파 방송이나 신문 등이 화학 조미료의 안전성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거나 부각한 일은 거의 없었다. 일부 소비자 단체가 화학 조미료 안 먹기 운동 등을 20여 년 전부터 벌여왔으나 언론이나 소비자들의 호응을 별로 얻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2011년 12월부터 방송을 시작한 채널A가 공중파 방송 인기 프로듀서였던 이영돈을 영입해 <먹거리 X파일>이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그 동안 먹을거리와 식당과 관련한 부조리를 파헤치고 값싸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파는 곳을 '착한 식당'이란 이름을 붙여 소개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이 프로그램은 특히 여러 차례 인공 조미료로 맛을 내는 식당과 음식 문제를 다루어왔다. 유명 냉면집에서 손님들이 맛있다고 하는 육수의 비밀은 쇠고기 맛 조미료와 글루타민산 조미료에 있다고 폭로한 것은 물론 1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인공 조미료의 유해성을 집중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안전하다는 주장보다는 유해하다거나 유해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 쪽에 더 관심을 보이는 대중들의 심리를 잘 파고들었다.
질병의 원인을 밝히는 역학이나 과학 연구, 실험 방법을 잘 모르는 일반인으로서는 그럴듯하게 꾸민 방송 프로그램과 PD가 진행하는 실험이 매우 과학적인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 결과 프로그램을 본 대다수는 MSG가 유해하거나 유해 가능성이 상당히 있는 것처럼 머릿속에 각인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 프로그램은 글루타민산 조미료는 유해하거나 유해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목표를 미리 정해놓고 양떼를 몰듯이 몰고 가는 심층 다큐 프로그램의 전형적인 기법을 충실히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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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X파일>, 비과학적이다
그러다보니 비과학적인 실험이 프로그램에 등장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인공 조미료를 넣은 김치찌개를 먹도록 한 뒤 나중에 어느 집단이 물을 더 많이 마시는가를 살피기 위해 두 대학생 집단을 나눌 때 사람 수는 같게 했지만 한 사람당 먹는 찌개의 양을 똑같이 한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짠 김치찌개를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 맛있게 다 먹은 집단과 적게 넣어 일부 남겨 놓은 집단이 마신 물의 양을 비교하는 치명적 실수를 이 프로그램은 보였다.
과학적으로 실험하려면 식사 후 물을 먹는 양이나 습관이 거의 같은 학생을 실험 대상자로 골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미료 때문에 다른 사람에 견줘 물을 많이 마셨는지, 아니면 김치찌개에 들어간 많은 양의 짠 소금 때문에 물을 많이 마셨는지, 조미료에 포함된 나트륨과 소금에 들어있는 나트륨이 마시는 물에 기여하는 비율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매우 기초적인, 과학적 진실에 대해서는 PD가 전혀 의문을 품지 않았다.
또 같은 무게의 소금과 MSG에 들어있는 나트륨의 양은 서로 3배 가까이 차이난다는 점은 고려했는지 의문이다(소금의 나트륨 함량이 3배나 높다). 만약 이런 실험을 토대로 학술지에 논문을 실으려 한다면 분명 퇴짜를 맞을 것이다. 이영돈은 과학 실험 설계 전문가의 자문없이 프로그램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아토피 환자나 두통 환자 등은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이 가능성이 상당한데도 일방적으로 조미료 섭취 때문으로 몰고 갔다. 설혹 조미료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증상이나 질환이 다른 보통 사람들에게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몇 백 만 명 또는 몇 십 만 명 가운데 한 사람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매우 희귀한 경우-그래서 사회 차원에서는 무시할 수밖에 없는-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본 사람은 모두 자신도 잠재적인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느낄 만했다.
이런 비과학적인 간이 실험 결과와 유해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등장 의사), 극히 일부 소비자들의 이야기를 근거로 유해성에 관한 공동 연구를 해보자고 정부와 화학 조미료 제조업체에게 제안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이에 정부와 제조업체가 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들은 물론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등 국제 기구와 많은 연구자들은 그동안 글루타민산나트륨의 유해성에 관해 많은 연구와 논문을 발표하고 논의했기 때문이다. 한 종합편성채널의 PD가 주장하는 것이 아닌, 더 광범위하고 치밀한 연구를 통한 유해성 또는 유해 가능성에 관한 논문이 발표돼야만 이들은 대응할 것이다.
만약 인공 조미료 유해 논쟁이 평행선을 달릴 경우 다른 나라와 달리 상당수의 한국 소비자들만 MSG에 겁을 집어 먹거나 찜찜한 생각을 하면서 외식을 하거나 조미료를 사용하게 된다. 어느 한쪽으로 결론이 나지 않고 이런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야말로 소비자들의 심리적 건강에 매우 나쁜 영향을 끼친다. 지금 다른 나라에서는 벌어지지 않는 현상이 우리 사회에서는 계속되고 있다. 이는 분명 건강 사회의 모습은 아니다.
인공 조미료의 문제점을 파헤친 이 프로그램은 그 나름대로 우리가 생각해보고 반성해야 할 부분을 많이 던져주었다. 조미료의 과다 사용으로 그 포로가 된 한국인들의 입맛이나 맛의 획일화, 다양한 맛의 상실, 신선하지 못한 재료를 인공 조미료가 감추어주는 문제, 습관적으로 조미료를 팍팍 넣는 식당 등 우리 사회가 지양해야 할 점 등을 잘 꼬집어주었다.
맛은 단순히 혀의 즐거움이나 식욕을 돋우는 수단이 아니다. 맛은 곧 건강이다. 입맛을 잃는 것은 질병으로 가는 신호탄이다. 만약 나이가 들어 입맛이 없어 음식이 입에 당기지 않는다면 그는 죽음으로 가는 열차를 탄 사람이다. 그래서 입맛을 잃기 쉬운 노인들이 신선하고 다양한, 맛깔 내는 재료로 된 음식을 접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인공 조미료의 도움을 빌려서라도 감칠맛 나는 음식을 먹는 것이 그들의 건강을 위해서 바람직하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맛이 다르다. 맛은 단맛, 신맛, 쓴맛, 짠맛 외에도 하나 더 있다. 바로 감칠맛이다. 단맛, 신맛, 쓴맛, 짠맛은 사람마다 취향이 달라 그 맛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로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감칠맛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흔히들 '화학 조미료'(정확하게는 발효조미료)라고 부르는 글루타민산의 맛이 바로 감칠맛이다.
MSG는 공장에서 화학 합성이 아니라 미생물 발효로 제조
지금 우리가 먹는 MSG는 사탕수수를 주원료로 해 아미노산의 일종인 글루타민산을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미생물을 발효시켜 만든다. 이를 발효 조미료라 부르지 않고 화학 조미료로 부르는 것은 우리나라 식품공전에서 조미료를 분류할 때 천연 재료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갈아서 만든 것은 천연 조미료로, 나머지는 화학 조미료로 분류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를 잘 모르는 소비자들은 마치 MSG는 식품 회사가 공장에서 화학적으로 합성해 만드는 것으로 오인하기도 한다.
일본인들은 아지노모토, 한국인들은 미원이라는 상품명으로 더 익히 알고 있는 MSG는 감칠맛의 대명사다. 현재 감칠맛은 제5의 기본 맛으로 과학계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 감칠맛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혀를 덮는 듯한 '수프' 또는 '고기' 맛으로, 군침이 돌게 한다. 인간과 동물의 혀에는 감칠맛을 느끼게 하는 특수 수용체 세포가 있다. 이 세포가 글루타민산의 카르복실산 음이온을 감지할 때 느끼는 미각이 감칠맛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맛의 균형을 유지하고 요리의 전체 맛을 완성한다. 감칠맛은 광범위한 음식의 맛을 확실히 높인다. 이영돈 PD의 혀를 내두르게 한 바로 그 맛이다.
글루타민산은 오래 전부터 요리에 사용되었다. 글루타민산을 많이 함유한 젓갈이 고대 로마 시대에 이미 사용되었다. 1800년대 후반 요리의 나라 프랑스 파리에서는 식당을 개업한 요리사 오귀스트 에스코피에가 짠맛, 신맛, 단맛, 쓴맛과 감칠맛을 결합한 요리를 만들어 손님의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그는 그 맛깔난 요리의 원천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 맛의 답을 찾은 사람은 일본 도쿄제국대학의 이케다 기쿠나에다. 그는 1908년 다시를 내는 국물 재료로 널리 쓰인 다시마를 대량으로 끓인 뒤 졸이고 졸여 남은 물질의 결정체를 분석해보니 글루타민산나트륨(MSG)이었다. 그는 다시마 맛국물의 맛이 단맛, 신맛, 쓴맛, 짠맛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우마미'(감칠맛)란 이름을 붙였다.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아미노산 발효 조미료 MSG, 즉 화학 조미료는 이렇게 태어났다.
1913년 이케다의 제자 고다마 신타로가 가쓰오부시에 또 다른 감칠맛 물질이 함유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이 바로 리보뉴클레오티드의 하나인 이노신산(IMP)이다. 1957년 구니나카 아키라는 표고버섯에 있는 리보뉴클레오티드의 일종인 구아닐산(GMP)도 감칠맛을 낸다는 것을 알아냈다. 글루타민산을 많이 함유한 음식이 리보뉴클레오티드도 함께 풍부하게 지닐 경우 그 맛의 강도는 두 성분을 합한 수치보다 높다.
일상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다양한 음식에 감칠맛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글루타민산은 고기와 채소에서 발견할 수 있지만 이노신산은 주로 고기에, 구아닐산은 주로 채소에 많이 함유되어 있다. 따라서 감칠맛은 L-글루타민산, IMP 및 GMP를 많이 함유하는 음식에 흔하다. 어류, 조개, 절인 고기, 버섯, 익은 토마토, 배추, 시금치, 셀러리 등의 채소 또는 녹차와 치즈, 새우젓, 간장 등과 같은 발효 숙성 제품이 그런 음식에 해당한다. 인간은 모유를 통해 감칠맛을 처음으로 접한다. 모유에는 같은 양의 맛국물과 거의 동일한 양의 감칠맛이 함유되어 있다.
부산대 이재원 교수팀, 여러 조미료 섞어 사용해도 안전해
아미노산 조미료와 핵산 조미료의 안전성에 대한 연구는 매우 많다. 다음에 소개하는 것은 그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부산대학교 이재원 교수 팀은 2008년 L-글루타민산나트륨과 구아닐산나트륨, 이노신산나트륨을 함께 사용할 경우의 안전성 문제를 연구해 그 결과를 내놓았다. 이들 개개 인공 조미료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독성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졌다. 그래서 인공 조미료는 국제적으로 무독성으로 분류된, 안전한 식품 첨가물이다. 우리나라와 미국과 일본에서도 별도의 사용 제한 없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함께 사용할 경우 혹 있을지 모를 독성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이 교수는 동물 실험을 했다.
MSG, GMP, IMP의 병용 섭취가 생쥐의 뇌 신경과 생식 기능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평가를 진행했다. 특히 가공 식품 등을 통해 이들 조미료 성분을 섭취하는 어린이가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4주된 어린 생쥐에 2주간 이드 조미료를 경구 투여를 한 결과 신경계와 내분비계에서 특이적인 장애가 나타나지 않았다.
MSG 조미료의 유해성 주장의 효시인 중국 음식 증후군 사건을 찬찬이 살펴보면 그런 주장의 허술함을 잘 알 수 있다. 로버트 호만 곽이라는 한 연구자가 1960년대 미국 내 중국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일부 사람들이 두통, 메스꺼움 등의 증상을 느낀다고 보고하면서 '중국 식당 증후군'이 세상에 처음 나왔다. 그는 이런 증상의 이유로 술이나 와인을 넣고 요리한 음식의 알코올 성분, 높은 소금 함량, MSG 조미료 양념 등 여러 가능성을 들었다.
하지만 알코올과 소금 등은 오래 전부터 사용해온 재료들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MSG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와인 또는 소금 함량의 효과에 대해서는 전혀 연구되지 않았다. 명확하지 않은데도 마치 MSG가 중국 음식 증후군의 주범인 것처럼 몰린 것이다. 하지만 그 뒤 각종 연구에서 유해성이 나타나지 않아 더는 언론과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미국소비자연맹이 주도한 조미료 안 먹기 날도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채널A가 자신들의 간판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먹거리 X파일>에서 땅 속에 묻혔던 이 문제를 다시 끄집어내 부활시키는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 성공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제 우리 사회도 획일화된 감칠맛에 열광하지 않고 다양한 맛에 진정한 맛을 느끼는, 맛의 개성 시대에 접어든 때문이 아닐까.
고기, 야채, 생선 등 다양한 맛을 내는 신선한 식재료를 구할 수 있고 다양한 요리를 맛보기 위해 사람들이 발품과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 세태가 맛의 개성 시대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보다도 소비자들이 더 민감하게 느끼는 유해성 문제를 비과학적 접근으로 다루는 것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유해성은 심리적인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 종착역에는 과학이란 이름을 붙인 열차만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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