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3년 조각 당시 고 건 전 총리의 기용의사를 밝히며 '몽돌과 받침돌 이론'을 제시한 바 있다. 이른바 '개혁 대통령-안정 총리론'으로 이어진 이 주장의 핵심은 대통령 자신이 몽돌처럼 뾰족하게 튈 때 고 전 총리가 안정감 있는 받침돌 노릇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지난 22일 노 대통령은 "고건 총리가 다리가 되어서 그 쪽(보수진영)하고 나하고 가까워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그랬는데, 오히려 저하고 저희 정부에 참여한 사람들이 다 왕따가 되는 그런 체제에 있는 것"이라며 "하여튼 실패한 인사"라고 말했다.
고 전 총리가 받침돌 역할은 커녕 몽돌(노 대통령)을 왕따시키는 결과만 낳았다는 주장인 셈이다.
자신의 손으로 임명한 총리에 대해 실패한 인사라고 폄훼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는 격이 될 수도 있는데 노 대통령은 왜 갑자기 고 전 총리에게 화살을 날렸을까?
일차적으로 여권 내 통합신당파에 대한 공격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지만 대통령이 의도했든 안했든 더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반대 무릅쓰고 첫 총리로 고건 기용한 노 대통령
현 정권 초 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한 인사는 "노 대통령이 고 전 총리를 참 좋아했었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인사는 "사실 고 전 총리가 우리하고 '코드'가 맞는 인사도 아니라 반대 의견이 만만찮았는데 대통령이 다 물리치고 고 전 총리를 총리로 기용했다"고 전했다. 특히 선거과정에서 행정수도론에 대한 지원사격을 부탁 받고도 이를 거절한 고 전 총리에 대해서는 측근들의 비토가 만만찮은 상황이었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들과 토론을 하다가도 "당신네는 경기(고)에 서울대 나온 사람들이니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한다"고 면전에서 면박을 줬을 정도였기 때문에 경기고에 서울대는 물론이고 박정희 정권 때부터 '양지'만을 골라 걸어 온 고 전 총리에 대한 애정을 이해하기 힘들었다는 것이 이 인사의 전언이다.
이는 거꾸로 뒤집어 보면 노 대통령의 고 전 총리에 대한 '받침돌' 역할 기대가 컸었다는 뜻도 된다. 사실 2003년 2월 대통령과 총리로 손발을 맞춘 직후 두 사람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그해 7월, 고 전 총리는 '국무위원 제청서'라는 문서로 허상만 전 장관의 임명을 제청하기도 했다. 헌법으로 규정된 총리의 각료제청권이 유명무실한 상황에서 총리가 서면으로 국무위원의 임명을 제청한 것은 헌정사상 그 때가 처음이었다.
고 전 총리도 자신의 취임 6개월을 맞아 진행된 언론인터뷰에서 "몽돌은 광물성이고, 받침대는 식물성이인데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성립된다"며 청와대와의 관계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이 인터뷰에서 균열의 조짐은 보이기 시작했다. 고 전 총리는 "예전엔 청와대와 총리실의 관계가 수직적이었는데 이젠 역할분담과 협력적 관계"라며 "역할을 나눠서 협력하는 협업관계"라고 규정했다. 그는 "나와 청와대는 코드가 아니라 사이클을 맞추는 관계"라며 이같이 말했다.
"타고난 관료다"라는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꼬리표를 달고 다니던 '행정의 달인' 고 건이 임명권자와 자신을 수평적 자리에 둔 것.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자리가 낳은 균열
고 전 총리의 '차별화시도'는 지난 2003년 10월 노 대통령이 '재신임 발언'으로 물의를 빚으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고 전 총리는 반공개석상에서 "홍두깨를 맞은 기분"이라며 노 대통령을 직설적으로 비판했고 국회에 출석해서는 "(정국 혼란은) 노 대통령과 측근과 정부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한나라당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또한 고 전 총리는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직설적 비판에 대해 "나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고 각을 세웠다.
그리고 2004년 3월 탄핵 사태로 인해 고 전 총리가 헌정사상 두 번째로 '대통령 권한대행'자리에 앉고부터 청와대의 견제심리와 고 전 총리의 독자행보는 맞부딪히기 시작했다.
고 전 총리가 정부 중앙청사에서 주재하려고 했던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가 무산됐고 강금실 당시 법무장관은 "대통령 권한대행의 직무 행사 범위의 한계를 검토하고 있다"고 고 전 총리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결국 고 전 총리는 2004년 5월말 탄핵에서 복귀한 노 대통령이 김우식 당시 비서실장을 세 번이나 보내 부탁했지만 이를 뿌리치고 정동영, 김근태, 정동채 장관 내정자에 대한 각료제청권 행사를 거부하고 사표를 내고 물러섰다.
당시 고 전 총리는 "물러나는 총리가 신임 장관을 임명제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결국 '딴 맘'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노무현·김근태 모처럼 한 마음 "고건은 우리와 다르다"
21일, 노 대통령이 고 전 총리의 기용을 '실패한 인사'로 규정한 직후 '그래도 탄핵 정국을 무리 없이 관리하지 않았냐'는 질문을 던지자 한 청와대 관계자는 "보수언론과 호흡이나 맞추고, 하라는 인사도 거부했는데 관리를 잘하긴 뭘 잘했냐"고 격앙된 반응을 내비치기도 했다.
'대통령'과 '대통령권한대행'이 공존하는 사상 초유의 권력실험이 나타난 그 순간부터 사실상 두 사람 사이는 끝났다는 것.
하지만 '하필 이 시점에서 노 대통령이 고건 때리기에 나선 이유가 뭐냐'는 궁금증은 남는다. 물론 청와대는 대통령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자 "고 전 총리의 인품, 역량, 정책에 대해 평가한 것은 아니다"고 즉각 진화에 나섰다.
노 대통령은 21일 자신의 안보정책에 대한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로 보수 진영과 선을 그었다. 이날 노 대통령은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 '언어가 다르다'고 보수진영을 공박했다. 결국 '고 전 총리 인사실패론'도 그 연장선상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것.
부동산 문제, 한미FTA문제, 양극화 문제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난제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노 대통령 입장에서 자신 있게 전선을 그을 수 있는 것은 대북, 대미 문제를 포함한 안보 문제밖에 없다는 지적도 많다. 결국 이런 맥락에서 나온 전날 발언은 '고건은 선 너머에 있는 사람이다'는 규정인 셈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고건 중심 통합신당론자들에 대한 분명한 비토선언이며, 통합신당론자들을 교란시키는 동시에 범 여권 내의 전선을 반노-친노가 아닌 반보수, 반한나라당으로 재편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통합신당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김근태 당의장도 최근 고 전 총리 측의 대북보수성을 지적하면서 "논쟁할 측면이 많은 후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여권의 대주주인 노 대통령과 김 의장이 고 전 총리에 내린 평가의 공통점은 '우리와 정체성이 다르다'인 것. 이는 친노냐 반노냐와는 또 다른 기준이다.
고건 전 총리가 서 있는 자리
고 전 총리 입장에서는 지지율도 낮은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불리할 것 없다는 계산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 전 총리가 자신의 독자 공간이 아닌 범여권의 맹주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야기는 다르다. 고 전 총리가 한나라당으로 출마하지 않는 이상 여권·반한나라당의 구심이 될 수 있는 정체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는 치명적일수도 있다는 것.
일견 단일대오를 갖춘 듯 했던 우리당내 통합신당파의 속내는 대단히 복잡하다. 이는 당사수파도 마찬가지다. 통합신당파에는 고 전 총리 사람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의원부터 당내 이념적 성향으로 따지면 가장 왼쪽에 있는 의원까지 포함되어 있고, 우리당 사수모임에는 일찌감치 지난 2월 전당대회 때부터 노 대통령과 차별화를 주장했던 김영춘 의원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다.
현재의 전선을 친노-반노의 기준으로 설명하긴 힘들다는 말이다. 이제 노 대통령의 고건 때리기가 범여권을 정체성 기준의 전선으로 재편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한동안 잠잠하던 우리당 내 '과천파'들이 최근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당내 재야파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예컨대 이들의 대부분은 고 전 총리와 직간접적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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