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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한국 사로잡았던 '미제', 쓸쓸한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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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한국 사로잡았던 '미제', 쓸쓸한 오늘?

[프레시안 books] 크리스 해지스·조 사코의 <파멸의 시대 저항의 시대>

"어른들 말이 틀린 게 없어. 역시 미제(美製)가 좋아."

최근 인기를 끈 한 미국 드라마를 시청한 후배의 소감이다. 그는 미국 예찬자가 아니며, 이건 그냥 반어적인 농담이다. 하지만 내게는 이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어른들'에게 각인돼 있는, "미국은 선진국"이라는 믿음. 그걸 뒷받침하는 물질적 토대는 '미제(美製)', 즉 미국 제품이었다. 미군 병사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빼돌려 '부대찌개'를 끓여 먹던 한국인들이었다. 이런 기억을 가진 이들이 보기에, 군인이나 선교사, 외교관 등의 신분으로 한국에 와 있는 미국인들이 흥청망청 쓰다 버리는 온갖 미국 제품들이 그저 부럽기만 했을 게다.

하지만 미국 제품이 좋다는 믿음은 이제 연세 드신 분들의 추억거리일 뿐이다. 1980년대 이후, 미국 제조업은 꾸준히 쇠퇴 일로다. 한때 세계를 주름잡던 자동차 산업의 몰락이 대표적인 예다. 미국산 식품은 아이들에게 먹이기 불안한, 저질 식품의 대명사가 됐다. 지난 2008년 한국을 뜨겁게 달군 광우병 시위가 이를 보여준다. 영화 등 미국 대중문화 역시 마찬가지. 일부 예외가 있지만, '할리우드 영화'는 자극적이고 유치한 재미만을 쫓는 싸구려 문화 취급을 받는 게 보통이다.

'미제'의 영광을 근근이 뒷받침한 건 정보기술과 금융 부문에서 거둔 놀라운 성취였는데, 이젠 이마저도 위태롭다. 정보기술 영역에선 신흥국가가 추격하고 있고, 압도적으로 우월하던 금융 부문은 2008년 위기를 겪으면서 정당성에 치명타를 입었다.

▲ <파멸의 시대 저항의 시대>(크리스 헤지스 글, 조 사코 그림, 한상연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 펴냄). ⓒ씨앗을뿌리는사람
의문이 드는 건 이 대목이다. 만들어내는 제품과 서비스가 신통치 않으니까, 미국 기업은 나라 안에서 찬밥 취급을 받고 있을까? 다들 알다시피, "그렇지 않다"라는 게 답이다. 여전히 미국은 기업의, 기업에 의한, 기업을 위한 나라다. 기업 경쟁력이 급속히 떨어지는데도, 여전히 미국이 기업국가일 수 있는 이유. 그게 뭘까?

미국 언론인 크리스 헤지스와 <팔레스타인>(함규진 옮김, 글논그림밭 펴냄)을 그린 만화가 조 사코가 현장 취재를 통해 답을 찾아 나섰다. 최근 번역 출간된 <파멸의 시대 저항의 시대>(한상연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 펴냄)는 그 결과물이다. 저자들은 크게 두 가지 개념으로 미국을 설명한다. 하나는 기업이 정치권력과 손잡고 사회 전 영역을 주무르는 '기업주의'다. 다른 하나는 정당한 규제마저도 적대시하고 탐욕을 무한 긍정하는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다. 이 두 가지는 제도인 동시에 이데올로기다. 이런 이데올로기는 처음부터 피 묻은 옷을 걸치고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미국 자본주의는, 백인들이 이주하기 전부터 미국에 터를 잡고 살던 인디언(미국 원주민)의 핏방울을 가르며 성장 열차에 올라탔다.

저자들이 미국 네브래스카 주의 화이트클레이에서 현장 취재의 첫 걸음을 뗀 것은 그래서다. 외딴 마을인 이곳은 대여섯 명의 인디언이 사는 곳인데, 주류 판매업 외에는 아무런 산업이 없다.

"마을회관, 소방서, 파출소, 쓰레기 처리 시설, 수도 시설, 하수도 시설, 공원, 벤치, 공공 휴게실, 학교, 교회, 응급 서비스, 시민단체, 도서관 등은 아예 없다. (…) 네 곳의 주류 판매점이 보이는데, 규모는 대형 맥주 냉장고를 확장한 정도에 불과하다. (…) 화이트클레이의 현재 모습은 150년 전부터 시작된 인종 청소와 인종 비하, 인종 살해의 연장선상에 있다. 당시 미국 기병대는 인디언 수용소를 기습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던 무수한 부녀자와 어린이가 총에 맞아 쓰러졌고, 백인 식민지 개척자는 식량 보급원을 조직적으로 차단해 누더기 옷을 걸친 인디언을 아사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이후 술 때문에 빚어지는 결투와 다툼 그리고 총격이 자주 일어났고, 결국 식당과 술집은 모두 폐쇄되었으며 테이크아웃 형식의 주류 판매만 허용 되었다. (…) 인디언 여학생 다섯 명 중 한 명, 인디언 남학생 여덟 명 중 한 명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자살을 시도한 전력이 있을 정도다." (12~14쪽)

다른 인디언 보호 구역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인디언 보호 구역인 파인 리지 거주 남성의 평균 기대 수명은 58세. 아이티를 제외한 서반구 국가 가운데 제일 낮다. 또 이들 지역 인디언의 1년 수입은 2600달러에서 3500달러 정도다. 우리 돈 월급으로 환산하면, 약 19만 원에서 약 31만 원 사이다.

"따라서 술이 없으면 살기 어려운 사람은 주류 판매점 밖에서 죽치고 앉아 구걸한 돈이나 외상으로 술을 구매하여 마시고, 여성은 성매매를 통해 번 돈으로 술을 산다. 인디언 보호 구역에서는 주류 판매가 금지되어 있지만, 파인 리지의 알코올중독률은 80퍼센트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13쪽)

한 인디언 여성의 회고다.

"8명 혹은 10명의 여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다녔어요. 당시 우리는 모두 세상에 태어난 사실 자체를 괴로워했어요. 너나 할 것 없이 성폭행, 성희롱에 시달렸습니다. (…) 일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보니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 당시 우리는 가톨릭계 학교를 다닌 터라 십계명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18살 아니 19살이나 20살이 될 무렵에는 그 안에 담긴 죄를 거의 전부 범했어요. '어차피 죽어서 지옥에 떨어질 몸, 아무렇게나 살자'며 더 많은 죄를 지은 겁니다."(17~18쪽)

인디언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을 정당화 한 것은 일종의 권리 의식이었다. 석유를 비롯한 에너지 자원, 토지 등을 얻으려는 백인들의 욕망은 정당한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건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탐욕이 다음 먹잇감으로 삼은 건 흑인을 비롯한 다른 유색인종이었다. 다음에는 생태 환경이 희생됐다.

저자들은 이들 피해자들이 있는 곳을 차례로 방문한다. 대표적인 공업 도시였던 뉴저지주의 캠던에는 이제 공장이 없다. 도시 기능이 말살된 그곳은 거대한 쓰레기장이 됐고, 주민 가운데 90%가 빈곤선 이하의 삶을 누린다. 이들 대부분은 흑인 또는 히스패닉계다.

애팔레치아 산맥이 지나는 웨스트 버지니아 주는, 풍부한 자원 때문에 오히려 저주받은 땅이 됐다. 목재 채취와 석탄 채굴이 기계화 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산맥 가운데 하나인 애팔레치아 산맥은 금세 등뼈를 드러냈다. 단물을 다 빨아먹은 기업이 떠난 뒤, 마을은 폐허가 됐다.

"우리들은 게리에서 포카혼타스 퓨얼 컴퍼니(Pocahontas Fuel Company)가 조성한 탄광촌(Jenkinjones)로 이동했다. (…) 사방이 적막하다. (…) 각종 건물은 빈 껍데기 뿐이다. 세 방향으로 나 있는 아치형 매점 출입구 안쪽 바닥에는 예외 없이 수북한 돌무더기가 줄지어 있다. (…) 인기척이 들리는 유일한 건물은 작은 우체국이다. 그러나 미국 우편국의 예산 절감 계획에 따라 2012년 5월에 문을 닫을 예정이다."(172~173쪽)

▲ 파인 리지 인디언 보호구역을 담은 조 사코의 그림. ⓒ씨앗을뿌리는사람
물론, 여전히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가는 땅은, 그들의 선조가 살던 땅이 아니다. 기업이 떠난 자리는 온갖 중금속으로 오염됐고, 공기는 석탄 가루와 미세 먼지로 범벅이 됐다. 주민들은 온갖 병에 걸렸고, 상당수가 약물중독에 빠졌다.

인디언, 유색인종, 불법 이주노동자, 자연 환경…. 차례로 기업의 먹잇감이 된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들을 다 집어삼켰지만 여전히 기업은 배가 고프다. 당연하다. 대개의 기업은 주식회사고, 이는 자본의 논리를 따른다. 자본에겐 성장 또는 사멸의 선택지밖에는 없다. '성장을 포기한 자본'이란 형용모순이다.

결국 백인 중산층이 먹잇감이 될 차례다. 백인이 휘둘렀던 칼날은 이제 부메랑이 돼 백인 자신들에게 돌아온다. 온갖 모순을 지닌 미국 사회가 그럭저럭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적어도 백인 중산층에겐 살만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금융자본의 탐욕은 이런 전제를 흔들고 있다. 백인 중산층 역시 약탈적 대출의 피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저자들이 인디언 거주 지역에서 지켜본 참상은 백인 중산층의 미래가 될 수 있다.

저자들이 보기에 2011년 9월 17일 뉴욕 주코티 공원에서 시작된 월스트리트 점령운동이 의미심장한 것은 그래서다. 99%의 희생이 99%의 분노로 바뀐, 전환점이라는 것.

저자들은 그러나 섣부른 희망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다만, 자본이 단물을 빨아먹고 지나간 자리. 그곳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이들의 쓸쓸한 풍경을 그려낼 뿐이다. 저자 가운데 한 명인 크리스 헤지스의 글보다 조 사코의 삽화가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일 게다.

어르신들의 기억에 깊이 새겨진 '미제(美製) 물건'들을 찍어내던 미국의 공장엔 이제 사람이 없다. 낯선 언어를 쓰는 어느 나라, 그곳 아이들에게 '메이드 인 코리아'의 추억을 던져주며 부지런히 돌아가는 한국의 공장도 언젠가는 잡초가 무성할 날이 올 게다. 어느 나라 자본이건, 제 욕심을 채운 뒷감당을 하지 않기는 마찬가지고, 자본에게 단물 빨린 자리가 황량하기도 다 마찬가지다.

다만 우리에게 다행스러운 건 이 책을 통해 '미제(美製) 물건'을 찍어내던 공장과 농장의 황량한 풍경을 먼저 봤다는 것. 미국의 현재를 우리의 미래로 삼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까지 이 책에서 찾을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무얼 하지 말아야 할지는 대략이나마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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