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가가 섭외 과정에서 그 사실을 미리 눈치 챘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런데 아마 그 방송국 소속 직원이었더라도 단번에 알아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패널 같은 일시적인 외주를 비롯해 한 회사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소속이나 고용 형태는 저마다 다를 가능성이 높고, 이들 중 누구도 각자의 팀 바깥에서 누가 같은 회사의 명함을 들고 일하는지 상세하게 알기 어렵다. 방송국처럼 전문 인력이 필요한 큰 조직이라면 더욱 그렇다. 가령 거리에서 종종 마주치는 드라마 촬영진들의 경우, 같은 목적을 위해 모인 팀이지만 정규직인 감독부터 외주업체 소속 아르바이트까지 저마다 다른 처지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처럼 한 직장 내 노동들이 각기 다른 조건으로 계약되어 있되 외부의 소비자와 접촉할 때는 하나의 회사 이름으로 만나는 사례는 흔하다. 이날 일행(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 박세열·최형락·안은별 기자)이 함께 올라탄 용산발 익산행 새마을호 열차 안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열차 내에서 마주치는 승무원은 엄밀히 말하면 코레일(한국 철도공사)의 직원이 아니라 '코레일관광개발'이라는 자회사 소속이다. 지금은 잊혀진 KTX 여승무원들의 투쟁도 자회사로의 이적을 거부해 해고당한 이들의 '철도공사로의 복직'을 건 싸움이었다.
켄 로치의 영화 <내비게이터>는 이런 상황이 극단화되었을 때 마주할 수 있는 비극을 보여준다. 철도 민영화와 함께 민간업체가 철도 사업을 인수하면서 해당 노선의 노동자들은 평생직장이라 믿었던 곳을 떠나거나 외주 용역 업체 소속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하청된 노동자를 보호해 줄 수 있는 틀은 사라지고, 안전 규정 대신 '싼 가격에 빨리'라는 논리만이 드리운다. 그리고 단 네 명의 인력으로 터무니없는 작업을 하던 인부들은 끔찍한 사고를 겪게 된다.
어디까지나 영화 속 이야기이지만, 공공성을 핵심으로 하는 철도 노동이 '효율화'와 '노동 유연화'라는 요구와 맞부딪히면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미래의 모습일지 모른다. 박흥수 연구위원은 한 열차 안에 각각 다른 회사 직원이 일하게 되면서 "소속 회사나 인력 송출 업체에 따라 임금도 노동조건도" 모두 달라지고, "이들 사이엔 동료 의식은커녕 불신만 커져 갔다"고 말한다. 이럴 경우 일터에서의 자부심은 사라지고, 문제가 일어났을 때 "그건 우리 회사의 일이 아닙니다"라며 책임을 떠넘길 가능성도 충분하다.
ⓒ프레시안(최형락) |
'미치도록' 좋은 철도를 지킨다
박흥수 연구위원은 철도 기관사다. 부기관사로 보낸 약 6년을 포함해 18년간 열차를 몰았다. "거대한 철마의 맨 앞에 앉아 너른 산야를 달리고 싶었다"던 바람을 따라 전국을 누볐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기관실은 물론이고 객실에 탈 때에도 가슴이 터질듯 설렌다고 말한다. 자신의 직업에 이 정도로 애착을 갖고 있는 사람은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 처음이었다.
"기관사란 직업의 매력이요? 끊임없이 움직이고 매일 자연을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죠. 책상에 앉아 있는 건 제 체질에도 안 맞고요. 그리고 이 거대한 기계 장치를 내 손으로 움직인다는 데 대단한 매력이 있어요. 미치도록 좋아요.
철도 기관사들은 전 세계 어딜 가나 직업 만족도가 높아요. 일반적으로 같은 직업을 가진 전혀 모르는 타인이랑 만나서 일 얘기하는 거 싫어할 텐데, 기관사들은 외국에 가도 서로 엄청 반가워해요. '넌 요즘 무슨형 타니' '이 기종은 뭐랑 비슷하네' 하면서 서로 사진 보여주고 난리 나죠."
학생 시절 '운동'을 하기도 했지만 1995년 당시 철도청에 입사한 건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먹고 살 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시대가 가만 두지 않았다. 철도에 대한 시야를 넓혀 갈 때쯤 IMF 외환위기가 터졌고, 이후 전개된 신자유주의적 파란은 철도에도 민영화의 칼날을 들이밀었다. "한 달에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일하는 기계처럼 살았던 철도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비효율의 주범이 되어" 개혁의 도마 위에 올랐다. 그때부터 자료더미에 파묻혀 철도란 무엇인가를, 정부는 왜 민영화를 하려는지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 <철도의 눈물>(박흥수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후마니타스 |
<철도의 눈물>은 재미 위주의 책은 아니다. 20세기 역사가 켜켜이 담겨 있는 이야깃거리로서의 철도를 보고 싶다면, 언젠가 나올 그의 다음 저작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공공성의 마지막 보루를 지키고 싶다면, 철도가 왜 그 핵심인지를 물어가며 읽어 보기를 권한다.
철도에 관해 발언하는 몇 안 되는 필자라는 점에서 그를 만나고 싶었고, 인터뷰를 한다면 반드시 열차 내에서 하고 싶었다. 비번 중 하루를 골라 철도 여행을 하자는 제안에 그는 흔쾌히 응하며 군산을 직접 가이드해주겠다고 나섰다. 그와 함께 한 여정은 용산발 익산행 새마을호 1151호(7시 35분 출발)와 익산발 용산행 KTX 산천(17시 36분 출발)로 이뤄졌다.
만원 열차, 텅 빈 열차
익산행 새마을호는 경부선 천안역부터 장항선을 지난다. 일제 강점기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가 천안~장항간 노선을 건설해 '충남선'이라 이름 붙인 것이 노선 역사의 시작이다. 1931년 전 노선이 개통되었고 해방 직후(1946년) 국유화, 1955년 장항선으로 개칭되었다.
장항선은 코레일의 대표적인 적자 노선이다. 타고 가다 보면 몇 번인가 선로가 없는 공사된 선로 부지를 볼 수 있는데, 복선화를 염두에 두고도 적자로 인해 공사가 멈춰버린 흔적이다. 장항선은 전 구간 단선으로 만들어진 채 오랫동안 개량 공사가 없어 이쪽 열차가 지나가기 위해 반대쪽 열차를 기다려야 했고 한쪽이 늦으면 반대쪽도 같이 늦는 등 지연 시간이 길기로 유명했다. 2007년 여러 구간에서 직선화, 전철화 공사가 이뤄져 기존의 문제점들이 개선되었지만 공사 완료는 언제가 될 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아침 시간 이 열차의 첫 인상에서는 적자 문제를 실감할 수 없었다. 수많은 승객들로 빈 자리가 거의 없었고, 특히 8시 10분경 수원역에서 앳된 얼굴의 20대들이 우르르 몰려 탈 때는 서서 가는 사람도 꽤 보였다. 이들은 평택이나 천안, 신창에 있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다. 수십 명이 카페 열차 칸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아, 더는 특별하지 않은 기차 통학을 견디려 무가지나 스마트폰에 머리를 파묻고 있었다.
딱 그 부근까지가 이른바 '수도권'이며, 천안까지의 노선은 장항선이 아니라 경부선이라는 사실을 떠올려야 한다. 통학생들이 빠져나가면서 열차는 휑해져 '적자 노선'에 어울리는 모습이 됐다. 이는 장항선만의 특수한 골칫거리가 아니다. 박흥수 연구위원이 일러준 대로 "한국 철도 전체 수익의 대부분은 경인철도와 경부선 KTX가 차지한다"고 이해하는 편이 빠를 것이다.
누군가는 '없애면 그만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한편 정부는 '비효율적이고 방만한 경영'이 적자의 원인이라며 철도공사를 굼뜨고 부실한 기업으로 낙인찍어 왔다. 박흥수는 이런 주장에 담긴 철도 산업에 대한 몰이해를 지적하면서, 그것이 철도 민영화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라고 반박한다. 그는 이런 비유를 쓴다. "만약 인간의 혈관 중 심장 동맥과 주요 정맥들이 중요하다고 모세혈관 같은 것들을 다 제거해 버린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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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는 공산품처럼 수요에 따라 공급을 줄이거나 늘일 수 없고, 수요가 줄어드는 시기라도 선로나 역을 평소처럼 유지·관리해야 해서 일상적 유지비, 인건비에 다른 산업에서 통용되는 논리를 갖다 대기 어렵다. 사람이 드문 지방 노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직접 이용하는 사람이 적더라도, 지역사회를 숨 쉬게 하고 지역 거점을 이어주는 등 철도 네트워크가 발생시키는 '사회적 이득'을 감안하여 생각해야 한다.
"이명박 정권 시기에 철도 노동자 약 5000여 명이 줄었어요. 그런데 운영되는 거리는 늘었습니다. 운영거리는 늘었는데 인력이 줄어든 만큼 정부 측 입장에서는 인력 효율화고 노동자 입장에서는 심각한 구조조정이었죠. 그런데도 정부는 철도에 비효율적 인력이 너무 많다고 합니다. 특히 돈을 못 버는 지방선의 경우, 인력이 넘치는 게 아니냐고 주장하죠.
그런데 서울역에 있는 사람은 수만 명을 상대하기에 효율적이고, 지방역에 있는 사람은 몇 명 상대 안 하니까 비효율적인가요? 그게 아니라, 서울역이란 조건이 그런 상황을 만든 거죠. 예를 들어 서울-천안 간 전철이 개통되면서 시외버스 노선이 타격을 받았는데, 시외버스 사업자·노동자가 비효율적이어서 그런 건 아니잖아요. 또 대구에서 김포 가는 비행기를 이용하던 사람 다수가 KTX를 타게 되었다면, 국내선 비행기 이용률이 떨어진 원인은 경영 비효율이 아니라 교통 환경의 변화라고 봐야겠죠. 이런 각각의 조건에 따라 변하는 이용자 감소에 무조건 '비효율성'을 운운하는 건 정부의 말버릇이에요."
예산, 홍성, 대천 등 주요 역을 지나는 동안, 이야기는 차창 밖 풍경을 구경하느라 몇 번인가 끊겼다. 간조로 갯벌이 드러난 서해 바다도 멋지지만 콜라텍과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사무실이 함께 들어선 상가 건물 등 지방 역 특유의 스산한 풍경도 묘하게 눈길을 놓지 않는다. 열차표는 군산까지 가는 것으로 끊었지만, 우리는 한 역 전인 장항역에서 하차했다.
역 이동과 마을의 쇠퇴
장항역에서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 장항화물역으로 이동했다. 80년 가까이 장항의 중심이었던 구 장항역(장항화물역) 근처의 변화를 박흥수 연구위원이 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2007년 장항선 선로 공사 당시 장항-군산 간 직접 연결선을 놓으면서 장항역은 기존 역사에서 북쪽으로 약 4.2킬로미터 떨어진 신역사로 이전하였고, 장항선이 군산선 일부 구간을 흡수하여 종착역도 장항역이 아닌 익산역으로 변경되었다. 즉 원래의 장항역은 화물역으로서 역사(驛舍)는 남아있되 역사(歷史)의 뒤로 물러났다는 얘기다. 철도역을 중심으로 뻗은 시가지의 오랜 유산이나 종착역 특유의 활기가 예전만큼 못 할 터였다.
1920년대만 해도 아무 것도 없었던 장항은 철도와 함께 컸다. 물론 일제의 수탈 기지로서 말이다. 군산항을 통한 쌀 유출을 용이하게 만드는 기지로서 장항엔 간척지가 매립되고 검은 철선이 드나드는 항구가 세워졌으며, 점(點, 역)-선(線, 철도)-면(面, 시가지 및 생활공간)이라는 일본식 공간 정치의 논리가 실현되었다. 1936년에는 지금도 위용을 자랑하는 장항 제련소 용광로의 첫 심지가 탔다. 박흥수 연구위원이 "저 제련소 굴뚝이 사회 교과서에 산업화를 상징하는 도판으로 많이 쓰였다"고 말하자, 60년 장항 토박이라는 택시 기사가 "대통령이 두 명(이승만, 박정희)이나 다녀갔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기사 역시 제련소에서 정년까지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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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수 연구위원은 장항화물역 근처가 마치 디트로이트 같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는데, 나는 디트로이트에 가 본 적이 없지만 그 장소성을 수식하는 관용구는 알고 있었다. 어디가 어떻게 닮았다는 엄밀한 증거를 댈 수는 없지만 한때의 영화를 짐작하게 하는 쇠락한 거리 모습을 상상하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듬성듬성 있는 체인점의 이름은 '영화 마을' 등 2000년대 초반 시점에서 업데이트를 멈추었고, 여관이던 건물은 방을 월세로 대여한다는 현수막을 걸어 놓았다. 그는 "그날 운전하면 다음날에 올라오니까, 한때(2008년 이전)는 장항역 인근이 기관사들의 해방구였다"며 부르는 대로 안주를 내주던 가맥집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저 멀리 군산 내항이 보이는 쪽으로 걸어갔다. 과거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가 운영하던 여객선 매표소였다고 그가 가리킨 지점엔 간이식당이 들어서 있었고 그 주변은 공원 비스무리하게 꾸며져 있었다. 예전에는 군산항 내항까지 1500원에 승선하는 여객들이 많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은 아마도 공공근로 중인 노인들이다. 그 바로 앞을 현 장항역과 구 장항역(장항화물역)을 오가는 화물열차가 느릿느릿 육중하게 지난다.
2008년 당시 장항읍 사람들 대부분은 역사의 4킬로미터의 이전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폭탄을 맞은 거나 다름 없었다"고, 군산까지 가는 택시 안에서 기사는 말했다. 오가는 사람이 훨씬 줄었어도 역의 중요성은 무시할 게 못 되었으며, 그 역의 기능이 지켜졌어야 철도를 통해 흘러드는 사람의 숫자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장항역의 운명을 바꾼 장항선 직선화는 그럴 의도가 없었겠지만, "역으로 컸던 마을"에는 좋지 않은 신호였다.
'근대' 관광자원화의 혼란?
군산시로 이동, 먼 곳에서도 손님이 몰려든다는 유명 중국집 복성루에서 짬뽕을 먹고 군산 시내 관광지를 산책했다. 처음으로 간 곳은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1909년 일본인들이 세운 절로 대웅전도 종각도 에도 시대 사찰 건축양식을 하고 있다. 그 다음엔 군산 여행 가이드에 반드시 나오는 일본식 가옥인 히로쓰 가옥으로 이동했는데, 월요일엔 개방하지 않기 때문에 대문 쪽창 너머 정원 모습을 보는 데 만족해야 했다. 이 유적을 '강추'하던 박흥수 연구위원도, 우리처럼 휴무일을 몰랐던 다른 관광객들도 아쉬워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현재 한국제분이 소유하고 있는 이 목조 주택은 일제 강점기 군산 지역 포목상이었던 일본인 히로쓰가 건축해 살던 집이다. 2층의 본채 옆에 금고 건물과 단층의 객실이 비스듬하게 붙어 있으며 건물 사이에는 일본식 정원이 꾸며져 있다고 한다. 일본인 부호들이 많이 살던 '신흥정'(현 신흥동) 일대의 가옥 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어서 <장군의 아들>이나 <타짜> 등 영화에도 등장했다.
1899년 군산항 개항과 함께 수많은 일본인이 군산에 들어와 조선인을 부리며 영화를 누렸고 한때는 거주민의 절반이 일본인인 적도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겐 슬픈 수탈의 흔적이자 누군가에겐 이주 생활의 흔적이 100년도 넘은 지금까지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이 두 가지 사실은 도시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이 근대문화유산이 일러주는 가치만큼 인상적인 것은 지금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약간의 디자인적 혼란인 것 같다. 신흥동 일대엔 한 눈에 봐도 일본인이 짓고 살았을 법한 다 쓰러져가는 가옥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데, 그 주변엔 근대화 시기의 한국적인 양옥들과 명백히 21세기적인 '일본식' 상업 공간이 교차한다. 새로 생기는 게스트하우스나 카페의 외관으로부터 현재에서 과거를 길어 올린 듯한 일본풍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해방 이후 한동안은 당시의 생활과 질서에 맞춰 일본의 지배 흔적을 없애 갔다면, 관광 자원 개발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제 이 도시의 역사적 특수성을 적극적으로 포착하려 하고 있다고 할까.
ⓒ프레시안(최형락) |
해망로에 나란히 늘어선 옛 군산세관-나가사키18은행-옛 조선은행과 다다미로 꾸민 카페(옛 미즈상사 건물)에서도 '근대'에 2010년대 미감을 덧댄 관광 공간의 문법을 읽을 수 있다. 건물의 이름이 알려주는 대로 일제 때 상업 중심거리였던 이곳의 문화유산은, 3년 전 이곳을 찾았다는 박세열 기자의 증언에 따르면 방치되어 있거나 모습을 갖추기 위한 준비 중이었다. 옛 조선은행 건물은 그때까지만 해도 낡은 나이트클럽 간판을 달고 있었다고 하니 지금과 같은 말끔한 모습은 얼마 전에 갖추어졌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지금은 내부를 정비하고 군산 근대 역사나 건물 용도와 관련된 전시를 하고 있는데 그 수준은 아직 '어떻게든 공간을 채우기'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구 군산세관과 나가사키18은행 사이에 번쩍번쩍 위용을 뽐내는 군산 근대 역사박물관도 2011년에 건립됐다. 기사를 찾아보니 2009년 말 "월명동과 명산동, 내항 등에 산재해 있는 근대문화유산을 활용하는 100억 원 투자 규모의 (…) 예술 창작 벨트화 조성 사업과 함께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140억 원이 투입되는 근대역사경관 조성 사업에 시동을 걸었다"는 설명과 그해 봄 착공한 박물관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 해망굴. ⓒ프레시안(최형락) |
해망로로 이동하기 전 우리는 해망로를 통과해 월명공원 뒷편에 있는 고지대의 달동네로 올라갔는데, 이곳 역시 군산시의 도시 활성화 계획과 연관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인 노무자들이 평지에서 밀려나듯 자리를 잡았다는 이곳은, 1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았지만 이제 남은 건 철거 직전의 폐가와 급하게 이주한 흔적들뿐이다. 군산시까지 데려다 준 택시 기사는 "아파트가 생긴다"고 했고 월명공원 매점에 있던 노인은 "나무 심고, 공원이 더 커질 거다"라고 말했는데 확인해 본 결과 두 증언 모두 틀린 게 아니었다. 간단히 정리하면 고지대엔 월명공원의 '확장판'이 생기고, 그로 인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저소득층 주민을 위해 인근에 500가구 규모의 보금자리주택이 생길 예정이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
해망동 달동네 꼭대기의 탁 트인 전망에는 맞은편의 장항과 이곳을 이을 군장대교의 건설이 한창이다. 앞서 언급한 보금자리주택의 분양 대상에는 내년쯤 완공될 군장대교로 인해 이주해야 했던 철거민들도 포함된다. 장항에서 만난 시민은 군장대교가 생기면 사람들이 모두 군산으로만 가게 될 거라며 우려했다. 이미 모두 떠나 군산의 철거민을 만날 수는 없었지만 별다른 저항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연루된 삶을 흔들며 이동과 흥망의 분기점을 만들어내는 거대 건축물이란 점에서 대교는 철도와 마찬가지의 의미를 지닌다. 20세기 초 일본인들이 구현한 '근대'와 60~70년대 '산업 근대화'의 흔적, 2010년대 관광 자원으로 재발견된 복고풍 근대가 서로를 덧칠하고 있는 듯한 이곳은 군장대교와 함께 또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게 될까.
▲ 시간이 무질서하게 엉킨 철거촌에서 아마도 문풍지로 쓰였을 빛바랜 신문지를 '득템'했다. 1995년 2월 17일자 <조선일보>, 하필이면 북 섹션이다. 마르케스가 <사랑과 또 다른 악마들에 관하여>를 출간했다는 소식과 신경숙의 독서 일기가 실렸다. 무엇보다 '서점가 특설 코너'가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교보문고와 종로서적, 을지서적에서 각자가 추천하는 책 제목을 나열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시간이 멈춘"?
3시 20분경 군산 시내를 벗어나 가까운 철도 관련 유적 두 군데를 들렀다. 먼저 간 곳은 광고나 TV 프로그램 촬영지로도 유명한 경암동의 '페이퍼코리아선'이다. 1944년 경암동 인근에 신문용지 제조업체(당시 이름 북선제지) 공장이 들어섰고, 공장과 군산역 사이 총연장 2.5킬로미터를 종이 실은 화물열차가 오갔다.
2008년 6월 폐선되기까지 '경암선' '북선제지 철도' '고려제지 철도' '세대제지 철도' '세풍철도' '페이퍼코리아선'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는데 지금은 '철길마을'로 통한다. 이 낭만적인 이름이 이곳의 현재 위치를 말해준다. 외지인들에겐 "시간이 멈춘 곳 … 걷기만 해도 영화 속 주인공"이 되는 곳(한 기사 제목)으로 알려져 있고 디카족의 인기 출사지다. 철로가 민가에 스칠듯 가깝게 깔려 있기에 운행 당시에는 주민의 불편을 야기했을 것이고 지금은 사진이 잘 나온다.
이 괴리에 얽힌 흔한 사연, 시는 2011년 상당한 예산을 들여 폐 철길을 "현대적"인 탐방길로 조성하려 했으나 일부 군산 시민들이 "원래 색깔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며 반대했단다. 그런데 정작 거기 남은 주민들은 아무 때나 셔터를 누르는 관광객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내가 본 것은 주민들이 나무침목 사이에 심은 상추, 대파와, 관에서 심었으나 관리는 전혀 안 한 조경용 화분이었다. 이 어지러움 그대로가 좋다고 생각했지만 나 역시 한 명의 관광객으로서 그리 적절한 의견은 아닐지도 모른다.
▲ 옛 코리아페이퍼선 혹은 철길마을. 어디서 본 적이 있다 했더니, 올 여름과 가을 열심히 시청했던 오디션 프로그램 <댄싱9>에서 댄스스포츠 소녀 소문정 양이 인터뷰를 했던 곳이다. 그녀는 군산 출신이다. ⓒ프레시안(최형락) |
거기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임피역사로 이동했다. 임피역은 1936년 건립 당시 쌀을 비롯해 각종 화물을 일본으로 실어 내는 교통 요지였고, 80년대까지는 군산과 익산으로 통학하는 학생을 실어 날랐다. 그러다 1995년 배치 간이역으로 격하, 2005년 화물 취급이 끊기고 2008년 5월부터는 여객 취급도 중단되는 내리막길을 걷다가 일제 강점기 농촌 지역 소규모 간이역사의 전형적 건축형식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건축적·철도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휴자원 관광자원화 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
지금은 올해 여름 조성 사업을 마친 테마 공원을 볼 수 있다. '시실리(時失里)' 즉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이라 이름 붙은 광장과 거꾸로 가는 시계탑이 있고, 주모와 취객을 재현한 세트, 2칸짜리 무궁화호 열차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날은 임피역 또한 휴무일이라 재단장한 역사의 문은(심지어 화장실마저) 굳게 닫혀 있었는데, 역 관련 자료나 임피 출신 소설가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을 재현한 세트도 있다고 한다.
"사업에는 23억 원이 투자됐으며, 군산시는 임피역과 인근 채만식문학관을 연계한 문학기행 관광 상품도 개발하기로 했다." 나중에 찾아본 지난 6월의 기사 내용이다. 들어간 돈의 숫자를 보니 현장을 찾았을 때 박흥수 연구위원과 나누었던 일말의 아쉬움이 증폭되는 느낌이다. "시간이 멈춘 듯한 낭만"과 문학 등을 섞어 놓은 테마공원의 테마는 관 주도의 공공미술이 갖는 한계에 머물러 있다. 물론 이 또한 세월이 흐르면 '유휴자원 관광자원화'에 대한 2010년대의 대응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가치를 갖게 될지 모른다.
▲ 임피역. ⓒ프레시안(최형락) |
살아가는 모두를 위한 철도
바깥에 있기 힘든 날씨가 되었고, 이제 익산역에서 용산역으로 가는 KTX 산천 열차를 타기 위해 출발할 시간이었다. 임피역 앞은 지나다니는 차도 뜸해 콜택시를 불러야 했다. 근처에 호원대가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가 있는 임피면이 아닌 원광대(익산시) 앞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호원대 앞에 원룸을 지은 사람들이 울상이 됐다고 택시 기사는 말했다. 원광대는 학생 수가 워낙 많아 훨씬 붐비기도 하거니와 익산역이 KTX 시종착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손님 중 한 명이 이 일대에 빠삭하다는 사실을 눈치 챈 기사는 전군가도나 보석 세공업 등 군산에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마지막에 묘한 말을 남겼다.
"익산이 교통은 좋아요. 그런데 전라도 사람들이 서운한 게 뭐냐 하면, 열차가 서울에 못 들어가니까. 용산역에서만 하차해버리고. KTX가 200편이 있으면 전라·호남선도 100편은 서울역으로 넣어줘야지. 그런 데서 괜히 불만이 커지는 거예요."
왜 서울역 도착 열차가 중요한지 묻고 싶었지만 기회를 놓쳤다. 누구나 다 아는 이유가 있는데 나만 모르겠거니 하고 넘긴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이야기해 보니 동행인들도 같은 궁금증을 가졌다고 한다. 공간 정치는 용산역과 서울역 사이의 실질 거리만이 아니라 그것이 포괄하는 상징까지 시야에 넣고 이루어져야 한다는 제멋대로의 교훈을 얻었을 뿐이다.
"1995년 (철도청) 입사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도 철도 환경은 크게 바뀌었어요. 신선도 많이 생겼지만 그러면서 저문 곳도 많죠. 아까 "폭탄 맞았다"고 표현했잖아요? 그것처럼, 한국 사회 전체가 그렇지만 심각하게 중앙화하면서 철도역의 전통적인 기능이 사라지고 있는 거죠.
철도 노선과 역이 담당했던, 마을과 지역사회에 생기를 불어넣는 기능이 승객이 줄어듦과 함께 축소됐고, 그렇기 때문에 주민이 빠져나가면서 시골 초등학교나 병원이 문을 닫는 현상이 꼬리를 물고 있어요. 그래서 철도를 더 '효율적'으로 운행하라는 요구 앞에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심각한 물음이 있는 거죠. 승객이 없다고 노선을 없앨 게 아니라, 오히려 철도 기능을 강화하고 철도 이용을 편하게 만들어서 역 주변의 활기를 되찾게 할 수 있잖아요? 사라지는 것을 당연시하고 효율성을 강조하는 풍조에 파묻히게 되면 지역사회는 더 몰락의 길을 걷고 말 거예요. 철도와 관련해 지역에 더 필요한 건 '시간이 멈춘' 낭만적인 관광 자원의 개발이 아니라 현재 운행하고 있는 철도에 대한 정부의 투자 아닐까요.
또 하나의 문제는 한국 사회가 철도는 등한시한 채 너무 도로 위주로 가고 있다는 거예요. 유럽 국가들은 경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도로 중심이 대안이 될 수 없다며 철도 중심의 교통 체계로 선회하고 있어요. 그런데 한국은 일제 강점기 건설된 철도 노선에서 크게 변한 게 없거든요. 반면 산업화의 상징인 도로와 도로 마피아의 기득권은 여전하죠.
왜 도로에 비해 철도가 중요한가 하면, 철도는 공공성과 대중교통의 보루이니까요. 오토바이, 자동차, 비행기까지 레저나 스포츠용이 있는데 철도만 유일하게 화물과 여객, 즉 집단적·공공적인 목적으로만 쓰인다는 사실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어요. 대통령도 '자가용 열차'는 갖지 못하잖아요."
중앙 집권·지방 소외 문제와 철도를 엮어 이야기해달라고 하자 박흥수 연구위원이 들려준 긴 대답이었다. 장항과 군산 모두 철도와 관계가 깊은 곳이다. 거기서는 20세기 초 식민지 피지배민의 피와 땀이 서린 철도, 수도권 집중과 함께 쇠락한 마을의 상징으로서의 철도, 관광 자원으로서 개발되는 철도 등 한국 철도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모습들은 한 그루터기에 남은 나이테처럼 따로 떨어지지 않고 같은 문제를 향해 있다. 철도 본래의 공공적 기능의 회복,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에서의 필수적인 이동권과 좀 더 나은 생활 조건의 회복이다. 양극화를 낳는 극단적 시장 논리, 그 논리를 점점 빼닮아가는 중앙 정치. 두 폭주 기관차를 막기 위해서라도 공공 철도라는 바람은 계속, 그리고 함께 가져봄직 하다.
ⓒ프레시안(최형락) |
<철도의 눈물>의 내용은 철도 민영화를 저지하기 위한 논거들이다. 한국 철도와 관련한 역사는 주로 식민지 시기에서 이야기되지만, 책을 읽다보면 빈약한 사회간접자본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민간 자본을 유치하려 했던 1997년 외환위기 전후의 최근의 현대사도 읽힌다. 용산역으로 돌아가는 KTX 산천에서 박흥수 연구위원과 민영화 문제에 대해 못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편 '대륙 철도'라는 그의 원대한 꿈도 들어 봤다. ☞사회 전 방위적으로 민영화가 추진된 배경이 궁금하다면 : "MB정권 5년, 철도 민영화 대재앙의 역사"
-한국 철도의 '상하 분리 정책'부터 이야기해 보자. 상하 분리란 철도 시설과 운영을 분리하는 구조를 말하는데 한국은 2004년 국토부의 철도 구조 개혁에 따라 시설 부분은 한국 철도시설공단이, 운영 부분은 한국 철도공사가 책임지게 됐다. 상하 분리가 왜 문제인가? "철도 산업은 운영이 시작되기도 전에 천문학적인 건설비가 들어가고 유지비용도 만만찮다. 때문에 '국가가 건설을 책임져 운영 기관의 부담을 줄여 줌으로써 철도공사가 만성 적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애초 국토부가 내세운 논리였다. 그러나 실상은 세계 최고의 선로 사용료를 운영 부분에 전가하면서 과도한 부담을 주고 있다. 결국 이런 현실은 운영 기관이 마치 부실 경영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민영화를 통한 효율화가 대안인 것처럼 선전하게 해 준다. 상하 분리 이후 지어진 역 시설을 보면 타는 사람은 적은데 과도하게 크고 화려한 게 많다. 대표적인 게 경의선의 곡산역이다. 바로 앞에 열병합발전소가 있고, 향후 주거 단지 생길 계획도 없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시설과 운영을 분리했기 때문에 정확한 수요 예측, 미래 전망 없이 시설을 크게 짓는다는 거다. 또 시설공단이 선로 변환기 자재를 잘못 써서 시속 300킬로미터로 달려야 하는 KTX가 170킬로미터로밖에 달리지 못하는 구간도 있다. 막대한 건설비용에 따른 부담이나 이용 불편이 야기하는 문제들은 고스란히 운영 부분에 전가된다. 건설사야 큰 건설사업 맡으니 나쁠 게 없고, 건설공사는 하청에 재하청 구조이다 보니 책임을 서로 미루는 경우도 많다. 한국의 고질적인 토건업 문제가 켜켜이 쌓여 있는 셈이다. 상하 분리 문제는 철도 사고와도 연결된다. 대표적인 게 가좌역 사고였다. 경의선 공덕역까지 노선을 연결하는 공사였는데 지반이 침하되면서 선로가 너덜너덜해졌다. 사고가 나기 전에 여객 열차가 지나갔는데, 지나갈 때 사고가 일어났으면 대참사가 벌어졌을 거다. 그런데 이런 사고는 바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어떤 조짐을 보인다. 그걸 제일 잘 아는 게 공사 인부나 기관사들이다. 만약 시설과 운영이 같은 조직에서 이루어진다면 바로 무전을 칠 텐데, 회사가 다르니까 문제가 생기면 공문을 보내야 하고 오랜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그러다 사고가 일어나면 책임은 공중에 뜬다." -수서발 KTX 문제의 핵심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한국 철도가 기로에 서 있다고 본다. 철도공사를 건강한 공기업으로 만들어 시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안전한 철도로 나아가느냐, 분할된 채 경쟁의 소용돌이로 들어가 이용객도 노동자도 고통당하는 노선으로 가느냐. 그 도화선이 바로 수서발 KTX다. 국토부는 자회사를 설립해 수서발 KTX 운영을 맡겨 모회사와 '경쟁' 시키려 하고 있다. 2012년 거센 반대에 부딪힌 민영화 안에서 '민간'만 지운 채 그대로다. 한국 철도 중 경인선과 경부선 KTX만 흑자다. 서울 강동·강남권, 구리·성남·판교 등에서는 수서발 KTX를 이용할 테니 독립된 자회사가 운영할 경우 철도공사의 수익률은 떨어질 거고 그만큼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앞서도 말했지만 경부선 KTX의 수익이 지방 적자 노선을 보조하는 시스템인데, 부실해진 만큼 적자 노선 운영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결국 철도 요금이 오르거나 비효율의 상징으로 전락해 폐지될 수밖에 없다. 자회사를 통한 경쟁 도입은 국토부가 그동안 민간 경쟁 체제 도입을 주장하면서 비판한 비효율적인 공기업을 하나 더 만들겠다는 얘기다. 추진 과정과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은 중복 투자에 따른 예산 낭비, 기관 간의 갈등과 책임 떠넘기기 등 무엇 하나 이로울 게 없는 구조다. 그리고 자회사와 모회사가 같은 상품으로 경쟁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봐도 드물다. 게다가 일본의 신칸센이나 프랑스의 테제베처럼 고속철도는 그 나라 철도의 대표 상품, 얼굴 아닌가. 그걸 분리해서 경쟁시킨다니…." -"코레일 경영 부실 심각, 7년 연속 1조 원대 적자." 2013년 초 국토부가 배포한 보도 자료의 내용이다. 철도공사 적자의 규모와 진짜 원인을 뭐라고 생각하는가. "먼저 정부가 즐겨 쓰는 수사를 꼬집어 봐야 한다. 국토부가 낸 2011년 코레일 경영성적 보고서를 보면 '실질 적자액'이 8303억 원이라고 나온다. 이는 법적으로 보장된 철도의 공익 서비스 제공 의무(PSO) 보상비를 제외시키지 않은 액수로, 이것을 제하면 약 3000억 원 가까이 줄어든다. 세계 어디서나 정부가 의무적으로 지출하고 있는 PSO 보상비용까지 적자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게다가 정부가 강조하는 것처럼 비교적 최근의 일만도 아니다. 1970~80년대 기사에도 철도 재정 적자 문제 기사가 나온다. 이렇게 오랫동안 경영 부실이라면 철도를 일관되게 관리한 정부 정책이 먼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또한 적자의 상당 부분은 정책 잘못으로 이루어졌다. 민영화를 통해 철도 교통의 새 시대를 열겠다고 장담했던 인천공항 철도의 부실이 심각해지자 철도공사에 슬그머니 떠넘긴 것이 대표적이다. 애초에 과도한 건설비만 안 들였어도 발생하지 않았을 적자도 많다. 적자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며, 그 근본적 원인은 사실 철도 산업의 특성에 있다. 전 세계 모든 철도 운영기업이 그러하듯이 철도 운영 수익으로만 적자를 상쇄하기는 힘들다. 예를 들어 화물열차의 경우 영업계수가 210%쯤 된다. 1000원을 벌기 위해 2100원을 쓴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철도에서는 수익 외에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가치가 있다. 화물철도의 경우 수출업체의 물류비용을 적정선에서 유지시켜주기 때문에 국제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지킬 수 있게 해주고, 같은 화물을 도로로 이동시킬 때 발생하는 교통 혼잡 비용·환경오염 비용 등 사회적 비용을 절감시킨다. 2006년에 발표된 정부의 '2005년도 에너지 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에너지 효율성 측면에서도 철도는 승용차의 18배, 버스의 3.9배, 화물 트럭의 8.8배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운영 수익 외에 발생하는 철도의 사회경제적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해서 선로 사용료를 깎아주거나 보조금을 지급한다. 한국에서도 그런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새마을호·무궁화호가 평균 수익에 21배에 달하는 사회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철도공사의 운영 성적표를 수익금으로만 볼 게 아니라, 공공 인프라가 맡는 사회 전체적인 네트워크 역할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거다. 이처럼 철도공사 적자의 요체는 적극적 적자,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적자이기 때문에 '비효율'의 적자로 잘못 본다면 진단법이 아예 틀리게 된다. 참고로 1987년 일찍이 국유철도를 7개 회사로 분리 민영화한 일본 철도의 경우, 민영화되어서 효율성이 증대되었다고 하지만 전후관계가 다르다. 효율화되었기 때문에 민영화시킨 것이다. 1987년 국철 개혁 당시 일본 정부는 국철의 누적 부채 37조 엔 중 31조 엔을 정부에서 인수하고, 경영 안전 기금 명목으로 보조금을 지급했다. 31조 엔이면 약 310조 원인데, 2011년 한국의 국가 총예산이 309조 원임을 생각하면 엄청난 액수를 국가가 감당했던 것이다." -철저하게 승객 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코레일에 아쉬움을 느낀다. 열차가 늦는다거나 철도가 불편하다는 인식이 있는 듯하다. 철도에 대해 함께 고민하자는 차원에서, 이들에게 뭐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먼저 한국 철도의 정시 도착율은 사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항의하는데, 한국 사회의 조급증과 정시에 대한 강박 아닐까 싶다. 또 철도에 유독 심하다. 비행기는 몇 시간 늦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나. 그리고 사고가 일어날 소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완벽한 정시 도착을 못 하는 게 맞다. 또 반대로 정시에 맞춰야 한다는 강박이 결국 사고를 만든다. 2005년 JR 서일본 후쿠치야마 선에서 열차가 탈선해 107명이 사망하는 큰 사고가 났는데, 도착이 늦으면 징벌적인 처치를 취할 정도로 회사의 압박이 엄청났기 때문에 기관사가 가속을 하다 곡선 구간에서 속도를 못 줄였다. 일본 철도는 칼 같이 도착하기로 유명한데, 옛날에 <뉴욕타임스>가 문제시한 것처럼 그게 과연 정상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원칙은 정시 도착이다. 기관사들도 시간을 맞추기 위해 속도위반을 하지 않는 선에서 엄청나게 노력한다. 그런데 어떤 일이든 생길 수 있다는 거다. 한 번은 조치원역에서 유치원생 수십 명이 견학을 위해 열차를 타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전부 타기까지 한 4분이 걸렸다. 그런데 출발이 늦는다고 관제실에서 전화가 왔다. 이런 어쩔 수 없는 일까지도 '네 사정이다' 하는 문화가 안타깝다. 그리고 철도 서비스 문제, 진정한 열차 서비스란 열차 안이 아니라 열차 밖에서 이루어지는 거라고 본다. 언제든 필요할 때 좌석을 쉽게 구할 수 있고 편히 앉아서 갈 수 있도록 넉넉한 좌석을 확보하는 것이 철도 서비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 핵심을 놓아두고 승무원한테 과도한 감정 노동만 시키고 있다. 제발 '배꼽인사' 같은 과도한 서비스는 그만두고 노동자로서 당당하게 근무하고 불평에는 정중하게 대처했으면 좋겠다. "고객은 왕이다"라고 하는데, "고객은 친구"로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한국 철도 요금은 주요 국가 운임 수준과 비교했을 때 싼 편이다. 적정하다고 보는가. "서울 부산 간 KTX 요금을 도쿄 오사카 간 신칸센 요금과 비교해 보면 터무니없이 싸다. 그런데 정말로 이용객 편의를 위해 싼 것일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갸웃거려진다. 한국의 교통 요금은 고스란히 이용 시민들이 부담하는 시스템이다. 더구나 지하철과 철도의 적자도 시민들 세금으로 보전하고 있는 셈이니 결국 시민들은 세금과 요금으로 공공 교통 체제를 각자 구입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 철도는 그렇게 비싼데 왜 저항이 없을까? 사회적으로 요금이 면제되거나 지원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정규직은 물론 편의점 아르바이트만 해도 임금 외에 집에서 일터까지의 교통비를 반드시 지급받는다. 집이 먼 경우엔 아르바이트비보다 교통비를 더 받기도 한다. 또한 독일의 경우 대학생은 무료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다양한 할인 혜택이 있다. 즉 기본적으로는 비싸지만 개인의 사회적 조건이나 노동에 따라 공적·기업 차원의 보조, 정기권이나 할인 혜택 등 교통비 부담을 적게 하는 시스템이다. 한국은 반대로 각자의 조건이 어떠하건 에누리 없이 개인에게 물린다. 책에 이 상황이 한국의 60~80년대 저곡가 정책과 비슷하다고 썼다. 수출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저임금 정책을 유지했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저곡가 정책을 펼쳤다. 저임금 유지하면서도 쌀은 먹여야 했고, 쌀값은 올릴 수 없으니 그 희생을 농민들에게 전가했던 것이다. 현재 한국의 낮은 공공 교통 요금도 마찬가지로, 교통 요금의 모든 부분을 온전히 시민이 부담하는 구조가 되다 보니 원가 수준으로 높일 수 없는 상황이란 점에서 비슷하다. 공공 서비스 수준을 높이려면 이용 요금을 높여야 하고, 요금을 높여도 저항이 없으려면 임금이 올라야 한다. 그러면 기업이 난색을 표하고, 정부가 못 올리게 한다. 공공의 부재라는 악순환으로 빠져 든다." -코레일이 용산 개발 사업에 뛰어들게 된 배경을 설명한 글도 인상 깊었다. 부대사업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라는 끊임없는 정부의 압박이 있었고, 부동산 호황의 환상에 몰려든 투자자들과 한 배를 탔던 셈이다. 일본의 경우 철도 운영 회사가 부대사업에 뛰어들어 큰 수익을 올리는데, 한국에서 어려운 것은 무엇 때문인가. "JR 동일본의 경우 부대사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전체 영업 이익의 28%고 코레일은 0.1%다. 그런데 일본 철도의 사례를 들며 한국 철도도 부대사업을 통한 수익 창출로 경영 개선을 시도하라는 것은 모래밭에 있는 달리기 선수에게 최신 운동화를 사줬으니 신기록을 세우라는 것과 다름없다. 서울역 하루 유동 인구 40만은 신주쿠 역 300만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또한 일본의 역 상권에 사람이 몰리는 것은 그간 철도역 중심으로 도시 생활이 이루어진 오랜 역사 속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서울역의 경우, 주변 환경이 서울역과 커다란 연계성이 없다. 기차를 이용하기 위해 오는 거지 일부러 식당가나 쇼핑센터를 이용하려고 오지는 않는다. JR 동일본의 사업 영역을 보면 여행업, 창고업, 도서·잡지 출판업부터 청량음료·주류의 제조 및 수산물의 가공 판매업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이런 조건에서 부대사업 비중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수익을 창출하라는 압박이 계속된다면 용산 개발 사태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철도 애호 문화가 존재하고, '철덕'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많다. 국내의 철도 애호가들의 '덕력' 증진이 향후 많은 시민들이 철도나 철도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데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긍정적으로 본다. 일본의 '철덕' 문화야 워낙 유명하지만, 한국 철덕들의 내공도 상당하다. 꼭 그런 깊은 관심이나 오타쿠 문화가 아니더라도 철도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거기서 나아가 철도의 중요성, 철도의 역할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철도 문화 역시 그 나라 철도 역량과 비슷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일본에는 철도 문학, 철도와 관련된 인문서 등 향유할 수 있는 문화도 풍부한데 한국에는 철도 코너에 가면 수험서 아니면 내용이 빈약한 책들뿐이다. 철도 전문가들도 철도에 대해 인문사회학적 마인드로 접근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열차가 더 많이 운행되고 철도가 더 많이 노출되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철도를 보고 자라야 자료를 더 찾아보고 싶다든가 기관사가 되고 싶다든가 하는 생각이 들 것 아닌가. 한국에선 특정 지역에 가야만 볼 수 있는데, 일본에선 어딜 가나 철도를 볼 수 있다. 우에노 역 밑 그 시끄러운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우동 팔고 있고. (웃음)" -세계의 수많은 철도를 타 보거나 견학했는데, 꼭 가거나 타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노선이나 열차가 있다면 무엇인가. "다 좋았다. 열차를 타면 객실 문에 달린 잠금장치부터 화장실, 조명까지 다 체크한다. 그런 걸 보다 보면 다 독특한 개성이 있고 재미있어서… 어느 열차나 노선 하나를 고르기 어렵다." -철도는 기본적으로 20세기적 매체라는 생각이 드는데, 21세기 미래 철도의 문화적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 "철도는 그 시대의 최신 기술이 전부 집약된 최첨단인데, 대부분이 아날로그로 느낀다는 점이 재미있다. (웃음) 그런데 그건 철도가 기본적으로 공동체의 감수성을 갖고 있어서가 아닐까. 나 혼자 타는 게 아니라 다 같이 탄다. 또 말한 대로 20세기 격동의 이주의 역사, 전쟁, 식민 경험, 가난 등을 함께 겪었기 때문에 친구 같은 느낌도 있다. 19세기 말 최초의 철도가 놓였을 때 사람들은 괴물로 여겼지만, 자본주의의 융성과 함께 물감이 물에 퍼지듯이 삶에 스며들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전쟁의 형태, 사람의 사고 체계, 철학과 예술, 시공간 감각, 상식까지 철도와 함께 바뀌었다. 우리나라에도 침목마다 일제의 수탈, 전쟁의 경험, 산업화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아픈 역사가 있지만, 그 모든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총체인 만큼 최첨단인 한편 문화유산인 매력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마지막 질문. 철도와 관련한 개인적 꿈과 공적으로 성취하고 싶은 것을 말해 달라. "일단 내가 꾸는 꿈은 서울역의 행선지를 알리는 전광판에서 모스크바, 베를린, 파리를 보는 것이다. 그거 말고 사적인 욕심이 있다면 한국 철도뿐 아니라 더 많은 외국 철도와 그 변화를 취재해서 한국 철도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 본받거나 피해야 될 것을 알리고 싶다. 공적으로는… 그냥 열심히 기관사 하면서 살고 싶다." "나는 가끔 대륙 횡단 티켓을 끊는 상상을 한다. 아침에 서울에서 출발해 평양까지 가서 시원한 평양 물냉면으로 점심을 먹는다. 평양역에서 북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창밖을 보며 대동강 맥주를 마신다. (…) 베이징에서는 몽골로 향하는 열차를 타고 몽골 대륙을 횡단해 러시아의 이르쿠츠크 역으로 가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 갈아탄다. (…) 모스크바에서 베를린으로 갈지, 파리로 갈지, 벨기에를 지나 런던으로 갈지 고민하면서 붉은 광장을 걷는다. (…) 막연한 꿈이 아니다. 70년 전만 해도 한반도를 가로질러 만주를 넘어 베이징, 그리고 베를린으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던 곳이 바로 서울역이다." (<철도의 눈물> 3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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