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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금정구' 남자, 부산의 기막힌 매력에 일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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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금정구' 남자, 부산의 기막힌 매력에 일 내다!

[프레시안 books] 유승훈의 <부산은 넓다>

십 몇 년 전이었던가. 어느 월간지의 부산 여행 기사 취재에 동행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부산에 살고 있었고 기자가 내려와 취재하는 형식이었다. 운전을 하던 도중 기자가 나에게 부산을 한 마디로 정의해 보라는 질문을 했다. 나는 '아름다운 혼돈'이라는 조금 낯간지러운 표현을 한 것 같다. 마침 그때 한창 지하철 2호선 공사 중이던 도로 위를 지나고 있었고 눈앞에 질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도열해 있는 산 중턱의 아파트들을 놓아두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산은 넓다>(유승훈 지음, 글항아리 펴냄)의 표지는 바로 그 혼돈스러운 부산의 모습을 부감으로 잡고 있다. 아마도 민락동으로부터 수영천 근교, 센텀 시티, 마린 시티에 가려진 해운대, 저 멀리 신시가지와 달맞이 고개까지를 담고 있다. 지극히도 부산의 일부이며 현재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가장 유명한 부산의 관광지이기도 하다. 간선 도로를 제외하고는 긴 직선 도로가 그렇게 많지 않고 도로율 자체가 낮으며 단독 주택과 빌라, 그리고 고층 아파트가 아주 무질서하게 자리 잡고 있는 풍경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유원지와 주택가가 공존하고 있으며 낮지만 분명히 산처럼 보이는 구릉들이 군데군데 박혀 있는 모습이다.

▲ <부산은 넓다> 표지 사진. (촬영 김춘호) ⓒ글항아리

이런 어지러운 풍경이 글자 그대로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부산의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다. 어떤 동네에 어떤 것들이 숨겨져 있을지 모르는 의외성. 21세기 최첨단 건축술로 빛나는 건물들과 20세기 저 개발의 기억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곳. 그런 부산의 의외성 강한 매력을 부산의 역사 속에서 찾고 있는 책이다. 책의 제목은 '부산은 넓다'지만 책의 내용은 부산의 '깊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국민'학교 때였던가, 서울에서 친척들이 놀러 왔다. 고속터미널로 마중을 나가 해운대의 우리 집까지 버스로 데리고 오고 있었는데, 모두들 창 밖 풍경을 보며 신기해하던 것이 있었다. 바로 거리를 메운 '컨테이너'의 물결이다. 서울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컨테이너를 뒤에 달고 있는 소위 '츄레라'들이 도시를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동서를 관통하는 컨테이너 전용 도로가 만들어지기 이전이라 도심 한복판에서도 그 거대한 덩치의 차량들이 다니는 것은 다반사였다. 그 육중해 보이는 쇳덩이들이 거리를 질주하는 모습을 보고 서울의 친척들은 부산을 대단히 역동적인 도시로 생각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부산을 상징하는 단어는 '다이내믹(Dynamic)' 이다. '다이내믹 부산'이라는 말은 로고타입으로도 만들어져 부산을 상징하는 브랜드적 어휘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게 컨테이너가 많이 다닐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부산이 대한민국 최대의 항구 도시이기 때문인데, 부산이 그렇게도 '다이내믹' 해질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바로 막부 시대에서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일본 열도인들의 대륙 진출에 대한 욕망이 작용하고 있었음을 이 책 <부산은 넓다>는 또렷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 치욕의 역사 속에서 '개항'한 부산의 항구는 기구하고 박복한 역사적 사건들도 담아내고 있음을 '부산은 넓다'는 역설하고 있기도 하다. 주로 이 가난한 나라를 벗어나 해외에서 살 길을 찾아보겠다고 생각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일제 강점기, "막노동꾼이 되기 위해서 관부 연락선을 탄 조선인"들의 이야기로부터 1960년대 지구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브라질로 이민을 떠나 어이없게도 '난민'이 되고 말았던 이민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처량한 역사의 이야기들이 딱딱하고 엄숙하게 그려져 있지 않고 오래된 '유행가'의 흥취들과 어울려 제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유명한 부산을 상징하는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물론이고 유인수의 '브라질로 가는 이민선'이나 백야성의 '잘 있거라 부산항' 등의 노래들이 어떤 사연을 담고 있는지를 설명하며 자연스럽게 부산항의 역사를 풀어내는 식이다.

▲ <부산은 넓다>(유승훈 지음, 글항아리 펴냄). ⓒ글항아리
이쯤에서 이 흥미로운 책을 써 낸 사람을 살펴보자면 부산 박물관에서 전시 기획을 하는 학예연구사 유승훈이다. 40대 초반인 저자는 낮에는 학예연구사로, 밤에는 민속학자로 변신해 부산의 풍물들을 향유하고 또 연구하며 책을 쓰는, 한마디로 '바쁜' 사람이다. <부산은 넓다>는 그가 부산에 대해 낸 여섯 번째 책이다. 이 다작을 하는 연구자는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도 풍속적이다.

고등학교 때였나, 친구들과 함께 서울 여행을 하다 당시의 '핫 플레이스'였던 '이대 앞'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당시 부산에도 '부대 앞'이라는 찬란한 동네가 있었기에 그렇게 주눅 들지 않았고, '부산에서 온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분명히 우리가 대화를 하기만 하면 모든 시선이 우리에게 주목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우리가 거리에서 대화를 시작하니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기는커녕 외면하고 바쁜 걸음만 재촉할 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대화를 하는 것을 보고 '싸우는 줄' 알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서울 친구들은 부산 사람들이 대화하는 것이 마치 싸우는 것처럼 들린다고 한다.

그것은 일본인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유승훈은 다시로 가즈이의 <왜관>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구절을 통해 부산 사람들의 특이해 보이는 기질을 설명한다. "조선에서는 독한 술을 많이 마시는데, 그 이유는 육식을 하기 때문에 위장이 튼튼해서이고 그 때문인지 남자든 여자든 목청이 높아 보통 대화할 때도 싸우는 것처럼 들린다"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들을 자신의 후쿠오카 시 공무원들과의 회식 자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술하고 있다. 외부인들의 현지인들에 대한 인식을 재구성하고 또 그 풍속 내에서 다시 한 번 바라보며 작성한 원고들은 더욱 강한 현장감과 함께 읽는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부산은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피난민들의 거처였으며 임시 수도이기도 했다. 특히 전쟁터에서 총을 잡지 않았고 그럴 능력도 없이 병약했던 '예술가'들이 옹기종기 모여든 곳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런 예술가들의 자취를 부산의 유명했던 '다방'들에서 찾고 있다. 김동리의 소설 <밀다원 시대>의 배경이었던 밀다원 다방을 비롯해 금강 다방, 뉴서울 다방, 르네쌍스 다방 등 당시 유명했던 다방의 풍경들을 조망하고 엄혹한 전쟁의 와중에 철없이도 "글이나 긁적이고 있어야 했던" 당시 문인들의 절망과 피폐함을 담아내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다방들이 어떻게 몰락했는지, 어떤 슬픈 사건들이 있었는지를 또한 펼쳐 보인다.

부산을 상징하는 여러 장소들 중 '영도 다리'를 빼놓을 수 없다. 영도 다리는 최초의 '도개교'로 유명한데, 사실 나는 영도 다리가 '들리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도개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부산의 급격한 도시화를 상징하는 물체인 동시에 부산 사람들의 애환이 담겨 있는 곳이 바로 영도 다리다. <부산은 넓다>는 바로 그런 도시화의 뒷면에 담겨 있는 슬픔과 한을 '영도 다리에서 자살한 사람들' 혹은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찾고 있다. 그들이 영도 다리에서 몸을 던져야만 했던 이유들, 그리고 자살자가 늘어나자 어떤 방식으로 대처했는가 등의 이야기들이다.

▲ "일제 강점기 상판을 도개하고 있는 영도 다리 광경. 당시는 영도 다리를 부산대교라 불렀다. 다리의 상판 일부를 추켜올리는 웅장한 도개의 모습은 일제의 과학 기술과 부산의 근대화를 상징했다." (본문 204쪽 캡션) ⓒ글항아리

<부산은 넓다>는 스토리텔링을 직업으로 한 이들에게 매우 큰 영감을 주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 스스로 자신이 영화광임을 밝히고 있는 만큼, 이 책에는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소재들로 가득하다.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며 이 책이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이기적인 소망을 가졌을 정도다. '아이템'을 찾고 있는 이들이라면 꼭 살펴봐야 할 책이다.

부산이 고향인 나도 전혀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부터 어린 시절 얼핏 기억나는 부분들이라든가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던 에피소드들까지 담겨있는 이 책의 반전은 저자인 유승훈이 놀랍게도 부산 사람이 아니라 서울 사람이라는 점이다. 10년 전에 부산에 와서 부산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부산 사람인 나도 몰랐던 '원조 밀면집'이 어딘지를 알 정도로 '토박이'가 된 셈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완벽한 부산 사람이 됐는지를 '오자'로 드러냈다는 것이다. 저자는 본문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을 "서울 금정구 시흥동"이라고 잘못 표기했다. 아시다시피 서울의 시흥동은 '금천구'다. '금정구'는 부산의 지명이다. 이건 부산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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