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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갔지만 그 꽃 또 보지 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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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갔지만 그 꽃 또 보지 못했네!

[꽃산행 꽃글·끝] 제주도 가는 길 ②

#1 오후 탐사의 주제는 서귀포 근처의 상록수림을 관찰하는 것이다. 고개를 젖힌 채 공중으로 높이 뻗은 훤칠한 나무들을 보았다. 너무 높이 올라간 잎들과 열매는 육안으로 잘 동정이 되질 않아서 주위에 떨어진 작은 단서를 찾기도 했다. 이미 반쯤 썩기 시작한 잎과 열매를 근거로 여러 나무를 구별하였다.

#2 울창한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햇살. 동물들은 먹이가 서로 다 다르다. 호랑이는 풀을 먹지 않고 소는 풀만 먹는다. 종이 다르면 좋아하는 먹이도 다른 법이다. 아프리카의 어느 큰 나무에는 수십 종의 개미가 어울려 산다고 한다. 그 좁은 공간에 그렇게 살 수 있는 건 먹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먹이를 두고 경쟁하는 관계라면 그 공간에 이웃해서 살 수가 없을 것이다.

이에 비해서 식물은 먹이가 다 똑 같다. 흙속의 양분이야 조금씩 다르겠지만 물과 햇빛은 서로 기를 쓰고 차지해야 하는 공통의 먹이가 아닐 수 없다. 흔히들 이동할 수 없는 식물들이 제자리에 온순히 서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식물들이 살아가는 조건을 두고 벌이는 치열한 경쟁은 동물들이 감히 대거리할 형편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어느 바위 끝에 자라는 소나무. 나의 눈에는 아슬아슬한 바위 끝과 우뚝한 소나무가 어울려 참 좋은 경치일 수가 있겠다. 소나무에게도 그럴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그늘에 약한 소나무는 햇빛을 찾아 저 낭떠러지까지 쫓겨 올라간 것이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3 우리가 가는 길을 따라 작은 개울도 따라 흘렀다. 가문 탓인지 물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 언젠가 한라산이 폭발하여 흘러내린 용암. 이제는 차갑게 식은 돌덩어리들로 변한 현무암이 개울에 마구 뒹굴고 있었다. 개울에 물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 하늘에서 비가 덜 온 탓도 있지만 내리자마자 땅으로 물이 쑥쑥 빠지는 지형 탓도 있을 것이다. 그 척박한 바위틈에 중대가리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 중대가리나무. ⓒ이굴기

#4 후박나무 아래인가. 참가시나무 혹은 후피향나무 아래인가. 작고 여린 나무를 보았다. 큰 나무들 사이로 흘러내리는 햇빛을 겨우겨우 주워 먹는 중인 듯 했다. 씨앗이 터를 잡고 썩었다가 땅을 뚫고 새싹이 올라와 이제 겨우 한두 해를 지난 식물. 인간의 자식으로 치면 배로 바닥을 밀고 뒤집기를 하는 중이라 치면 될 것 같았다. 기이한 잎들이 특이했다. 교수님의 설명이 뒤따랐다.

"참나무 종류인 것 같은데 너무 어려서 졸참, 갈참, 상수리. 아직 구별이 안 되는군요. 이 잎은 아마도 짐승의 혀나 사람들의 등산화에 한번 짓밟혔던 것 같습니다. 호되게 당하고 난 뒤 저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이리 날을 세우는 것이지요. 아마 나중 자라 인간의 키가 닿지 않는 곳에 도달하면 저 거치가 아주 부드러워질 겁니다."

"……!" 나는 탄복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 나뭇잎의 거치가 독특한 어린 나무. ⓒ이굴기

#5 이번 탐사에서 꼭 만나고 싶은 나무가 있었다. 언젠가 대마도 탐사 갔을 때 만난 빌레나무였다. 나는 '꽃산행꽃글'(2013년 4월 19일)에 이렇게 적은 바가 있었다.

"(…) 그 나무는 빌레나무이다. 이 나무는 국내에서는 2003년 제주도의 곶자왈 지대에서 최초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부엽층 형성이 양호한 곶자왈 내 함몰된 지형에서 무리지어 자란다고 한다(<한국의 나무>(김진석·김태영 지음, 돌베개 펴냄)).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만 사는 셈이다. 섣부른 판단이긴 하지만 빌레나무는 대마도에서 아주 귀한 식물은 아닌 듯 했다. 시다라케 산의 중간 지대에 여러 그루가 있었다. 나는 아직 제주도, 즉 우리나라의 빌레나무를 본 적은 없다. 언젠가 곶자왈에 가서 빌레나무를 볼 것이다. 그때엔 이제야 간신히 우리나라에 한 발을 걸친 빌레나무를 더욱 기특하게 오래 바라볼 것 같다."

그 '언젠가'가 바로 오늘이었다. 지도하는 교수님께 특별한 부탁을 하였더니 명이동 곶자왈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곳은 사유지라서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골프장 건설 예정지라고 했다. 저 속에 한 그루가 있다고 했다. 갈려면 눈도 피해야 하고 길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 했다. 일행들을 그 속으로 이끌 수는 없었다. 그냥 멀리서 안부를 전하며 아쉬움을 달래고 말았다. 대신 "제주도에서 현재까지 9개체만 발견되었다"(<한국의 나무>(김진석·김태영 지음, 돌베개 펴냄)는 아주 희귀한 무주나무를 본 것으로 만족했다.

▲ 무주나무. ⓒ이굴기

#6 제주도에 간다고 제주도에 자생하는 식물들을 다 볼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계절이 맞아야 하고 그리고 또한 그들을 대접하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제주에 머무는 동안 한라산, 곶자왈, 1100고지의 고산습지, 산방산, 해안도로, 바르메 오름, 한라수목원 등의 곳곳을 헤매고 다녔다. 한라산은 영실에서 윗세오름으로 올랐다. 백록담까지는 통제구간이라 오르지 못하고 어리목으로 내려왔다.

한라산에는 오로지 한라산에서만 특히 고산지대에 자라는 야생화가 많다. 그중 하나를 찾아 윗세오름에서부터 눈을 계속 두리번거렸다. 시로미, 구름떡쑥, 한라고들빼기, 돌갈매나무, 섬노린재나무, 바늘엉겅퀴, 가시엉겅퀴, 섬매발톱나무, 한라부추 등등을 관찰한 뒤였다. 이번 탐사를 진행하는 생물다양성센터의 소장님에 의하면 몇 해 전에만 하더라도 그런대로 쉽게 볼 수 있었다고 했다. 한라산을 힘들 게 오를 때 가장 인상에 남는 꽃이라고도 했다.

손가락만한 키로, 척박한 환경의 압력을 견디면서, 지구 온난화의 영향 아래 겨우 살아가는 꽃. 기후 탓도 있지만 등산로를 뒤덮은 데크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년생이라서 겨울이 오면 그만 뿌리까지 다 말라죽고 마는 그것의 이름은 한번 들으매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이름으로 여러 해를 사는 그 야생화는 깔끔좁쌀풀!

#7 우리들 대부분은 옷을 갈아입으며 여러 해 산다. 내가 제주도에 온 것도 여러 번이었다. 구절양장은 아니었지만 서귀포에서 관찰을 끝내고 제주시로 넘어갈 때 제법 휘몰이가 있었다.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곳을 지나갈 때 문득 이런 생각 하나가 두서없이 드는 것이었다.

하늘에서는 비행기가 날아가고 바다에서는 파도를 이기며 배가 항행한다. 먼 나라의 소식까지 전해주는 얄팍한 신문지는 계속 발행된다. 장면 전환이 무척 빠른 컴퓨터에 몰두하기도 하지만 잠을 설치며 클라이맥스로 달리는 소설 독자를 싣고 기차는 종점으로 달린다. 아래위로 그 어떤 너머로 팽팽 돌아가고 확확 확장되는 세계. 그런 게 우리들 세상이기는 하지만 그런 것만으로 이 세상이 이루어지는 건 아닐 것이다.

지금 당장 창밖으로 스쳐가는 가로수를 본다. 나무의 키를 따라 길을 떠받치며 훤칠하게 떠 있던 나뭇잎들. 이제는 낙하하여 낙엽 한 장으로 쪼그라들었다. 그 낙엽 한 장이 안간힘을 다해 들어 올리는 두께. 그 정밀한 두께들이 모인 공간에서 세상의 삶은 계속 진행되는 것!

#8 제주에 머무는 나흘 동안. 은근히 태풍에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비다운 비는 피할 수 있었다. 떠나기 하루 전날 한라수목원을 갔을 때 약간 흩뿌리는 비를 만났을 뿐이었다. 태풍 때문에 생각이 두서없이 뒤죽박죽이 되기도 하였다. 우리가 열심히 제주에서 꽃 공부를 하는 동안 태풍 피토는 방향을 틀어 중국으로 빠져나갔다고 했다.

피토라는 태풍은 남태평양 솔로몬제도 근방에 속하는 미크로네시아에서 정한 이름이었다. 제주를 빡세게 헤매고 다닌 우리의 처지를 고려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 이름 한번 참 근사한 태풍, 피토. 그 뜻은 '피토'라고 하는 꽃 이름이라고 한다.

#9 다시 서울에 돌아왔다. 먼산을 다녀오면 종아리에 군불이라도 땐 듯 며칠간 후끈하다. 나의 사무실은 인왕산 아래이다. 그제의 조금 늦은 출근길. 경복궁역에서 내려 친구가 터를 잡은 한옥에 잠깐 들렀다. 소설가 이상이 살았던 옛집의 바로 옆골목에 있다. 초인종이 있었지만 주먹으로 대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자 작은 마당이 보이고 툇마루가 나타났다. 주련이 달려있는 나무 기둥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햇볕이 따뜻했다. <날개>의 한 구절이 생각나는 풍경이다.

"아랫방은 그래도 해가 든다. 아침결에 책보 만한 해가 들었다가 오후에 손수건만 해지면서 나가 버린다."

햇빛은 입으로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내겐 그럴 능력이 없다. 하지만 순식간에 얼굴을 덮어씌운다. 노출된 피부로 금방 흡수가 된 듯 얼굴이 데데해지고 팔뚝으로 전달된 가슴이 훈훈해진다. 햇빛은 정말 보자기 같기도 하다. 어디 내 얼굴뿐이겠는가. 아침이면 나타나 이 세상을 몽땅 덮어씌우고 보쌈하듯 단단히 꾸려서 하룻만에 그 어디로 데려 가는 것 아니겠는가.

한옥의 마당에서 하늘을 보면 꼭 네모난 우물 같다. 내 육안으로는 작은 연못이지만 실은 어마어마한 깊이고 엄청난 넓이다. 저곳에서 내려온 물로 이 세상 만물이 자라고 저곳에서 공급하는 햇빛으로 세상을 작동시키는 에너지가 공급된다. 그 아득한 우물 속으로 인왕산과 한라산이 빠져들고 그간 만났던 나무와 풀의 뿌리가 길게 드리워진 것 같았다.

꽃도 나무도 동안거에 들어가는 시기, 매주 한 번씩 독자를 찾아갔던 '꽃산행꽃글'도 문을 닫습니다. 그 동안 열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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