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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과연 '공화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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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과연 '공화국'인가?

[서남 동아시아 통신] 대륙에서 생각하는 신해혁명과 '공화'

민국(民國)은 공화국의 중국어 번역이다. 공화국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간단하게 말한다면, 기본적으로 주권재민의 이념에 기초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 제도들, 곧 선거, 의회, 헌정(헌법 제정과 그것에 의한 통치) 등이 실현되는 국가 체제를 공화국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꼭 102년 전인 1911년 10월 10일 발발한 우창기의(武昌起義)를 시작으로 2000여 년 이상 유지되어 온 황제 체제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이라는 공화국 성립을 가져온 신해혁명은 바로 이 공화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 것이고 그런 점에서 공화 혁명이라고 부른다.

신해혁명은 그러나, 청조의 타도를 가져와 황제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공화 체제의 수립에는 실패함으로써 "좌절된 혁명", "미완의 공화 혁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혁명 이후 두어 달 동안 쑨원(孫文)을 중심으로 하는 임시 정부가 존재한 것에 이어 위안스카이(袁世凱)의 베이징 정부가 들어섰지만 선거와 국회, 헌정은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고 오히려 몇 차례의 황제제 부활 운동이 일어나면서 "민국의 실종"이라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의 (정치) 의식 혁명을 내세운 5·4 운동(1919년 전후)과 국민혁명(1924~1928년)을 거치면서 공화국은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고 일련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1928년 난징(南京)에 만들어진 국민 정부는 "민국" 시대를 여는 출발점이 되었다. 국민 정부를 이어 1949년 대륙을 차지하게 된 공산당 정권이 그 국호를 중화인민공화국이라고 한 것도, "인민' 두 글자를 덧보태 인민의 참여를 강조하기는 했어도 결국에는 민국(공화국)의 연장선상에 있는 정권임을 자인한 셈이니 신해혁명에서 시작된 "공화"는 현재도 추진 중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프레시안

지난 2011년은 신해혁명 100주년을 맞는 해였기에 대륙에서는 그 기념 열기로 넘쳐났다. 수많은 국가적 기념행사가 이어졌고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학술 대회가 연이어 개최되었다. 심지어 너무 많은 행사 때문에 진짜 "공화"가 살아날까봐 겁을 먹은 공산당이 상당수 행사들을 취소하도록 압력을 넣기 까지 했다는 후문도 있을 정도였다.

많은 학술 회의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던 회의는 2011년 쌍십절을 전후해서 중국의 관변 학술 단체인 중국사학회의 주최로 혁명의 첫 출발지인 우한(武漢)에서 열린 '신해 혁명과 100년 중국' 국제 학술 회의였다.

회의 이름이 말해주듯이 이 회의는 신해혁명을 이어받은 "공화국 중국"의 눈부신 발전을 기리는 입장에서 신해혁명의 의미를 되새기는 데에 목적을 둔 어느 정도 정치적 성격을 띤 학술 회의였다. 그런데 이 학술 회의에서 가장 눈에 띠는 대목은, 그간의 연구들에서 부정적인 평가의 대상이었던 청조의 개혁 운동인 이른바 신정(新政)에 대한 관심과 긍정적 평가들이 대대적으로 제기되었다는 점이었다. 신정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평가는, 그간 부패한 왕조의 실패한 개혁으로 묘사되어 오던, 그래서 혁명이 불가피했다는 근거로 지목되어 오던 신정에 대한 기왕의 평가를 뒤집는 것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혁명의 정당성을 크게 퇴색시키는 주장이 된다.

물론 청말 신정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개혁 개방 이후 꾸준히 진전되어온 "사상 해방"의 결과로서 역사 해석에서 다양성이 신장된 결과로 볼 수 있다. 특히 혁명과 반혁명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역사를 논단하던 이른바 "혁명사관"에 깊게 물들어 있었던 개혁 개방 이전 시대 역사학계의 상황을 고려할 경우 이러한 다양한 역사 해석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신해혁명이 추구하고자 했던 목표인 "공화"가 오늘날 대륙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는가라는, 보다 현실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신정과 청조에 대한 재평가라는 문제를 바라보자면 단지 반갑지만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비록 공산당의 일각에서 제기된 주장이긴 하지만, "유교적 민주주의"라는 해괴한 주장이 나오고 있는 중국의 정치적 상황에서 볼 때, 그리고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가 황제 체제의 유산으로 강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신정의 재평가는 호사스런 지식인들의 말잔치라는 생각마저 들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최근 대륙에서는 서구적 가치와 기준에서 벗어나서 중국적 가치와 기준(이른바 Chinese Standard)을 제시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최근 급속하게 이루어진 경제 성장과 함께 가지게 된 국가적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주장 속에는 그간 서구 중심의 가치 체계 속에서 일방적인 추종만을 강요당해 왔던 중국 사회, 중국 역사(넓게는 아시아 사회, 아시아 역사)의 주체성 회복이라는 중요한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나 그 중국적 가치 속에 민주주의(공화)라는 보편적 가치가 매몰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보면 그 자신감과 주체성 회복은 자신을 가두는 또 다른 벽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21세기에 느닷없는 유신의 망령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의 답답한 현실에서 볼 때 대륙의 "공화"가 겪고 있는 곤경 또한 남의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100주년을 넘긴 중국의 "공화"는 여전히 진행형이며 그 목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해 10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학술 대회에 참가하는 가운데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은, 내로라하는 저명 학자들이 아니라, 톈안먼 민주화 운동 이후 추방되어 국외를 떠돌면서 (신해혁명의 지도자 쑨원이 그랬다) 대륙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내 또래의 운동가였다.

그는 공산당의 추천으로만 각종 선거의 후보로 나설 수 있는 오늘날 중국의 정치적 현실을 말하면서 신해혁명이 이루었다는 "공화"가 과연 존재하기나 하는 것인지를 심각하게 묻고 있었다.

<프레시안>은 동아시아를 깊고 넓게 보는 시각으로 유명한 서남재단의 <서남포럼 뉴스레터>에 실린 칼럼 등을 매주 두 차례 동시 게재합니다. 배경한 신라대학교 교수의 이 글은 <서남포럼 뉴스레터> 198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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