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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는 죽지 않는다. 악녀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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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는 죽지 않는다. 악녀는 없기 때문이다.

[김용언의 '잠 도둑'] 비라 캐스퍼리의 <나의 로라>

"나는 지금까지 남자들과의 만남을 즐기며 즐겁고 재미있게 살았다. 하지만 까다로운 노처녀와 애 같은 어른들이 너무 많았다."

▲ <나의 로라>(비라 캐스퍼리 지음, 이은선 옮김, 엘릭시르 펴냄). ⓒ엘릭시르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가 쓸 법한 대사 같은가? 놀랍게도 이 구절은 1943년에 발표된 비라 캐스퍼리의 하드보일드 누아르 소설 <나의 로라>(이은선 옮김, 엘릭시르 펴냄)에 등장한다. 뉴욕 한복판 호화로운 맨션에서 시체로 발견된 미모의 커리어 우먼, 무뚝뚝하고 자부심 강한 형사, 인기만큼이나 허영심도 높은 문필가, 모든 여자의 우상이 될 법한 잘생긴 약혼자…까지 듣고 나면 <나의 로라>가 끈적거리는 도시의 치정극일 것 같지만, 소설의 1/3까지 넘어가고 나면 그런 생각을 대체 왜 했나 싶어질 것이다.

물론 <나의 로라> 첫 번째 챕터까지 읽을 땐 그런 선입견이 생길 만하다. 문장만큼이나 자신의 삶도 화려하게 수식하는 문필가 월도 라이데커는 레이스가 주렁주렁 달린 드레스 같은 감정을 과시하며 죽은 로라와의 추억과 그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마크 맥퍼슨을 묘사한다. 1920년대쯤에 유행했을 법한 호들갑스런 감정이 흘러넘치는 문장들은, 불쾌한 현실에 맞닥뜨릴 때마다 "<월도 라이데커의 삶과 생애>를 또 한 회분 근사하게 만들어 내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안하는 라이데커의 허영심에 부응하지 않는 맥퍼슨의 모습을 기묘하게 뒤튼다.

"(맥퍼슨은) 내가 수집한 유리와 사기그릇, 내 비더마이어 가구와 서재를 보고 불쾌해하면서도, 표면에 감도는 광택을 감상하는 경지에 이른 교양을 부러워한다."

뉴욕의 영웅 경찰인 맥퍼슨을 질투하면서도 그가 "고상한 척 하는 프롤레타리아"일 뿐이라며 끈질기게 깎아내리려는 라이데커의 심술궂은 위트는 이상하게 눈에 걸리적거린다. 내레이터라면 살인사건 뒤에 겸손하게 숨어 있던가, 아니면 적어도 읽는 사람의 호감을 유지할 정도로만 스스로를 내세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아함이 커지기 시작한다.

그 불편함의 이유는 다음 챕터에서 드러난다. 비라 캐스퍼리는 각 챕터마다 내레이터를 바꿔가며 서로가 지켜본 서로의 모습이 어떻게 불일치했고, 혹은 먼젓번 챕터의 내레이터가 어떤 이유로 그런 시선을 견지했는지를 영리하게 재배치하면서, 정교한 현악4중주처럼 이 소설을 본격적으로 연주하기 시작한다.

먼저 탐정 역의 맥퍼슨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모으고 있던 필립 말로나 샘 스페이드 같은 탐정과 미묘하게 차이점을 보인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들을 보면 필립 말로가 부패한 탐욕에 염증을 토로하는 멋들어진 독백이 길게 등장하는데, 필립 말로가 그런 대부자들을 상대할 때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걸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 역시 부에 몸을 담글 줄 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비라 캐스퍼리의 맥퍼슨은 노동계급 출신이 한 번도 맞닥뜨린 적 없던 뉴욕의 '상류층 힙스터들'을 바라볼 때 느끼는 기이한 괴리감을 차분하게 묘사한다. 스코틀랜드 출신, 뉴욕 브룩클린의 가난한 동네에서 자라나 경찰이 된 맥퍼슨은 "저는 남들처럼 정시에 퇴근하고 정시에 출근하는 노동자입니다. 제가 야근까지 해 가면서 이 삼류 사건에 매달릴 줄 알았다면 사람 잘못 보신 거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잘 나가는 카피라이터였으며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던 미모의 여인 로라가 살해된 이유를 알기 위해선 피해자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성격을 세심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점점 더 로라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는 콜로라도스프링스의 평범한 집안 출신, 엄청난 야망을 품고 뉴욕으로 건너와 자기 힘으로 성공을 거둔 똑똑한 여자 로라에게 매혹된다. 그는 데이트를 시작하자마자 응접세트부터 보여주며 미래의 가정을 꿈꾸는 여자들을 싫어했고, "로맨스라면 사족을 못 쓰는 여자들"을 경멸했다. 아끼는 책들로만 책장 하나를 가득 채울 수 있으며, 자기 힘으로 돈을 벌어 생활을 꾸려가는 여자라는 점 때문에 그는 (초상화 속 모습으로만 본) 로라에게 빠져든다.

▲ 비라 캐스퍼리의 소설 <나의 로라>를 스크린에 옮긴 오토 프레밍거의 1944년 영화 <로라>.

로라는 '남자 같은' 여자였다. 겉모습은 아름답고 가냘픈 소녀 같지만, "자기가 얼마나 똑똑한지 알고 있었고, 자신의 재능을 증명해 보일 수만 있다면 수백 번이라도 퇴짜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던 여자였다. 라이데커는 그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찬사를 바친 바 있다.

"응접실 세트도 필요 없었고, 결혼이 지상 최고의 과제도 아니었단 말입니다. 직업도 있겠다, 돈도 많이 벌겠다, 떠받들며 찬양하는 남자들도 넘쳐 나겠다. 결혼을 해 봐야 채워지는 곳은 한군데뿐인데, 그건 결혼하지 않아도 채울 수 있었으니까. (…) 그녀는 남자처럼 일하고 남자처럼 걱정을 했던 여자올시다. 뜨개질에 재능이 있었던 여자가 아니었어요."

한편 로라는 남자들의 '욕망의 모호한 대상'이다. 사랑에 빠진 남자는 로라를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적인 감정을 녹여 넣어 초상화 속에 로라를 박제하려 한다. 하지만 로라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을 둘러싼 그 이미지들의 휘황찬란함을 파괴해 버린다. 그것은 '팜파탈'이라는 하드보일드 누아르의 전형적인 공식에 의해서가 아니다.

"그녀가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모순투성이기 때문일 거요. 인생 자체가 모순투성이지. 변함없는 것은 오직 죽음뿐."

로라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또 그만큼 품위 있는 삶을 유지하고 그녀의 호의를 기대하며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응당 주어야 할 사랑과 우정을 베풀기 위해 그 돈을 다 써버렸다. 그녀는 사람들의 장식품이었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또한 그녀 자신의 위치를 위해 사람들을 이용했다. 그녀는 바흐의 정갈한 클래식만큼이나 베니 굿맨의 스윙을 사랑했고, 직장에선 똑 부러지게 일을 해냈지만,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기획서를 쓸 때만큼의 질서를 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모두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지만, 그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면 상류층의 예의범절을 미련 없이 내동댕이쳤다.

"화가 나서 좋았다. 증오할 수 있어서 기뻤다. 나는 복수를 위해 고함을 질렀다. 살기등등하게 덤볐다."

이 모든 묘사는, 팜파탈들이 그러하듯 뭔가 다른 목적을 위해 남자들을 유혹하고 파멸하기 위함이 아니다. 로라는 겉보기엔 완벽에 가까운 여자였지만, 언제나 자신이 불완전하다고 느끼면서 "덩치만 큰 어린애 아니면 나이 든 할망구" 같은 남자들에게 결정적인 순간 약해지며 기꺼이 모성애를 베풀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요즘 여자들'처럼 말이다.

▲ <리틀 시스터>(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북하우스 펴냄). ⓒ북하우스
자신이 "여자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산뜻한 가면으로 포장된" 잘생긴 '신사' 셸비를 결혼 상대로 선택했던 이유를 그녀는 뒤늦게나마 깨닫는다. "수익률 좋은 새로운 품종을 탄생시키기 위해 선택된" 채소 같은 것이었음을. 결국 로라는 남몰래 한탄했다. "우리가 얼마나 너그럽고 세련되고 우스꽝스럽고 한심했던가!" 그리하여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당신을 흠모해. 당신은 내 작품 속의 여주인공이 될 거야. 내가 만든 가장 위대한 작품이 될 거야"라고 유혹하는 남자의 목소리를 그녀는 용감하게 거절한다. 다시 말해 (남자의) 주인공이 되는 걸 포기한다. 대신 "한심하고 쓰잘머리 없는 일상을 유지하고, 습관을 내 스스로 조절"하는 쪽을 선택한다.

여성 작가가 하드보일드 누아르를 쓰면 이만큼 달라질 수 있는 걸까? 로라는 지금까지 하드보일드 남성 작가들이 그려낸, 남성 탐정의 냉정한 눈에 비친 아름답지만 공허하고 사악한 여자가 아니다. 비라 캐스퍼리는 선언한다. 그런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 이미지는 그 남자의 문제이며, 그중 아무도 여자 캐릭터의 내면을 들여다볼 용기가 없었다고. 비라 캐스퍼리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리틀 시스터>(박현주 옮김, 북하우스 펴냄)나 <호수의 여인>(박현주 옮김, 북하우스 펴냄) 같은 설정에서 출발해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

<나의 로라>에서 목소리를 부여받지 못한 유일한 인물, 즉 로라의 잘생긴 신사 약혼자 셸비가 "애로 셔츠 차림으로 패커드를 몰고, 체스터필드 담배를 피우면서 보험금을 내고 주식 투자를 하는 젊은 남자들" 중의 하나, 광고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얄팍한 이미지로 묘사되는 것이 좀 불공평하게 느껴지지만, 뭐 어떤가, 지금까지 너무 많은 하드보일드 소설 속에서 여자들이 바로 그렇게 다뤄졌지 않았던가.

"상처 입을 거야, 로라. 고통을 갈망하는 게 당신 천성이니까"라는 경고를 무시하는 "그녀의 여성스러움이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을 때, 남자들은 감히 로라에게 '팜파탈'이라는 용어를 붙일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파괴할 수 없는 존재"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애시당초 '팜파탈' 따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로라>는 로라의 성장소설이자 그녀가 성숙한 사랑을 배우는 연애소설이자 그녀가 희생자 혹은 팜파탈의 전형적인 위치에서 탈출하게 되는 범죄소설이다. 제인 오스틴이 20세기에 범죄소설을 썼다면 아마 <나의 로라> 같은 작품을 썼을 것이다. 엘리자베스가 위컴이 아니라 다아시를 선택하며 성숙해졌던 것처럼 말이다.

PS. 월도 라이데커는 트루먼 커포티가 이 시대에 살았으면 이랬을 법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동성애자까진 아니라도 최소한 양성애자였을 것이며, 소설에선 로라에 대한 지극한 사랑만 묘사되지만, 나는 읽는 내내 그가 로라만큼이나 맥퍼슨을 사랑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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