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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건달의 조울증, 록스타도 울고 갈 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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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건달의 조울증, 록스타도 울고 갈 기세!

[금정연의 '요설'] 아이헨도르프의 <방랑아 이야기>①

금정연의 '요설' 지난 글들 모아 보기

<제21-1장>
이토록 낭만적인 마음


요제프 폰 아이헨도르프 <방랑아 이야기>(정서웅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는 지금까지 이 코너에서 다룬 인물들과는 달리 무척이나 한가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야기다. 너무 한가해서 짜증이 날 지경이다. 일단 첫 문단부터 그렇다.

아버지의 물방앗간이 다시 덜커덩거렸다. 물레바퀴가 어느새 신명나게 돌아가고 있었다. 녹은 눈이 지붕으로부터 물방울이 되어 뚝뚝 떨어졌다. 그 속을 짹짹거리며 날아다니는 참새떼들. 나는 문지방에 걸터앉아 잠을 쫓아내느라 눈을 비볐다. 따사로운 햇살이 더할 수 없이 좋았다. (<방랑아 이야기> 13쪽)

알다시피 지금은 가을이다. 그것도 더럽게 추운 가을이다. 서울의 오늘 아침 기온은 4도였고, 나는 점심도 거른 채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쳇,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러니 아버지의 분노도 이해할 만하다. 꼭두새벽부터 물방앗간을 분주히 오가며 일하는 양반이다. 느긋하게 졸고 있는 아들놈이 곱게 보일 리 없다. 아버지는 소리친다.

"이 게으름뱅이 녀석! 또 해바라기를 하고 앉았구나. 기지개를 켜는 걸 보니 뼛속까지 녹작지근한 모양이지. 일은 모두 나 혼자 도맡으란 말이냐? 여기선 네 녀석을 더 이상 먹여줄 수가 없다. 봄이 바로 코앞에 다가왔으니 너도 한번 넓은 세상으로 나가보아라. 네 힘으로 빵을 벌 줄도 알아야지." (13쪽)

▲ <방랑아 이야기>(요제프 폰 아이헨도르프 지음, 정서웅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알았어요." 아들이 순순히 대답한다. "저 같은 건달에게는 그 편이 낫겠네요. 넓은 세상에 나가 행운을 잡아보도록 하겠어요." 그리고 그렇게 한다. 집 안으로 들어가 바이올린을 꺼내들고, 아버지에게 노잣돈까지 챙긴 뒤 유유히 집을 나서는 것이다.

나는 건들거리며 긴 마을길을 걸어 나갔다. 가슴속은 은밀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저기서 일하러 나가는 친지나 친구들을 만났다. 이들은 어제나 그제처럼 또 땅을 파고 쟁기질을 해야겠지. 나는 이렇게 자유 천지로 활보해 나가는데 말이다. 나는 뽐내듯 사방을 둘러보며 이 불쌍한 사람들을 소리쳐 불렀다. 그리고 쾌활하게 안녕을 고했다. 그러나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에게는 영원한 일요일 같은 기분이었다. 이윽고 탁 트인 들판으로 나왔을 때, 사랑하는 바이올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큰길을 따라가면서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14쪽)

그로부터 약 160여 년 후, 영국의 가수 모리씨가 리메이크 하게 될 그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았다…

매일이 일요일 같은 기분이야
매일이 고요하고 회색이지
산책을 하다 숨어서
엽서에 끄적거려
"내가 여기 있지 않기를 얼마나 원하는지"
그들이 깜박 잊고 폭파시키지 않은
바닷가 마을에서
오라, 오라, 오라 – 핵폭탄이여!
(Morrissey – Everyday is like Sunday)

…라고 하면 물론 거짓말이고. 하느님의 은총과 기적과 아름다운 자연과 상쾌한 마음과 대책 없는 낙관을 찬양하는 노래다. 모리씨의 일요일이 지루하고 고요한 날이라면 이 한가한 친구의 일요일은 "사랑하는 하느님께 모두 맡긴", "목청 높여 노랫소리 절로 나오"는 날이다. 어떤 아이러니도, 한 점의 의혹도 없다.

멍청이다. 멍청이도 이런 멍청이가 없다.

바로 그때, 호화로운 여행용 마차 한 대가 청년의 곁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쓰여 있다. 설마, 아름다운 아가씨가 타고 있는 건 아니겠지, 라고 생각할 무렵 한 명도 아닌 두 명의 귀부인이 마차에서 고개를 내민다. 청년은 그녀들의 얼굴이 마음에 쏙 들었고, 그녀들은 청년의 노랫소리가 듣기에 좋았다. 그녀들은 그에게 행선지를 물었고, 자기 자신조차 갈 곳을 몰라 조금 부끄러워진 청년이 아무렇게나 대답한다. 빈으로 간다고. 그녀들은 마주보며 조금 웃더니, 속삭이고, 그에게 타라고 한다. 자기들도 빈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헛된 기대를 품는 당신을 위해 미리 말해두자면 그녀들은 강도도 아니고 인신매매단도 아니고 마녀도 아니다. 그냥 아름다운 두 명의 귀부인일 뿐이다. 조금 더 일러두자면, 우리의 주인공은 이내 그 중 한 사람과(물론 좀 더 젊고 예쁜 쪽이다)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었다.

문득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설렘과 불안이 묘하게 섞인 복잡한 마음으로(이것이 소설 전체를 통해 주인공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느끼는 복잡한 감정이다) 마차를 타고 가던 청년은 까무룩 잠에 빠진다. 아무리 중요한 순간에도 숙면을 취하기를 잊지 않는 주인공이다. 얼마나 잤을까. 잠에서 깬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고, 커다란 성 앞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귀부인도 없고 말도 없이 덩그러니 남아 있는 마차에 혼자 있었다. 주머니를 만져보던 그는 아뿔싸, 아버지가 주신 노잣돈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제 바이올린 연주나 해서 빌어먹는 수밖에 없는 건가, 하지만 여기선 연주로 한 푼도 못 벌 거 같은데… 그때, 어디선가 하녀가 나타나 정원사 조수로 일할 생각이 없냐는 마님의 전갈을 전하고 그는 앞뒤 가리지 않고 그러겠노라고 답한다.

이윽고 정원사가 나타났다. 그는 수염 밑으로 시정잡배들의 상소리를 쏟아내더니 나를 정원으로 데려갔다. 도중에 그는 내게 긴 설교를 늘어놓았다. 이제부터 성실하고 부지런해야 한다, 일없이 세상이나 쏘다니며 밥벌이도 못 하는 깡깡이 연주나 하고 다녀서야 되겠느냐, 예서 잘만 하면 차츰 팔자가 트일 수도 있을 게다, 등등, 그 밖에도 아주 훌륭한 교훈을 많이 얻었지만, 나는 그 대부분을 곧 잊고 말았다. 지금으로선 앞길이 막막하기만 하니 어찌하랴? 그저, 예예 알겠습니다만을 연발할 수밖에. (19쪽)

아, 이제 좀 현실적인 이야기가 나오겠구나, 생각하면 오산이다. 바로 다음 문단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 저택의 정원에서 나는 잘 지냈다." 일이 조금 고되고, 고귀하신 신사 숙녀분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게 아쉽긴 하지만 잘 먹고 잘 살았다. 그리고 그런 일상에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본격적인 러브 스토리가 시작된다.

사랑이 싹트는 데에는 한 병의 포도주로 충분했다. 어느 날, 그가 흥얼거리는 노래를 우연히 들은 아가씨가 하녀를 통해 그에게 그것을 보냈고, 그는 자신이 '철학적인 생각'이라고 부르는 공상에 빠져들었다. 일단 자신의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이건 영락없이 타고난 건달 꼴이었다")한 그는, 이내 그런 나약한 생각을 털어버렸고("사람이란 날 때부터 미래가 결정되는 게 아니다"), 집을 떠나오며 아버지에게 장담했던 것처럼 행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로 결심한다("최후의 승자가 진짜 승자다").

바로 그때부터 이 대책 없는 청년의 조울증이 시작된다. 도무지 중간이라고는 없는 남자다. 그녀의 창문을 훔쳐보기도 하고, 창가 아래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며, 감자며 채소들을 뽑은 자리에 정성들여 키운 꽃을 매일 같이 꺾어 몰래 바치며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마음에 설레어하는 한편, 잘생기고 돈 많은 귀족 청년들과 함께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고 헤어날 길 없는 우울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먼저 조증 : (마님이 꽃이 필요하다고, 꽃을 받으러 직접 오실 거라고 전하는 하녀에게) "어머나, 흉측한 잠옷 좀 봐!" 갑자기 집 밖으로 튀어나오는 나를 보고 시녀가 외쳤다. 나는 화가 났다. 여성에 대한 예의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터였다. 좀 짓궃은 장난 같지만 그녀를 붙잡고 키스를 해주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잠옷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나는 두 발이 걸려 그만 땅 위에 길게 나뒹굴고 말았다. 내가 다시 일어섰을 땐 시녀가 벌써 달아난 뒤였다. 그녀는 멀리서 배꼽을 쥐고 깔깔대었다. (38쪽)

그리고 울증 : 노래를 부를 때부터 내 눈엔 이슬이 맺혀 있었다. 수치와 고통 때문에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갑자기 온갖 상념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그녀는 너무나 아름답다. 그런데 나는 가련하게도 조롱이나 당하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 그들이 모두 덤불 뒤로 사라졌을 때,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풀밭에 쓰러져 흐느껴 울었다. (28쪽)

그리하여 역시 160여 년이 흐른 후, 오징어 댄스의 창시자인 영국의 톰 요크가 이 건달의 울증에서 영감을 받아 한 곡의 노래를 작곡했으니, 그 제목이 바로 'Creep'이었다…라고 하면 물론 거짓말이고. 아마 미시마 유키오라면 냉수마찰이나 하고 정신 차리라고 했겠지. 나라면 그냥 모른 척 지나갔을 것이다. 대체 누가 이런 남자의 이야기를 참고 들어주겠는가?

차라리 드라마나 영화라면 좋았을 것을. 그런데 소설이다.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지금으로부터 약 180여 년 전에 요제프 폰 아이헨도르프가 이런 책을 썼고, 세월의 흐름을 이기고 살아남아 아시아의 한 나라에까지 번역되어 출판된 것이다.

그리고 아직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별다른 내용도 없이 텅 빈 감정들만 주고받다 이내 백지영의 노래와 함께 끝나는 드라마들처럼, 우리도 이쯤에서 다음 회를 기약하기로 하자.

나는 그때까지 PPL을 알아 볼 생각이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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