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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지막 문장'은 무엇입니까?

[꽃산행 꽃글·81] 소나기 마을에서

소나기 마을에서

1

올해 여름 날씨가 아주 변덕스러웠다. 장마도 제법 길었다. 1년에 한 번 있는 사촌 형제들과의 모임을 양평 어느 계곡에서 물놀이를 겸해서 했다. 오랜만에 만난 형님, 누이들과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재미있게 놀았다. 하룻밤을 자고 그냥 헤어지기는 서운해서 어디를 갈까 하다가 마침 근방에 '소나기 마을'이 있어 가보기로 했다.

아침부터 곧 무언가 내릴 듯 우중충한 날씨였다. 형형색색 요란하게 번들거리는 간판들 사이로 천천히 운전해 가는 동안 '소나기 마을'에서 꼭 확인하고 싶은 단어가 하나 떠올랐다. 주차장에 차를 대는데 벌써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소나기는 아니었지만 '소나기 마을'을 방문하는 데는 그야말로 맞춤한 풍경이었다.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아담한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잘 알다시피 '소나기 마을'은 황순원의 단편 소설 '소나기'를 모티브로 해서 조성된 마을이다. 실제로 황순원과 양평은 아무런 연고가 없다. 하지만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음의 한 구절을 근거로 해서 양평군이 유치하여 만든 것이다.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 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 거기 가서는 조그마한 가겟방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잘 조성된 길을 따라 가는데 큰 뽕나무가 멀리 밭 가운데 있었다. 어릴 적 입이 까매지도록 따먹던 오디(오돌개) 생각이 나서일까. 모두들 입맛을 다시는 것 같았다. 혹 눈에 띄는 야생화, 이를테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들국화, 싸리꽃, 도라지꽃이 있을까 싶어 눈을 곤두세웠는데 이렇다 할 꽃은 없었다. 특히 소년이 한 옴큼 꺾어 소녀에게 건넨 '양산같이 생긴 노란꽃'인 마타리가 있나 둘러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마삭줄의 흰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을 뿐이었다.

▲ 마삭줄. ⓒ이굴기

▲ 강화도 고려산에서 본 마타리. ⓒ이굴기

'소나기광장'을 지나 '수숫단 오솔길' 입구로 올라갔다. 바로 그 아래에 황순원 선생 내외의 묘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간단히 참배하고 황순원문학관으로 들어섰다. 마침 비디오 상영이 있다고 해서 갔더니 시골 초등학교 교실풍으로 꾸며진 곳이었다. 전면에는 흰 칠판에 교탁, 13가지 실천 사항, 시간표. 뒷면에는 태극기와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자'라는 교훈과 '정직 성실 협동'의 급훈이 액자에 걸려 있었다.

녹색 칠을 한 작은 책상과 걸상에 앉았더니 해설사의 간단한 안내에 이어 곧바로 애니메이션이 칠판에 펼쳐졌다. 선생의 소설 '소나기'와 '학'의 줄거리를 토대로 새롭게 각색한 것이었다. 영화에서 소나기가 퍼부을 땐 실제로 교실 천장에서 가는 비가 선풍기 바람과 함께 뿜어져 내렸다. 아마도 두고 온 고향을 생각하는 듯 감회에 젖은 형님, 누님들과 교실을 나서 전시실로 들어서는데 퍼뜩 한 풍경이 떠올랐다.

2

민음사에 근무하던 시절의 일이다. 1995년 6월경 민음사 편집부는 <김동리 전집>을 편집하느라 분주하였다. 동리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5년째 힘든 투병 생활을 이어가는 와중이었다.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작품을 모아 생전에 의미 있는 완간을 하느라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동리의 부음 소식이 들렸다.

동리가 떠나던 날, 영결식에 참석하고 온 어느 소설가가 내 책상에 안내문을 두고 갔다. 안내문에는 식순, 조사와 함께 동리의 약력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그 약력에서 유독 내 눈길을 끈 단어가 하나 있었다.

동리의 제자로서 장례집행위원장을 맡아 고인의 떠나는 길을 총지휘한, 이제는 그도 고인이 된 소설가 이문구가 스승을 위해 고심 끝에 고른 단어로 짐작이 되었다. 그 단어는 강렬하게 자리 잡아 내 머리에 남았다. 동리가 이승을 등지고 한 달 후인 7월 중순에 전집은 간행되었다. 아마도 동리는 민음사판 전집을 생전에는 못 보고 49재 때 저승에서 보았을 것이다.

몇 해 전 경주에 있는 동리목월 기념관을 가 본 적이 있었다. 불국사 바로 앞에 있는 기념관 정문을 통과할 때 퍼뜩 잊고 있던 이 단어가 떠올랐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오늘 혹 그 단어를 만날 수 있을까.

오른쪽은 목월, 왼쪽은 동리가 사이좋게 자리하는 기념관의 규모는 상당했다. 나는 목월의 방을 천천히 둘러본 뒤 동리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입구에 '귀거래행'이라는 동리의 시가 큰 포스터로 걸려 있었다. 동리는 소설을 쓰는 틈틈이 시도 썼던 것이다. 동리의 시는 처음 보았는데 아주 좋았다. '패랭이꽃', '은하' 등을 읽었는데 이날 나에게 달라붙는 시의 맛은 목월보다는 오히려 동리 쪽이었다.

전시관 중간쯤에 나도 힘을 쬐끔 보탠 <김동리 전집>이 진열되어 있었다. 무녀도, 황토기 / 역마, 밀다원시대 / 등신불, 까치소리 / 저승새, 만자동경 / 사반의 십자가 / 을화 / 문학과인간 / 나를 찾아서. 총 여덟 권이었다. 박생광의 강렬한 그림이 언뜻 생각나는 울긋불긋한 표지도 그대로였다.

다음으로 생애와 문학이란 코너가 있었다. 주요 시기별로 동리의 활동이 자료와 함께 소개되어 있었다. 동리의 흉상은 맨 마지막 코너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단단하고 야무진 인상이었다. 드디어 벽면에 가지런히 정리된 동리의 약력이 나타났다.

나는 천천히 동리의 축약된 생애를 짚어나갔다. 내 기억이 맞았다. 아주 오래 전 어느 날 민음사 편집국장 책상에서 만났던 강렬한 단어, 동리의 영결식장에 사용되었던 그 단어를 동리 기념관의 약력 끝에서 다시 발견했던 것이다. 동리를 저승으로 떼 메고 간 마지막 문장이 그곳에 있었다.

3

과연, 황순원문학관에서는 그 단어가 무엇이라고 되어 있을까. 생각하면서 황순원 선생의 일생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선생이 사용했던 안경과 만년필, 그간 출판한 책들, 각종 책이 전시되어 있었다. 선생이 육필로 쓴 어느 방명록에는 진한 먹의 붓글씨로 이런 구절이 적혀 있기도 했다. 文者求道之器也.

선생은 생전에 소설이나 시를 제외한 다른 글은 잡문이라 하여 일체 청탁을 거절하였다고 한다. 문학적 염결성을 죽는 날까지 유지하였던 모양이다. 아마도 문학하는 행위를 구도자의 마음으로 일생 밀고 나간 것임을 저런 문장은 보여주는 것이리라.

그 하나의 단어를 머리에 굴리면서 문학관을 이리저리 살펴나가는데 선생의 일생을 표로 정리한 것이 벽에 붙어 있었다. '한 눈에 보는 작가 연대기'였다. '소나기'라는 단편을 비롯해 만만찮은 시와 소설로 우리 한국인의 감수성을 여지없이 건드린 소설가. 구도하듯 시만 짓고 소설만을 쓴 선생의 일생을 마무리한 마지막 단어가 그곳에 있었다.

4

진즉부터 내가 궁금히 여겼던 것은 일생을 마무리할 때 쓰는 마지막 단어였다. 즉, 일생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연보의 마지막 단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어떤 문학관이나 기념관에 가서 연보를 보면 태어나는 것은 대개 비슷하다. 한글로 '태어나다'이거나 한자어로 '출생'이다. 실제로 한 인간이 이 세상으로 들어오는 입구는 다 똑같다. 우리는 누구나 '다리 밑에서 주워오는' 존재들이 아닌가. 원인불명의 고장으로 불시착한 UFO처럼 사지가 흐물흐물한 채 다리 밑에서 버둥거리던 존재들이 아니었던가.

ⓒ이굴기
하지만 한 일생을 견디고 나가는 출구는 저마다 다들 다르다. 그래서 그런가. 그 마무리 단어도 다 다른 것이다. 사람의 목숨이 끊기면 우리말로는 '죽다' 혹은 '돌아가다'라거나 '세상을 뜨다'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한자말은 다종다양하다. 졸, 몰, 사망, 요절, 산화, 순애, 순직, 순국, 타계, 귀천, 작고, 하직, 별세, 운명, 영면, 사거, 서거, 승하, 붕어, 소천, 선종, 입적, 열반, 입멸, 환원 등등이다. 옛 편지를 보면 하천(下泉), 하세(下世), 불기(不起)가 등장하기도 한다. 아무튼 망자를 두고 선택한 단어를 보면 죽은 이의 신분, 직업, 종교, 죽음의 순간을 대강이마나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소설, '소나기'에서 소년과 소녀가 들판으로 나가 놀 때. 소년이 소녀에게 꺾어준 꽃이 있다. 마타리꽃이다. 전국 어디에서나 흔하고 이때쯤 피는 꽃인데 정작 소나기 마을에서는 찾을 수가 없어 아쉬웠다. 대신 소나기마을로 가는 길목마다 가로등 아래 길게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소년이 소녀에게 마타리 꽃을 꺾어 건네주는 것을 표현한 그림이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반사되는 마타리 꽃. 그 시든 꽃그림을 지나 내려오는데 시와 소설을 겸업했던 두 분의 일생을 마무리한 마지막 문장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황순원은 다음과 같았다. "2000년 별세."
김동리는 다음과 같았다. "1995년 6월 17일. 23시 23분. 신화(神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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