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림이 되다>(마틴 게이퍼드 지음, 주은정 옮김, 디자인 하우스 펴냄) 51페이지. 루시안 프로이드의 말
▲ <내가, 그림이 되다>(마틴 게이퍼드 지음, 주은정 옮김, 디자인하우스 펴냄). ⓒ디자인하우스 |
대부분의 느린 연주는 다른 모든 연주들처럼 어떤 목적이 있다. 느림은 이보 포고렐리치의 같은 곡 연주처럼 억제당한 에너지를 분출시키는 특정한 타이밍을 위해 계산된 드라마적 요소이거나, 리흐테르나 아라우 등 많은 거장들이 노년에 탄식과 명상을 오가는 사색의 장을 펼치기 위해 준비하는 확장된 시간이다.
그런데 우고르스키의 연주를 들으면 어디를 강조하고 있는지 찾기가 어렵다. 리듬이 완전히 탄력을 잃어서 각 주제와 악상들은 와해되듯이 분리된다. 2악장의 처연한 아리에타는 대단히 감동적이지만, 다음 악상은 그 바통을 이어받을 생각이 없이 자기 이야기만을 중얼거린다.
소나타라는 형식이 어떤 악상의 주제와 형식을 발전시키면서 드라마틱한 구조물을 창조하는 작업이라면 우고르스키의 '소나타 연주'는 완벽한 실패작이다. 차라리 안티-소나타라고 할까, 우고르스키는 구축하기라는 소나타의 형식을 뒤집어 해체를 시도함으로써 소나타의 부품들을 천천히 일별해 보여준다. 드라마를 들으러 온 사람들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고르스키의 연주에서 배우는 죽어 누워 있고 의사는 그 시체의 정수리부터 발가락 끝까지를 짚어가며 인간의 신체 부위를 덤덤히 읊조릴 뿐이다.
그러나 감상자가 고통스럽게 목도해야 할 그 신체, 이질적이고 불가해한 악상의 조각들이야말로 베토벤의 내면이 아닐까. 악보를 통해 직조되기 이전의, 작곡자의 내면에 암세포처럼 자라난 목적 불명의 파편들. 우고르스키의 연주는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를 해체시켜 감상자들을 소나타의 선사先史로 이끈다. 극복을 노래하는 드라마를 완성하기 위해 낱낱이 조각난 살과 뼈를 수집해 놓은 프랑켄슈타인의 창고와도 같은 내면 풍경이다.
베토벤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은 목적이고 이상이다. 아니, 소나타라는 형식 자체가 추상의 영토 위에 세워진 꿈의 왕국이다. 그러나 우고르스키는 소나타를 파괴하고 해부한 뒤에 디테일들을 병렬함으로써 베토벤이라는 인간, 소나타의 산파에 대한 인상의 덩어리를 구축했다. 우고르스키는 베토벤이 가리키는 우주를 바라보지 않고 베토벤을 바라보았다. 때로 멈춰버린 듯이 눈앞에서 움직이지 않는 악상들을 주시하는 자의 얼굴. 고뇌하는 얼굴의 육체. 흔히 보는 베토벤의 데드 마스크 안쪽에 있었을 거칠고 주름진 살결. 우고르스키는 위대한 작곡자의 마지막 소나타에 대한 경의를 남다른 방식으로 이루어 냈다. 그는 베토벤의 초상을 연주한 것이다.
바로 이 방법. 디테일의 집합이 지시(또는 콜라주)하는 인간의 형태, 로서의 초상. 해석 불가능한 단위로 잘게 쪼개진 '현상'들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천천히 겹쳐 쌓아 만들어가는 피조물. 몇 명의 이름을 더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 헨리 제임스, 마르셀 프루스트, 로베르 브레송,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의) 베르너 헤어조크, 글렌 굴드, 이아니스 크세나키스 등등. 그중에는 인간 초상의 가장 익숙한 형태인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있다. 살아있는 화가로 그 폭을 좁힌다면 그중 첫째는 루시안 프로이드일 것이다.
▲ 화가 루시안 프로이드. ⓒ디자인하우스 제공 |
"그(프로이드)가 무언가 약간 추가하기 시작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그림이 되다> 164페이지. 프로이드의 모델을 섰던 앤드루 파커 볼스의 말.
미술평론가이자 작가인 마틴 게이퍼드가 초상화가 루시안 프로이드에 대해 쓴 <내가, 그림이 되다>에는 프로이드에 대한 미술사적 또는 이론적인 해설은 거의 없다. 대신에 게이퍼드는 프로이드가 그림을 그릴 때처럼 '점증하는 디테일의 나열'을 이용해 글을 썼다. 자신이 언급하고자 하는 화가의 작업 방식을 글쓰기에 차용한 셈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 '어떻게'가 <내가, 그림이 되다>의 매력 포인트다.
어느 날 게이퍼드는 프로이드에게 자신의 초상을 그려줄 수 있겠냐고 했고, 곧 작업이 시작되었다. 프로이드는 여러 차례에 걸쳐 게이퍼드의 초상화를 그려 나갔고, 그동안 둘은 대화하고 서로를 관찰했으며(당연히 모델도 화가를 관찰한다) 게이퍼드는 그 대화들과 자신의 관찰을 담은 일기를 썼다. 다소 보완과 수정을 거쳤다지만, 기본적으로 게이퍼드가 그때 쓴 일기 뭉치가 이 책의 근간이다.
즉 그림의 시작부터 완성까지의 나날들을 기록한 <내가, 그림이 되다>는 프로이드가 그린 게이퍼드의 초상화 'Man with a Blue Scarf'의 거울상이다(심지어 책의 원제는 그림의 제목과 같다). '그림 그리기'라는 하나의 사건을 중심에 두고 상호 관찰을 통해 두 개의 초상적 결과물이 탄생한 것이다. 작가는 그림의 모델이 되었고 화가는 글의 모델이 되었다.
초상화의 거울이 되는 글쓰기. 따라서 일기 형식으로, 즉 시간 순으로 쓰인 글뭉치는 각 꼭지의 주제에 따라 재편집되지 않고 시간 순으로 남았다. 그 글이 쓰인 순서대로 초상화가 그려졌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예측할 수 없는 패턴으로 완성되어 가는 초상화와 함께 움직인다. 프로이드가 자신이 예전에 알고 지냈던 은행 강도 얘기를 하던 날 게이퍼드의 눈이 형태를 갖추었고, 프로이드가 죽은 애완견의 무덤을 말하던 날에 턱의 윤곽이 캔버스 위에 드러났다. 프로이드의 초상화가 어떤 순서로 형태를 완성하는지 알 수 없으므로 게이퍼드 역시 자신의 글에 일관적인 체계를 부여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시나리오도 패턴도 없다. 어떤 대화가 왜 이 맥락에 등장했는지는 게이퍼드 자신도 설명하지 못한다. 다만 그림 그리는 순간을 전후한 사건들과 상념들을 기록할 뿐이다. <내가, 그림이 되다>는 화가가 그림 한 점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은 기록인 동시에 그 작업 방식을 텍스트 구조의 형태로 재현하려는 시도다.
이 두 명의 인간이 서로를 남긴 독특한 혼성 초상 작업에 남겨진 기록은 그 무작위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읽기에 부담이 없고 꽤 자주 인상적인 순간들을 제공한다. 게이퍼드가 일지를 쓰면서 아이디어들에게 살을 붙여주기 때문이다. 게이퍼드는 그날그날의 대화나 인상에 대해 생각하고 서술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받은 인상을 구체화하며 프로이드가 예전에 했던 말들, 그의 작품들, 미술과 삶에 대한 다른 누군가의 말과 행동들을 덧붙인다. 이 덧칠 작업은 단순할 때도 있고 사고의 도약을 필요로 할 때도 있지만, 인상적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단순하고 선명한 스케치의 예. 이틀 뒤 자살하게 될 모델을 그리면서 '그녀의 가슴을 그리고 있었는데 거기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아주 이상한 느낌'을 받았던 프로이드의 일화는 모델과 화가의 정서적 관계에 대한 사고를 불러낸다. 그리고 그 사고는 다시 프로이드의 한 초상화를 불러낸다. 역시 자살하게 될 남자의 초상.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불행한 연인이었던 조지 다이어가 프로이드에게 남긴 슬픔의 인상.
▲ 루시안 프로이드(왼쪽)와 마틴 게이퍼드. ⓒ디자인하우스 제공 |
작은 도약을 필요로 하는 예. 프로이드가 피카소에 대해 '그는 매우 악의적이었습니다. 나는 그 점을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만, 그는 순전히 악한 사람이었습니다'라고 언급한 부분은 곧바로 따라붙는 일화 속에서 '밝은 햇빛에도 위축되지 않는 그 작품(피카소의 어떤 초상화)의 힘'과 조응하면서 유아적이고도 악마적인 거장에 대한 스케치를 단숨에 그려낸다.
그 외의 많은 이야기들. 수수께끼와 역설들, 잠언 같은 질문들, 작업실의 정경과 동물과 요리와 반유대주의와 어머니와 물감에 대한 이야기들. 게이퍼드와 프로이드 사이에 놓인 그물이 걸러낸 세계의 풍경은 총 서른다섯 개의 조각들로 나뉘어져 화가 루시안 프로이드의 상을 구축한다. 매일의 인상을 겹쳐 기록한 한 인간의 초상. 게이퍼드는 루시안 프로이드에 대한 루시안 프로이드적 초상을 그려낸 것이다. 그렇다보니 데미안 허스트가 프로이드의 그림에서 받은 인상은 마치 이 책을 설명하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프로이드의 그림에 대한 허스트의 매우 흥미로운 의견을 전했다.
"프로이드 작품에서 내가 좋아하는 점은 재현과 추상의 상호작용입니다. 그의 작품은 멀리에서 보면 사진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월렘 드 쿠닝의 초기작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언제나 훌륭한 그림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서면 불안정한 흔적만 있기 때문입니다."
프로이드는 기뻐했다. "아, 훌륭한 견해로군요. 그것은 패딩턴 사람들이 한 말과 같습니다. 그들은 '루, 당신의 작품은 재미있어. 그림을 멀리에서 보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완전히 엉망진창이거든'이라고 말했죠."
-<내가, 그림이 되다> 96페이지.
내 말이 그 말이다. 이 책이 그런 책이다. 물론 터치는 저 그림들보다 훨씬 부드럽지만 말이다.
덧: 종이의 질감이나 컬러 도판 인쇄의 질이 매우 좋다. 특히 검정색을 매우 부드럽고 깔끔하게 재현해서 피로함 없이 도판을 오래 바라볼 수 있다. 감각적인 만족이 이 책의 주제를 더욱 효과적으로 부각시킨다는 점을 꼭 알려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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