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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의 도발, "너희들이 중국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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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의 도발, "너희들이 중국을 알아?"

[서남 동아시아 통신] 조정래 <정글만리>

한 작가의 중국 관련 소설이 독자들의 커다란 호응을 얻고 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만 하더라도 여러 주 종합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같은 소설의 2권과 3권이 2위와 3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의 <정글만리>(해냄 펴냄)가 그것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중국 관련 신문 기사를 스크랩한 수첩이 90권이고 중국에 관해 읽은 책도 80권이며 현장에는 2년간 여덟 번을 오갔고, 한 번 가면 두 달씩 머물렀으며. 거기서 얻은 정보가 또 수첩 20권에 달하는 준비를 했다고 한다. 가히 인류학자의 현지 조사에 맞먹는 공력을 들인 셈이니, 이 작품을 최근 중국 시장에 관한 민족지(ethnography)이자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학습 보고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제목 '정글'은 중의적이다. 비즈니스의 세계를 가리키기도 하고 중국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심지어 마오쩌둥의 복잡한 캐릭터를 가리킬 때도 있다. 전자는 생존의 현장이라는 의미고, 후자는 온갖 나뭇가지들이 얽히고설켜 복잡 난해하다는 의미이다.

나아가 인간의 속마음을 헤아리는 용어이기도 하다. 이는 '콴시(關係)' 샹신원의 해외 도피를 겪은 전대광의 평가다.

▲ <정글만리>(전3권, 조정래 지음, 해냄 펴냄). ⓒ해냄
작가의 서사 전략은 입문자 서하원 등이 전문가 전대광 등의 인도를 통해 중국을 새롭게 인식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이다. 서하원 등은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생각'인지 모르면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부정적인 인상의 근원이 중국 위협론에 토대를 둔 미국 언론을 카피한 국내 언론 보도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들은 경제 수도 상하이와 정치 수도 베이징에서부터 시안, 칭다오, 광저우 등의 대도시를 오가며 중국을 답사하고 있다.

조정래가 요점 정리하는 중국의 사회와 문화는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의미를 결합시키고 표층 묘사에서 심층 분석까지 이어지고 있는 점에서 그 공력이 만만치 않다. 이를테면 짝퉁과 장인 정신을 연결시킨다든지, 공무원의 부패와 그것을 용납하는 인민의 심리 기제, 개발과 매연, 폭죽놀이의 폐해와 그 경제적 정신적 효과 등등.

그 가운데 결혼식 풍경은 최근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 답사 코스다. 888원을 넣은 빨간 축의금 봉투(紅包)와 그것을 현장에서 꺼내 위폐 검사를 하는 모습, 북남과 남녀(北男南女)가 만나 결혼식을 두 번 올리고 축하 퍼레이드를 위한 10대의 빨간색 캐딜락 등은 중국의 체면 문화와 실용 문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중요한 지점이다.

치관옌(妻管嚴. 氣管炎과 중국어 발음이 같다), 라오펑유(老朋友)의 의미, 콴시 문화, 포스트 1980년대에 태어난 세대를 가리키는 바링허우(八零後), 숫자 8 선호, 소황제와 헤이하이쯔(黑孩子), 모던 치파오, 허셰(和諧)호, 차 문화, 농민공 등, 작가가 독자에게 알려주고 싶은 정보는 무궁무진하다.

특히 중국 사회의 작동 기제, 예를 들어 '문제 삼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문제 삼으니까 문제가 된다'라든가, '신은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것', '친구로 대하면 친구고, 적으로 대하면 적', 그리고 마오쩌둥의 신격화 등은 중국 사회 작동 기제의 최종 심급에 해당한다.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하나하나씩, 독자들에게 스며들 수 있도록, 적절한 콘텍스트를 구성해, 작중 인물의 직접 경험과 그들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어떤 대학 강의보다 재미있고 설득력 있다. 오랜 세월 몸에 각인된 중국인 특유의 DNA로 중국인의 정체성을 해석하면서. 이를테면 크고 넓고 많은 의식의 DNA, 장인 솜씨의 DNA, 분열을 두려워하는 공포 DNA 등.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중 감정은 한국인이라면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개혁 개방 초기 모델이 싱가포르와 한국이었고 한류 열풍의 진원지이자 지금도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식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손바닥만한 나라 것들이 좀 먹고살게 됐다고 건방을 떤다, 기술 좀 있다고 너무 거만하다'는 비난을 하는 이중 감정은 '돈은 중국에서 다 벌어가면서, 방위는 중국을 견제해대는 미국 편에 서 있는 것'에 대한 비판에서 정점에 이르고, '한국은 도자기점에서 쿵푸를 하고 있다'는 비유로 조롱하고 있다.

미국에 대해 당당하고 미국 종속적인 한국을 비판하면서도 미국화와 서양 바람이 득세하고 있는 것이 중국이다. 커피 폭탄 세례, 화장하기, 명품 사냥, 성형 수술, 와인 바람, 골프 치기 그리고 이혼 유행 등은 모두 미국화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한국이 겪었거나 겪고 있는 현상이다.

▲ 올해 7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한중일 FTA 2차 협상의 풍경. ⓒ연합

조정래의 장점은 중국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한국이 얼마나 민주화된 인간다운 사회인지를 중국에 와서 비로소 깊이 느꼈던' 전대광의 부인 이지선, 한국 엄마의 전형 송재형의 엄마 전유숙 등은 우리에게 한국과 비슷한 중국 그리고 한국과 다른 중국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특히 전유숙을 통해 자식을 위한 희생이 이데올로기가 되도록 살아온 이 땅의 엄마들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그녀들은 그런 엄마 밑에서 크면서 엄마가 이성적이었으면 하고 울부짖던 딸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사교육과 영어교육 열풍을 통해 중국식 전유숙'들'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중이다.

그는 중국학 전공자들에게도 과제를 던지고 있다. 너희들이 중국을 알아? 너희들이 아는 것이 살아있는 지식이야? 그게 한국인의 중국 인식에 도움이 되는 거야? 그에 대해 모른 척 하는 것은 비겁한 방식이고 가능하지도 않다. 조정래는 투명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의 긍정적인 풍경 묘사와 심층 해설은 주로 전대광과 김현곤의 입을 빈 작가는 부정적인 측면을 일본인과 서양인을 통해 드러내는 서사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를테면 가라오케와 집단 매춘은 일본인과 연계시켜 묘사하고, 올드 상하이 노스탤지어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사샤스와 같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활약하는 콜걸은 서양인의 몫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발 마사지 방 가운데 건전한 곳은 전대광을 보내고 퇴폐적인 곳은 도요토미 아라키를 보내고 있다.

작가는 중국 공부의 심득(心得)을 독자들에게 전수하기 위해 선명자(善鳴者), 즉 자신의 말을 잘 대변할 화자를 선택한다. 종합상사원 전대광과 포스코 직원 김현곤이다. 두 화자의 공통점은 중국 생활 10년을 넘긴 영업부장이란 점이다. 이들은 중국 전문가도 아니고 지식인은 더더욱 아니다. 이들은 회사 방침에 따라 세일즈를 위해 중국어와 중국의 사회와 문화를 공부했다. 회사 방침에 따라 '세일즈의 가장 강한 무기'로 중국을 공부한 것이다. 다행히 전대광과 김현곤은 중국이 최대 시장이라는 사실에 만족하고 중국의 문화와 역사가 공부할 만한 가치가 있는 수천 쪽짜리 백과사전이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중국 사람들이 사람의 마음의 깊이를 재고 무게를 다는 사람들이라는 발견에 흡족해한다.

작가는 이들의 입과 생각을 빌어 자신의 심득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때론 장광설이 없지 않지만, 그만한 분량에 그렇게 많은 정보를 요령 있게 넣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토론을 통해 쟁점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영양가가 높은 편이다. 특히 시안에 관한 김현곤의 사색은 일품이다. 이를테면 문물을 만든 도공들과 그들을 짐승처럼 부린 권력자들을 대비하며 과연 누가 역사의 주인공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김현곤은 웬만한 중국사 전공자를 찜 쪄 먹는 수준이다.

그로 인해 조정래의 선명자들은 진정성에서 의심을 받을 수 있다. 전대광과 김현곤 같은 회사원이 존재할 리 없다고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공부한 결과를 수시로 작중 인물에 투사함으로 인해 자칫 리얼리즘을 위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중 인물의 독백과 사색이라는 장치는 작가가 자신의 심득을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 장치에만 이르면 전대광이 하건 김현곤이 하건 그 외의 어떤 화자가 하건, 독백과 사색의 톤이 천편일률이다. 조금만 예민한 독자라면 그 독백과 사색은 작가가 그때 필요한 인물을 골라 자신의 심득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고, 한발 나아가 작가의 중국 역사 문화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 어려울 것이다.

오랜 시간 문학 판과 중국학에 몸담아온 내가 보기에, 중국을 배경으로 한 기업 소설은 성공을 거둔 듯하다. 무엇보다 독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으니 글쟁이의 본분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역사 소설가에서 중국 배경의 기업 소설가로의 변신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작가의 변신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 역사 소설 시절부터 '개념화'라는 비판은 조정래를 따라다니던 평어였다. 이번 <정글만리>에서도 개념화 수준이 과도하고 작가는 수시로 자신의 공부 심득을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 부분이 중국을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금과옥조가 되고 한국인의 중국 인식을 제고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중국 공부에 오래 몸담은 전문가들에게는 지루할 수 있다. 수시로 반복되는 정보와 강의 어투는 반감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문학 애호가들은 장르 소설을 탐탁지 않게 여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글만리>는 중국을 한국인에게 소통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 변화를 권유, 강제하고 있다.

<프레시안>은 동아시아를 깊고 넓게 보는 시각으로 유명한 서남재단의 <서남포럼 뉴스레터>에 실린 칼럼 등을 매주 두 차례 동시 게재합니다. 임춘성 목포대학교 교수(중어중문학과)의 이 글은 <서남포럼 뉴스레터> 197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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