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내에서도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앉아서 돈을 버는 곳이 한국 최초의 비트코인 거래소 '코빗'이다. 지난 10일 코빗의 이사이자 <넥스트머니 비트코인>의 저자 김진화 씨를 만나 "수수료 수입이 늘어서 이런 투기 바람이 반갑겠다"고 찔러보니 "수익이 생긴다는 측면에서 좋기는 하지만, 우려스럽다"고 진지하게 답변했다.
일각에서는 비트코인은 내재 가치가 아무 것도 없는 일종의 사기화폐라는 지적도 하고 있다. 하지만 김진화 이사는 "비트코인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주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비트코인을 일종의 신종화폐로만 보면 '비트코인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 국내 최초의 비트코인 거래소 '코빗'의 김진화 이사. ⓒ김하영 |
"새로운 글로벌 지급결제시스템으로 봐달라"
그는 "비트코인은 새로운 글로벌 지급결제시스템, 이 시스템에서 돌아가는 화폐, 그리고 시스템을 받쳐주는 금융플랫폼이 결합된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미래가치에 주목한다면 비트코인의 가격은 시스템으로서의 일정한 가치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4일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비트코인에 대해 "비트코인 열풍은 버블"이라면서 "비트코인을 통화로서 뒷받침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일축했다. 반면 지난달 19일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비트코인은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지급수단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김 이사는 "두 사람 말이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측면을 보고 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트코인을 화폐로만 보면 현재 비트코인 가격은 투기라고 할 수밖에 없으니 "비트코인 열풍은 버블"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고, 버냉키는 비트코인을 지급결제 수단으로서의 측면을 보고 말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비트코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배경
비트코인을 '달러 패권'을 견제하는 신종화폐로 보는 시각에서는 중국이 은근히 비트코인을 밀어주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미국조차 버냉키는 물론, 미틸리 라만 미국 법무부 차관보도 비트코인의 가치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을 보면 미국 정부는 분명히 다른 시각에서 비트코인 현상을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규제 측면에서 보면 중국이 최근 칼을 빼든 모습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 5일 금융기관의 비트코인 거래를 금지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결제 통화로서의 안정성이 투기 열풍으로 위협받자 중국 최대의 인터넷사이트 바이두도 비트코인 거래를 중단했다. 비트코인이 결제수단으로서 날개를 달았다는 말이 나오게 만든 바로 그 업체가 비트코인 결제를 막은 것이다. 이에 따라 하룻새 비트코인 가격은 반토막이 났다. 이후 비트코인의 폭등세는 주춤한 양상이다.
중국은 물론, 한국 정부도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하지 않기로 내부 논의를 정리했다. 비트코인 투기 양상에 못마땅한 사람들이 볼 때 이런 판단이 바람직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하지만 비트코인이 새로운 글로벌 지급결제시스템을 의미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김진화 이사는 "스마트폰처럼 새로운 산업으로서의 가능성에 주목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비트코인은 일종의 '금융 운영체제(OS)'를 중심으로 한 '지급결제 생태계'를 포괄하는 산업을 뜻한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을 지급결제시스템으로 이해하면 향후 신용카드 산업을 도태시킬 정도의 위력이 발휘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트코인 결제는 은행이라는 통제기관을 거치지 않는 개인 대 개인 시스템이다. 신용카드 결제시스템을 능가하려면 수수료와 보안 문제에서 뛰어나야 한다.
그런데 비트코인 시스템은 이 점에서 확실한 우위를 갖고 있다. 개인 대 개인이 마치 이메일을 주고받는 것처럼 거래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게다가 '익명성'도 자랑한다. 또한 글로벌 개인들이 자신들의 컴퓨팅 자원을 동원해 공개적으로 실시간으로 검증하는 기발한 검증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결제과정에서의 보안 문제나 위조 방지 등 역량 문제는 이미 일개 대형금융기관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내려져 있다. 그러나 비트코인을 보관하는 문제는 아직 상당히 불안하다는 점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 비트코인이 단순한 가상화폐가 아니라,. 미래의 글로벌 지급결제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다. ⓒAP=연합뉴스 |
신용카드 시스템을 위협할 강력한 산업 가능성
비트코인 시스템이 신용카드 결제방식을 사양산업화시킬 위력을 가진 점은 또 있다. 신용카드 결제는 그저 결제에 그치는 방식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별도의 비용없이 다양한 '조건문'을 붙일 수 있는 시스템이다. 비트코인 결제는 일종의 데이터를 주고 받는 방식이다. 따라서 여기에 '조건문'을 붙이고 싶으면 그냥 붙이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에스크로(지급유예) 결제'의 경우, 비트코인 방식은 거래 관계자 3인 중 2인의 서명이 있어야 실제로 비트코인 결제가 이뤄지도록 조건문을 붙인다. 그러면 '에스크로'의 역할을 담당하는 제3자 때문에 생길 실패가 없다.
또한 주식시장의 지수나 환율 등 금융 데이터에 조건을 걸면 금융회사를 거치지 않고도 스스로 작동하는 선물이나 옵션, 보험 상품 등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금융기관을 끼지 않고도 이뤄지는 진정한 스마트 금융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김진화 이사는 "스마트폰 산업에서 한국이 발빠른 추종자에 그쳤지만, 비트코인처럼 국가와 언어의 장벽이 없는 새로운 산업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IT산업을 바탕으로 선두주자로 나설 수 있지 않겠느냐"고 기대를 보였다.
JP모건, 유사 결제시스템 특허 신청
한가지 남은 의문은 '미래의 글로벌 지급결제시스템'이 반드시 비트코인이 될 것이냐다. 이에 대해 김 이사는 "선발주자로서의 이점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 시장처럼 여러 업체들이 경쟁하다가 '생태계 구축' 수준까지 이른 것은 애플과 구글뿐이듯 앞으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미국의 최대 투자은행 JP모건체이스는 비트코인과 유사한 전자 결제시스템에 대한 특허를 신청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JP모건의 결제시스템은 가상화폐는 물론 신용카드 등 온라인을 통한 모든 결제수단과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JP모건은 "새로운 인터넷 지불 기술이 급격하게 떠오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JP모건 시스템이 비트코인이 앞서가는 아이디어를 일부 차용했다는 의혹도 나오면서, 보다 완벽한 '글로벌 지불결제시스템'을 향한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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