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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특별법' 제정, 피해자 두 번 죽이는 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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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동양 특별법' 제정, 피해자 두 번 죽이는 사기다

[편집국에서] 동양사태가 남긴 것

원금 보장은 물론 상당한 수익을 보장한다면서 돈을 끌어들이는 일당이 있다. 일정 기간 동안 실제로 짭잘한 이득을 챙기게 해준다. 그러면 원금과 함께 이득을 챙겨서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익까지 합쳐서 불린 원금에 빚까지 져서 더 큰 돈을 맡긴다. 심지어 친인척 등에게도 돈 벌 확실한 기회가 있다면서 그들의 돈까지 맡기도록 스스로 나선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런 '확실한 돈 벌이 기회'라는 것은 사기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런 것을 바로 '유사수신행위'이라고 한다.

그런데 동양그룹 계열사들이 동양증권을 통해 채권 판매로 5만 명에 달하는 개인투자자들로부터 무려 1조 6000억 원을 '수신' 했다는 행위는 '유사수신행위'가 뭐가 다를까? 본질적으로 다른 게 없다.

혹시 숫자가 기준일까? 피해자가 몇 천 명이 아니라 몇 만명에 이르면 '유사수신행위'가 아니게 되는 것일까?

▲ 동양사태는 '합법적 유사수신행위'라고 할 만한 대형 금융사고다. 그래서 금융당국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원금 보장'을 위한 특별법 제정 요구까지 나가고, 이에 대한 기대를 부추기는 정치인들이 있다면 그들은 또다른 사기극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연합뉴스

동양의 유사수신행위 알고도 방치한 금융당국

그렇지 않을 것이다. 유사수신행위와 '동양사태'를 일으킨 행위는 그저 금융당국의 허가를 받고 한 것이냐 아니냐의 차이다.

유사수신행위의 정의 자체가 그렇다. "금융관계법령에 의한 인가, 허가를 받거나 등록, 신고 등을 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인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다.

즉, 제도권 금융기관이 아니면서 유혹할 만한 원금보장과 수익을 제시하면서 불특정 다수로부터 "투자하시라"는 말로 돈을 끌어 모으는 행위를 말한다.

어느 나라 금융당국도 유사수신행위를 알고도 모른 체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동양사태를 보면, 금융당국은 동양증권의 유사수신행위를 알고도 방치했다.

이미 금융위원회는 동양그룹 위기설이 확산되던 지난 4월 금융회사가 신용등급이 낮은 계열사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팔지 못하도록 하는 금융투자업 규제 규정을 마련했다. 원래 이 규정은 3개월의 유예기간을 두고 시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금융위는 유예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했다. 동양그룹이 자산 매각 등으로 유동성 위기를 수습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는 요청을 들어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동양그룹은 자산매각보다는 '사기 채권' 판매에 적극 나섰고, 특히 8월과 9월 사이에 '사기 채권' 판매가 집중되면서 피해자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8월까지만 해도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 수 있었다. 하지만 8월 말에 있었던 금융당국 수뇌부 모임이라고 할 '청와대 4자 회동'은 또다시 동양그룹의 '유사수신행위'를 눈감아주는 것이었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국정감사에서 위증까지 하면서 동양그룹이 '사기 채권'을 판매할 시간을 허용한 '청와대 4자 회동' 자체를 부인하다가 들통이 났다.

이때문에 동양사태로 피해를 입은 개인투자자들은 "금융댱국과 동양그룹이 함께 책임지고 배상하라"고 촉구하는 집단 시위도 여러 차례 벌였다.

'원금 보장 특별법'에 대한 기대 누가 부추기나

유사수신행위라면 투자자가 정부에 "원금을 보장하라"고 할 근거는 아예 없다. 하지만 동양그룹의 행위는 금융당국이 허용해줬기 때문에, 부실채권을 마구 팔면서 돈을 끌어모은 '동양 사태'에 대해 정부도 큰 책임이 있다.

그런데 정부가 책임을 어떻게 지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동양사태 피해자들이 동양그룹 경영진을 형사처벌하고, 금융당국의 책임질 관료들이 사퇴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동양그룹 오너 일가가 사재를 모두 내놓으라는 요구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에게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것은 우려스럽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건물 앞에는 "동양 사태 특별법 제정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특별법을 제정해 정부가 투자 원금 지급을 책임져 달라는 것이다.

만일 특별법 제정 요구도 당연하다고 부추기는 소위 '금융소비자보호' 단체나 정치인들이 있어서 이런 현수막이 걸리게 된 것이라면, 그들이야말로 또다른 사기꾼들이다.

이미 우리 정치인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동양그룹 못지 않은 사기행각을 벌인 바 있다. 지난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때도 일부 정치인들은 '저축은행 특별법'을 제정하도록 나선다고 설쳤다. 당시에 정치인들 스스로도 "선거를 앞두고 표를 얻으려면 할 수 없다"고 사석에서 시인할 정도로 말이 안되는 공약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런 정치인들은 선거가 끝나면 여론의 반대가 심하다는 핑계를 대면서 애초의 공약은 '없었던 일'로 하면 그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유권자들의 수준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게 돈을 물어내라고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외치거나, 도와주겠다고 하는 정치인들을 믿는 피해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또한번 사기를 당하는 것이다.

금융사고에 대해 '특별법'을 제정해달라는 것에는 '소급입법'이라는 문제가 우선 제기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정부에게 '원금보장'의 책임을 지도록 할 법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점이다.

동양그룹 오너들의 사재를 토해내게 해서 재원을 마련하면 되는 게 아니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돈에 대해 누가 우선권이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또다른 '원금보장'의 재원으로 금융사고에 대비해 적립하는 '예금보험'이라는 재원도 이런 금융사고에 보상할 용도로 쓰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보상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동양사태는 '합법적 유사수신행위'라고 할 만한 금융사고다. 지난 99년 대우사태 이후 최대의 개인 피해자를 양산한 사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유사수신행위'에 당한 피해자가 그 숫자와 규모가 많다는 이유로 정부가 보상해줘야할 '투자 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불완전 판매', 규제와 입증이 가능한 걸까?

하지만 정말 "아무 것도 모른 채 믿고 투자했다"고 주장하는 개인피해자들이 깨달아야할 것은 '금융'은 그 자체가 약탈적 속성을 가졌다는 점이다.

허가받은 금융기관을 통해 사실상 '유사수신행위'를 한 동양그룹과 이를 눈감아준 금융당국의 책임은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허가받은 '유사수신행위'에 걸려든 개인투자자들을 보상해주기 위한 재원은 없다.

일각에서는 '불완전 판매'를 입증하면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있다는 한가닥 희망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유사수신행위를 하는 일당들조차 그들이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점 빼고는, "당신이 다 오케이하지 않았느냐"는 증거를 확보해두는 법이다. 몇 천 만원 받아내기 위해 지리한 소송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고, '불완전판매'라는 주장을 개별적인 투자행위마다 입증하는 것 자체도 매우 힘든 일이다.

동양사태가 재발되지 않으려면, 그리고 합법적 금융기관의 '유사수신행위'에 당하지 않으려면 금융소비자보호 체계를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동양사태를 키웠다는 문제의 금융투자 규제 규정이 24일 본격 시행되는 것도 늦었지만 그나마 '동양사태'가 남긴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합법이든 불법이든 '유사수신행위'가 근절될 수 있을까? 불완전판매라는 논란이 없어질 수 있을 것인가?

최근 미국에서 최대 금융업체인 JP모건이 '쓰레기 채권'을 판매한 혐의로 미국 정부가 한국 돈으로 무려 14조 원의 합의금을 내는 징벌적 조치가 내렸다고 한다. 이것도 '불완전판매'가 입증되어서가 아니라 채권 자체의 신용도를 조작하는 등 상품 자체가 위법적으로 포장됐다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2008년 이후 동양증권을 상대로 세 차례 검사를 실시해 불완전판매 사실을 적발했지만 기관경고나 수천만 원의 과태료 부과 등으로 끝냈다.

금융당국과 금융업체들은 언제든지 '금융사고'를 합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법과 규제 강화만으로 금융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다고 믿다가는 발등만 찍히게 될 것이다.

금융소비자가 금융의 약탈적 속성을 깨닫지 못하고 '투자'라는 이름으로 재테크를 하다가는 '불완전판매'를 입증한다는 사실상 희박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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