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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의 '도덕적 멜트다운', 우리도 '핵마피아' 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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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의 '도덕적 멜트다운', 우리도 '핵마피아' 손에?

[프레시안 books] 오시카 야스아키의 <멜트다운>

<멜트다운>(오시카 야스아키 지음, 한승동 옮김, 양철북 펴냄)은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태 직후부터, 이 사태의 원인과 책임을 둘러싸고 공적 기업과 정부, 정치인들의 믿을 수 없는 유착과 책임회피와 관련해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하려고 애쓴 '논픽션'이다.

▲ <멜트다운>(오시카 야스아키 지음, 한승동 옮김, 양철북 펴냄). ⓒ양철북
저자는 <아사히신문> 경제부 기자를 거쳐 <아사히 신문> 자매지 <아에라>에서 경제 기사를 쓰고 있는 언론인이다. 그는 후쿠시마 사태가 일어난 그해 3월부터 9월까지 125명을 접촉해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멜트다운>을 썼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띠지에 있는 '2012년 고단샤 논픽션상 수상' "이 책은 어리석은 인간들의 이야기다."라는 문구가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탄식형' 결론이 의미하는 바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인간의 역사를 보면, 인간의 지능은 개인은 똑똑할지 모르지만, 집단적 현상으로서 인간의 지능은 '파충류 수준'과 '집단 지성'이라고 일컫는 뛰어난 수준까지 극단적으로 오간다. 다만 역사의 결말이, 그래서 어느 쪽으로 귀결되느냐에 따라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르다. 미래에 대한 비관론과 낙관론이 여기서 갈릴 뿐이다.

인간 집단에 맡긴 '원전'이 안전하다는 신화 붕괴

어떤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하고 파국으로 가는 행보를 겪는 기업들의 사례에 대해 나는 별로 놀라지 않는다. 어떤 인간 집단도 안주할 만한 상황이 되면, 망조로 가게 되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경영학자들이 "위대한 기업은 DNA가 다르다"고 외치면서 이런 기업들을 꼽았지만, 지금 거의 다 망했다. 그런데도 그들이 아직도 위대한 경영학자로 추앙받는 이유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위대한 기업들이 망하는 이유에 대해 "변화에 대한 적응에 실패했다"는 진단은 정말 하나마나한 소리다. 이런 진단 내리고 전문가 소리 듣는 이들이 무수히 많다.

특정 기업들은 망해도 경제는 더욱 발전할 수 있다.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경제 분야의 낙관론자들일 것이다. 재난에 대한 경고도 마찬가지다. 낙관론자들은 웬만한 대형재난이 발생하더라도 인류는 이를 극복해낼 뛰어난 능력을 집단적으로 발휘할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태는 미래에 대해 대체로 낙관론적인 전망을 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조차 미래의 인류에 대한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게 할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다.

핵발전과 관련된 집단들이 '위대한 기업'처럼 군림하다가 망조가 든다면, 일반 기업들이 망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핵발전이 인간의 손에 있는 한 '절대 안전'하다는 것은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태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다. 핵발전이 안전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위대한 기업'들이 몇십년 못가 거의 모두 망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핵발전은 일단 대형사고가 나면, 수습할 묘책이 나올 수 있는지 의문일 뿐 아니라 설혹 그런 대책이 나올 수 있다고 해도 그때까지 엄청난 인명과 환경 피해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런 위험천만한 핵발전을 '안전'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후쿠시마 사태 전후 일본의 원전관계자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알아보고 나서 다시 판단해보기를 권한다.

전후 최악의 재난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비결

<멜트다운>은 후쿠시마 핵발전소와 관련된 집단들이 어떤 언행을 보여왔는지를 꼼꼼하게 기록한 논픽션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핵발전을 인간 집단의 손에 맡기고는 발뻗고 자기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후쿠시마 사태를 보면, 핵발전소가 멜트다운된다는 것은 도저히 예측불가능한 재난의 산물이 아니다. 안전에 대한 대비를 현실적으로 못했다고 해도 책임을 묻기 어려운, 너무나 확률적으로 희박한 사고나 재난에 의해 일어난 멜트다운이 아니라는 것이다.

▲ 후쿠시마 핵발전소. ⓒAP=연합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멜트다운의 진짜 원인은 대지진이나 엄청난 쓰나미라기보다는 그 이전부터 진행된 일본 원전관계자들의 '도덕적 멜트다운'이다. 저자가 "멜트다운된 것은 원전의 노심만이 아니었다"고 서문에서 강조한 것도 이때문이다.

저자는 도쿄전력의 경영진들, 이들을 감독하는 정부의 경제산업성 관료들과 원자력안전위원회, 경제산업성 보안원의 원전 전문가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을 덮친 최대급 재앙 앞에서 사태 수습보다는 책임회피와 정쟁에 몰두한 정치가들이 모두 '멜트다운' 상태였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단순히 주장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도덕적 멜트다운' 상태였던 관계자들의 언행을 꼼꼼히 기록했다. '도덕적 멜트다운' 상태가 된 이들은 공생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그 중심에는 경제산업성이 있다. 저자는 "경제산업성은 전력업계, 원자력 마피아, 돈, 자리로 칭칭 얽혀 있다"고 고발하고 있다. 저자는 "체르노빌과 더울어 인류 역사상 최악이라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나고 그 책임 관청이 경제산업성인데도 불구하고, 탈원전이나 전력자유화 같은 근본적인 개혁에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한 것은 그들이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한통속이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핵마피아인가?

저자에 따르면, 그들에게 '전력을 지킨다", "원전을 추진한다"는 것은 조직의 DNA다. 어떻게 그들은 한통속이며, 원전 추진 의지가 DNA에 박혀있다는 표현이 가능한 것일까? 그들은 이권으로 얽히고 섥힌 '피를 나눈' 가족과 같다. 대표적인 것이 낙하산 인사다. 도쿄전력 등 전력업계에는 경제산업성이 낙하산 인사로 내려보낸 사람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경제산업성은 정책과 예산지원으로, 전력업계는 낙하산 인사를 받아들이면서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현직 관료들도 언젠가 퇴직관료로 낙하산 인사가 아니면 갈 곳이 없는 신세가 될 것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자녀들의 특혜채용 비리도 심심치 않게 드러난다. 개혁적 관료조차 이런 커넥션의 압력에 밀려, 전력업계의 '낙하산 인사'가 되는 수모를 겪는 것을 견디거나, 아니면 힘든 여생을 보내야 한다.

그러니 '원전 커넥션'처럼 이권으로 '피'를 나눈 구조는 좀처럼 깨지지 않는다. '원전 커넥션'에 도전하는 사람은 총리도 무사하기 힘들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총리였던 간 나오토는 당시 어설픈 수습대책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탈원전' 정책을 표방하면서 경제산업성의 에너지정책을 바꾸려하다가 당시 가이에다 경제산업상의 반발에 꼼짝 못했다.

경제산업성장은 후쿠시마 사태에 따른 인책인사라는 명분을 내세워 '원자력 마피아'에 속하는 인물들을 얼굴만 바꾸는 인사를 했다. 경질됐다는 관료들도 두둑한 보너스까지 받으며 퇴직했다.

간 총리는 저자와 인터뷰에서 왜 이런 인사에 개입하지 못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건 얘기하지 않겠다. 그런 얘길 해봤자 소용이 없어요"라고만 말했다. 후쿠시마 사태로 책임을 져야할 주무부처인 경제산업성에서 실제로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 "단호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걸 누구나 느끼고 있지만, 그 누구도 개혁을 할 수 없었다. 경제산업성과 전력업계가 만들어 놓은 질서는 완강했다"면서 "간 내각은 8월30일 총사퇴했다"고 적었다.

▲ 부산 핵발전소. ⓒ연합뉴스

부산처럼 한국의 제2도시라는 곳에 버젓이 핵발전소가 들어서 있는 것을 보면, 저자 오시카 야스아키가 기록한 "어리석은 인간들의 이야기"는 곧 한국에도 적용된다. 한국의 원전에서 대형 사고가 터지면, 오시카 야스아키는 한국의 핵마피아보다는 이를 지켜보기만 하는 한국 국민들을 '어리석은 인간들'로 기록하게 될지 모른다. 하긴 세계 최고의 '안전 신화'를 자랑하던 일본 국민도 '핵마피아'에 놀아나며 원전에 관한 한 이미 '어리석은 인간들'의 집단으로 전락했다.

부산 신고리 원전들이 저질 케이블로 가득차 900킬로미터가 넘는 이 부품을 전부 교체하느라 언제 완공될지 모르게됐다. 그나마 저질 부품이 완공 전에 교체될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넘어가도 좋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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