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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 무슨 달? -한가위에 부치는 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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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 무슨 달? -한가위에 부치는 달 이야기!

서연의 '농막(農幕)에 불을 켜고' <29>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닷새장이 서는 봉평의 어느 장날. 소설 속의 허생원은 달밤에 물레방앗간에서 성서방네 처녀와 하룻밤 몸을 섞었다. 방앗간 위에 떴던 그 달을, 작가는 메밀꽃이 핀 밤길 위에서 놓치지 않고 다시 잡아냈다. 관능적인 달이었다. 이 소설이 발표된 1930년대라면 이미 ‘바람’이 불고는 있었지만, 아직 ‘조신’한 시대였다. 그런 조신한 시대에 효석은 하늘의 달을 지상으로 끌어내렸다. 그리고 다시 그 달에 숨을 불어넣어 주고, 홀로 그 짐승 같은 숨소리를 몰래 엿듣고 있었다. 그 숨소리는 방앗간 속 허생원의 숨소리이기도 했다. <효석문화제>가 지난 10일부터 열흘간 평창군 봉평에서 열렸다. 효석의 고향인 봉평은 내가 사는 산골의 이웃 마을이기도 하다. 가난한 농부들은 메밀밭을 일구고, 대처에서 찾아온 사람들은 메밀부침개에 농주를 마시거나 콧등치기 국수를 먹었다. 더러는 달밤에 나와 메밀꽃이 핀 밭에서 밤하늘의 그 달도 보았으리라.

메밀밭에 뜬 그 달은 유정(有情)한 달이었지만, 내가 사는 농막(農幕)엔 언젠가 무정(無情)한 달 하나가 떴다.

“제가 보는 저 달을 님께서도 보고 계신다면, 저 달은 ‘法月’인가요?”

아아, ‘법월(法月)’이라. 예전에 한 독자님이 보내주신 글이었다. 그것은 물음이 아닌, 독백이었다. 옛사람들은 어둠을 밝히고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그런 진리를 달에 빗댔다. 그 달이 ‘법월(法月)’이었다. 내가 보는 달이 따로 있고, 네가 보는 달이 따로 있다면 그건 ‘법월’이 아니다.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근원적으로 ‘하나’이다. 그 독자님과 내가 함께 본 달은 다만 그 ‘연결고리’의 상징이었다.

그 독자님은 지난번에 내가 썼던 글, <달은 져도 하늘을 떠나지 않는다네!>를 읽고 다시 글을 보내오셨다.

“白色도 엄연한 ‘색’이거늘, 백색으로 돌아간다?
무식한 염색장이 같으니라구!
‘素色’이라면 또 몰라.

얼쑤, 그 말을 청맹과니처럼 받아 적은 사람하구는.

-오늘 합장하기 싫은 사람 付”
다시 그 글의 본문을 적는다.

<어떤 천연 염색가의 말을 듣다가 깊은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옷감에 밴 그 천연물감이 햇빛을 받아 색이 바래가는 걸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백색(白色)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백색은 ‘무(無)’이고 모든 사물의 근원이지요.”

그는 옷이 갈수록 낡고 헤지는 것도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옷의 입장에선 그 모든 게 일종의 ‘자기완성’이라고도 했다. 듣고 보니 그곳에도 ‘무상’이 있었다.>

‘청맹과니처럼 받아 적은 사람’이란 물론 필자인 나를 두고 한 말이다. 이 눈 밝은 독자님은 내 글에 무슨 큰 허물이라도 있는 것처럼, 짐짓 화를 단단히 내고 계셨다. 그 독자님의 현심(玄心)은 무엇일까. ‘백(白)’이나 ‘소(素)’는 모두 ‘희다’는 뜻이지만, 백색의 ‘백(白)’은 현상계의 색(色)이고, 소색의 ‘소(素)’는 도(道)가 현현하는 법계(法界)의 색이라는 뜻일까. 두 눈을 멀쩡하게 뜨고도 앞을 보지 못하는 그 ‘당달봉사’가 바로 ‘청맹과니’이다. 심청이 아버지도 당달봉사였다. ‘당달봉사’로 내침을 받은 내가 과연 어떻게 달을 볼 수 있으며, 그 달을 두고 또 이 글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크다.

중국의 선종사(禪宗史) 연구의 권위자로 잘 알려진 야나기다 세이잔(柳田聖山)은 어둠을 뜻하는 ‘검을 현(玄)’자에 대해 문학성 넘치는 필치로 묘사한 적이 있다.

“‘현(玄)’이란 본디 도가(道家)의 용어이다. 그것은 인간의 인식작용 너머에 존재한다. 이 도가적인 ‘현’의 사상은 중국의 광막한 자연을 내리 덮는 밤의 어둠이 그 모태이다. 그 어둠 속에서 삼라만상이 적막할 때, 산상(山上)이나 들판 혹은 강가에서 홀로 깨어있는 자, 누구인가. 그는 그곳에서 우주와 인간존재의 근원을 응시한다. 그가 그곳에서 만난 바로 그 현묘한 정신세계, 그게 바로 ‘현’이었다.”

어둠 속에서는 육안이 의미를 잃는다.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그래서 심안(心眼)이 깨어난다. 어둠을 ‘현’의 모태라 하니, 어둠도 인연에 따라서는 이렇게 형이상학적이다. 사실 ‘검다’는 뜻을 가진 문자로는 ‘흑(黑)’자도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육안으로 보는 어둠은 ‘흑’이고, 심안으로 보는 어둠은 ‘현’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싶다. <노자(老子)>를 보면 ‘현’은 도리 없이 도가의 용어다. ‘현지우현(玄之又玄)’이나 ‘현람(玄覽)’ ‘현빈(玄牝)’ 따위처럼 ‘현’은 도처에서 출몰한다.

그 ‘현’의 어둠을 뚫고 달은 또 ‘둥실!’ 떠오른다. 공자와 맹자는 그 달을 ‘명월(明月)’이라 부르고, 노자(老子)와 달마(達磨)는 그 달을 ‘현월(玄月)’이라 일렀다. 밝은 달을 두고 ‘밝다’고 말하지 않고 ‘검다’고 한 게 바로 도가와 불가의 언어였다. 그 현월은 다름 아닌 법월이기도 했다.

설을 쇠며 묵은해를 보내는 걸 ‘과세(過歲)’라 하는 것처럼, 가을을 나는 것을 ‘과추(過秋)’라 한다. 그 ‘과추’의 한 복판에 추석이 있다. 그래서 ‘중추(仲秋)’다. 이 ‘중추’의 달은 초승에서 상현을 거쳐 다시 보름달로 그 몸이 부풀어 오를 때, 묻는다. “그대는 이번 추석에 어느 곳에서 나를 만날 작정인가?” 나처럼 타향에서 농막 생활을 하는 사람도 그렇고, 객지를 떠도는 사람들은 모두 달의 그 물음에 답해야 한다.

80년대 초반쯤이었을까. 추석 한가위의 달밤 풍경을 소재로 한, 흑백 판화 한 점을 기억한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떠 있고, 그 달을 바라보는 앳된 처녀가 있었다. 화제(畵題)를 보니, 올 추석에도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처녀는 달을 보며 깊은 수심에 잠겨 있었다. 그 시대의 모멸적인 언어관습 - 아마 그 죄 값을 치러야 하겠지만 - 을 우선 그대로 빌리자면, 그녀는 ‘공순이’였다. 어느 순박한 시골처녀가 산업화인지 무슨 ‘두억시니’인지를 겪어내느라 얻은 신분이었다. 사연은 모른다. 다만 그 시대의 노동현장이란 게 얼마나 척박했던가. 열악한 노동환경과 임금, 그것도 다시 임금체불 혹은 해고. 그래서 노동운동의 극한에는 절망적인 분신마저 있었다.

그 흑백 판화 한 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었던 까닭은, 아마 ‘귀향’하지 못했던 아픈 상처가 갖는 어떤 ‘보편성’ 때문인 것 같다. 사연은 다르지만, 그런 아픈 기억을 누구나 갖고 있으리라.

돌아보면 마음속에 떠오르는 달들이 많다.

그 노래, <월남의 달밤>이 유행했던 게 언제였던가. 60년대 후반쯤이었던 것 같다. “남남쪽 먼먼 나라 월남의 달밤 / 십자성 저 별빛은 어머님 얼굴”로 시작되는.

베트남전쟁의 종전을 전후로 리영희‘교수’가 쓴 <전환시대의 논리>와 <우상(偶像)과 이성(理性)>이 나왔다. 다시 세월이 더 흐른 후, 역시 그가 쓴 <베트남전쟁>이 나왔다. ‘우상’이 지배하던 시기에 ‘월남의 달밤’은 ‘어머님의 얼굴’을 떠올리는 ‘서정(抒情)’이었다. 그러나 ‘이성’을 회복하고 다시 바라보았을 때, 그 ‘달밤’은 치명적일 만큼 부끄러운 ‘서사(敍事)’였다.

영화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도 있었던가.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 이제서 돌아 왔네” 김추자가 주제음악을 불렀던 바로 그 영화다.

‘월남의 달밤’과 ‘김상사’를 생각하니, 문득 ‘이라크의 달밤’과 ‘김일병’ ‘장소위’가 다시 떠오른다.

지난 7월 광화문 주변에서는 이라크 파병결정의 철회를 요구하는 반전평화 시화전이 열렸다.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주최했다.

고은 시인이 썼다.

“김일병 가지 말아라 / 이라크 전쟁은 가장 추악하고 가장 비겁한 전쟁이다 / 장소위 가지 말아라 / 이라크 전쟁은 백년전쟁이다 / 결코 내일 모레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김상사가 월남에 갔던 것처럼, 결국 김일병과 장소위도 이라크에 갔다. 그들이 스스로 간 게 아니라, ‘부시(Bush)’로 상징되는 북미대륙 카우보이(Cowboy)의 후예들을 두려워한 이 땅의 정치권력과 자본이 그들을 이라크로 보냈다. <월남의 달밤>과 <이라크의 달밤>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 것일까. 초기 미국사를 보면 수백만, 수천만 명에 이르는 북미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그 카우보이들의 손에 살육됐다. 차라리 “숲의 나뭇잎 수를 헤아리는 것이 훨씬 쉬워 보일 정도로 그 수가 많았다”고 하는, 그 버팔로(Buffalo) 떼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그들의 발굽소리와 그들이 달릴 때 일으켰던 먼지구름은 신화나 전설이 되었다. 그 살육이 100여 년도 훨씬 더 지나 다시 이라크에서 계속되고 있다.

80년 벽두에 광주에서는 대학살이 벌어졌다. ‘광주민중항쟁’ 희생자들의 첫 묘역이 광주의 ‘망월동(望月洞)’에 있었다. 어찌해서 이름도 ‘달을 바라본다’는 뜻의 ‘망월’이었을까. 그곳에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절망의 달이 있었다. 그러나 그 달은, 어느 책의 제목처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다시 떠올라야 하는 그런 달이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은 망월동의 그 달을 잊고 살았다. 그래서 또 ‘망월(忘月)’이기도 했다.

92년 겨울, 대륙에서 만난 달도 잊지 못한다. 중국 천진에서 두만강이 흐르는 길림성의 도문까지 28시간 동안 기차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뱀처럼 긴, 장시간의 그 여행은 좀 경이롭기도 하고 외롭기도 했었다. 기차가 만주 벌판을 지날 때 창밖을 보니 폭설로 덮여 있었다. 깊은 밤, 기차가 그 벌판의 한 간이역에서 정차를 했다. 밖을 나와 보니, 얼마나 추웠던지 곧 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광대한 그 만주 땅은 밤이었지만 폭설로 하얗게 보였다. 하늘을 보니 달이 떠 있었다. 아, 고구려의 달이었다. 그 달은 또 한말(韓末) 이후의 유랑민의 달이기도 했다.

사사롭게는 ‘물속에 반달이 떴네’라는 ‘수중반월현(水中半月現)’의 그 달과도 이런 저런 인연이 깊다. 선사(禪師)들은 ‘마음 심(心)’자를 곧잘 ‘반달’에 비유했다. 그 생김새가 서로 닮았던 까닭이다. 반달이 호수가 아닌 강물 위에 떴을 땐, 앗! ‘삼점장류수(三點長流水)!’ ‘마음 심(心)’자를 이루는 그 세 개의 점이 그만 물을 따라 길게 흐르고 만다. 언젠가 남도의 한 선원에서 나는 이 반달을 호수와 강이 아닌 하늘에서 보았다. 공부에 모든 걸 걸다시피 했으나 공부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밤 10시도 훨씬 넘었던 어느 날 밤이었다. 비가 내린 뒤끝이어서 몹시 추웠다. 좌선을 끝내고 선방을 나와 그 스산한 하늘을 보니 반달이 보였다. 공부에 깊이 절망하고 있었던 터라 나는 그 달을 바라보다가 차라리 땅속 깊이 묻혀서 이제 그만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크리슈나무르티의 달도 아름답다. 그의 달은 ‘명상의 달’이었다.

“저녁에 새로 나온 달을 바라보라. 그냥 보라. 다른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서 금방 등을 돌리지 말고, 마치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보라. 당신과 달 사이에 교감이 이루어진다면, 그때 당신은 사람과도 교감을 가질 수 있다.”

‘심월(心月)’과 같은 달도 있다. 밝고 맑은 마음 혹은 도(道)를 깨달은 마음을 달에 빗댔다. 그리운 달이다.

종로 인사동에서 어느 겨울밤에 있었던 소화를 끝으로 달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다. 몇 해 전 겨울날 딸아이인 선재와 함께 종로 인사동에 나간 적이 있다. 선재가 예닐곱 살 쯤 됐던 것 같다.

선재랑 인사동에 가면 세상 무너져도 ‘뽑기’를 사야 한다. ‘뽑기’는 ‘달고나’와 더불어 우리 세대가 갖고 있는 추억 속의 그 ‘불량식품’이다. 불로 달궈진 철판 위에서 설탕과 소다를 녹여 만들었다. 누름판으로 누르면 초승달과 별, 십자가 따위의 모형이 찍혀 나왔다. 이 ‘뽑기’는 달다 못해 썼다. 그 ‘뽑기’를 선재가 몹시 좋아했다. ‘뽑기’를 사들고 인사동을 빠져나오는데, 기분이 ‘짱!’이었던 선재가 갑자기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아빠, 저, 이 담에 커서 인사동에서 ‘뽑기’장사하면 안 될까요?”

“좋다. 아빠는 선재가 무슨 일이든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 ‘뽑기’가 그렇게도 좋더냐?”

선재가 초승달 모형의 ‘뽑기’를 입에 물다가 다시 말했다.

“꼭 그래서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어른들한테는 팔고요, 친구들한테는 그냥 나눠주고 싶어요.”

아마, 그럴 듯싶다. 우리 어른들은 시나브로 동심(童心)을 만나지 못한다면 곧 가슴이 메말라 죽고 말리라. 갑자기 마음이 아득해지고 한편 산란하기도 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쨍!”

나의 눈길과 그 ‘가난한’ 부녀를 내려다보고 있던 달의 눈길이 허공 어디쯤인가에서 부딪히고 말았다. 그만 들켜 버렸다. 달은, 달이 아니라 ‘달님’이었다.

(한가위 달을 바라보시는 모든 분들의 마음에 평화가 함께 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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