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봄빛이 깊어갈 무렵이었다. 산과 들이 부산해졌다. 윤달엔 무슨 일을 해도 부정을 타지 않고 무탈하다는 속설이 있다. 그러다보니 산에서 조상 묘를 찾아 사초를 하는 마을 사람들이 많았다. 들녘에선 또 논에 물을 가두기 시작했다. 모를 심을 때가 가까워진 까닭이다. 산자락에 딸린 홍화밭에서 일을 보고 내려오던 길이었다. 막 마을 고샅길로 들어서는 참인데 이웃집 할머니 한 분이 나를 불러 세웠다.
“떡 좀 드셔보시래요.”
그날은 품을 사서 논일을 하는 집이 있었는데, 그 집 할머니였다. 끌고 나온 외발 리어카의 안을 보니 보자기가 덮인 바구니가 눈에 띄었다. 품꾼들에게 새참을 주고 오는 길로 보였다. 처음엔 손사래를 쳤다. 내가 본래 떡을 즐겨하지 않는 탓이다. 그러자 할머니가 다소 퉁명스럽게 말했다.
“감자떡이래욧!”
‘떡도 떡 나름이지, 그래, 이 귀한 감자떡을 사양하겠다는 거냐’는 말투였다. 정말 감자떡은 사양할 ‘물건’이 아니다. 몇 번 먹어본 적이 있는 그 떡은 별미였다. 할머니가 건네준 감자떡을 보니 감자녹말가루로 손수 만든 떡이었다. 요즘은 감자떡도 상품화해서 빵을 찍어대듯이 대량 생산된다. 이 할머니처럼 항아리에 감자를 썩혀 만드는 경우는 드물다. 손도 많이 가고 건사하기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거무스름한 떡은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씹히는 촉감이 쫄깃쫄깃한 그 떡은 무엇보다도 무미(無味)가 맛이었다. 할머니에게 고맙다며 덕담을 하다가 장난기가 좀 났다.
“할머니, 저 산 밑에 있는 밭 좀 보세요. 눈이 내렸는지 밭이 하얗습니다.”
할머니는 다행스럽게도 ‘견지망월(見指忘月)’의 우(愚)를 범하지 않고,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열심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소득이 없는 것 같았다.
“어디, 어디?”
“저기, 저기.”
그녀는 여전히 소득이 없는 기색이었다. 결국 그 밭이 있는 곳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저 미루나무 건너편 말입니다.”
내 말을 들은 할머니의 눈 꼬리가 마침내 치켜 올라가고 말았다. ‘이 화상이 귀한 떡 먹고 무슨 싱거운 소리를 하고 있느냐’는 투였다. 참으로 그 화창한 봄날에 눈은 무슨 얼어 죽을 눈이겠는가.
그 밭의 모든 이랑엔 흑색 비닐이 씌워져 있었다. 그걸 잘 아는 할머니에게 그 밭은 ‘시커먼’ 밭이었다. 그런 밭을 두고 하얗다고 말하니 눈 꼬리가 올라갈 수밖에. 그러나 내 눈엔 폭설이 내린 것처럼 분명 하얗게 보였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건 멀리서 보면 모두 하얗게 보이는 법이다. 그 밭의 흑색 비닐도 봄날의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무심하게 보아야 하얗다. 마음속에 흑색 비닐을 떠올리며 바라보면 결코 하얗게 보이지 않는다. 7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았으니 인생으로 치면 백전노장인 그 할머니도 그만 자기 마음에 속고 말았다. 가만, 가만. 아니 나는 또 뭔가. 할머니는 실상(實相)을 보고 있는데, 나야말로 공화(空華)를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에라 만수! 어렵구나!
대학시절, <대지(大地)>의 작가인 펄벅(Pearl S. Buck)의 산문들을 읽다가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그녀의 산문은 종종 ‘대지’의 실상을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농부가 쟁기로 막 갈아엎은 논흙을 두고 그녀는 ‘빛난다’고 묘사했다. 그런가 하면 가뭄에 타들어간 흙을 두고 ‘하얗다’고 썼다. 정말 그렇게 보이는가. 시골에서 보낸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본 나는 “그렇다”고 동의하며 그녀의 산문을 읽었다. 오히려 대지에 대해 모호한 형태로 갖고 있었던 내 기억에 그녀가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기실 대지를 온몸으로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빛난다’거나 ‘하얗다’거나 하는 말을 쉽사리 찾아낼 수가 없다. 중국에서 20여 년을 살았던 펄벅은 그 대륙의 ‘대지’를 바로 보았음이 분명했다.
펄벅이 ‘빛난다’는 표현을 썼을 때, 그녀는 그걸 통해 대지의 ‘생명력’을 드러내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반면 ‘하얗다’는 표현에선, 오랜 가뭄 끝에 그 생명력을 상실하고 그래서 몹시 창백해진 그 대지의 표정을 그려내고자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상징이나 은유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실제로 대지가 빛난다거나 하얗다는 느낌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농사를 짓고 살다 보면 경이로운 일들을 겪을 때가 많다.
오래 전의 기억이지만, 한 사진작가가 ‘연(蓮)’을 소재로 개인전을 연 적이 있었다. 연꽃의 생성과 개화 그리고 낙화 후의 연밥 풍경 등 연의 ‘생로병사(生老病死)’가 그 주제였다. 연꽃은 그 꽃에 가탁된 종교성이나 철학성도 아름답지만, 시각적으로도 미감(美感)이 넘치는 꽃이다. 그런데 그 작품들 속에 얼핏 무미건조해 뵈는 작품 하나가 보였다. 늪에 자리한 연의 군락을 찍은 것이었는데, 아직 꽃을 달기 전이었다. 연잎이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그 넓은 잎을 뒤집고 있었다. 작가는 연잎을 매개로 ‘바람’을 피사체로 선택한 것일까. 뒤집어진 연잎은 ‘하얗게’ 보였다. 나는 그 사진을 보며 감탄했다. 바람의 색깔을 보았던 것이다. ‘하얀’ 바람이었다.
이 산골에서도 ‘하얀’ 바람을 종종 만난다. 그 바람은 강 건너 산에서 주로 산다. 산 중턱엔 오리나무 군락이 있다. 바람이 불면 그 나무들은 곧잘 잎을 뒤집었다. 그 뒤집어진 잎들은 ‘하얗게’ 보였다. ‘하얀’ 바람이 바로 그곳에 살고 있었다.
한 겨울, 길이나 밭의 땅이 얼면 그 땅도 ‘하얗게’ 보인다. 그 땅이 녹을 땐 ‘빛나고’, 축축이 젖은 그 땅은 또 ‘붉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우엉수염진딧물 때문에 홍화밭이 한 순간 ‘검게’ 보였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누군가가 그 현장에 있었다면, “저걸 어떻게 ‘검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고 항의할 수도 있다. 그의 눈은 그의 눈이고, 나의 눈은 나의 눈이니 달리 방법이 없다.
사실 ‘하얗다’거나 ‘붉다’거나 ‘검다’거나 혹은 ‘빛난다’는 수사는, 자연과학적으론 올바른 표현이 못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건 착시는 아니다. 나는 사물을 그와 같이 보는 감수성이 우리 삶의 어떤 본질과 깊이 닿아 있다고 믿고 있다.
이른 아침 들녘의 논에서 벼를 만나본 적이 있을 게다. 벼 잎에는 크고 작은 이슬들이 무수히 맺혀 있다. 그 이슬들이 아침 햇살을 받으면 은구슬이 되어 빛나기 시작한다. 밤하늘처럼 논에서 별이 뜨는 것이다. 그 빛나는 별들로 논은 한 순간 ‘하얗게’ 보인다.
원광(圓光)이라는 게 있다. 배광(背光)이나 광배(光背)라고도 한다. 불교에선 불상 뒤에서 빛나는 둥근 금빛의 테를 말한다. 그 원광은 기독교의 성화(聖畵)에도 등장한다. 성인을 둘러싸고 빛나는 금빛이 바로 그것이다. 그 원광을 논에서 혹은 풀밭에서 만날 수도 있다. 이제 막 떠오르는 아침 해를 등지고 논둑에 서보라. 그래서 벼 위에 자신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을 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라. 그곳에서 그 그림자의 상반신을 둘러싸고 눈부시게 빛나는 무수한 이슬방울을 만날 수가 있다. 그 빛나는 이슬방울이 바로 원광을 이룬다. 금빛 원광이 아닌, ‘하얀’ 원광이다. 나는 이 원광을 귀농한 첫해에 어느 논둑에서 처음 만났다. 처음 본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는 원광에 둘러싸인 ‘나’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온 몸에선 소름이 돋아났다. 나는 ‘나’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했다.
<삽전가(揷田歌)>는 명대(明代)의 전우(顚愚)선사가 쓴 시(詩)이다. 선가(禪家)의 노동요라 할 만하다. 그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벼 한 포기 심으니 한 부처 나타나고,
천 포기 만 포기 모두가 부처일세.”
(揷得一莖一佛現 千莖萬莖皆如來)
벼만 부처이겠는가. 아침 이슬과 햇살, 논둑에 서 있는 자의 그림자, 모두가 부처이다. 다만 늘 그러하듯 그 ‘서 있는 자’만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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