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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회의 ‘삼국지(三國志) 바로 읽기'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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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운회의 ‘삼국지(三國志) 바로 읽기' <30>

주유, 이상한 남자

***들어가는 글**

원균(元均 : ?~1597) 장군을 아시죠. 대표적인 공적(公敵)이자 간신배(姦臣輩)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원균은 이순신(李舜臣) 장군을 모함하고 이순신 장군의 공을 가로챈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구국의 영웅을 모함하다니 국가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간신배가 아닐 수 없지요.

그런데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국사 선생님이 “그런데 말이야, 선조 임금이 원균을 1등 공신에 봉했단 말야. 좀 이상하지? 그런 게 역사야.”라고 하셨지요. 조금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영화는 빠짐없이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하였기 때문에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왜냐하면 그 영화 모두에는 원균이 사악한 간신배로 나오기 때문이죠.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원균의 행위에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세월은 흐르고 이 문제에 관심이 멀어졌지요. 그런데 근래에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라는 책이 나왔는데 원균 장군에 대한 이야기가 있더군요. 이 책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의 원균은 이순신을 시기해 모함한 역적이라기보다는 이순신과 승진 문제로 인한 경쟁적인 관계에 있었던 것이지 일반적으로 알려지듯이 민족적 공적(公敵)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즉 원균이 이순신의 뒤를 이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것은 원균의 계략이 아니라 정신없는 조선의 조정(朝廷)이 일본의 장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계략에 넘어 간 결과였다는 말이지요. 실제로 원균은 용감한 장수이자 왜적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공신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림 ①] 원균의 사당과 묘소

문제는 이순신 장군을 성웅(聖雄)으로 모시고 그 숭고한 뜻을 더욱 기리기 위해 후세 사람들이 원균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것이죠. 그런데 성웅 이순신은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그 위대성은 변하지 않는데 왜 굳이 원균 장군을 등장시켰을까 하는 점입니다.

이것은 역사학자들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가진 부조리(不條理)와도 관계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원균이 있으므로 이순신 장군의 영웅적인 업적들은 더욱 더 빛나게 되는 불합리성(不合理性)이 우리 의식 내부에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즉 이순신 장군은 이런저런 간신배들의 모함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구국의 일념으로만 나라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애쓰시다 장렬하게 산화(散華)하신 것이라는 말이죠. 이렇게 함으로써 성웅 이순신의 삶은 보다 드라마틱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증폭시키고 그 희생이 더욱 돋보이게 되는 것이죠.

나관중 ‘삼국지’에도 이런 사람이 없을까요? 제가 보기엔 주유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1) 주유(周瑜), 이상한 남자**

지난 강의에 이어 이번에는 주유에 대해 해설해 드리겠습니다. ‘삼국지’ 마니아 여러분들은 대부분 아시는 이야기들이라 재미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강좌가 학생들이나 일반 독자 여러분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 마니아 여러분들은 이해하시기 바랍니다(다음 주에는 더욱 흥미 있는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삼국지 바로 읽기’라는 측면에서는 촉한공정의 최대 피해자 중의 한 사람인 주유를 제외하면 말이 안 되겠죠.

나관중 ‘삼국지’에서 가장 나쁘게 왜곡 묘사된 사람 두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저는 조조(曹操)와 주유(周瑜 : 175-210)를 꼽겠습니다. 나관중 ‘삼국지’에서 주유는 마치 제갈량을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요즘 어린이들이 쓰는 표현으로 말하면 ‘삼국지’의 대표적인 ‘싸이코’지요. 이 때문에 제갈량을 아끼는 많은 사람들에게 주유는 이상한 남자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지요. 먼저 나관중 ‘삼국지’에 묘사된 부분들을 살펴봅시다.

나관중 ‘삼국지’에서 제갈량은 오나라와 위나라를 적벽대전에 끌어들이기 위해 주유에게 ‘동작대부(銅雀臺賦)’라는 시를 읊습니다. 그런데 제갈량은 원래 시구를 좀 바꿔 “조조가 손책과 주유의 아내, 즉 이교(二喬)를 데려와 아침저녁으로 즐기겠다.”는 식으로 읊어 내려가자 주유가 발끈하여 조조와의 전쟁에 대한 마음을 굳히는 것으로 나옵니다(44회).

주유는 즉시 손권을 찾아가서 강경하게 전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손권은 조조의 침공을 두려워하여 전쟁 여부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제갈량이 주유를 부추겨 전쟁을 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한 것이죠. 이 일이 있은 후 주유는 “제갈량은 미리부터 주공(손권)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군. 역시 모든 계략이 나보다 한 수 위다. 그는 필시 오나라의 두통거리가 될 터이니 미리 죽여야 겠다.(孔明早已料着吳侯之心.其計又高我一頭.久必爲江東之患,不如殺之)” 고 생각하고 노숙에게 말하자 노숙이 “아직은 조조와 전쟁 중이니 안 된다(肅曰 不可 今操賊未破).”고 말립니다(44회).

나관중 ‘삼국지’를 보면 유독 주유는 제갈량에 대한 라이벌 의식을 강하게 느껴서 몇 번씩이나 제갈량을 죽이려 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그것을 중요한 대목만 모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주유가 제갈량에게 조조의 보급로를 끊으라고 합니다. 그러니 제갈량은 주유가 육전에 능하지 못한 모양이라고 받아치자 주유는 “나더러 육전을 못한다고? 가기 싫다면 그대로 두오. 내가 직접 보급로를 끊겠소.”라고 해버립니다. 그러나 나중에 제갈량의 말장난에 속은 것을 안 주유는 노숙에게, “과연 제갈량은 나보다 10배나 뛰어난 인물이군요. 지금 그를 죽이지 않으면 우리는 큰 화를 입을 것이오(此人見識 勝吾十倍 今不除之 后必爲我國之禍)”라고 합니다(45회).

② 주유가 장간(蔣幹)에게 농간을 부려 조조를 우롱하여 채모(蔡瑁)와 장윤(張允)을 죽게 한 일이 제갈량에 의해 간파되자, 주유는 깜짝 놀라 “내 이 자를 가만히 놓아두어선 안 되겠소. 죽여야겠소(瑜大驚曰 此人決不可留 吾決意斬之).”라고 합니다(46회).

③ 주유는 제갈량을 죽이기 위해 열흘 안에 화살 10만개를 마련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제갈량은 사흘 안에 화살을 준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주유는 정색을 하며 “군무의 중에는 말장난하는 법이 없습니다(孔明曰 只消三日 便可拜納十 萬枝箭.瑜曰 軍中無戱言).” 라고 하니 제갈량은 그럴 일은 없다고 말하고는 나갑니다. 제갈량이 나가자 주유는 노숙에게 “(제갈량이) 스스로 죽으려고 작정한 일이지 내가 시킨 일이 아니오(瑜曰 他自送死 非我逼他). 이제는 제대로 걸렸군.”이라고 합니다(46회).

④ 모든 준비를 마치고 화공으로 조조의 대군을 섬멸하려던 주유는 동남풍이 불지 않아서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데 이 때 제갈량이 자기가 동남풍을 불어 주겠다고 하더니 약속한 날이 되자 정말 동남풍을 부릅니다. 그러자 주유는 깜짝 놀라며 “과연 제갈량은 천지조화의 법을 통달하고 귀신도 모를 술법을 쓰는 사람이다. 살려두었다가는 오나라에 큰 화근이 될 것이다. 빨리 죽여 후환을 없애야겠다.(瑜駭然曰 此人有奪天地造化之法 鬼神不測之術 若留此人 乃東吳禍根也 及早殺 免生他日之憂)” 라고 하면서 병사들을 시켜 추격했으나 제갈량은 이미 유유히 오나라를 떠난 뒤였지요(49회).

이상을 통해서 보면 주유는 참으로 이상한 사람입니다. 주유는 끊임없이 제갈량에게 지나친 라이벌 의식을 느껴서 그를 죽이려하고 있습니다. 그럴 능력도 없으면서 말이죠.

주유의 이 같은 책동에 제갈량이 그저 당했으면 아마 재미가 없겠죠? 나관중 ‘삼국지’에는 제갈량이 주유를 약 올려 기절시킨다(또는 격노하게 만들다)는 의미로 공명일기주유(孔明一氣周瑜), 공명이기주유(孔明二氣周瑜), 공명삼기주유(孔明三氣周瑜) 등의 대목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단히 보죠.

① 적벽대전 후 주유가 부상을 당해가며 조조군의 거점 남군(南郡)을 공격하였는데 겨우 성을 함락했는가 했더니 이미 조자룡이 성을 차지해버립니다. 제갈량의 계략이죠. 울화가 치민 주유는 상처가 터져 혼절합니다. 첫 번째 기절입니다(51회).

② 주유는 유비의 세력이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고 손권의 누이동생을 정략 결혼시키면서 유비를 인질로 형주를 탈환하려 하는데 제갈량이 선수를 쳐서 손부인을 데리고 유유히 오나라를 탈출합니다. 이것을 안 주유는 두 번째로 혼절합니다(55회).

③ 주유는 유장이 다스리는 촉 땅을 친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이동시키면서 기회를 보아 형주를 공격하여 형주를 탈환한다는 계획을 세우지만 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상처가 터져서 세 번째의 혼절을 하고 주유는 죽고 맙니다. 이 때 주유는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하며 “왜 하늘은 주유를 낳고 제갈량을 낳았습니까?(仰天長嘆曰 旣生瑜 何生亮)”라고 소리칩니다(57회).

[그림 ②] 화가 나서 혼절하는 주유(드라마의 한 장면)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왠지 유명한 만화 영화인 ‘톰과 제리’가 생각납니다. 악당 고양이가 꾀 많지만 선량한 쥐를 잡아먹으려다가 항상 당하는 만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영화를 자꾸 보다보면 이상하게 고양이에게 동정이 가게 됩니다.

그러면 위의 내용들은 과연 사실일까요? 제갈량을 아끼는 독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위의 내용 가운데 사실은 하나도 없습니다. 먼저 ‘동작대부(銅雀臺賦)는 조식(曹植 : 조조의 아들)이 지었던 것(212)은 확실하지만 그것은 적벽대전(208)이 지난 후의 일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제갈량이 주유를 약 올리기 위해 읊었던 동작대부는 원래의 작품 안에는 없던 구절을 제갈량이 임의로 첨가시켰습니다. 즉 원래의 동작대부에 제갈량은 “이교를 동남에서 차지해 아침저녁으로 함께 즐긴다(攬二喬于東南兮 樂朝夕與之共)”라는 구절을 집어넣은 것입니다.

[그림 ③] 동작대의 전경(드라마의 한 장면)

실제로 주유가 제갈량을 개인적으로 만난 기록은 정사에 없습니다. 정사에는 다만 제갈량이 손권을 설득하자, 손권은 매우 기뻐하며 즉시 주유·정보·노숙 등 수군 3만 명을 파견하여 제갈량을 따라 유비 있는 곳으로 가서 유비와 힘을 합쳐 조조에게 대항하도록 했다(촉서 : 제갈량전)는 말만 있지요.

그리고 지난 강의에서 보았듯이 제갈량이 화살을 10만개 주워온 일도 없고, 동남풍을 부른 적도 없으며, 장간은 주유에게 다만 항복을 권유하는 사절로 간 것뿐이지 그가 반간계에 빠진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 사정을 제갈량이 알 까닭도 없는 것이죠.

나관중 ‘삼국지’는 주유를 마치 자기 아내를 조조가 취하려 하기 때문에 발끈하여 적벽대전을 결행하게 된 것처럼 묘사하여 주유가 도량이 좁고 한심한 범생이로 묘사하는 데 주력합니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없겠지만 대정치가들이 자기 아내를 희롱하는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즉석에서 국가의 대사를 결정한다니 말이 됩니까? (만약 그런 정치가가 있다면 일찌감치 정치권을 떠나는 게 좋습니다)

공명일기주유, 공명이기주유, 공명삼기주유 등의 이야기도 사실이 아니죠. 정사에는 주유가 부상을 당하면서 남군을 점령하고 남군태수가 됩니다. 주유는 “유비는 영웅의 기상이 있어 남의 지배를 받을 사람이 아니니 성대한 궁궐을 지어 유비를 오군(吳郡)으로 유인하여 묶어두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손권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유장이 다스리는 촉 땅을 공격하려고 준비하다가 파구(巴丘)에서 병사합니다(오서 : 주유전).

이상의 내용을 통해서 보면 흔히 어른들이 “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라는 식으로 나관중 ‘삼국지’를 하나의 처세서(處世書)로 권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나관중 ‘삼국지’로 상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크게 낭패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죠. 나관중 ‘삼국지’의 인간에 대한 분석 수준은 그저 일반적인 대중 드라마 수준 정도에 불과합니다. 국가(國家)의 대사(大事)가 정치가들의 사적(私的)인 감정싸움에 의해 결정이 된다거나 한실중흥(漢室中興)이라는 낡은 명분을 들먹이면 상대가 꼼짝도 못하는 등 상황의 복잡성을 시트콤 수준의 단순한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관중 ‘삼국지’를 읽고 흉내 내시는 정치가들이 가끔 있는데 그러면 장기적으로 자기도 망치고 나라도 망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정치가가 많아질수록 나라는 정도(正道)보다는 어설픈 권도(權道)를 숭상하게 되고, 온갖 저급한 술수들이 난무하게 됩니다. 그래서 흔히 “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만나지도 말아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관중 ‘삼국지’가 대중적인 처세서로 기능을 하고 있으니 중국인들의 처세와 관련하여 한 번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습니다.

중국인들은 혈연관계, 같은 고향 사람, 같은 학교출신 등 자신과 관계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여 살아갑니다. 어디를 가나 중국인들이 있는 곳에는 동향회(同鄕會)가 조직되어있죠. 예를 들면 일본 도쿄(東京)에는 용강회(龍岡會)라는 조직이 있는데 이 조직은 일본에 거주하는 화교(華僑)들 가운데 유비의 유(劉)씨, 관우의 관(關)씨, 장비의 장(張) 씨, 조자룡의 조(趙)씨 등 네 가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만든 조직으로 이름은 제갈량이 은거했던 와룡강(臥龍岡)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중국인들은 ‘꽌씨(關係)’ 즉 인간관계(人間關係)를 매우 중요한 처세수단으로 봅니다. 거꾸로 말하면 중국인들은 자신과 별 상관이 없으면 ‘메이꽌시(沒關係 : 나와는 상관없어)’라 하여 ‘소 닭 보듯’ 합니다. 즉 중국인들은 나와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행동을 한다는 것이죠.

중국인들은 공연히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을 대단히 경계합니다. 나아가 자신의 실리와 관계없는 경우 적당히 바보노릇을 하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행동지침이 됩니다. 여기서 나온 말이 ‘총명난 호도경난(聰明難 糊塗更難 : 총명하기도 어렵지만 일부러 바보노릇을 하기는 더욱 어렵다)’이라는 말이죠. 임어당(林語堂 : 1895-1976)은 “영국인들은 우산을 품고 다니듯이 중국인들은 무관심(無關心)을 품고 다닌다”고 말합니다.

중국인들은 대부분의 일들을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사적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법이 있어도 법적인 문제의 95%가 법정 밖에서 해결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대사화소사(大事化小事) 소사화무사(小事化無事) 즉 ‘큰일도 작은 일이 될 수 있는 법이고, 작은 일은 별일이 아니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하지요.

중국인들이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것은 파벌과 내분을 조장하는 또 다른 부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지연ㆍ학연ㆍ혈연으로 그룹화 되면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은 파벌이고 조직 내에서 존재하는 파벌은 결국 조직의 내분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나관중 ‘삼국지’에서도 파벌과 내분이 끊이지 않습니다.

현대 중국의 대표적 지성인 중의 한 사람인 백양(柏楊)은 “일본인(日本人)은 한 명씩 보면 마치 한 마리의 돼지[豚]같다. 그러나 3명의 일본인이 모이면 바로 한 마리의 용(龍)이 된다. 중국인(中國人)은 한 명씩만 보면, 용(龍)과 같지만 세 사람만 모이면 한 마리의 벌레에 미치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중국인들의 장기는 파벌 투쟁과 내분이니까”라고 합니다.

나아가 백양은 “중국인(中國人)을 가장 혹독하게 다루는 자는 외국인(外國人)이 아니라 중국인이다. 또 중국인을 배반하는 것도 외국인이 아니라 중국인이다. 중국인의 내분은 매우 중요한 특성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떻습니까?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백양의 말이 마치 한국인들에 관해서 얘기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그만큼 우리는 한화[漢化 : 중국화(中國化)]되었다는 말입니다. 슬픈 일입니다.

***(2) 주유의 실제모습은 어떨까요?**

정사에 따르면 주유는 성격이 너그럽고 넓어서 대체로 인심을 얻었다고 합니다(性度恢廓, 大率爲得人 : 오서 주유전). 20대의 주유는 사람들에게 신망이 상당히 두터워서 사람들은 그를 주랑(周郞)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정사에서는 이를 “주유의 은덕과 신의는 여강(廬江 : 주유의 고향)에서 빛났다(오서 : 주유전)”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유와 사이가 나빴던 유일한 사람은 정보라고 합니다(惟與程普不睦 : 오서 주유전). 정보는 주유보다 나이가 많아 주유에게 자주 모욕을 주었기 때문에 주유가 싫어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주유는 정보의 말에 대하여 몸을 낮추고 정보의 말을 경청하였기 때문에 나중에는 정보가 감복하여 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강표전(江表傳)에 따르면, 정보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주유와의 사귐은 마치 스스로 술이 취한 것을 모르면서 향기 나는 술을 마시는 것과 같다(與周公瑾交, 若飮醇醪, 不覺自醉)”라고 할 정도로 주유는 겸손하여 사람들을 감복시켰다고 합니다.

손권은 “주유는 영웅답고 장렬하고 담력과 지략이 보통사람들을 넘기 때문에 조조를 무찔렀고, 그로써 오나라가 형주에 세력을 뻗을 수 있었던 것이요.(오서 : 여몽전)”라고 합니다. 손권은 주유의 아들 주윤이 악행을 저지르자 그를 용서하면서 다시 한번 “내 마음 깊이 주유를 잊을 수가 없소(公瑾有之 誠所不忘).”라고 합니다(오서 : 주유전).

손권은 조조를 물리치고 형주를 개척한 것은 모두 주유의 공적이라고 단언(오서 :주유전)합니다. 물론 적벽대전의 결정적인 역할은 황개의 일이지만, 전체 전쟁을 총괄하여 형주정벌에 이르기까지 주유가 지휘합니다.

[그림 ④] 주유상

주유는 손책과는 동갑으로 우정이 매우 두터워 형님ㆍ아우님 하던 관계였습니다. 손책의 어머니는 손권에게 주유를 형의 예로 받들도록 하였습니다. 손책이 죽고 손권이 이를 계승했을 당시 손책의 부장들이었던 사람들은 손권에 대하여 주군(主君)으로 받드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예절을 지키는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주유만은 과거 손책을 받들 듯이 손권에 대하여 주군의 예를 다하여 대했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오히려 손권에게 어른 노릇을 했을 터이지만 주유는 철저히 의리를 지켜 손권에 대해서도 모든 예절을 다 지켜 충성했다는 것이지요. 이 점은 주유가 얼마나 충성스럽고 신의가 깊은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주요한 대목입니다.

우리가 정치뿐만 아니라 기업을 경영할 때도 2대에 걸쳐 신의를 다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만 있다면 그는 최고의 친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유가 손권을 아낀 것은 손책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겠지요.

주유는 건장하고 뛰어난 자태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이면서도 그 겸손함이 몸에 익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유를 나관중 ‘삼국지’는 지나칠 정도로 망가뜨립니다. 결국 “왜 하늘은 주유를 낳고 왜 또 제갈량을 낳았습니까?(나관중 ‘삼국지’ 57회)”라고 원망하는 모습은 주유에 대한 왜곡의 절정입니다. 주유의 경우는 나관중 ‘삼국지’가 몇 사람을 미화하기 위해 얼마나 지나치게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 가운데 하나입니다.

***(3) 주유와 제갈량**

제갈량과 주유의 예에서 우리는 몇 가지의 특성들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만약 주유를 있는 그대로 그렸다면 과연 나관중 ‘삼국지’는 천년의 고전(古典)이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주유의 모습을 그대로 그리고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의 역할도 손권의 설득에만 한정된다면 사람들은 아마 “에이 별 것도 없잖아”하면서 외면할지도 모릅니다.

[그림 ⑤] 주유

어떤 소설이나 드라마든지 갈등구조가 없는 것들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갈등이 있어야 재미가 있고 오래 기억에 남게 됩니다. 그래서 나관중 ‘삼국지’는 끊임없이 갈등구조를 만들어 냅니다. 초기에는 동탁-여포, 조조-원소, 유비-조조 등의 갈등이 주류를 이루다가 후반부에 가서는 제갈량-관우, 제갈량-주유, 제갈량-사마의, 사마의-조상 등의 갈등 구조가 끝없이 만들어집니다. 이것이 나관중 ‘삼국지’의 성공요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중국인들은 영웅들을 만들고 그들의 싸움을 이야기꺼리로 만들기를 즐겨하는데, 특히 영웅들의 성격이 서로 다르면 더욱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므로 두고두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항우(項羽)-유방(劉邦)의 이야기이죠.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사실과는 다르게 너무 전형적으로 사람이 묘사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항우는 참을성이 없이 힘만 세며 우직하고, 유방은 도량이 넓고 참을성이 강하며 지략이 뛰어난 사람으로 전형화(典型化)되어있죠.

그러나 그 이면에는 유방은 교활하고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며 비굴한 모습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런 반면 항우는 강직하고 솔직하며 당당한데 이 같은 측면들은 잘 나타나지 않게 되죠. 하기는 항우가 패자(敗者)였기 때문이겠죠. 항우와 유방의 대결에서 유방이 승리하여 유방은 만세의 영웅이 되었고 항우는 우세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패배하여 만세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유방-항우의 싸움은 그 시대에 끝이 나는 게 아니라 연연히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즉 나관중 ‘삼국지’에서는 조조와 원소(袁紹)의 싸움이 바로 유방과 항우의 싸움과 유사하게 묘사되어 있고, 또 과장되었습니다. 원소가 죽고 난 뒤부터는 항우의 역할을 조조가 대신하게 됩니다. 즉 유비-조조의 관계는 유방-항우의 관계처럼 묘사되고 있지요.

원소가 죽고 난 뒤 부각된 영웅들의 대결은 제갈량-주유과 제갈량-사마의가 대표적인 경우겠지요. 나관중 ‘삼국지’에서 묘사된 이들 세 사람의 성격은 확실히 다릅니다. 그리고 실제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사마의는 신중하고 유연하면서 합리적이며 자신의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반면에 제갈량은 보다 강경하고 이데올로기적이며 경우에 따라서 다혈질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주유는 오히려 제갈량과 사마의의 중간 형태의 성격을 지닌 사람으로 볼 수 있지요.

그런데 만약 제갈량(諸葛亮)이 유방(劉邦)의 모습을 띠게 되면 결국 주유(周瑜)는 항우(項羽)와 같은 모습을 가질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사마의(司馬懿)가 유방의 모습을 띠게 되면 제갈량은 어정쩡한 모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나관중 ‘삼국지’가 만든 제갈량이라는 캐릭터의 문제점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나관중 ‘삼국지’를 유심히 읽은 분들이라면 제갈량의 성격이 초반-중반-후반에 각기 달리 나타나고 있음을 발견하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즉 후반에 갈수록 제갈량이 더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모든 권력을 장악했는데도 전쟁은 더욱 안 풀리고 있다는 점도 발견하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엉뚱한 사람이 제갈량의 과오를 덮어쓸 수밖에 없게 되지요. 사실 전쟁의 모든 책임은 총사령관인 제갈량 자신에게 있는데 말이죠. 그렇지만 제갈량이 마지막 북벌 중 오장원(五丈原)에서 세상을 떠날 때 제갈량의 가장 실존적인 모습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나관중 ‘삼국지’는 주로 연극을 토대로 하여 발달해왔기 때문에 과장되고 왜곡된 갈등 구조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주유가 왜곡 묘사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만약 제갈량과 주유의 관계가 사실과 같이 별로 만난 적도 없으면서 밋밋하게 전개되었다면 나관중 ‘삼국지’는 실패한 작품이 되고 말았겠지요. 특히 중국같이 넓은 곳에 글을 모르는 대부분의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이나 연극공연에서 갈등 구조가 없었다면 사람들이 그 내용을 기억하기 어렵죠. 소설의 구조(발단-전개-위기 -절정) 속에 갈등구조가 있음으로써 그 내용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살아남게 됩니다. 이러한 소설의 구조는 결국 오래 전 문명이 시작되기 전부터도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억을 하기위해 무의식적으로 만들어 놓은 인식의 틀과 같은 것이지요.

이 같은 영웅들의 대결 구도는 현대 중국의 장개석(蔣介石 : 1887-1975)과 모택동(毛澤東 : 1893-1976)의 싸움 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인 것은 분명하겠지만, 우리가 다시 새롭게 보아야할 사실은 항우와 비슷하게 묘사된 사람들은 비굴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엉뚱하게도 이것이 오히려 유교적이죠. 특히 대의명분과 예절을 중시하는 유교의 전통이 강한 나라에서 항우나 원소 같은 사람이 평가절하 되는 것은 중국인들이 가진 아이러니와 이중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하기야 중국인들은 예절을 중시하지만 돈도 그 이상으로 밝힙니다).

[그림 ⑥] 장개석(왼쪽)과 모택동(오른쪽)

따라서 주유는 나관중 ‘삼국지’를 통하여 극심하게 왜곡된 사람입니다. 주유는 조조라는 강력한 적을 맞이하여 의연한 태도와 담력, 그리고 과단성 있는 지도력을 발휘하여 적은 병력으로 대병을 크게 이긴 사람입니다. 이것이 결국 삼국의 정립을 가져왔습니다. 주유는 뛰어난 군사 지휘자로서 뿐만 아니라 높은 지혜와 인품 및 도량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나관중 ‘삼국지’에서 주유의 실제 모습을 심하게 왜곡한 것은 제갈량의 비범함을 돋보이게 하려 한 결과일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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