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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회의 ‘삼국지(三國志) 바로 읽기'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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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운회의 ‘삼국지(三國志) 바로 읽기' <28>

‘삼국지’의 주전략 : 이이제이(以夷制夷)

***들어가는 글**

우리나라는 국제정치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중국은 역사적으로 우리의 외교 정책이나 대내 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강대국입니다. 그런데 이 중국인들을 우리는 제대로 알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중국인들과 가까이 지낸 사람일수록 중국인들을 점점 더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제가 보기에 나관중 ‘삼국지’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알기 어려운 중국인들의 본 모습을 파악하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즉 중국의 외교정책이라는 거창한 주제에 대해 바로 접근하기보다는 나관중 ‘삼국지’를 통해서 중국인들의 대외정책이나 국제정치적인 전략 전술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 있고 유익할 것이라는 말이죠. 중국의 외교술을 이해할 만한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2003년 한국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때의 일입니다. 노대통령이 중국인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고 귀국할 즈음 북한에서는 ‘중조(中朝)우호협력조약 체결(1961년 중국과 북한의 조약) 42주년 기념 연회’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중국 대사는 “중조우호협력조약은 국제적인 풍운(風雲)의 변화 속에서 이 지역 평화를 지키는 데 결코 마멸(磨滅)될 수 없는 중대한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라고 축사했고 이에 북한의 대표는 “선혈(鮮血)로 맺어진 조선과 중국 간의 우의는 계속 공고히 발전할 것”이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중조우호협력 조약에는 이른바 자동개입조항이 포함되어 있는데 구체적으로 이 조약 제4조는 “쌍방 가운데 일방이 외부의 침공을 받았을 때 다른 일방은 즉각 개입해서 지원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북한이나 중국 가운데 한쪽이 특정 국가의 침공을 받으면 즉각 자동 참전한다는 조항입니다. 문제는 중국이 이런 자동개입 조항을 두고 어떻게 한국과 국교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것이죠.

이에 대해서 중국 외교부 관리들은 “무슨 문제가 있느냐? 한국(남한)이 조선(북한)을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 아니냐… 북한이 한국을 공격할 우려는 있겠지만 조약에 ‘쌍방 중 일방이 침공을 받을 경우’라고 되어 있으므로, 쌍방 중 일방인 북한이 한국을 공격할 경우 중국에는 자동 개입의 의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아슬아슬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03년 여름 중국 외교부 정례 뉴스브리핑에서의 일입니다. 우리 기자가 “7월 27일은 한국전쟁 휴전협정 체결 50주년 기념일인데 현재 열정적으로 한국대통령을 접대하고 있는 중국은 이 기념일을 한국과 북한 어느 쪽과 함께 기념할 것인가?”라고 물었습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우물쭈물 하다가 “우리는 두 나라 모두와 아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며 한·중 수교는 11년 전 ‘구동존이’(求同存異 : 이견은 남겨두고 일치되는 의견을 우선 추구함)의 정신으로 이뤄졌다는 요지의 대답을 합니다.

이상의 이야기들로 보면 중국은 제갈량처럼 남북한을 사이에 두고 외교를 잘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중국이 이 같은 외교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강한 국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만약 약한 나라가 이 같은 등거리 외교를 하면 위험한 곡예가 되겠지만, 중국같이 강한 나라가 등거리 외교를 하면 남북한은 하나같이 중국의 꼭두각시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면 중국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이이제이 전술들이 나관중 ‘삼국지’에는 어떤 식으로 나와 있는지를 한번 봅시다.

***(1) 이이제이(以夷制夷)**

이이제이(以夷制夷)란 적을 이용하여 적을 격파한다는 말입니다. 이 전술은 중국인들이 즐겨 쓰는 것인데, 이 전술을 사용하기 전에 많은 준비와 연구가 필요합니다. 즉 적군들이 다수 존재할 때 그들 사이에 갈등 요소를 철저히 분석하여 그것을 전술적으로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나관중 ‘삼국지’ 내용의 상당 부분은 ‘이이제이’ 전술의 경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국인들은 전쟁이란 용맹(勇猛)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용맹으로 말하면 중국 주변의 유목민족들을 따라갈 수가 없으므로 꾀로써 이들을 제압하여야만 하는 것이죠. 그래서 중국인들은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거나 적으로서 적으로 제압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묘책(妙策)으로 봅니다.

‘이이제이’라는 말이 과연 어떤 경로를 통해서 사용된 것인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이(夷)라는 말은 우리 민족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말인 것은 분명합니다. 제가 보기에 중국의 동북부 또는 중국의 동부 해안 지대에 다수 거주했던 쥬신족들(중국인식으로 말하면 동이족)을 제압할 때 사용했던 말 같습니다. ‘이이제이’ 전술은 쉽게 제압하기 힘든 강자를 제거할 때 사용하는 계책으로 고도의 이간계(離間計)이기 때문이죠.

이 말을 냉정히 따져보면 이들 동이족(쥬신족)들은 이간계에 쉽게 넘어가는 특성을 가졌다는 말은 아닐까요? 동이족(쥬신족)들이 아무리 활을 잘 쏘고 강병(强兵)을 가지고 있으며 호방하지만, 중국인들은 이들이 직선적이어서 남들이 부추겨 세우면 쉽게 우쭐하고 인정에 약하고 남의 말에 잘 속는다는 점을 간파한 듯합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이들을 잘 구슬러서 이간질하면 쉽게 중국에 호응하는 특성을 발견한 것은 아닐까요?

한나라 문제(文帝) 때 조착(鼂錯)은 흉노(대쥬신?)를 이기려면 무엇보다도 흉노와 유사한 유목민들을 이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조착은 흉노의 뛰어난 점은 ① 말이 좋고, ② 마술(馬術)이 뛰어나고, ③ 혹한(酷寒)과 기아(飢餓)를 잘 견딜 수 있는데 반하여 한군(漢軍)의 장점은 ① 평원전이 뛰어나고, ② 병기가 뛰어나고, ③ 진술(陣術)이 엄정하며, ④ 정교하고 치밀한 전술(箭術), ⑤ 뛰어난 보병전 능력 등을 들었습니다(한서 : 조착전).

[그림①] 한군(漢軍)과 흉노의 전쟁

따라서 중국이 흉노를 이기려면 기존의 한군의 강점에다 유목민의 강점을 겸비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서기 12년, 왕망은 고구려(高句麗)를 동원하여 흉노를 정벌하려는 시도를 하려 하였지만 성공하지는 못합니다. 제갈량도 고구려와 같은 유목민들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전략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 같은 전술은 당태종이 고구려를 멸망시킬 때 그대로 사용합니다. 이 점을 보면 ‘이이제이’ 전략은 역사를 거치면서도 우리와 질긴 인연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나관중 ‘삼국지’에 나타난 ‘이이제이’ 전술**

나관중 ‘삼국지’에는 중국인들의 전술 특성이 매우 잘 나타납니다. 중국인들은 방어전·스파이전·수전(水戰)·수성전(守成戰)·게릴라전 등에는 능하지만 대규모의 병력이 전면전을 할 경우 취약한 특성이 있습니다. 특히 유목민들의 전격전(電擊戰)에는 쉽게 무너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지고 있는 중국인, 즉 한족(漢族)들의 전쟁특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수세(守勢)에 능하고, 공세(攻勢)에 약하다.
② 지구전(持久戰)에 능하고, 속전(速戰)에 서툴다.
③ 계책(計策)에 능하고, 역전(力戰)에 무능하다.
④ 강처(强處)를 피하고, 약점(弱點)의 공격에 편중한다.
⑤ 심리조종이 교묘하고, 선전(宣傳)을 잘한다.
⑥ 주민의 자위력(自衛力)과 미신(迷信)을 이용한다.

일단 중국인들의 전쟁 특성을 이해하셨다면 이제 나관중 ‘삼국지’로 돌아가 봅시다. 나관중 ‘삼국지’에서 가장 흥미 있는 부분 가운데 하나로 전쟁에서 재미있는 전술이 구사되는 부분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 가운데 두드러진 것만 모아 보겠습니다.

*** A. 이미인이간지계(以美人離間之計)**

나관중 ‘삼국지’에 나타난 대표적인 이간계는 왕윤이 동탁을 죽이는 데 이용한 이간계입니다. 나관중 ‘삼국지’에는 왕윤이 초선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동탁과 여포, 이 두 놈은 천하의 호색한들이니 맞불을 놓아 산불을 끄듯이 연환지계(連環之計)를 쓰는 것이 좋겠다. 우선 내 너(초선)를 여포에게 시집을 보냈다가 후에 다시 동탁에게 바칠 터이니, 너는 이 두 부자(父子) 놈을 이간하여 여포의 손으로 동탁을 죽이게 만들면 천하의 큰 악을 뿌리 뽑을 수 있다. 기울어진 사직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천하를 바로세울 수 있는 길은 오직 너의 손에 달려있구나(나관중 ‘삼국지’ 8회).”

여기서 연환계(連環計)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는데, 그저 이간계(離間計)라는 말이 적합합니다. 미인(美人)을 이용하여 두 강적을 이간한 것이죠. 연환계는 마치 반지 고리처럼 두 가지 이상의 계책으로 적들끼리 묶이도록 만들어 적의 행동을 둔화시킨 후에 공격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 번 말씀드린 대로 정사에서 초선이라는 여인은 없지만 왕윤이 여포와 동탁 사이를 이간질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위서 : 여포전). 결국 여포는 동탁의 암살에 가담하고 왕윤의 계략은 성공합니다. 이와 같이 왕윤이 초선(미인)을 이용하여 이간계를 사용하여 전략적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한 것은 중국의 가장 고전적인 전술입니다. 적벽대전의 성공도 따지고 보면 이간계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 부분은 ‘적벽대전의 허와 실’에서 상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B. 이호경식지계(二虎競食之計)**

이 말의 뜻은 두 마리의 호랑이가 서로 다투어 잡아먹게 하는 계략입니다. 즉 호랑이 두 마리를 이간질하여 서로 싸우게 만들어 큰 상처를 입으면 즉각 공격하여 두 마리 모두를 죽이는 전술이죠. 나관중 ‘삼국지’에서는 조조가 유비와 여포를 제거하는 데 사용된 것입니다.

당시 유비는 서주를 장악하고 있었고, 조조는 이를 빼앗아야 하는 상태인데 여포와 유비가 연합하려 하고 있는 상태였지요. 조조의 입장에서는 여포와 유비를 분리시켜야 하며 이들을 이간시켜 두 사람 모두 세력을 약화시켜야 했습니다. 당시 유비는 황제의 조명(詔命)없이 서주를 다스리고 있었으므로 순욱은 조조에게 유비에게 서주목(徐州牧)의 벼슬을 내리면 유비는 감격하여 받을 것이고 이를 토대로 여포를 제압하도록 유도하면 된다고 권고합니다. 즉 유비는 원래 촌부(村夫)라 큰 벼슬을 해 본 일이 없기 때문에 벼슬로 유비를 유혹하고 유비로 하여금 여포를 제거하게 하면 둘 모두가 세력이 약화되어 조조의 밥이 된다는 말이지요. 이것이 이호경식지계입니다(나관중 ‘삼국지’ 14회).

조조는 순욱의 말에 따라 즉시 사람을 서주로 보내어 유비에게 정동장군(征東將軍) 의성정후(宜城亭侯)의 벼슬을 내리고, 서주 목사로 임명하여 서주를 다스리게 하면서 여포를 제거하라는 밀서도 함께 보냅니다. 그러나 노련한 유비는 이를 간파하고 다시 그 틈바구니에서 곡예를 부립니다. 즉 유비는 조조가 자기에게 밀서를 내린 것은 자기와 여포가 연합하여 조조를 칠까봐 두려워서 꾸민 계교이며 조조는 그 사이에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얻자는 것임을 간파한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비는 즉답을 피하면서 허도로 돌아가는 조조의 사자 편에 감사하는 편지를 보내고, 따로 조조에게는 밀서의 내용에 대하여 충분히 상의하여 결정하겠다는 답장을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이 부분과 관련된 정사를 봅시다. 먼저 촉서에는 “196년, 조조는 표를 올려 유비를 진동장군으로 삼고 의성정후에 봉했다. 유비와 원술이 1개월 이상 대치하는 동안 여포가 그 틈을 타서 하비를 습격했다(촉서 : 선주전).”라고만 되어있습니다. 위서에는 “여포가 유비를 습격하여 하비성을 빼앗자 유비는 도망쳐왔다(위서 : 무제기)”로 되어있고 순욱전에서는 순욱이 조조가 여포를 공격하는 것을 자제하고 일단 재정비하면서 때를 기다리라고 권고하고 있지요. 정사에 이호경식지계라는 말 자체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C. 구호탄랑지계(驅虎呑狼之計)**

유비가 여포를 죽이지 않았다는 말을 전해들은 조조는 순욱을 불러 다시 상의하자, 순욱은 조조에게 구호탄랑지계(驅虎呑狼之計), 즉 범을 몰아 승냥이를 잡아먹게 하는 계책을 권고합니다.

구호탄랑지계도 이이제이(以夷制夷)의 하나인데 조조는 원소와 여포라는 두 강적과 중원(中原)을 다투고 있고 조조가 원소를 치기에는 역부족인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유비나 원술도 분명히 우환거리였습니다. 특히 유비는 외적으로는 의리를 숭상하고 자기 혼자 충신인 듯 하는 사람이지만 그 사람의 깊은 곳에는 다른 난세의 영웅과 비교할 수 없는 역심(逆心)을 가진 사람이므로 유비가 외로운 범이라면, 원술는 수만의 떼거리를 거느리고 있는 승냥이라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순욱이 주장한 것은 유비를 몰아서 원술를 치게 하면 똑같은 효과를 거둘 수가 있다는 것이죠.

[그림 ②] 당시 군웅(群雄)들의 근거지

문제는 유비를 끌어내어 원술를 치게 하는 방법입니다. 순욱이 선택한 것은 조조가 비밀리에 원술에게 사람을 보내어 유비가 원술이 점령하고 있는 남군(南郡)을 공략하자는 상소문을 올렸다고 말하면, 성미가 급한 원술은 노하여 반드시 유비를 공격하려 할 것이고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조조가 황제의 명이라고 하고 유비에게 원술을 치라는 명령을 내리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명분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유비가 황제의 명령이라면 들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서 시행한 전술입니다. 그리하여 유비와 원술이 싸우게 되자 여포가 서주를 취하게 되었고, 유비는 오갈 데가 없이 되고 말았지요(나관중 ‘삼국지’ 14회).

이 부분은 정사로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즉 당시의 정황은 거의 일치하지만 당사자인 순욱이 구호탄랑지계에 대한 말을 한 적은 없지요.

***D. 대기응양지계(帶飢鷹養之計)**

여포와 조조가 대립하는 가운데 조조는 여포에게 좌장군(左將軍)을 제수하자 여포는 사례 사절로 부장인 진등(陳登)을 보냅니다. 이 때 조조는 진등을 광릉태수로 임명하면서 그를 꼬드겨 여포를 죽게 만들 계책을 세웁니다. 이 때 진등이 여포에게 돌아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제가 조조에게 장군의 벼슬을 얘기하였는데 조조가 이를 난감해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포 장군을 기르는 것은 범을 기르는 것과 같아 고기를 배불리 주지 않으면 양이 차질 않아 사람을 문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조승상(조조)은 자기는 여포 장군을 매[鷹] 기르듯 한다고 합디다. 조승상은 ‘여우와 토끼를 잡자면 먼저 매를 굶주리게 해야 한다. 굶주리면 사냥을 하되 배부르면 달아난다’고 했지요. 그래서 제가 누가 여우이며 토끼는 또 누구입니까라고 물어보니 조승상이 설명하기를 회남의 원술ㆍ강동의 손책ㆍ기주의 원소ㆍ형양의 유표ㆍ익주의 유장ㆍ한중이 장로 등이 모두 여우와 토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자 뜻밖에 여포는 조승상이 자기를 알아준다고 기뻐합니다.(나관중 ‘삼국지’ 16회)

이 이야기는 대부분 정사에 있는 그대로 입니다. 즉 진등이 여포에게 말하기를 조조는 “내(조조)가 보기엔 (여포를 대하기를) 매를 기르는 듯하지요. 매는 굶겨야 일을 부릴 수가 있고 배를 불리면 달아나 버리죠(譬如養鷹 飢則爲用 飽則揚去 : 위서 여포전)”라고 합니다. 정사에서는 토끼니 여우니 하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나 군사적 대치 상태를 보면 대체로 일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하여 원술은 여포를 공격하게 됩니다. 이 때 진규(진등의 아버지)는 다시 원술의 진영에서 내분을 일으켜 원술의 세력을 약화시킵니다(나관중 ‘삼국지’ 17회). 즉 진규는 원술의 진영은 마치 “온갖 종류의 가금(家禽 : 집에서 기르는 닭·오리·꿩 등)들이 모여 있는 것과 같아서 함께 둥지를 틀 수가 없을 터(比之連雞,勢不俱棲 : 위서 여포전)”이니 원술 휘하의 장수들 가운데 의협심이 강한 한섬과 양봉을 대의명분으로 꼬드겨 원술을 배반케 한 후 원술의 군대를 격파합니다.

***E. 굴갱대호지계(堀坑待虎之計)**

굴갱대호(堀坑待虎)란 굴을 파고 호랑이가 올 때까지 기다려 호랑이가 굴로 들어가면 사로잡는 방법입니다. 순욱이 조조에게 추천한 계략입니다. 당시 유비는 서주를 도겸으로부터 인수했는데 이것을 여포에 빼앗긴 후 조조에게로 도망갑니다. 조조는 유비를 후대하여 유비를 이용하여[굴을 파서] 여포[호랑이]를 사로잡을 계획을 세운 것이죠. 나관중 ‘삼국지’를 토대로 당시의 상황을 좀더 구체적으로 봅시다.

“서기 197년 원술이 황제를 칭하고 반란을 일으키자 조조는 여포 - 유비 - 손책과 연합하여 원술군을 공격하기 위해 출병하였다. 조조는 원술을 치기 위해 좌군의 지휘를 여포에게, 우군의 지휘는 유비에게 맡기고 자신은 스스로 중군을 거느렸으며, 하후돈과 우금을 선봉장으로 삼아 황제를 칭하는 원술을 공격하였다. 조조의 대군이 원술을 공격한다는 말을 듣자 손책도 이에 편승하여 신속히 강을 건너 회남 땅 서쪽을 공격하였다. 이들 연합군은 조조의 탁월한 전략으로 원술군을 제압한 후 일단 철수하기로 하였다.(나관중 ‘삼국지’ 17회 요약)”

이 당시 조조는 여포를 제거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였을 것입니다. 일단 이들은 원술이라는 공동의 적을 제거하기 위해 연합했지만 원술이 제거되고 난 뒤에 중원 땅에서는 조조 - 원소 - 여포의 삼파전이 전개되고 있었기 때문이죠. 조조는 원래 유비를 사랑하는 여포에게 유비가 서주성은 아니라 해도 소패에는 주둔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설득합니다. 이에 여포는 흔쾌히 허락하고 서주로 돌아갑니다.

[그림 ③] 서주(徐州) 상황

여포와 손책이 떠나고 유비가 남게 되자 조조는 은밀하게 유비를 불러 소패에 주둔하면서 진규ㆍ진등의 부자와 함께 여포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고 그러면 그것이 결국 유비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유혹하지요.

이와 같이 조조는 굴갱대호의 계책에 따라 유비에게 소패에 군사를 주둔시키라고 하는데 이것은 장기적으로 여포를 잡기 위한 것이었죠. 조조는 유비와 여포의 갈등을 잘 알고 있었으며 이 둘의 갈등이 더욱 심화될 때를 기다렸다가 두 사람 모두를 사로잡을 계략을 쓴 것입니다. 즉 원래 서주의 관할권을 유비가 도겸으로부터 인수했는데 그것을 여포가 장악하였고 소패(서주성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주둔하게 된 유비의 심경이 착잡할 것이므로 이들의 갈등을 더욱 조장하여 파국이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 둘을 모두 격파하겠다는 것이 조조의 계략이었습니다.

정사에는 “197년 원술이 회남에서 황제를 칭하려고 여포에게 알려왔지만 여포는 그 사신을 억류한 뒤, 그의 서신을 조정에 보고하자 원술이 여포를 공격하였으나 패하였다. 원술이 진(陳) 땅을 공격하여 조조가 직접 정벌에 나서자 원술은 군대를 버리고 일부 장수만 남긴 채 도주하자 조조는 이들을 격파하고 모두 참수하였다(위서 : 무제기).”라고만 되어있습니다.

***F. 점찬개서지계(點竄改書之計)**

조조는 서진(西進)하여 마초(馬超)ㆍ한수(韓遂)군과 동관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의 과정이 나관중 ‘삼국지’에는 매우 재미있게 묘사되어있지요. 조조군은 마초에게 쉴 새 없이 당하게 됩니다.

서량의 군사들이 좌충우돌하니 조조군은 당해낼 도리가 없어 조조는 도망치는데, “붉은 도포를 입은 놈이 조조다”라고 하니 조조는 붉은 도포를 벗어던지고, “수염이 긴 놈이 조조다.” 하니 수염을 자르면서 도망을 칩니다(나관중 ‘삼국지’ 58회).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조조는 가후의 계략을 빌려서 마초와 한수를 이간질 시킵니다. 조조는 한수의 아버지와 효렴(일종의 과거) 동기였는데 이것을 빌미로 전쟁 중에 잠시 만납니다. 조조는 전쟁에 관한 일체의 이야기 없이 옛 추억 이야기를 하면서 껄껄 웃으며 한동안 한수와 즐겁게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헤어집니다. 그러나 이것을 안 젊은 마초는 한수를 의심하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 조조는 다시 한수에게 마치 한수가 쓴 편지처럼 만들어 편지 사이사이에 애매한 글씨를 쓰거나 글씨를 뭉개어 써서 여러 사람들의 눈에 띄게 많은 사자(使者)들을 한수에게 보내니 마초의 의심은 극에 달합니다. 즉 편지를 본 마초는 말 못할 대목의 글씨들을 한수가 지웠을 것이라고 의심하게된 것이죠. 그러자 한수는 ‘그런 소리 말게 내가 내일 조조와 이야기 해볼 테니 그때 날 죽이든지 말든지 하게’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날 한수는 사람을 보내어 ‘한수장군이 조승상을 만나 말씀하고자 하십니다’라고 하니 조조는 조홍을 보내어 ‘어제 저희 승상과 장군께서 의논하신 일에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라는 엉뚱한 소리를 내뱉고 휑하니 돌아가 버립니다. 결국 마초는 한수가 자기를 배신하고 조조 밑에서 벼슬이나 하나 얻으려 한다고 의심하여 한수를 공격하면서 이들의 진영이 무너집니다. 한수는 조조에게 투항하여 서량후로 봉해집니다(나관중 ‘삼국지’ 59회).

이 내용은 정사(위서 : 무제기)와 거의 일치(公又與遂書 多所點竄 如遂改定者 超等愈疑遂 : 위서 무제기)합니다. 다만 한수가 조조에게 투항한 내용은 없지요. 이 점들만 빼면 거의 정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조조는 마초와 한수가 서로 의심하고 있는 틈을 노려 가볍게 무장한 부대를 보내 싸움을 걸어서 시간을 끌다가 전격적으로 정예 기병대를 출동시켜 이들을 무찌릅니다.

이상에서 보이는 전략 전술들은 전체적인 군사적 대치상황이나 정치적 이합집산, 전투 등은 대체로 정사와 일치하지만 구체적으로 그 용어들이 사용된 것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나관중 ‘삼국지’가 당시의 전투상황을 해석하고 그에 따라 재미있는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위의 사례 중 일부는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명칭을 붙였습니다).

당시 상황은 조조-원소를 중심으로 한 대세력과 여포-원술-유비 등이 복잡하게 어우러진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가지만 해도 조조는 절대 강자인 상황은 아니었죠. 196~7년 사이 조조는 순욱에게 “나는 원소가 또 다시 관중 땅을 침공하거나 강족(羌族)과 호족(胡族)이 소란하게 하여 촉 땅을 유인할까 걱정스럽소. 나 혼자서 연주와 예주에 의지하여 천하의 6분지 5에 대항하는 것이니 장차 이 일을 어찌하오?(위서 : 순욱전)” 라고 하소연합니다. 이 경우처럼 큰 세력들이 주변에 있고 아군의 세력이 아직은 강하지 못할 때 나관중 ‘삼국지’가 일관되게 서술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이죠.

위에서 해설한 전술들은 모두 정사에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나관중 ‘삼국지’가 사실상 천년 이상에 걸쳐서 씌어진 점을 고려해본다면 중국인들이 즐겨 사용해왔거나 선호하는 전술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동안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굴갱대호나 이호경식지계 및 구호탄랑지계 전술은 중국인들이 가장 자주 쓰는 전략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나관중 ‘삼국지’에 나타난 전술들은 이이제이(以夷制夷), 즉 이간질을 통하여 적의 내부분열을 꾀하고 서로 싸움을 붙여 적으로 적을 격파하면서 세력이 약화되면 둘 모두를 섬멸하는 중국 고유의 전술이 구체화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적의 세력이 강하면 설령 아군이 절대적인 우위에 있더라도 전쟁 자체로 인하여 많은 피해가 예상되므로 적들을 서로 교란시켜서 어부지리를 취하는 동시에 적이 약화된 틈을 노리는 전술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고전적인 중국인들의 전술이라고 할 수 있죠.

이상을 통해서 보면 중국인들의 전술을 이해할 수 있는 코드를 어느 정도는 제시할 수 있을 듯도 합니다. 이것을 중국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36계의 개념들을 이용하여 한번 이야기해봅시다. 중국인들은 자신이 약하다고 판단이 될 때, 또는 자신의 주변에 큰 세력들이 있을 때, ① 욕속부달(欲速不達 : 절대로 서두르지 말고)이나 선수필승(先手必勝 : 어떤 경우라도 상대방보다 앞서서 일을 착수하고 추진한다) → ② 소리장도(笑裏藏刀 : 웃음 뒤에 칼날을 숨긴다. 즉 자신의 책략이 어떤 것인지 철저히 감추고 우호적으로 대한다) → ③ 혼수모어(混水摸魚 : 흙탕물을 일으켜 정신이 산란해진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것) 하거나 지상매괴(指桑罵槐 : 뽕나무를 가리키며 홰나무를 욕하다. 즉 상대방에게 들으란 듯 다른 사례로 협박하는 것) → ④ 차계생단(借鷄生蛋 : 즉 다른 사람의 닭을 빌려서 알을 낳게 한다) → ⑤ 차도살인(借刀殺人 : 남의 칼을 빌려 다른 사람을 죽인다. 즉 남의 힘으로 나의 적을 죽인다) 등의 전략으로 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의 근저에는 한족의 가장 전통적인 외교 전략이 숨어있습니다. 바로 원교근공(遠交近攻)이죠. 즉 가까이 있는 적은 공격하고 멀리 있는 적들과는 화친정책을 편다는 말이죠. 사실 가까이 있는 나라들은 여러 가지 이해가 교차하기 때문에 사이가 좋기 어렵습니다. 북한과 중국이 혈맹 운운하면서 친한 듯해도 신의주 특구 사건(행정장관 양빈 체포)에서 보듯이 가까워지기에는 한계가 있지요. 군사적으로도 가까운 곳에 적을 둔 상태에서 먼 곳의 적을 공격하기가 어렵죠. 그래서 가까운 적은 공격하고 먼 곳의 적과는 친하게 지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 중국과 미국이 매우 가까워지는 것은 우리에게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원교근공의 전략에 따라 가까운 적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하나의 신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반도 상황에서도 예외는 아니지요. 중국은 한반도에 대하여 여러 가지 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남과 북이 나눠져 있으므로 중국은 중국이 가진 고유의 전술들을 유감없이 발휘해낼 수 있습니다. 즉 중국은 미국 - 일본 - 러시아 - 남북한 - 대만이라는 얽히고설킨 난맥상의 국제정치 현실 속에서 궁극적으로 미국과는 여러 면에 있어서 원만하기가 어렵지만 남북한은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장기적으로 중국은 정치 경제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을 통해 미국과 한국을 견제할 수 있으며 러시아를 통해 일본이나 미국을 견제할 수 있겠죠. 현재의 동북아시아 상황에서 중국은 굴갱대호나 이호경식지계에 사용할 카드를 많이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걱정이지요.

***(3) 이이제이(以夷制夷)의 거시적 의미**

역사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동아시아는 중국을 상징하는 용과 유목민(대쥬신)을 상징하는 봉황의 용쟁봉투(龍爭鳳鬪)의 양상을 띠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유목민(대쥬신)들은 유목(遊牧)을 하는 관계로 워낙 넓은 지역에 분포하므로 그 공통성을 많이 상실한 상태이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근접한 민족들조차도 교류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중국을 중심으로 국제질서의 축을 형성해 왔습니다.

동북아시아의 양상을 보게 되면 대쥬신족(알타이 서쪽의 동북방 유목민)들은 한족(漢族)에 대하여 몽골-동북지역-한반도-일본 등에 이르는 거대한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들의 위협에 대하여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법을 사용하여 이들의 세력이 결집되는 것을 막으려 했던 것은 한나라 이후 지속적으로 나타난 전략이었습니다. 만약 한반도에 위치한 왕조를 한화(漢化)하게 되면 대쥬신의 기둥뿌리가 중간에서 잘리는 형상이 됩니다.

[그림 ④] 동아시아의 용쟁봉투(龍爭鳳鬪)

한반도가 유난히 중국화가 극심하게 된 점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중국의 역대 정권이 예외 없이 한반도(韓半島)의 왕조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과 지원을 보인 것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 천하의 지배질서를 제대로 유지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거시적 관점에서 본다면 중국은 원래 기마민족이었던 우리 민족을 한화정책(漢化政策)으로 몽골 - 만주(滿洲) - 일본 등으로부터 단절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고 볼 수 있지요. 제가 보기엔 그것이 바로 중국이 한반도의 국가들에 실시한 이이제이 정책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국가적 정책이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된 것은 조선시대로, 조선(朝鮮)은 그 스스로를 소중화(小中華)로 자처하기도 한 것이죠. 더구나 조선은 오래 전에 사라진 송나라의 성리학(性理學)을 국가적 이데올로기로 삼았는데 이것은 당시 명나라의 입장에서는 더 할 수 없이 반가운 일이었겠죠. 왜냐하면 조선은 스스로 중국에 대하여 사대의 예를 갖추고 중화질서에 편입하려는 적극성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조선이 고려의 북진정책과는 달리 문치주의(文治主義)를 국가적 이데올로기로 표방한 것은 고구려- 고려 이래 강한 전투력을 가졌던 쥬신족의 전통이 단절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고구려는 막강했던 수나라·당나라의 대군을 무력으로 제압하였고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渤海)나 고려도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동북아의 세력균형을 유지합니다. 발해(또는 고려)를 사실상 계승한 후금(後金)은 민족 고유의 수렵방식을 전술적으로 응용하여 중국 전토를 지배합니다. 그러나 조선이 표방한 문치주의는 자체적인 국토방위도 불가능하게 합니다. 조선은 대중화문명(大中華文明)의 방파제 구실을 충실히 수행하였던 것이죠. 그러나 저러나 조선의 건국은 민족사(民族史)의 무대를 한반도에 고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말았습니다.

대쥬신족의 한 갈래인 청(淸)나라는 이전 한족들이 세운 중국의 다른 왕조와는 매우 다른 유목민 정책을 펴고 있어서 한족(漢族)들의 정부와는 매우 큰 대조를 보입니다. 청나라는 유목민들에 대해 이이제이가 아니라 형제의 관념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청나라 조정은 청나라의 지배세력인 쥬신족들이 중국인(한족)들에 동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초기에 청의 중심세력들은 권력을 잃게 되면 언제든지 그들의 고향인 만주로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알 수 있게 하는 것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유조변(柳條邊 : 버드나무 방책)입니다.

[그림 ⑤] 청나라 때 설치한 유조변(柳條邊)

청나라 조정은 한족들이 동북지방(東北地方 : 대만주)에 왕래하지 못하도록 1667년 이후부터 산해관ㆍ희봉구 등 9곳에 변문을 설치하고 버드나무를 심어 경계로 삼아 한족의 출입을 금지합니다. 이 버드나무 방책은 산해관을 시작으로 동북으로 흥경(興京 : 씽징)을 지나 압록강 하구에 이르는 약 975km에 이릅니다. 이후 다시 345km의 버드나무 방책이 다시 만들어집니다. 청나라는 유조변을 통하여 쥬신족이 한화되는 것을 막고, 몽고의 유목구역을 확정하여 이들이 요동의 농경지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한편, 비상시 청나라가 중국으로부터 철수할 경우를 대비한 것입니다. 청나라는 한족이 동북 지방에 거주하는 것을 엄금하였습니다.

이 유조변(柳條邊)을 보면 현재의 동북공정(東北工程 : 만주사 전체를 중국사에 편입하려는 국가적 사업)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분명 중화민족의 일원이 아니고 이들 고유의 정치 문화 역사적인 영역이 존재함을 명백히 한 것이니까요.

이러한 청나라의 민족 정책은 이전의 한나라가 시행한 이이제이 정책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여줍니다. 한족이 만든 중국의 왕조들은 하나같이 이이제이 정책으로 유목민들을 분열시키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비하여 청나라는 몽골과는 통혼정책(通婚政策)으로 민족의 동질성(同質性)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청나라는 몽골에 대하여 ‘형제의 나라’로 지칭했으며 사냥대회를 통하여 상호간의 단합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청나라의 뿌리가 한족에 있지 않고 대쥬신(알타이 서쪽의 동북방 유목민)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물론 한족(漢族 : 중국인)이 세운 왕조들이 천하의 안정을 위하여 ‘이이제이’전략을 구사한 것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겠습니다. 중국이 주도하는 동북아의 국제 질서를 전면적으로 부정할 필요도 없지요. 중국이 원하는 것은 다만 중국 민족의 지배하의 평화로운 국제질서의 구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국이 말하는 그 평화는 서로를 인정하는 문화적 상대주의가 있을 경우에만 의미가 있지요. 최근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동북공정과 같은 것은 우리 민족사 자체를 말살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중국인들이 중국의 평화를 위해 한 나라의 역사 전체를 희생물로 한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것이지요.

여러분들 가운데는 ‘삼국지’ 식의 사고방식으로 너무 지나치게 보는 것은 아닌가 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한반도의 정치적 입장이라는 것은 매우 허약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교조적이고 감상적일 때가 많습니다.

중국과 미국, 또는 일본이 어떤 방식으로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구체적인 자료는 미국 국립 문서보관서가 최초로 공개한 닉슨·마오쩌둥·저우언라이(朱恩來 : 주은래) 비밀 대화록(1972.2)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 비밀대화록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닉슨(당시 미국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양쪽이 동맹국(남한·북한)에 대해 이들이 함부로 전쟁을 하지 않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야만 하고, 북한이나 남한이나 예외 없이 모두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닉슨은 남북한의 충동적이고 전투적인 태도 때문에 미국과 중국의 우호에 금이 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므로 이들을 미국과 중국이 제대로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남북한 문제로 한반도에서 미국이 중국과 서로 싸움을 벌인다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는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할 경우 일본군이 한국에 들어가는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었기 때문에 닉슨의 견해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나섰다.”

이들의 대화를 보면 한반도는 미국을 비롯하여 중국ㆍ일본의 직접적인 이해가 교차되고 있음을 볼 수 있으며, 이들의 정책에 따라서 한반도의 상황이 결정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들의 현실 인식에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환경을 충분히 돌아보고 그 실체를 보고서 현실과 타협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전체적인 상황을 모르면서 막연히 중국에 대한 짝사랑식의 생각에 젖어있다면 그것은 때로 자멸의 운명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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