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金兄)!
지난번 제 누추한 집에 오셨을 때도 걱정스럽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형의 몸이 너무 여위었습니다. 병이 아닌 줄은 압니다. 자기절제에 엄격한 형이 채식과 소식으로 자신의 삶과 공부를 다그친 결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형이 제 집 마당에 처음 들어섰을 때, 형의 여윈 몸에서 나오는 기운을 만났습니다. 아침이슬처럼 맑고 서늘했습니다. 제가 순간 몸을 움츠렸을 정도였지요. 그런 기운이 한편으론 반갑기도 했습니다만, 그래도 몸에 살 좀 붙이십시오. 아무리 사내 몸이라지만, 나올 곳은 좀 '빵빵'하니 나오고 들어갈 곳은 좀 들어가야 보는 사람의 눈이 즐겁지요. 그렇게 피골이 상접하니 눈을 줄 때마다 마음이 편치가 않았습니다. (이거 남의 얘기 할 처지도 아닙니다만.)
김형, 우리가 나눈 얘기 가운데, '수류거(隨流去)'라는 선화(禪話)가 있었지요. 마을을 안고 흐르는 강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함께 나눈 그 얘기 말입니다. 김형은 그때 저에게 그 '수류거'를 제 자신의 언어로 해석해 달라는 부탁을 한 적이 있었지요. 얼결에 대답은 했습니다만, 그러나 이렇게 막상 쓰려니 막막합니다. 우선은 제 공부가 깊지도 못할 뿐더러, 또한 선적(禪的) 문답이라는 게 '말(言語)'을 타면 '때(垢)'를 타기도 쉬운 탓입니다. 그 특유의 언어관습과 논법을 해석한답시고 뭐라 토를 달았을 때, 과연 '본전'을 건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몇 자 적어보긴 하겠습니다만, 객담처럼 들어주십시오.
'수류거' - '흐름을 따르라'라는 뜻의 그 선화를 재구성해서 다시 적습니다.
"대매산(大梅山)이라는 곳에서 젊은 구도자(求道者)가 주장자로 쓸 나무를 찾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그러던 중 한 초막을 만났다. 초막엔 산발한 머리에 풀옷(草衣)을 입은 은자(隱者)가 있었다. 젊은 구도자가 물었다.
"산을 내려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은자가 말했다.
"흐름을 따르라(隨流去)."
은자는 법상(法常)이라는, 당대(唐代)의 선사였다."
문답의 외연을 보면, 얼핏 말의 뜻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대가 이 산에서 길을 잃었는가? 그렇다면 계곡의 물을 따라가라.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법이니, 그 물을 따라 산을 내려가면 그대가 살던 그 평지를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말입니다. 지당한 얘기입니다. 그러나 그 문답을 다시 들여다보면 젊은 구도자는 '길'을 물었고, 은자는 '도(道)'를 설(說)한 것처럼 보입니다. 외연은 '길'에 대한 문답이었으나, 그 내포는 '도'에 대한 얘기였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두 발로 걷는 길이 형이상학적으로 존재할 때, 그 길은 곧 '길 도(道)'의 그 '도'가 되기도 합니다.
사실 '흐름을 따르다'는 뜻의 이 '수류(隨流)'라는 말은,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선이나 명상의 본질을 드러내주는 유력한 수사입니다. '수류'란 곧, 도(道)의 체현이라는 것이지요. 제가 '수류거'라는 말을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이 말에서 깊은 '수동성(受動性)'을 느꼈습니다. 사실 수동성이라는 말은 예를 들어 인성(人性) 따위를 논할 땐, 부정적인 뉘앙스를 주는 언어입니다. 반대로 '능동성'이나 '적극성' 따위의 말은 긍정적인 품성을 나타내주는 말로 치부되지요. 그러나 명상이나 선에서 말하는 '수동성'은 사전적 의미와는 달리, 자아(ego)가 침묵하는 걸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자아는 '대아(大我)'나 '진아(眞我)'에 반하는 것으로서, 이를테면 '소아(小我)'나 '가아(假我)'를 말합니다. 선적 문법으로 말하자면, 자아가 완전히 침묵했을 때 '참나(眞我)'가 드러납니다. "불완전한 '자아'는 침묵하고, 완전한 '참나'에 따르는 것", 이게 이를테면 명상이나 선에서 말하는 그 '수동성'입니다.
'수동성'이라는 언어는, 도(道)와 같은 신비주의적 테제를 서술하는데 동원되면서 그 뜻이 새롭게 확장된 언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수동성'을 사전적인 어의의 그 '수동성'과 구별하기 위하여 '대능동성(大能動性)'으로도 불렀습니다.
이 선화의 뒷이야기를 보면 역시 '수류거'는 겉으로 드러난 것처럼 그런 단순한 뜻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젊은 구도자가 산을 내려와 자신의 스승에게 그 은자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을 때, 그 스승은 그 은자의 깊은 수행의 경지를 바로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은자의 하산을 종용하기도 했지요. 교화에 나서달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하산할 때가 아니라고 본 은자는,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만.
김형, 이렇게 몇 자 적는데도 많이 지칩니다. 써놓고 읽어보니 재미가 없는데요. 서양의 어느 철학자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말을 하기 전에는 알고 있었는데, 말을 하고 난 후에는 갑자기 아무 것도 모르게 돼버렸다." 뭔가, 뒤죽박죽 죽을 쓴 기분입니다. 선어(禪語)를 다루는 문제는 늘 어렵습니다. 일본의 근현대 선승으로 스즈끼 다이세쯔(鈴木大拙)라는 유명한 선사가 있었지요. 그는 선어는 적절하게 표현되지 못하면 큰 재난을 초래한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선(禪)체험을 하거나 도를 체득한 사람조차도 자신의 그 체험을 바르게 표현하지 못하면 '자기소외(自己疏外)'를 겪게 된다고 경고하기도 했지요. 생래적으로 그 한계성을 갖고 있는 언어를 다룰 땐, 그래서 두렵습니다.
이왕 멍석을 편 김에 객쩍은 얘기나 하나 더 하지요. 며칠 전 밤에 제가 각다귀 떼에게 육보시(肉布施)를 하게 된 내력입니다.
그날 밤은 마을 사람 한 분과 술을 좀 마셨습니다. 배추농사를 짓던 분이었습니다만, 시장의 배추 값이 형편없어 결국 출하를 못하고 말았습니다. 배추를 출하하려면 운송비와 인건비 등 그 비용이 만만찮습니다. 출하비용을 공제하고도 이문이 남아야 출하를 하든 말든 할 터인데, 배추 값이 너무 헐해 결국 포기했지요. 배추는 밭에서 모두 썩어갔습니다. 제가 그 분을 위로한답시고 술대접을 한 게 저도 꽤 마신 셈이 됐습니다. 자리가 파하고 그대로 잠을 청했으면 별일이 없었겠습니다만, 그날따라 집안이 몹시 더웠습니다. 술기운 때문이었겠지요.
강변으로 홀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달빛이 밝아서 밤길이 수월했습니다. 김형도 보았던, 그 모래사장으로 갔습니다. 바람은, 강바람이었습니다. 그 바람엔 어둠 속에서도 달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강물과 그 물 흐르는 소리가 담겨 있었습니다. 모래밭에 누웠습니다. 밤하늘엔 무수한 별들이 빛나고 있었지요. 깊은 산 속에선 또 어미 호랑지빠귀가 아기 호랑지빠귀에게 휘파람 부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아기 호랑지빠귀의 그 서툰 휘파람소리는 들으면 금방 알 수 있지요. 그렇게 밤 분위기에 취해 있다가 그걸로 그만이었습니다. 잠이 들고 만 것입니다. 새벽에 깨어났습니다. 세상천지는 - 밤하늘도, 밤새 울음소리도, 강물소리도 모두 그대로였습니다만, 제 몸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각다귀 떼에게 그만 포식을 시켜주고 만 것입니다. 그 녀석들은 집모기보다 훨씬 공격적이고, 덩치도 조금 더 큰 편이지요. 얼굴과 팔다리가 군데군데 몹시 따갑고 가려웠습니다. 각다귀에게 떼공격을 당하면서도 잠에 빠져 있었다니 취하긴 취했던 모양입니다.
이 산골은 일교차가 매우 심한 곳입니다. 새벽녘엔 한기가 느껴질 정돕니다. 강물 속으로 들어가 손발을 담갔는데, 차가워서 얼마 견디질 못했습니다. 결국 그 찬 강물이 마음을 깨웠습니다. 속을 차리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둑 위로 올라서는데 산 너머로 달이 지고 있었습니다.
아, 여말선초를 살다간 부휴(浮休)선사의 선시(禪詩) 한 구절!
"산고월이침(山高月易沈)!"
("산이 높아 달이 일찍 지네!")
'읽는' 선시가 아니라, '보는' 선시입니다.
제가 곧잘 찾는 이 강은 제게 많은 영감을 안겨주곤 합니다. '흐름을 따라온', 그 '수류거'의 물이 이 강을 이루었습니다. 강에 대한 이야기나 하나 더 하고 접겠습니다. 김형도 아시는 얘기이겠지요.
일본의 에이헤이지(寺)란 선원의 입구엔 '한사꾸교(橋)'라는 작은 다리가 있었다고 하는군요. '한사꾸교'란, '반 국자 다리'라는 뜻입니다. 13세기경 일본엔 도오겐(道元)이란 선사가 있었습니다. 도오겐은 강에서 국자로 물을 퍼서 쓰곤 했는데, 단지 반 국자의 물만을 쓰고 나머지 반 국자의 물은 버리지 않은 채 다시 강으로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이 '반 국자 다리'는 그런 도오겐의 행위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스즈끼 슌류(鈴木俊隆)라는 선사는 그 이야기에 담긴 뜻을 이렇게 풀어냈습니다.
"강에서 퍼온 물의 절반을 돌려준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식의 삶은 우리의 사유를 넘어서 존재한다. 우리가 강의 아름다움을 느낄 때, 물과 하나가 될 때, 우리는 직관적으로 도오겐선사의 방식처럼 쓰고 남은 절반의 물을 강으로 돌려준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성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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