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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의 텃밭과 유위의 텃밭 사이를 오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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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의 텃밭과 유위의 텃밭 사이를 오가며

서연의 '농막(農幕)에 불을 켜고' <20>

뒤란에 텃밭을 일궜다. ‘뚝섬 오그라기’라고 부르는 적상추와 배추도 심고, 고추와 갓도 읍내 닷새장에서 모종을 구해 심었다. 토종 씨앗들인 멧돌호박과 오이, 야생아욱, 고수도 파종하고, 먹는 음식은 아니지만 목화와 꽈리의 씨앗들도 묻었다. 무너진 담장 주변엔 울타리 삼아 옥수수도 심었다. 종류가 여럿이다 보니 텃밭이 제법 클 것 같지만, 일군 땅은 다섯 평이 채 못 됐다. 애초엔 이곳에 텃밭을 일굴 생각이 없었다. 토담으로 둘러싸인 뒤란은 그 소박한 정취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했던 것이다. 작은 장독대와 함께 요즘 한창 흰 꽃을 단 마가목과 대추나무, 엄나무 따위가 서 있고, 담벽 밑에 놓인 두 개의 벌통 중 한 곳엔 토종벌도 살았다. 장독대와 그 나무들을 피해 일군 텃밭은 옛 묵화(墨畵)에서 만날 수 있는 그런 여백 같은 공간이었다. 결국 ‘먹칠’을 해 그 여백을 지워버린 셈이었다. 그러나 따로 텃밭 일굴 자리가 마땅치 않았던 차에, 또 봄비가 몇 차례 지나간 후 풀이 올라오는 걸 보고 생각을 바꿨다. 우산이끼나 솔이끼 같은 이끼류랄지, 개미자리처럼 작고 여린 풀들만 눈에 띄던 ‘여백’이, 둑새풀과 향모 등이 자라면서 ‘종다리가 새끼 치고 나갈’만한 풀밭으로 변해갔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뒤란의 풀들을 탓하며 텃밭을 일궜지만, 사실 올 봄 한 철 동안 뒤란 담장 밑과 마당가에 난 풀들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 그 풀들을 뜯거나 캐서 모두 나물로 먹거나 생채쌈을 하기도 하고, 국거리로도 썼던 것이다.

쑥, 냉이, 황새냉이, 흰민들레, 서양민들레, 별꽃, 쇠별꽃, 고들빼기, 씀바귀, 마을사람들이 ‘나물취’라 부르는 참취, 벼룩나물, 명아주, 질경이, 토끼풀, 괭이밥, 붉은괭이밥, 달래, 부추, 꽃마리, 속속이풀, 참나리, 큰엉겅퀴, 보리뱅이, 닭의장풀, 개망초, 개갓냉이, 지칭개, 개쑥갓, 양지꽃, 제비꽃, 주름잎, 쑥부쟁이 등 그 풀들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여기에 옛 주인이 심어 놓은 곰취 몇 그루와 더덕도 있고, 엄나무도 서너 그루 쯤 돼 산과 들로 나물 뜯으러 다닐 필요가 없었다. 엄나무순은 ‘개두릅’이라 불리는 것으로, 활짝 피어난 그 잎도 향이 강하고 독특해 쌈 채소로도 그만이다. 갖가지 봄나물이 늘 풍성하던 읍내 닷새장을 종종 출입했지만, 나물감은 한 번도 사먹은 적이 없다.

몇 해 전 겨울, 영주 부석사에 들렀을 때다. 저녁 무렵 사찰 입구의 여관에 짐을 풀고, 출출한 속도 달랠 겸 가게로 내려가 막걸리 한 사발을 시켰다. 옆 자리에선 인근에서 온 노인 두 분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산촌의 선술집 같은 곳에선 노상 그러하듯, 자리와 자리 사이에 담이 없으니 곧 말들이 넘어오고 넘어간다. 주로 농사 얘기가 나왔다. 나는 제초제를 쓰지 않고 농사를 짓다 보니 풀하고 같이 사는 게 힘들다는 말도 했다. 그때 한 노인이 매우 흥미 있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암소 엉덩머리’만한 텃밭에서 별스럽게 ‘이모작’ 농사를 짓고 살다간 한 할머니에 대한 얘기였다.

독거노인이었던 그 할머니는 다리가 몹시 불편했다. 봄이 와도 남들처럼 들로, 산으로 나물을 캐러 다니지 못했다. 대신 그녀는 자신의 텃밭에서 자라는 온갖 풀을 뜯어 먹고 살았다. 그 풀로 쌈 채소도 하고, 나물도 무치고, 김치도 담아 먹고, 국거리로도 썼다. 겨울철에 먹을 수 있도록 묵나물로도 만들고, 심지어 장아찌까지 담았다. 밭에서 나는 풀은 ‘독쌔기(둑새풀)’만 빼고 다 먹는 것 같았다는 게 노인의 얘기였다. 그러다가 소만(小滿) 무렵이 되면 콩이나 옥수수 같은 잡곡들을 심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모작 중 ‘전작(前作)’은 ‘풀 농사’였던 것이다. 얘기를 듣다 보니 처음엔 노파의 쓸쓸한 삶이 보여 스산했다. 차마 뭐라 말할 수 없는 연민이 솟았다. 그러다가 한편으론 또 몸에서 소름도 돋았다. 깊은 외경심이 일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삶의 방식은, 엄청난 지혜, 그렇다. 지혜, 그 자체이기도 했던 것이다. 비록 처음엔 생존의 차원에서 풀에 대한 관심을 가졌을망정 결국 그녀는 풀의 쓰임새를 심오하게 이해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후쿠오카 마사노부(福岡正信) 등이 ‘무위(無爲)의 농법’을 주창했지만, 기실 그 할머니의 농사야말로 ‘무위’였다. 나 같은 사람이 일군 텃밭이 ‘유위(有爲)의 텃밭’이라면, 그 할머니의 텃밭은 또 ‘무위의 텃밭’이라 할 만했다.

이곳저곳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겪어보았지만, 풀에 대한 편견과 무지가 많다. 그 할머니처럼 풀을 뜯어먹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마을사람들을 보아도 먹는 건 대체로 ‘나생이’라 부르는 냉이랄지 또는 고들빼기나 취나물류, 고사리 정도가 고작이다. 쑥을 먹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읍이 멀지 않고 교통이 편리하다 보니 읍내 닷새장날에 나가 하우스 등에서 재배한 나물거리를 사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옛말에 염소가 오뉴월에 뜯어먹는 풀은 사람이 먹어도 된다는 얘기가 있는데, 내가 체험을 해보아도 그랬다. 물론 독초를 피해가는 지혜도 필요하다. 내 집 앞마당만 해도 독초가 있다. 애기똥풀과 박주가리다. 위험성이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권유는 않지만, 나는 이 풀들도 먹는다. 나물로 직접 먹는 건 피하고, 효소(酵素)를 담글 때 재료로 쓰는 편이다. 마을 주변의 들녘이나 야산을 둘러보아도 사실 독초가 많지는 않았다. 앞에서 말한 애기똥풀과 박주가리에 산괴불주머니가 종종 보이고, 산자락 속을 들여다보니 요즘 한창 노란 꽃을 단 미나리아재비와 은방울꽃, 현호색류, 할미꽃 정도가 독초 축에 들 정도였다. 이전 마을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천남성이나 반하(半夏)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풀이 그렇게 맛이 있느냐고 묻는다. 소를 물가까지 데리고 갈 수는 있으되, 그 물을 먹고 물맛을 얘기하는 건 소에 달렸다. 의심만 하는 사람은 별 수 없다. 풀들은 모두 저마다 독특한 맛과 향, 씹힐 때의 촉감과 소리를 갖고 있다. 우리는 편견 없이 그리고 자신의 욕망의 취향과 무관하게 풀을 만날 필요가 있다.

10여 년 전 중국 연변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연변에서 달포쯤 하숙을 했다. 그런데 뜻밖의 고역이 따랐다. 음식마다 들어있는 향채(香菜) 때문이었다. 향채는 기름기가 많은 음식의 느끼한 맛을 지우기도 하고, 또 재료가 지닌 본래 맛을 돋우기도 하는 일종의 향신 채소로 중국 음식에선 감초처럼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맛이 영 비릿해서 내 입맛엔 도통 맞지 않았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라는 말은 아마 여행자들에겐 대표적인 법언(法言)일 듯싶다. 나도 웬만하면 적응해보려 애썼다. 그러나 결국 ‘만세’를 부르고 말았다. 두 손 들었다는 얘기다. 결국 내 하소연을 들은 하숙집 주인댁에서 그 향채를 음식에서 뺐다. 그런데 훗날 알고 보니 그 향채는 다름 아닌 고수였다. (이번에 텃밭에 파종한 풀이기도 하다.) 영어론 코리앤더(Coriander). 아니 ‘고수’라면 사찰에서 곧잘 재배한다는 그 풀 아닌가. 불가의 수행과정에선 종종 상기병(上氣病)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몸의 기운, 특히 화기(火氣)가 머리로 몰려 발생하는 병이다. 고수는 이 상기병을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된다 하여 재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수행자라도 이 고수에 익숙하지 않은 초심자는 고수를 잘 먹지 못한다. 그 비릿한 맛 때문이다. 그래서 고수를 먹는 품새를 보아 출가 연륜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말도 나왔다.

언젠가 나도 그 맛을 보리라 했던 고수를 이런 저런 인연으로 말로만 접하다가, 마침내 두 해 전 그 씨앗을 구해 심게 됐다. 연변에서 향채를 먹을 때완 달리 이번엔 그 맛에 반해 버렸다. 명상의 기본 원리를 통해 그 맛을 만났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떤 풀의 맛과 온전하게 만나려면 그 풀을 씹을 때 전력투구를 해보는 것도 유력한 방법이다. 명상의 기법을 원용한 것이지만, 나 같은 경우는 풀의 맛을 볼 때 이빨로 씹는 행위에 집중한다. 씹다 보면 맛에 대한 느낌, 향과 촉감, 씹힐 때 나는 소리에 대한 첫 느낌이 온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첫 느낌을 뒤따르는 과거의 체험과 기억, 호불호의 선입견, 가치판단 따위에 끌려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맛이나 향은 내 입맛에 맞다, 맞지 않다’랄지 또는 ‘좋다, 나쁘다’라는 생각 따위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오직 이빨로 씹는 행위에만 집중할 뿐이다. 그러다보면 수많은 느낌들이 일어났다 사라진다. 그렇게 해서 풀이 물에 가까워질 때까지 씹다 보면 그 풀의 맛과 온전하게 만날 수가 있었다. 모든 풀의 맛은 환상적이었다. ‘맛이 좋다’라는 뜻이 아니라, 그 풀의 본성과 만날 수 있어서 그 아름다움이 사무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만난 그 풀의 고유한 맛은 그 후 그 풀을 먹을 때마다 되살아났다. 고수도 직접 재배해 그와 같은 방식으로 먹고 난 후의 맛을 느껴보니, 너무 ‘고소’했다. 옛날 느꼈던 그 비릿한 맛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예전에 ‘비릿하다’고 느꼈던 것은 오랜 세월의 식(食) 관습을 통해 길들여진 내 입맛이 지어낸 허상이었다. 상추 같은 쌈 채소에 고수 몇 잎만 얹혀 쌈을 해도 그 맛은 기가 막혔다.

텃밭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떻게 얘기가 먹는 쪽으로만 흘러버린 것 같다. ‘무위의 텃밭’ 운운하며 먹거리로서의 풀을 이야기하다 보니 낭만적인 느낌도 들지만, 그러나 현실 속에서의 풀은 농부들에겐 큰 시련일 때가 많다. 밭 같은 곳에서 자라는 그 풀들을 보라. 한 연구에 따르면 경작지 토양 중의 풀씨의 수는 1평방미터당 작게는 3만 4천개, 많게는 7만 5천개나 됐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이 풀들과 때로는 밀치거나 밀리고, 때로는 싸우거나 화해하며 살아야 한다. 풀은 만만찮은 화두인 것이다. 내가 농부로서의 삶을 시작한 첫 해에 어머니께서 오셔서 머물다 가셨는데, 어느 날 겨자씨만한 떡잎을 달고 올라오는 풀들을 보며 말씀하셨다.

“저것이 네 눈엔 풀로 보이냐?”

겪어보면 풀은, 구약성서 욥기의 경구를 상기시키곤 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명아주를 보라. 마음껏 자란 명아주는 풀이 아니라, 차라리 나무다. 돌피를 보라. 그 풀을 뽑겠다고 달려드는 인간에게 그는 말한다. “네 손목부터 내놓아라.” 크게 자란 돌피의 그 수염뿌리는 장사가 와야 뽑는다.

사실 이 텃밭은 먹거리를 충족시켜주는 보급창고 역할 뿐만 아니라, 농사와 관련한 갖가지 실험공간으로서의 의미도 크다. 특히 귀농한 초보 농부들에겐 더욱 그렇다. 이 텃밭에서의 여러 실험을 통해 자기만의 농법도 찾아내고, 병충해 등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와 때로는 대증요법에 대한 지혜도 익힌다. 풀이나 작물과도 다양한 형태로 깊이 만날 수가 있다. 재배학은 작물을 ‘인간의 욕망이 작물체의 어느 일부분에 한정돼, 그 일부분만이 이상발달(異常發達)하도록 개량한 일종의 기형식물(畸形植物)’로 정의한다. 발달된 작물일수록 기형의 도(度)가 높다. 유위(有爲)의 극치를 작물을 통해 보고 있는 셈이다. 손수 채종하고 재배한 토종식물들은 예외가 될 수 있지만, 농부들은 대부분 이 기형식물인 작물에 대해 새롭게 학습해야 한다. 그들의 변형된 유전적 속성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한 까닭이다.

요즘은 나 같은 인간부터도 그렇지만 이른바 ‘먹물’ 출신들의 귀농인들이 많다 보니, 농사에 대한 얘기도 말의 성찬으로 넘친다. 농사법만 해도 ‘무위’니 ‘자연’이니 ‘생명’이니 그럴듯한 수사(修辭)가 많이 따라 붙는다. 나는 이렇게 산다거나, 나는 이런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언표들을 보면 위태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해가 갈수록 어렵고도 어려운 게 농사였다. 이력이 붙는다고 해서 농사도, 또 농사를 매개로 한 삶도 수월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요즘 들어 새삼 스스로를 뒤돌아보는 것이지만, 홀로 있을 땐 삶의 진정성을 생각하고, 이웃들과 함께 있을 땐 삶의 보편성을 다시 생각한다. 진정성이 있는 삶이라 해도 그곳에 보편성이 없다면 결국 자위에 그칠 뿐이었다.

마침내 어제(13일), 봄새로는 막차로 뻐꾸기가 와서 울기 시작했다. 고맙고도 고마운 일이다.

“뻐꾹! 뻐꾹! 봄이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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