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새들이 돌아왔다. 여름철새라 부르는 새들이다. 물에선 물새가, 산에선 산새가 울었다. 봄은 꽃으로도 오지만, 새를 통해서도 온다. 조신(鳥信)이다.
마을 옆을 흐르는 강은 이미 오래 전부터 수선스러웠다. 텃새인 원앙이와 흰뺨검둥오리도 보이고, 본래는 겨울철새이지만 텃새처럼 눌러앉은 청둥오리와 논병아리도 산다. 지난 3월부터는 백로와 왜가리, 꼬마물떼새, 노랑할미새, 알락할미새들도 찾아들기 시작했다. 산에도 지난 가을 떠나간 산새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호랑지빠귀를 비롯해 후투티와 소쩍새, 휘파람새 등 돌아온 새들이 벌써 적잖다. 이곳 산골에선 대체로 입하(立夏) 무렵쯤 찾아오는 뻐꾸기가 봄새로는 막차다. “뻐꾹, 뻐꾹, 봄이 가네.” 이 동요의 노랫말은 뻐꾸기가 언제 오는지를 옳게 보았다. 그가 찾아와 울 때쯤이면, 백설희의 노래처럼 마침내 ‘봄날은 간다’.
철따라 찾아오는 이 봄새들을 보면, 만사 제쳐 놓고 우선 반갑다. 또 한편으론 외경스럽다. 생사를 넘나드는, 그들의 혹독한 통과의례가 떠올라서다. 이 새들은 대부분 ‘강남(江南)’ 지방에서 온다. ‘강남’은 중국에선 양자강 이남을 뜻하지만, 조류학에선 훨씬 포괄적인 개념이다. 중국 남부는 물론 인도차이나반도와 말레이반도, 인도네시아, 필리핀제도까지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지역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새들이 그 강남에서 한반도를 찾아올 때는 반드시 바다를 건너야 한다. 남중국해부터 건너거나, 적어도 일상에서 ‘동지나해’라고 부르는 그 동중국해는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다. 그래야 하다못해 ‘토말(土末)’ 같은 한반도 최남단의 ‘땅끝마을’에라도 몸을 부릴 수가 있다. 망망대해, 그 바다를 건너야만 ‘피안(彼岸)’에 닿을 수 있는 여행, 그게 이 여름철새들에겐 숙명이다. 그것도 올 때와 갈 때, 한 해에 두 번씩.
강남 지방 어느 해안가의 숲. 무슨 까닭인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불어오는 바람은 어제와 달랐다. 바다와 그 위의 푸른 하늘도 어제의 그것들이 아니었다. 새들은 모여, 다시 그 망망한 바다를 의혹이 가득 찬 눈으로 응시한다. 떠나야 할 때다. 직감한다. 그들은 바다를 건너야 하는 그 여행의 의미와 고난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일까.
그 여행에서 수많은 새들이 죽는다. 도리 없이 수장(水葬)이다.
바다를 건널 때 아마, 밤이 되면 밤하늘의 별들과 달도 만나리라. 까막까치가 모른 척만 해준다면 은하수의 오작교도 건너고, 인연에 따라 별똥별도 만나리라. 때로는 칠흑 같은 어둠 혹은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농무(濃霧) 속에서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게 될지도 모른다. 폭풍과 조우했다가 날개의 깃이 상하거나, 먹구름이 덮인 하늘을 지나다가 눈비를 겪을 수도 있다. 때론 눈부신 아침햇살을 온몸에 받고 깃털에 묻은 밤이슬을 말리거나, 저녁놀에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바다를 보며 위안을 받는 때도 있으리라.
이 새들이 겪는 또 다른 고난으론, 바다를 건널 때의 굶주림이 있다. 하늘에선 먹이를 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별 수 없이 굶는다. 바다 위의 하늘에서 보내는 이런 날들은 며칠 혹은 열흘이 넘도록 계속된다. 육지에 도착했을 때, 그들 중 몸무게가 절반으로 줄어든 새들도 있다.
“왔다! 왔다!(來了! 來了!)”
마침내 새들이 와서 울기 시작하면, 그들의 속내도 잘 모르는 인간들이 아큐(阿Q)처럼 수선을 피울 때도 있다. 그러나 새들은 그냥 지저귈 뿐!(但鳴! 但鳴!)
다음은 그 ‘먼 데서 오신 손님’들을 처음 만난 날들의 기록이다.
3월 25일 / 대지(大地)는 무차(無遮)하다. 자기에게 의지하는 생명들은 누가 됐든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3년을 묵힌 묵정밭을 보면서 사람들은 저것이 밭인가 의심했다.
“저게, 땅 갈이를 한다고 해서 밭이 될까. 참, 남의 일 같지 않네.”
트랙터를 갖고 있는 분은 초벌갈이를 부탁하는 나를 보면서 밭이 영 미심쩍다는 듯이 혼잣말을 했다. 그러나 풀들을 무성하게 키워낸 그 밭을 보노라면 대지는 참으로 대지답다.
초승달이 걸린 밤길.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에서 휘파람 소리를 만났다. 강 건너 숲에서 들려왔다. 마침내 왔구나! 호랑지빠귀! 봄은 그대가 오기 전에 이미 와 있었지만, 봄밤은 그대가 와서 휘파람을 불어야 비로소 봄밤이다.
몇 해 전 짙은 안개가 낀 미명의 새벽에, 주천강(酒泉江)을 지나다가 들었던 그 휘파람 소리는 지금도 귓전에 남아 있다. 안개 속에서 들릴 듯 말 듯했던 그 휘파람 소리는 처음엔 ‘소리’였다가 나중엔 그냥 ‘안개’가 돼버렸다.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소리를 ‘바라보고’ 있던 나 역시 기류를 따라 밀려가고 밀려오는 그 안개에 어느새 묻히고 말았다.
4월 3일 / 산밭으로 오르는 길에 만난 찌르레기 떼. 길 옆 논둑에서 무리를 지어 먹이를 찾고 있었다. 종종 두 발로 서서 몸을 곧추세우고 경계할 땐, 철책선의 보초병 못지않다. 찌르레기의 날카로운 눈길을 피하다가 둑에 피어있는 꽃들을 덤으로 만났다. 냉이와 꽃다지, 꽃마리에 이어, 산괴불주머니와 제비꽃 그리고 마침내 애기똥풀!
4월 14일 / 후투티도 돌아오다. 이른 아침, 앞산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오다. 그 우는 소리만 가지고 얘기하자면 벙어리뻐꾸기와는 사촌간이다. 닮은 구석이 있다. 머리에 우관(羽冠)을 쓴, 이 보기 드문 새를 나는 운 좋게도 해마다 만나고 있다. 지난 해 여름 홍천에 갔을 때, 폐교가 된 한 초등학교 운동장을 찾아왔던 이 새가 명주잠자리의 애벌레가 사는 개미지옥 주변을 맴돌며 그 긴 부리를 쓸까말까 망설이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다.
4월 17일 / 깊은 밤, 강 건너 산에서 마침내 소쩍새가 울기 시작하다. 이 새가 없었으면 이 땅의 전설이나 야담 혹은 시가(詩歌)문학이 적조했으리라.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보면, ‘봄부터 소쩍새는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라는 시구가 나온다. 어느 여류시인이 이 시구를 예를 들면서, 소쩍새와 두견이에 대해 이렇게 썼다. “소쩍새는 여름새이지 봄새는 아니다. 봄밤에는 두견새가 제 피를 뽑아내어 온 산천에다 피칠하여 울고 울어서 진달래가 붉게 피는 것으로 상상했지 여름새가 운다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실제로 울지도 않는다.” 이 지적은 소쩍새와 두견이에 대한 오해에서 빚어졌다. 소쩍새는 여름철새이지만 봄부터 와서 운다. 두견이 역시 여름철새다. 그러나 도래하는 시기는 소쩍새보다 오히려 늦을 때가 많다. 한편 봄밤에는 여름새인 소쩍새가 울지 않는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봄밤엔 우는 건 소쩍새이지 두견이가 아니다. 두견이는 밤엔 울지 않는 새다. “한양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 남대문에 문턱 달렸다”고 우긴다는 속담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이 같은 오해를 하게 된 내력은 아무래도 중국 촉한 땅의 귀촉도(歸蜀道)설화에 등장하는 두견이 이야기의 영향을 받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옛 문학사에서 소쩍새가 두견이로, 또는 두견이가 소쩍새로 서로 혼재돼가며 쓰인 전통 때문인 것 같다.
깊은 밤 소쩍새가 삼경(三更)을 차별하지 않고 쉼 없이 울어대면, 읽던 책도 덮고 그만 불을 끄고 싶어진다. 안에 머물러 있던 마음이 그 소리를 듣고 문득 밖과 소통하려는 낌새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럴 땐 차라리 그런 마음의 동선(動線)을 바라보고 있는 게 공부다. 산과 어둠, 별과 달, 온 천지 생명들이 갖고 있는 기운들의 총화처럼 들리기도 하는 소쩍새의 울음소리엔 그런 비의적인 힘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소쩍새 울음소리는 이 봄밤에 내가 넘어가야 할 큰 고갯길 같다.
4월 21일 / 아침 산길에서 벙어리뻐꾸기 울음소리 만나다. ‘벙어리매미’라고 부르는 참매미의 암컷은 울지 않는다. 그러나 이 벙어리뻐꾸기는 벙어리가 아니다. 관악기 특유의 공명음을 닮은 음색이 인상적인 새다. 뻐꾸기처럼 둥지를 짓지 않고, 작은 새들의 둥지에 탁란(托卵)을 하여 새끼를 기른다. 이 새가 울기 시작하면 혹 작은 새들이 본능적으로 긴장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부지(不知). 부지(不知). 내게 묻지 말라.
4월 23일 / 이른 아침 홍화밭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휘파람새를 만나다. 휘파람 소리를 내는 호랑지빠귀를 휘파람새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굳이 이 새의 울음소리를 비유하자면 호루라기 소리를 닮았다. 그 작은 몸에서 어찌 그리 성량이 풍부한 소리가 나올까. 나는 그의 성대를 걱정할 때가 종종 있다.
4월 24일 / 새벽 4시 경, 잠이 깨다. 누가 어둠 속에서 오이채를 썰고 있었다. 쏙독새였다. 오이채 써는 소리를 빼닮은 그 울음소리가 강 건너 숲에서 들려왔다. 일명 머슴새.
오후엔 뒤란에서 손바닥만한 텃밭을 만들다가 지붕 위 하늘을 나는 청호반새 한 쌍도 만났다. “‘호반’이라는 이름만도 이쁜데, 그 앞에 ‘청’자까지 붙어요?” 김해의 한 선원에서 만난, 어느 눈 ‘푸른’ 비구니 납자가 그 눈을 크게 뜨고 말했던 바로 그 새다.
4월 27일 / 그 동안 울음소리만 들려주던 후투티 한 쌍이 강둑 위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다.
4월 28일 / 아침에 일어나보니 마당도 하얗고, 담장 너머로 보이는 논둑과 밭둑도 하얗다. 된서리가 내렸다. 엊그제부터 기온이 뚝 떨어지고, 산이 깊은 곳엔 폭설까지 내렸다. 이웃집 텃밭들을 보니 옮겨심기를 한 고추와 호박, 옥수수는 모두 죽고 말았다. 비교적 냉해에 강한 편인 감자도 싹이 대부분 죽었다. 큰 밭이 아닌 텃밭 농사에서 일어난 일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오후에 강둑으로 나섰다. 아, 새모래덩굴! 이제 막 땅 밖으로 얼굴을 내민 그 덩굴줄기가, 서리에 그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말았네! 햇살에 언 몸이 녹자, 투명해 뵈던 그 홍자색의 줄기와 잎은 타들어간 듯이 까맣게 변하고 말았다. 그 덩굴줄기는 매우 여려 보였기 때문에 보는 이의 모성을 불러일으키고, 비폭력성과 근원적으로는 수동성(受動性)의 극치처럼 보였었다.
풀들의 세상이야 어찌됐든, 강둑 맞은편의 절벽에선 새 한 마리가 매혹적으로 울었다. 봄이나 가을에 이 땅을 지나가는 나그네새, 붉은배지빠귀였다. 두 소절로 이루어진 그 울음소리는 폭포수가 떨어지는 듯 생동감 있고, 그네를 탄 처녀가 깔깔거리며 발을 구르는 듯 힘찼다.
글을 쓰고 있는 이 밤도 소쩍새가 피를 토하듯 운다. 아마 인간으로부터 정한(情恨)이랄지 그런 인문적(人文的) 정서의 가탁을 가장 많이 받은 새가 이 소쩍새일 게다. 자연의 소리를 듣되, 자기를 잃지 않고 그 소리와 만날 수 있는 지혜가 있을까. 인도의 한 현자가 말했다.
“지금 밖에서는 까마귀가 울고 있다. 그대는 지금 그 울음소리를 듣고 있는가? 그러나 그 새를 ‘까마귀’라고 언어화하는 순간, 그대는 까마귀의 참모습을 만나지 못한다. 언어를 떠나서 그냥 들으라. 까마귀의 울음소리와 그 소리를 듣고 있는 자, 그 둘을 동시에 바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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