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시(寅時) 말미에 잠이 깼다. 밖은 아직 어둠이 깊었다. 거처를 옮긴 후 처음 맞는 밤인 탓인지 잠이 깊게 들지 못했다. 뒤란으로 통하는 창호를 보니 창살의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집 뒤편 길가의 가로등 불빛 때문이다. 한지를 바른 문은 뒤란의 마가목과 주목의 그림자까지 드리워져 마치 한 폭의 묵화처럼 보였다.
멀리서 닭 우는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에 듣는다. 반가웠다. 옛사람들은 새벽닭 울음소리가 들리면, 밤에 활동하는 정령(精靈)들과 인간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사기(邪氣)들이 물러간다고 믿었다. 그래서 닭이 울고 난 이후부터 세상은, 다시 인간의 것이 되었다. 닭 울음소리에 뒤이어 인간들은 종종 헛기침 소리를 냈다. 자신의 세상임을 확인하는 기척이기도 했다.
이런 저런 상념에 빠져있을 때, 문득 뒤란 대추나무 주변에 새 한 마리가 와서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농사를 시작한 이래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울음소리는 낮지만 무게가 실려 있었다. 솔부엉이였다. 동요 ‘부엉 부엉새가 우는 밤’의 <겨울밤>에 나오는 바로 그 새다. 산이 깊은 게 이 새를 만나게 된 빌미가 된 것 같다. 창호의 한지에 침을 발라 구멍을 냈다. 이 밤새를 볼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심한 솔부엉이는 몇 번 더 울다가 곧 사라져버렸다.
다시 자리에 누워 벽을 보니 못 보던 불빛 하나가 들어와 있었다. 조금 전 내가 창호에 낸 구멍으로 들어온 가로등 불빛이다. 불빛은 초승달 모양이었다. 돌연 방안에 초승달 하나가 떴다. 시인의 술잔에 달이 떴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런 방안에도 달이 뜨다니! 솔부엉이와 가로등 그리고 내가 서로 인연을 맺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그러고 보면 인연이란 참으로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렵다.
이효석의 단편 <메밀꽃 필 무렵>은 제목 그대로 메밀꽃이 필 무렵의 어느 달밤, 평창의 봉평장에서 대화장으로 넘어가는 밤길이 그 무대다. 이른바 ‘길 위의 문학’이다. 주인공인 허생원은 닷새장을 따라 떠도는 장돌뱅이였다. 새삼 허생원 얘기를 꺼내는 것은 요즘 내 사는 모양이 허생원을 닮은 게 아닌가 해서다. 이곳에서 대처로 나가려면 허생원이 지났던 바로 그 길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게다가 농사를 짓는답시고 옮겨다닌 게 이번이 벌써 세 번째이니, 이 또한 장돌뱅이 허생원을 닮았다. 장돌뱅이 농사꾼인 셈이다.
농사꾼은 모름지기 어느 한 곳에 정착해 뿌리를 내리는 게 마땅하다. 자기 몸을 의탁한 대지(大地)에 경의를 드리고,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오랜 세월을 두고 깊이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또 그 땅의 여러 구성원들 -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까지 - 과 서로 교류하며 살아야 한다. 그런 삶의 당위를 절감하는 나는 지금처럼 살아가는 방식에 자책할 뿐이다. 장돌뱅이 같은 삶을, 눈 딱 감고 잘 보아주면 아마 ‘만행(萬行)’ 정도일 게다. 만행은 길 위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구도(求道)의 행각이다. 그러나 나의 이 남루한 삶을 어찌 ‘만행’에 빗대어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삶을 사는 데는 나도 어찌해 볼 수 없는 인과(因果)가 있지 않나 싶다.
이번에 여기 저기 산촌을 찾아 다녀보니, 빈집을 보러 다니는 일도 갈수록 만만찮았다. 빈집은 잠시 비워둔 집이 아니다. 사람이 살다가 아예 떠나가 버린 집이다. 행정용어론 ‘공가(空家)’란 말이 쓰이기도 했지만, ‘폐가’나 ‘흉가’로 불리는 경우도 적잖다. 예전과 달리 이런 빈집 앞에 서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나만 빈집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빈집도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빈집과 내가 서로 온전한 방식으로 만났을 때 겪는 일이지만, 설명이 쉽지 않다. 나는 이런 체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이 느낌은 빈집일망정 그 앞에서 함부로 처신하는 걸 막아준다. 집이 아무리 허름하고 낡았어도 불평하거나 험담할 엄두를 감히 내지 못한다. 더욱이 빈집은 모두 그 나름의 사무치는 서사(敍事)를 간직하고 있다. 60년대 이후의 산업화 과정부터 오늘날의 세계화나 FTA에 이르기까지 그 와중에서 휘둘리고 소외된 농민들의 절절한 삶의 흔적이 담긴 곳이 바로 농촌의 빈집들이다.
새로운 땅으로 옮겨갈 때마다 자계(自戒)하는 게 있다. 그것은 그곳의 집과 대지, 동식물 등 자연의 다른 존재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는 삶에 관한 것이다. 이는 대단히 미묘한 문제다. 그러나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버리면 자연계의 다른 존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 발자국 뗄 때마다 그들의 눈과 귀를 만날 수도 있다. 그러면 그때부터 비로소 그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는 삶도 보이기 시작한다.
내 집 옆 멀지 않은 곳엔 남한강의 상류를 이루는 평창강이 흐른다. 이 강은 양평의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한강을 이룬다. 강을 생각하니 다섯 해 전쯤 북한강 주변을 오가며 귀거래사를 쓰던 때가 떠오른다. 북한강 주변에 갈 때마다 강가에서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안개를 만나곤 했다. 가인(歌人) 정태춘은 <북한강에서>를 통해 이런 북한강을 절묘하게 표현해냈다. 자신의 내면을 깊이 응시하고 그걸 강에 투영시킨 노래였다. 노래와는 거리를 두고 산 나도 당시 그 노래를 자주 만났다.
“강물 속으론 또 강물이 흐르고, 내 맘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딪히며 흘러가고,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또 가득 흘러가오.”
노랫말을 다시 들여다보니, 정태춘은 시인이기도 했다.
참으로 쓸쓸한 얘기지만, 지금도 내 마음속엔 여전히 ‘내가 서로 부딪히며 흘러’간다.
오늘부터는 3년이나 묵힌 묵정밭의 비닐을 벗겨야 한다. 그나마 어렵게 구한 밭이다. 이랑에 씌워진 검은 피복비닐은 넝마조각처럼 너덜너덜하고 풀과 흙에 덮여 있다. 말 그대로 쑥대밭이다. 쑥대 사이사이로 달맞이꽃과 새팥, 돌피, 바랭이들도 극성을 부린 흔적이 역력했다. 고라니 똥들이 무더기로 이곳 저곳 널려있는 걸로 보아 그 녀석들만 한 세상 잘 놀다 간 것 같다.
밭으로 가는 길엔 별꽃나물의 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별은 하늘이 아닌, 지상에도 떠 있었다. 큰개불알풀과 황새냉이, 꽃다지도 몇몇은 꽃을 달았다. 봄이 오긴 온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내 마음만 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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