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화에 꽃망울이 돋기 시작하던 어느 초여름이었다. 생명이란 것도 무상(無常)했다. 꽃망울이 몸피를 부풀려가며 그 태깔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홍화의 그 짙푸른 잎은 빛을 잃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빛나기 위해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빛을 죽여야 하는 걸까.
홍화밭 아래편엔 천둥지기처럼 비가 오지 않으면 바닥이 마르는 습지가 있었다. 산사나무와 갯버들, 산뽕나무에 둘러싸인 이 습지 안엔 석잠풀과 숨은노루오줌 군락 등이 자라고 있었다. 어느 날 좀 더 안쪽으로 습지를 가로지르다가 애기부들 한 무리를 만났다.
부들은 수런거리듯 조용히 몸을 흔들고 있었다. 바람을 만난 게 분명했다. 내 가슴까지 올라오는 그 길다란 키에도 불구하고 칼날처럼 곧추 서서 함치르르한 몸을 흔드는 잎들이라니! 서 있는 모습이 매우 위태로워 보였으나 활처럼 휘어지거나, 꺾여진 잎은 보이지 않았다. 너무 경이로워 말을 잃었다.
그런데 부들의 잎이 '바람에 나부낀다'라는 생각이 들자, 문득 옛 선사(禪師)의 어록 한 구절이 스쳐갔다. 그곳엔 그 비의(秘意)를 알 수 없는 바람 한 줄기에 대한 얘기가 있었다.
"수죽인풍(脩竹引風)!"
("길게 자란 대나무가 바람을 불렀네!")
선사는,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몸을 흔들어대는 대숲을 바라보면서, 바람이 길게 자란 대나무를 흔드는 게 아니라 길게 자란 대나무가 바람을 불렀다고 말한다.
길게 자란 대나무는 바람을 잘 탄다. 그래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대나무는 쉽게 나부낀다. 그러나 한편 바람은, 그 대나무가 몸을 흔들어주어야 비로소 그 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 이를테면 '태산 같은' 바위는 좀처럼 바람의 존재를 말해주지 않는다. "바람 바람 바람은 서 있는 놈이 없으면 바람도 아니야"라고 했던 장일순 선생의 화제(畵題)가 떠오르는 대목이기도 했다.
"길게 자란 부들의 잎이 바람을 불렀네!"
부들의 잎이 '바람에 나부낀다'는 생각을 버리고, 선사의 말에 기대어 독백을 해보았다. 뱉고 보니 그저 막막하고 뭔가 알 수 없는, 사무치는 느낌만 남는다.
바람은 스스로 불어온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부른 것일까.
선(禪)이나 명상에서 말하는 인과(因果)란, 본질적으론 시간과는 무관한 개념이다. 원인과 결과가 시간을 '전후(前後)'로 해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인(因)'과 '과(果)'는 다만 상호의존하고 있을 뿐이다. 역설적으로 '전'은 '후'가 있고 난 후에 그때부터 존재하고, 또 '인'은 '과'가 있고 난 후에 역시 그때부터 비로소 존재한다. 따라서 길게 자란 대나무가 몸을 흔들었을 때, 비로소 그곳에 바람이 있었다고 할 수도 있다.
직ㆍ간접적인 경험이나 학습을 통해 형성된 가치관은 우리의 마음을 딱딱하게 굳은 무리풀 모양으로 만들 때가 많다. 그런 경우 사물을 보는 시각이 고착되기 마련이다.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 사물을 새로 발견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는 것"이라는 잠언은 대단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입견이란 종종 쇠말뚝 같은 것이어서 그곳엔 유동성이라곤 없어 보인다. 그것은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는 걸 방해한다. 선사의 자유로운 선어(禪語)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바로 그 점을 본다.
장마비 내리자
물가에 서 있는
물새의 다리가 짧아지네.
- 바쇼(芭蕉)
잠깐, 그대는 지금 바쇼에게 뭘 얘기하려는 건가? "물새의 다리는 결코 짧아진 게 아니라, 다만 물 속에 잠겨 있을 뿐"이라고 말하려 하는가? (^^)
기존의 가치관 등 선입견에 매이지 않은 채, 이처럼 자유스럽게 사물을 바라보는 게 바로 다름 아닌 직관(直觀)이다.
국어학자 이희승 박사가 편저한 <국어대사전>(민중서림)을 보면 직관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판단ㆍ추리 등의 사유(思惟) 작용을 덧보태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작용."
판단ㆍ추리 등의 사유 작용을 덧보태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관 등 선입견으로 사물의 선악이나 호오(好惡)를 재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인간의 가치관이라고 하는 게, 일견 상식과 규범에 무제한적으로 헌신하고, 보편적 가치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본질적으론 불완전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런 사유 작용으론 사물의 참모습을 볼 수가 없다. 인간 이성(理性)의 숙명적 한계가 여기에 있다.
"선(禪)은 중재(仲裁)나 심사숙고를 싫어한다"고 말한다. "생각하면 노예요, 바라보면 자유인이다"라는 말도 있다. 직관 역시 중재나 심사숙고를 싫어한다. 직관은 또 '생각하는' 것이 아닌 '바라보는' 것을 그 본성으로 한다. 사물의 참모습에 화살처럼 곧장 닿기 위해서다.
"생각하므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가 있다. 그러나 판단ㆍ추리 등의 사유, 곧 '생각'할 때야말로 기실, 인간은 진정으로 존재하기 어렵다. 사물의 실상과 본질을 바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의 '생각'은 직관과 대척점에 존재한다.
직관이란 뭘까. 다시 자문한다. 이미 직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사전적인 정의랄지 또는 현상학과 같은 철학에서 말하는 직관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쉽게 감이 오지 않는다. 이 글 역시 직관이 무엇인지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쓰는 글은 아니다. 다만 이런 저런 단상들일 뿐.
일상생활 속에서 종종 경험하는 일이지만, 어떤 사람의 특별한 재능 - 이를테면 어떤 상황의 본질을 꿰뚫어보거나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두고 "직관력이 있다"고 하거나 또는 "통찰력이 있다"랄지 하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직관과 통찰은 언어 관습상 별 구분 없이 섞여 쓰일 때가 많다.
그런데 시중에 나와있는 몇몇 불교학사전류를 보면 '직관'이라는 낱말은 나와 있지만, '통찰'이란 낱말은 나와 있지 않다. 명상을 통해 지혜를 구하는 불교적 입장에서 보면, 통찰은 지혜의 원천이 아니다. 직관이 지혜의 원천이다. 통찰은 이성의 사유 작용에 속하지만, 직관은 사유 작용이 아니다. 직관은 되레 통찰 따위를 호동가란히 털고 나서서 사물의 본질을 직시한다.
모든 명상은 사유 작용의 '중지'에서 시작된다. 명상에선 이 사유의 중지가 직관과 지혜의 씨를 뿌리기 위한 수행의 첫 관문이다. 사유 작용의 한 유형인 통찰은 불교철학을 설명해주는 용어가 아니다. 이게 불교학사전에 통찰이 실리지 않는 까닭이다.
어떤 글이었던지 기억이 분명치 않지만, '산문적 해후'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다. 이 표현에 빗대어 얘기하자면 직관은 아마 '시적(詩的) 일별(一瞥)'로 표현할 수도 있을 듯 싶다. 산문적이라는 게 '구절양장(九折羊腸)' 같은 걸 떠올리게 한다면, 시적 일별은 섬광이나 순간의 영감(靈感)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제법 문학성을 담보한 표현에 뭔가 느낌이 그럴 듯하다. 그러나 이런 수사들은 직관의 이미지만 전해줄 뿐 직관의 본성은 결코 설명해주질 못한다. 그저 막막함만 더해 줄 뿐.
우연한 기회에 일본의 불교학자인 미즈다니 후미오(增谷文雄)를 만났다. 그가 어떤 책에서 말했다.
"각자(覺者)의 깨달음은 직관에 의한 것이다. 그 직관은 인간에게는 수동적(受動的)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눈앞이 환하게 밝아졌다. 나는 직관의 본성을 이렇게 명료하게 설파한 얘기를 접해본 적이 없다. 나는 보던 책을 그만 덮고 말았다. 미즈다니가 적시한 이 한 구절에 그만 주체할 수 없는 포만감이 밀려왔던 탓이다. 그렇다. 직관의 본질은 '수동성(受動性)'에 있었다. 직관을 달리 설명해보고자 했던 고민이 여기서 풀렸다. 수동성이라 함은 자아(自我ㆍEgo)가 준동하지 않는 걸 말한다. 자아의 완전한 침묵이다. 바로 무아(無我)의 상태다. 개인적으론 직관의 '관(觀)'이 '보다(See)'가 아니라, '보이다(Be seen)'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미즈다니의 얘기를 새삼 듣고 보니 그렇게 보아도 무방할 듯 싶다. '보다'라고 하면 보는 '주체', 곧 나(我)가 존재하므로. '만법(萬法)은 드러나(Be seen), 감출 것이 없다'는 것도 바로 이런 경우일 것 같다.
80년대 말 후쿠오카 마사노부(福岡正信)라는 일본인 농부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적이 있었다. <생명의 농업>(최성현ㆍ시오다 교오꼬 옮김ㆍ정신세계사)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후쿠오카는 일본에선 '현대의 노자(老子)'로 불리기도 했던 사람이다.
그는 서구의 과학지상주의적인 농법에 깊은 회의를 품고, 동양철학을 반영하는 그 나름의 농법을 탐색했다. 그 결과 그가 주창한 게 곧 '자연농법'이었다. 그는 이 농법을 단순히 작물을 재배하는 방법론으로서가 아니라, 궁극적으론 이 농법을 통해 인간 완성의 길을 추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자연농법은 기술적으론 4대 원칙, 곧 땅 갈지 않기와 풀 안 뽑기, 비료 안 주기, 농약 안 주기였다. 이를 철학적으로 설명하면 '일체무용(一切無用)'의 농사법이었다. 곧 인간이 농사에 개입하는 인위(人爲)나 유위(有爲)를 최대한 배격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식이라는 게 무지와 편견으로 가득 차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농사를 무위(無爲)의 자연에 맡겼다. 흙의 일은 흙에게, 작물의 일은 작물에게, 풀의 일은 풀에게, 벌레의 일은 벌레에게 맡겼다. 자연농법은 곧 무위의 농법이기도 했다.
그는 "그대는 벼가 말하는 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그는 자답한다.
"벼를 바라본다는 것은 결코 벼를 자신과 다른 대상으로 관찰하거나 사고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벼가 되는 것 그 자체이며, 그러려면 바라보는 자기가 없어져야 한다. 이것이 '보면서 안 보고, 안 보면서 안다'는 것이다."
자연의 참 모습, 그 실상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선악이랄지 그런 가치를 판단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그 방법론으로 무심(無心)과 무아(無我),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철학을 주창했다.
"인간은 알려고 하기 때문에 알 수 없게 된다네. (중략)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존재가 바로 이 밭의 무일세. 그렇기 때문에 무는, 모르지만 부처라네. (중략) 이 세상에 부처는 쓸어버릴 만큼 많다네."
그는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이슬 맺힌 무꽃과 그 꽃 위에서 춤을 추는 배추흰나비에서 부처를 보고, 신(神)을 보았다.
그는, 인간은 한 장의 푸른 잎새 또는 한 줌의 흙조차 영원히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은 나무와 흙을 참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축적을 통해서 인간의 식견으로 해석할 뿐"이며, 그걸 가지고 "나무와 흙을 알았다고 자부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자연에 접근할 때, 인간의 지식이나, 식견을 따르지 말고 무심과 무아, 무위에 따르라고 한 그의 주장은, 사실 그가 자주 썼던 표현은 아니지만 직관적 행위에 다름 아니다.
후쿠오카의 후일담으로 그가 '실패한 노자'였다는 풍설도 들려왔다. 한편 그런 풍설과 관계없이 그의 농법이 과연 보편성이 있는지에 대한 논란도 많았다. 그러나 어찌됐든 지극히 인문적이고 생태적인 농법을 탐색해 왔던 사람들 또는 농사 자체를 영성적인 삶으로까지 끌어올리고 싶어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이야기가 적잖은 시사를 던져주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자연에 대한 이야기도 직관이 무엇인지를 탁월한 문학적 감성으로 보여준다.
"그대는 한 그루의 나무와 교류를 가져 보았는가? 흘러가는 강물과 수면에 비친 아침 햇살의 화사한 빛, 연약한 갈대, 담장을 타고 오르는 작은 식물의 덩굴손, 잎새 위에 떨어지는 빛, 장엄한 저녁 노을, 밤하늘의 별들과 그대는 진정한 교류를 가져 보았는가?"
여기서 교류란 생각과 견해, 기억, 연상작용, 편견, 선입견, 사전 지식 따위가 끼어 들지 않은 채 대상을 바라보는 행위를 말한다. 바로 직관이다. 직관은 불완전한 자아가 완전하게 침묵할 때 이루어진다. 그는 그걸 묻고 있다.
"달을 바라보라. 그냥 보라. 마치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보라. 만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저 나무를, 저 덤불을, 저 잔디의 잎새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자연에 대한 생태적 접근이 이루어지면서 언제부터인가 "잡초는 없다"라는 말이 곧잘 쓰여왔다. 어떤 이는 생명 있는 존재들의 존엄성과 존재들간의 평등성을 이야기 할 때 이 말을 쓰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인간 중심의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풀의 효용성을 염두에 두고 이 말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풀과의 직관적 만남은, 잡초란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따위의 생각을 내지 않고, 풀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직관'이라는 걸 문패로 내걸고 얘기하다보니, 마치 자연주의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삶에 대해 얘기한 것처럼 됐다. 하지만 이런 직관적 삶의 방식은 자연만을 상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겪는 크고 작은 모든 삶에도 적용되어야 마땅하다.
한ㆍ칠레간 FTA문제로 농민들의 피눈물 어린 저항이 이루어지고 있는 마당에 이런 글을 쓰고 있자니, 한편으론 뒷덜미가 뜨겁다. 그러나 기실, 이 순간 우리의 삶은 자기가 서 있는 곳, 그곳이 어느 곳이든지 바로 '지금, 여기'에서 깨어 있는 삶이어야 하지 않을까.
요즘 저자거리에 유행하는 말로 "니들이 나를 알어?"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깨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질문은 스스로에게 먼저 던져야 한다.
"나는 나를 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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