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장모님의 회갑잔치**
장모님의 회갑날, 진작부터 동류 자매는 그날을 경축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상의한 결과 풍엽(楓葉)호텔에 자리를 예약하기로 했다. 바로 전날 동류가 내게 물었다.
“얼마나 드리죠?”
“당신 자매끼리 상의해서 정해. 처제가 드리는 만큼 당신도 똑같이 드리면 되겠네. 처제도 일 하잖아.”
“오늘 알았는데, 동훼는 육백 위안 드리기로 했대요. 그런데 돈 빌리기도 시간이 촉박하잖아요.”
“처제가 일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아직 한 달 월급이 백 얼마밖에 안 되는데 무슨 허세를 그렇게 부려?”
“임지강이 뒤에서 대주는 거겠죠. 요즘 돈을 바다같이 벌더니 우리를 몰아붙이네요.”
“그게 바로 그 인간이 추구하는 효과잖아. 내가 그 인간한테 뜨뜻미지근하게 대하니까 쌓인 게 많은 게지. 나는 그 인간을 무슨 경쟁자로 생각한 적도 없는데 그 인간은 나를 그런 식으로 보고 있으니, 우습군! 그럼, 당신도 육백 위안 드려. 어차피 당신 어머니, 결국은 한 바퀴 돌아서 일파한테 물건이나 사주실 텐데 뭐.”
“설 쇠고 나면 돈 떨어지는데, 이번 달은 이십팔일뿐이라 좋아했었는데. 월급 이틀 빨리 받으면 한 숨 돌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림도 없겠네. 그리고 내가 어딜 가서 육백 위안을 융통해 와요? 동훼 그 애도 정말 철이 없어.”
“은행에 아직 몇 백 위안 남아 있잖아. 그 돈 찾아야지 뭐.”
“그것은 정기적금이에요. 어렵게 큰 돈 만들었는데 지금 깨면 너무 아깝잖아요. 동훼가 너무 철이 없어. 임지강하고 둘이 장단 맞추는 건지.”
“매년 오는 생신일 따름이야.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매년 한 번씩 돌아오는 생일인데 그냥 이백 위안으로 성의만 표시하고 치워. 다른 사람 얼마 드리건 신경 쓰지 말고.”
“나도 체면 차리고 사람 노릇하고 싶단 말이에요. 치사하게!”
“그러면 당신이 알아서 해. 어쨌든 당신 어머니니까. 나는, 많이 드린다고 아까워하지도 않을 거고, 적게 드린다고 부끄럽게 생각지도 않을 거야.”
“이런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거예요? 당신이 회피하면 그 책임이 땅에 떨어져요? 그게 다 나한테 떨어지잖아요. 아주 맘 편하네! 내 맘대로 하라고요? 그럼 내가 내일 아침 일찍 은행을 털든지 아니면 당신네 재무처(財務處)에 가서 오백 위안만 빌리죠. 나 그렇게 할 거예요.”
나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당신 또 시작이야?”
그녀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방금 내 맘대로 하라고 해놓고 내가 이렇게 한다니까 또 싫다고 하고. 그럼, 당신이 어디든 가서 삼백 위안 빌려 와요.”
“나더러 돈을 빌리라고? 생일 때문에? 나 내일 안 갈래. 당신 혼자 가! 야근이라고 얘기하든가.”
“그럼 당신이 아래층에 내려가서 엄마한테 직접 얘기해요. 일생에 환갑이 몇 번이나 와요? 엄마가 당신네 지 씨 집안에 온 게 벌써 일년, 아니 이년 되어가요. 그 동안 당신이 파출부 월급이라도 준 적 있어요? 안 가겠다고요? 그래 놓고 자기도 사내라고. 말 한 번 잘하네요. 잘났어, 정말. 당신 때문에 나도 같이 고생하고, 우리 엄마도 같이 고생하고, 우리 일파까지 당신 때문에 같이 고생해요. 생활이 이게 뭐예요? 다른 사람들은 쏜살처럼 위로 뛰어올라 가는데 우리는 항상 똑 같은 자리에서, 보아하니 늙어 죽을 때까지 이 모양 이 꼴로 살겠네요. 나는 당신이 유능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기다려야 한다는 게 두려운 건 아니에요. 벌써 이렇게 오래 기다렸잖아요. 이제 당신도 재주를 발휘할 때가 오지 않았나요? 우리 모자 기대를 헛되게 하지 말아요. 아직도 바른 생활만 하고 살라고? 몇 년만 더 바른생활 해봐요. 우리 모자는 당신 때문에 인생 종치는 거지.”
나는 아무 표정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입을 삐죽거리면서 웃더니 나가버렸다. 그 웃음이 내 가슴속 화약고에 불을 지른 것 같았다. 내가 컵을 막 들어올렸을 때에는 그녀의 뒷모습은 이미 문에서 사라진 후였다.
다음 날 동류가 은행에서 돈을 찾아왔다. 돌아와서 그녀가 말했다.
“돈 찾아 왔어요. 하지만 가능한 한 빨리 메워야 해요. 집안에 비상금이 있어야죠. 우리 일파한테 급한 일이라도 생겨 돈이 필요하면 어떡해요? 그렇죠?”
“당신이 하는 말은 항상 옳아. 당신이 언제 틀린 소리 하는 거 봤어? 설사 당신이 틀렸다고 해도 그게 맞는 거야. 당신이 한 말이니까.”
“말 한 번 잘했어요. 다음 달부터 용돈 하루에 오 위안만 몸에 지니고 다녀요. 십 위안은 너무 사치예요.”
“당신 말이 언제나 옳긴 하지만….”
그녀가 바로 물었다.
“하지만 뭐요?”
“하지만…,하지만 뭐 하지만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지. 안 그래?”
오후에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자 아래층에서 차 한대가 빵빵거렸다. 동류가 고개를 내밀어 보더니 말했다.
“임지강이 왔어요.”
“우리끼리 그냥 가면 되지 뭣 하러 그 인간더러 데리러 오라고 했어?”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임지강이 들어왔다. 차 열쇠를 손가락 끝에 걸고 눈앞에서 흔들어댔다. 고개도 열쇠가 움직이는 방향대로 이쪽저쪽 끄덕거렸다. 동훼는 배를 내밀고 뒤에서 왔다. 임지강이 말했다.
“장모님, 저희가 특별히 모시러 왔습니다. 생신 축하합니다. 환갑 축하드립니다!”
장모님이 말씀하셨다.
“임지강 자네는 운전 조심해. 곧 아빠가 될 사람이니 개미보다 더 느리게 운전하겠다고 약속하게. 정말 조심해야 해!”
나는 그 득의양양해 하는 인간을 향해 입을 삐죽거리면서 뜨뜻미지근하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냉담한 방관자의 웃음을 지어 보이려고 했다. 하지만 막 이런 표정을 지으려다 갑자기 뭔가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그런 정도의 심리적인 우월감을 느끼고 있나? 무슨 근거로? 나도 나 자신을 알 수 없었다. 차 한 대 있다고 그게 뭐가 그리 대단해? 돈 몇 푼 있다고 그게 뭐가 그리 대단해? 그런데 내가 어느 틈에 고고하게 그 인간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용기를 상실한 것일까?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와 임지강 사이의 심리적인 우열 관계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설명할 수 없는 변화가 생겼다는 것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변화가 나로 하여금 그런 웃음을 얼굴에 걸지 못하게 했다.
임지강이 동류에게 말했다.
“처형, 어떤 때는 정말 이해가 안 돼요. 장(蔣) 지배인이 나보다 높아 봤자 몇 센티미터 더 높은데, 그 사람은 혼다(本田)를 몰고 나는 토요다(豊田) 몰잖아요. 몇 달 후면 건물공사가 다 끝나는데, 그가 삼층에 살고 나는 오층으로 밀렸어요. 바로 그 몇 센티미터가 사람을 돌게 만드네요. 그는 직업 혁명가이지만 그 인간이 업무를 이해하나요? 나 아니었으면, 내가 그 대출 못 받아냈으면, 그 인간이 차를 탈 수 있었겠어요? 새 집에 들어갈 수 있었겠어요? 내가 향후 이년 계획을 세웠는데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부(副) 자 떼어버리려고요. 앞에 달린 이 부(副)자 하나 때문에 살맛이 안 난다니까요. 임표(林彪)가 왜 죽음을 무릅쓰고 정변을 꾀했는지 알겠다니까요. 부 주석, 잠이 왔겠어요?”
동류가 말했다.
“무슨 좋은 방법 있어요? 말 좀 해봐요. 우리도 좀 배우게.”
이렇게 말하며 내 쪽을 쳐다보았다. 나는 침대에 앉아 신문을 펼쳤다. 내 몸의 반이 신문 뒤에 가려졌다.
“신문에 북경이랑 상해에 사재기 바람이 불었대요. 틀림없이 이곳에도 불 것 같으니 살 물건 있으면 빨리 사세요.”
동류는 아무 말도 못 들었는지 임지강을 재촉했다.
“좀 말해 보라니까.”
“형님이 정부기관에서 일하시는데 어째 저보고 말하라고 하십니까? 그렇죠, 형님?”
“나는 그쪽으로는 경험이 없어서….”
“경험이라…, 우선 핵심 간부들한테 좋은 인상을 남겨야죠. 이런 게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형님이 또 저를 욕하겠어요, 그런 것도 경험이냐고.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지구가 도는 데로 따라 돌아야지, 지구더러 우리를 따라서 돌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이것도 경험이라면 경험인가요?”
이어서 이야기 하나를 했다. 며칠 전에 임지강의 형이 아들을 데리고 현장(縣長) 댁에 세배를 드리러 갔는데, 현장이 거북이를 몇 마리 기르고 있었다. 조카가 거북이를 만지고 놀았는데 그 중 한 마리가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래서 조카는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 거북이를 잡았다. 밖에 나와서 그가 자기 아버지한테 하는 말이, 침대 밑에 술이 가득하더란다. 임지강의 형은 마침 마오타이 주를 선물로 가져갔는데 속으로 몹시 후회했다고 한다. 정곡을 찌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야기를 마치면서 결론을 지었다.
“작은 일이라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여러 번 생각해 보고 정곡을 꼭 찔러야 합니다. 그리고 요즘 보아하니 선물을 갖고 가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쳐지는 것 같더라고요. 이 정도도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동훼가 말했다.
“당신 조카는 영민한 편이에요, 그런 이야기를 문 밖에 나가서 하는 걸 보면. 어쩜 네 살 밖에 안 된 애가….”
장모님이 덧붙였다.
“그놈 커서 관리가 되려나보다.”
임지강의 차를 타고 풍엽호텔로 향했다. 가는 내내 온통 차 이야기만 했다. 그가 말했다.
“이 차를 몰다 보면 느낌이 약간 떨어져요. 장 지배인이 일년 넘게 몰던 것을 저한테 줬거든요. 붉은 색도 너무 눈에 띄고… 폼 안 나게 말이에요. 검은 녹색이 제일인데. 비싼 티가 나잖아요.”
동류가 말했다.
“외제차를 몰면서도 흥이 안 난다네. 나는 영구(永久) 표 자전거 한 대만 있어도 대 만족이겠는데 말이야.”
내가 말했다.
“오늘은 장모님 생신이니까 힘 빠지는 얘기는 하지 말자고. 기운 나는 얘기만 하고. 다들 기분 좋게.”
임지강이 말했다.
“그런데, 이 차는 정말이지 기분이 안 나요. 정말 기분이 안 나. 말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러나 몇 분이 지나자 그는 또 차 이야기를 시작했다. 흥분해서 고개까지 흔들면서 얘기했다.
“기분이 안 나도 정말 어쩌면 이렇게 안 날 수가 있는지. 다른 사람이 먹다가 남긴 것을 나더러 먹으라니, 아, 기분 나빠!”
풍엽호텔에서 돌아오면서 동류에게 식사비용으로 얼마나 들었는지 물어보았다.
“몰라요.”
“당신이랑 동훼가 반반씩 부담하기로 했잖아.”
“임지강이 어느 틈에 돈을 냈더라고요. 그것도 나쁠 것 없죠. 아니면 이번 달 넘기기 힘들었을 건데.”
“임지강, 그 인간이 나와 당신을 무시하는 거야. 당신은 그 인간이 아무 이유도 없이 당신한테 그렇게 펑펑 쓰는 줄 알아?”
“그 사람이 날 무시하든 말든 난 돈이 굳었고, 그 돈으로 우리 일파 뭐라도 좀 사줄 수 있게 됐어요.”
내가 그녀에게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돈 몇 푼에 당신 자존심을 다 팔아먹다니! 당신 그러고도 이익이라고 생각하지? 엄청 손해 본 거야. 보통 손해도 아닌 엄청 큰 손해를 본 거라고.”
“나는 그런 것 몰라요. 다른 사람이 내 대신 돈을 냈는데 그 사람을 원망하라고요? 그래야 할 이유를 모르겠네요.”
“근시안, 근시안. 바로 눈앞의 것만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은 보려고도 하지 않는 근시안!”
동류가 웃으면서 말했다.
“보이지 않는 걸 어떻게 봐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거야. 언제나 당신이 그런 이치를 알게 될까!”
“그런 이치는 진작 깨달았어요. 하지만 그것은 돈 있는 사람들, 거물들이나 따지는 거구요, 우리처럼 돈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이치’는 그것과는 정반대라고요.”
나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당신 같이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세상이 점점 더 어지럽게 되는 거야. 과거엔 분명히 이치를 따질 수 있었던 것도 이젠 그럴 수 없게 되었으니! 임지강 같은 인간이 저렇게 유세를 하고…. 세상 정말 말세야.”
“조류가 밀려오면 남들은 다 그 흐름을 따를 줄 아는데, 당신은 왜 꼭 이런 시대의 대세를 이치로 따지려고 들어요? 그러니까 뒤로 밀려나는 거예요. 누가 당신한테 신경이나 쓰겠어요?”
“사람들이 전부 다 똑똑해서 그 흐름만 따라가면 그야말로 지랄 같아지는 거지. 세상에는 바보가 필요한 법이야.”
잠들기 전에 나는 동류한테 사무실에 자료 좀 가지러 다녀오겠다고 말하고는 집을 나왔다. 요즘 들어 나는 점점 더 강한 반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인식하고 있는 세계와 현실의 이 세계는 결코 같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이 세계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나의 세상 경험이 점점 더 한 그림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90년대, 세기 말에 하늘이 갑자기 뒤집어졌나?
나는 길을 걸으며 내 감각이 받아들이는 이 세계를 느껴보고자 했다. 눈앞의 모든 것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밤 근무를 마친 사람들이 차를 기다리면서 목소리 높여 뭔가를 의논하고 있었다. 연인 한 쌍이 손을 마주잡고 천천히 걸어갔다. 물 뿌리는 차가 다정한 음악을 틀면서 다가왔다. 자전거를 탄 사람들은 벨을 울리면서 쏜살같이 지나갔다. 나는 내 그림자가 가로등 아래서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것을 보며 갑자기 스스로가 불쌍해졌다. 나는 결코 바보가 아닌데 마치 무언가가 나를 뒤집어 싸고 있어서 고개도 내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구를 원망하자니 딱히 원망할 사람도 없었다. 나 자신을 원망하자니 또 내가 뭘 잘못했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내 머리를 누르고 또 누르고,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들려고 발버둥치고, 그런 나를 또 다시 누르고 또 누르고. 힘껏 나를 누르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누군가가 있는 힘을 다해 계속 누르고 있다.
나는 고통스럽지만 내가 이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 중에 잘못된 부분이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내가 무슨 일이든 하고 싶어할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적어졌고, 내가 허리를 꼿꼿이 펴려고 할수록 더 허리를 펼 수 없었다. 지난 몇 년을 보내면서 마음은 텅 비고 생활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그런 느낌으로 괴로웠다. 공부할 때 가졌던 이상은 하나도 실현되지 않고 오히려 그 이상 자체가 점점 더 멀고 아득해졌다. 점점 더 종잡을 수가 없다. 그나마 남아 있는 꿈이라곤 착하게 살고 싶다는 것뿐이었고, 시간의 길목에는 공정(公正)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신념조차 점점 불확실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누가 나를 이해할 것이며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동류마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기다리려고 하지 않는데…. 그렇다면 또 나를 이해해주고 기다려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렇다면 나에게 무엇이 남지? 바로 눈앞에 놓인 고만큼의 물질, 동류가 볼 수 있다고 한 그 물질들…. 나는 바보가 아니다. 길이 어디 있는지 이미 알고 있지만 발을 내디딜 수가 없을 뿐이다. 나는 그렇게 현실적으로 인생을 설계할 수가 없다. 그것은 정말 너무 현실적이고 또 잔혹하다.
길거리에서 이렇게 걷다가 어떤 사람이 짐을 메고 손전등으로 쓰레기 더미를 비추며 열심히 뒤적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고물 줍는 사람이었다. 내가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아저씨,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일하십니까?”
그는 몸을 펴고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더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내가 다시 물었다.
“친구, 하루에 얼마 버시오?”
그는 나를 바라보더니 잠시 머뭇거리고는 되물었다.
“날 불렀소?”
“친구, 당신을 부른 거요.”
“당신, 나를 친구라고 불렀소?”
“친구죠.”
“무슨 일 있습니까? 여기는 뒤지면 안 되나요?”
“누가 뒤지지 말랬습니까? 하루에 얼마 버는지 묻는 겁니다.”
그는 주저하며 말했다.
“얼마? 밥 술 겨우 뜰 정도요.”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는데도요?”
“일하지 않으면 누가 밥 먹여 줍니까? 내일 아침 되면 벌써 내 몫은 없어요. 다른 사람이 죄다 쓸어갈 테니까.”
“친구, 고생 많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죠. 쓸데없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는 처연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다고요? 농담으로라도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데요.”
나는 주머니를 뒤적거려서 그에게 일이 위안이라도 주고 싶었다. 그러나 돈을 들고 오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계단을 오르면서 괜히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혼자서 씁쓸하게 한번 웃고는 문을 밀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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