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한 번뿐인 인생, 발버둥이라도 쳐봐야지**
정소괴가 방 두 개에 거실 하나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날 정오에 막 기숙사 계단을 오르다가 텔레비전을 어깨에 짊어지고 내려오는 그와 마주쳤다. 내가 말했다.
“결국 고해(苦海)를 빠져나가는군.”
그가 말했다.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 그럭저럭 아쉬운 대로….”
일부러 나를 자극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득의만만한 표정은 감출 수 없는 듯했다. 나도 억지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대단하군. 대단해.”
공(孔) 군과 위(魏) 군이 냉장고를 옮기는 모습도 보였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아주 힘들게 움직이기에 다가가서 좀 도와줄까 생각도 했지만, 내밀었던 손이 다시 움츠러들었다. 집에 돌아오자 장모님이 말씀하셨다.
“정 주임이 이사를 가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와서 돕던지….”
나는 못 들은 척 밥그릇을 들고 입에 밥을 퍼 넣기 시작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남자가 굽힐 때도 있고 펼 때도 있는 것이지. 그거 한 번 굽힌다고 어떻게 되나? 지대위, 네가 사내대장부라면 쓸데없는 자존심 버리고 지금 바로 밥그릇 내려놓고 물건 옮기는 것 도와주러 가! 환골탈태(換骨脫退)해야지. 지금부터 시작하는 거야.”
나는 밥그릇을 내려놓고 속으로 스스로에게 말했다.
“네가 별거냐? 네가 무슨 대단한 인물이라도 되는 줄 알아? 그것 하나 못 참겠다고? 그것 좀 참고 견디는 게 뭐 그리 어렵냐? 내가 기어코 너를 바꿔 놓고야 말겠다!”
계단 입구로 걸어가자 공 군이 “정 주임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느끼한 목소리에 내 마음이 얼어붙었다. 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화장실 안으로 숨어버렸다. 나는 소변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창문 아래쪽을 내다보았다. 공 군과 위 군이 책상을 짊어지고 막 그리로 지나가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졸업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나보다 더 철이 들었군. 나중에 다 출세할 거야. 나는 오른손을 들고 공중에서 호선(弧線)을 그리면서, 비수를 옆구리에 꽂는 장면을 상상했다.
“이 개 새끼! 오늘은 가! 가야 돼! 못 가겠다고? 아니야, 가야 돼! 내가 오늘은 너한테 안 질 거야.”
나는 욕을 하면서 손으로 옆구리를 박았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마치 지면이 나를 빨아들이기라도 하듯이,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그때 누가 화장실로 들어왔다. 나의 자세를 보더니 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나는 손을 내려놓고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위층으로 향했다. 모퉁이를 도는데 송나가 아이를 안고 문 입구에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무슨 힘이 나를 뒤에서 잡아당기는 듯 걸음을 멈추었다. 그 몇 초 동안 나는 스스로를 다그쳤다.
“지대위, 네가 만약 사나이라면, 아니 사나이까지 갈 것도 없이 만약 네가 사람이라면, 어찌 저런 인간을 위해 의자를 나를 수 있겠나?”
송나가 나를 보더니 다가와서 인사를 했다. 내가 말했다.
“아래층에는 사람들로 꽉 차 있기에 오층은 어떤가 한 번 보러 왔습니다.”
그러면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저녁에 바둑을 두고 집에 돌아오자 동류는 이미 잠자리에 든 후였다. 내가 불을 켜자 동류가 갑자기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전등 줄을 끌어당겨 다시 껐다. 내가 다시 켜면 그녀가 다시 끄고, 그러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나는 그녀가 화를 내는 이유는, 내가 늦게 돌아왔으면서도 아무런 변명도 안 했기 때문이라 생각하면서, 어둠 속을 더듬어 전등 줄을 침대 머리맡에서 풀어서 다시 불을 켰다. 동류가 불을 끄려고 손을 뻗었지만 아무 줄도 잡히지 않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내 손에 잡혀 있던 전등 줄을 낚아채서 다시 불을 껐다. 내가 말했다.
“왜 앞도 뒤도 없이 화를 내고 그래?”
그녀가 말했다.
“당신한테 화내봐야 소용없어. 바보한테 왜 이리 멍청하냐고 화내는 것과 똑같지 뭐.”
두 사람이 불을 갖고 하나가 켜면 다른 하나가 끄고, 방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하더니 결국 줄이 끊어져버렸다. 등은 켜진 채로였다. 내가 말했다.
“당신, 할 말 있으면 말로 해. 약 잘못 먹은 사람처럼 왜 그래?”
그녀가 더 뻣뻣하게 나왔다.
“약 잘못 먹은 사람하고 무슨 말 하겠어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녀가 화낼 만한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무슨 일인지 말해봐. 그렇게 퉁퉁대지만 말고. 꼭 뱀가죽 뒤집어쓴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말이야.”
그녀는 자리에 누워서 꼼짝도 하지 않고 말했다.
“나는 벌써 애 엄마인데, 당신 눈에 내가 양귀비처럼 보이겠어? 뱀가죽을 뒤집어써? 언젠가 호랑이 가죽 뒤집어 쓸 날도 있을 거야.”
내가 말했다.
“당신 변했어. 이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그녀가 말했다.
“당신 말은, 사람이 변할 권리도 없다는 거야? 변하는 것은 내 자유지. 애를 낳아서 젖까지 먹인 사람더러 이전과 똑 같으라고? 변하면 안 된다고 헌법 어디에 그런 규정이라도 있어? 당신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도 잘 알아요. 여태까지 빈말로라도 칭찬 한 번 해준 적이 없어. 다른 사람들한테는 모두 예쁘다, 어쩌다 하면서 우리 마누라, 일파 엄마, 예쁘게 생겼다고 말하는 꼴을 못 봤어. 온 몸이 흠투성이다 못해 인격까지 흠투성이지? 내 장점은 하나도 눈에 안 띄고 뭐든지 눈에 거슬리기만 하지? 다른 여자들 얼굴 예쁜지, 다리 예쁜지, 엉덩이 예쁜지만 쳐다보고….”
내가 말했다.
“여보, 이치를 따져가면서 말을 해야지. 무슨 얘기인지 제대로 얘기 해봐. 횡설수설, 도대체 뭐 하는 거야?”
그녀는 몸을 돌려 앉으면서 말했다.
“이치를 따져요? 그 이치, 위생청에 가서 당신 동료들하고나 따져요. 그 사람들은 당신한테 이치대로 합디까? 이치대로 하는데 우리가 아직도 이런 쥐구멍, 바퀴벌레 소굴 같은 데 살아요?”
빙빙 돌리더니 결국은 집 문제였다. 내가 말했다.
“그 사람들 이사하는 거야 그 사람들 일이지. 세상에는 매일같이 이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걸 갖고 화를 내자면 끝도 없잖아. 방 두 개 딸린 방은 말할 것도 없고, 별장에 사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비교하자면 끝도 없지. 정소괴라도 새끼줄로 나무에 목매달게 될 거야.”
“내가 좋은 집에 살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에요. 나는 평생 쥐구멍 같은 데 살아도 상관없어요. 당신한테 시집오면서 애초에 그런 생각도 없었고요. 동훼가 다 알아요. 그 애가 언니는 결혼하더니 제대로 된 옷 한 번 입는 걸 못 봤다고 그럽디다. 나는 다 참을 수 있어요. 그저 우리 일파를 생각하면 화가 나서 그래요. 우리 일파가 뭐가 부족해요? 우리 일파가 어디가 모자라서 이런 형편없는 집에서 살아야 해요? 엄마가 되어서 이런 꼴을 보고도 참으란 말이에요?”
“방 하나일 때도 그럭저럭 살았는데 지금은 방 두 개잖아. 이전보다 두 배로 좋아진 건데 아직도 불만이야?”
“그러면, 남들은 이사 가서, 다른 집 애들은 방 여러 개 딸린 집에서 살게 생겼는데, 그래도 당신은 마음이 털끝만큼도 안 움직여요? 당신 심장도 피와 살로 만들어졌느냐고 묻고 싶네요. 나는 그저 우리 일파한테 좀 더 좋은 성장환경을 마련해주고 싶을 뿐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전심전력을 다해 잘살아보려고 애쓰는데, 당신은 전심전력을 다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나도 모르겠어요. 당신 머리 속에 무슨 이상한 물건들이 들어 있는지 모르겠단 말이에요. 해부라도 해서 당신 머리 속에 뭐가 채워져 있는지 보고 싶지만 그건 위법이니 할 수 없고….”
동류의 눈빛이 옛날과 달라졌다. 완전히 다르다. 그녀가 말했다.
“당신이랑 아무 상관없다는 식으로 굴지 말아요. 당신 어쨌든 우리 일파한테 작은 희망이라도 줘야 할 것 아니오!”
“그럼 내일 내가 신 과장 머리에 칼이라도 들이대 보지. 그 사람이 집을 주는지 안 주는지 한번 보자고.”
“당신이 남자라면 책임을 지려는 용기가 있어야죠. 나한테 그런 만용은 부려서 뭐해요?”
“이런 얘기 계속할 거면 나 그냥 나가버릴 거야!”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침대에 다시 누우면서 말했다.
“나가버려요. 한 발자국만 문 밖으로 나가 봐요. 일파를 당신 사무실 문 앞에 갖다 버릴 테니.”
저런 깡패가 다 있나. 나는 얼른 몸을 돌려 나와 버렸다. 아래로 내려오니 차가운 바람 때문에 몸이 으스스 떨렸다. 잠시 후 장모님 방에 불이 켜졌다. 그녀는 정말로 일파를 데리러 간 것이다. 동류가 일파를 안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나는 재빨리 한 쪽으로 피했다. 그녀는 곧바로 사무실 쪽으로 가고, 나는 그 뒤를 살금살금 쫓아갔다.
사무실 건물 앞에 어슴푸레한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그녀는 문 앞에서 잠시 망설이더니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저 여자 간이 저렇게 클 줄이야. 이층에 이르자 더 나가려고 해도 불이 꺼져 있었다. 그녀가 계단 앞에서 스위치를 더듬기에 내가 뒤쪽에서 손을 펼쳐서 불을 켰다. 깜짝 놀란 그녀가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질렀다. 그리곤 나를 보더니 바로 얼굴이 굳어져 일파를 바닥에 내려놓고 내려가 버렸다. 일파가 시멘트 바닥 위에 누운 채 응, 하는 소리를 내더니 다시 잠이 들었다. 나는 아들을 안아 올려 가슴에 껴안았다. 내가 아이를 안고서 사무실 쪽으로 가는데 동류가 뒤에서 따라오더니 외쳤다.
“내 아들이에요! 누가 당신한테 안으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한 손을 내 가슴팍으로 집어넣어 일파를 안으려고 했다.
“당신이 버렸잖아. 당신이 땅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갔었잖아.”
“내가 낳은 자식이에요. 당신한테 줄까봐?”
두 사람 손에 힘이 들어가자 일파가 “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둘이 어색하게 그 자리에 서서 더 이상 싸울 엄두를 못 냈다.
내가 말했다.
“당신은 엄마 될 자격도 없어. 이 추운 날 시멘트 바닥에 애를 버려? 내일 병이라도 나면 당신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겠어.”
“그러는 당신은 아빠 자격 있고요? 남의 애들은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데, 당신 자식은? 내년쯤 가서 애가 머리라도 좀 더 커지면 당신한테 물을 거예요. 아빠, 강강은 저렇게 좋은 집에 사는데 우리는 이게 뭐예요? 뭐라고 대답할 지 두고 봅시다!”
그녀는 단숨에 아이를 빼앗았다. 내가 문을 열자 그녀도 따라 들어왔다. 동류가 자리에 앉아 일파를 토닥거리면서 말했다.
“나는 우리 일파를 정상적인 사람으로 키워야지. 누구마냥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자기가 뭐라도 되는 것 마냥 착각하지 않도록.”
“적어도 자기 자식을 땅바닥에 내팽개치지 않고 전등 줄이나 끊어먹지 않는 인간으로 길렀으면 좋겠네.”
“그렇게 잘하는 말 가지고 위생청 사람들 입이나 한번 막아 보시지. 하고한 날 나만 갖고 난리야!”
방이 두 개가 된 다음부터 집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사실 문제는 문제였다. 정소괴가 이사한 다음부터 이 문제는 더 절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별 수 있나.
“여보, 방 두 개면 그런대로 괜찮지 않아? 당신 이런 사소한 일로 사람 귀찮게 좀 하지 마.”
“사소한 일? 그럼 도대체 뭐가 중요한 일이에요? 당신은 뭐라고 생각해요?”
“합숙 기숙사는 뭐 사람 사는 곳이 아니야?”
그녀가 곧바로 받아쳤다.
“쓰레기도 사람이 치우는데, 당신이 그 쓰레기 치우지 그래요? 다른 사람 아들은 감옥에 갇혀 있기도 하던데, 그럼 당신 아들도 거기 가둬 놓을까요?”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동류, 당신 말발 이 정도로 셀 줄은 몰랐어.”
“난 당신을 알아요. 당신도 당신 성격이 있으니까, 그래서 나도 그 동안 크고 작은 일 다 참았던 거고요. 집에 제대로 된 살림살이 하나 없어도 내가 무슨 말 한 마디라도 하던가요? 내가 일년 내내 몇 벌 안 되는 옷으로 이리저리 뒤집어 가며 입어도 싫은 소리 한 마디 하던가요? 나야 시골에서 왔는데 이 정도 못 견디겠어요? 내가 유일하게 못 견디겠는 것은 우리 일파가 설움 당하는 거예요. 우리 착하디착한 일파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다 아파요. 우리 애가 어디가 누구보다 못나서 다른 애들 사는 만큼 못 살아요? 모자라는 것은 좋은 아빠 못 만났다는 것 하나 뿐인데….”
나는 마음이 뜨끔뜨끔 아파왔다.
“당신도 눈이 있으면서 왜 그 당시에 일파한테 좋은 아빠 찾아주지 않았어?”
“내 눈이 다른 사람만큼 날카롭지 못해서 그래요. 천리안을 가진 사람들은 몇 년 후의 일까지 다 내다보고, 또 정말로 그렇게 되던데…. 이전에 나는 그런 사람들을 무시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여자들이 존경스러워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배필을‘찾는다’고 하는 거예요. 찾는다고!”
나는 더 세게 나갔다.
“당신 지금도 늦지 않았어. 내가 놓아줄게. 다시 태어나고, 또 다시 찾으면 되잖아! 가서 찾아보라고!”
“어떤 여자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여자는 남자처럼 좋은 팔자가 못 되요. 여자한테 봄은 두 번 오지 않아요. 여자 팔자는 땅땅땅, 방망이질 한 번으로 끝나는 장사라고! 나더러 다시 어떻게 찾으라고, 다시 어디 가서 일파한테 친아버지를 찾아주라는 거요?”
“ 당신 정말 사람 잘못 찾은 거야.”
그녀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아들 하나는 잘 낳은 것 같아.”
그녀가 이 말에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 그렇게 대단한 말발, 왜 마 청장님이나 정 주임 앞에 가서 한 번 보여주지 그래요?”
한참 동안 두 사람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류가 말했다.
“밤이 늦었어, 돌아가요. 내일 출근해야 되잖아요.”
“먼저 돌아가. 좀 있다 일파 안고 돌아갈게.”
“왜요?”
“먼저 가!”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또 삐딱하게 구네. 난 당신 뼛속까지 다 들여다보여요. 승부를 내자는 거죠? 당신이 나랑 싸워서 이긴다고 무슨 소용 있어요? 당신이 일어나서 세상과 싸워서 이겨야지 그게 진짜 실력이에요. 그렇게 되면 우리 일파도 서러운 일 덜 당할 거구요.”
“내가 당신 하나도 못 이기는데 어떻게 세상을 이겨?”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요, 당신이 이겼어요. 나 먼저 돌아갈래요. 혼자 가면 무서우니까 당신이 일파 안고 내 뒤에 따라와요.”
집에 돌아와서 그녀가 입을 오므리고 웃었다.
“당신이 이겼어요. 위대한 승리에요.”
나는 일파를 침대 위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얼른 안 자면 날 밝겠어.”
나는 책상을 밟고 올라서서 전구를 빼냈다. 불이 꺼지자 동류가 어둠 속에서 말했다.
“어차피 잠 안 오는데 당신한테 좋은 소식 하나 전해 줄게요. 너무 기뻐하지 말아요. 정소괴가 약정처 부처장이 됐대요.”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진작 알았어. 안 그러면 무슨 수로 이사를 가겠어?”
“그런데, 당신 정말 아무 생각도 없어요?”
“그냥 그 사람 능력 있군, 그 정도지. 그 외에 무슨 생각 하겠어? 위생청에 짜증나는 사람, 귀찮은 일 이미 충분히 많기 때문에 그런 사람의 그런 일까지 신경 쓸 여력 없어. 내가 생각이 좀 트인 편이라 그런지, 그저 좋은 아들 하나 있으면 만족이라고 생각해. 머리 위에 그런 감투를 쓰고 있는 게 편하겠어, 아니면 옆에서 자는 아들 보고 있는 게 편하겠어?”
그녀가 바로 대답했다.
“궤변! 궤변이에요! 바로 그 아들 때문에 그런 감투도 써야 하는 거예요. 아버지라는 사람이 아들에게 좋은 성장환경을 마련해줘야죠. 나는 당신이 서른 갓 넘긴 나이에 벌써 그런 식의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는 걸 못 믿겠어요.”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당신이 어떻게 하든 나는 상관없어요. 내 평생 죽을 때까지 고생만 하고 끝까지 암흑 속에서 살아도 나는 불평 한 마디 안 할 거예요. 그렇지만 당신도 아들한테는 면목이 서야 하지 않겠어요? 자식의 성장을 위해서 좀 더 좋은 조건을 마련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발버둥이라도 한 번 쳐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당신 위생청이 무슨 대단한 곳인 줄 아는가본데…. 내일 당장 지진이 일어나서 위생청이 없어지더라도 지구는 오늘과 똑같이 돌아갈 걸? 게다가 고여서 썩을 대로 썩은 연못에서 발버둥은 쳐서 뭣 하겠어?”
“그 물이 연못이라서, 썩은 물이라서, 성에 안 차면 중남해(中南海: 중국 국가 주석이 사는 곳--역자)로 가면 되잖아요. 갈 능력이나 되요? 어차피 중남해에서 놀 능력이 안 되면 여기서라도 발버둥쳐야 할 것 아니에요?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요? 연못 작은 탓 하게? 원래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눈앞의 몇 가지 일로 발버둥치는 게 정상이에요. 발버둥쳐야 할 일이면 발버둥쳐야지요. 어쨌든 결과가 달라지잖아요. 그런 면에선 정소괴가 당신보다 훨씬 앞서네요.”
정소괴 얘기에 나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 벽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나보고 그렇게 굽실거리는 법을 배우라고? 동류 당신이 그렇게 속된 눈으로 세상을 볼 줄은 몰랐어.”
“나는 누구누구처럼, 두 눈으로 별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우아해, 하지 않아요. 별은 봐서 뭣해요? 집에 가져와서 삶아 먹을 것도 아닌데. 나는 우리 일파랑 집안 일만 생각해요. 이게 현실이에요. 나는 누구누구처럼, 자기가 뭐라도 되는 양, 천하만사가 다 시시하다는 식으로 굴지도 않아요. 사실 그 누구누구가 하찮다고 여기는 것들을 사실은 갖고 싶지만 얻을 수 없는 것들 아닌가요? 좋은 물건을 얻기 위해선 팔을 뻗고 또 뻗어도 손에 안 닿는 경우가 많은데, 누구누구는 그 상황에서 예절까지 차리고 있으니, 정말로 예뻐 죽겠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가지기를 원하면서도 체면 차리는 것은 원하지 않고, 다 하려 들면서도 손해 보는 짓은 안 하려 해요. 당신도 좀 배워요! 당신, 지대위는 사내대장부잖아요. 일어서면 키도 이렇게 크고, 정력도 좋잖아요. 당신이 어디가 남들보다 못해요? 송나가 득의양양해서는 나한테 말합디다. 자기네 이사 간다고. 남편이 승진했다고. 여보, 당신이 어디가 남보다 부족해요? 그 두 손은 왜 남 떠받치는 데에만 쓰고 있냐고요?”
“동류, 당신 나 너무 몰아세우지 마. 계속 몰아세우면 나 또 나가버릴 거야. 다른 사람이 뭘 원하든 그건 그 사람 일이고, 그래서 자기 뜻대로 됐다면 그것도 그 사람 복이야. 그렇지만 세숫대야 속의 폭풍을 갖고 득의양양해 할 건 또 뭐 있어? 그렇다면 사람이 돼지와 다를 게 뭐야!”
그날 밤 나는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몸을 뒤척였다간 동류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되어 누운 자세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고독감이 밀려들었다. 망망한 이 세상, 동류마저 이렇게 생소하게 느껴지는데, 누구 하나 나를 마음에 두는 사람이 있을까? 어둠 속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오한이 났다. 동류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나더러 환골탈태를 하라는데, 그게 어디 가능한 일인가? 나 자신에게 물어 보았다. 대답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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