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사람에 대한 희망을 버릴 때 희망이 생긴다**
나는 2년간 중의학회에서 빈둥대며 보냈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괜찮다고 느꼈다. 자유로웠고, 스트레스도 안 받고, 다른 사람한테 찾아가서 뭔가를 다툴 필요도 없었다. 다른 사람과 타툴 일도, 신경 쓸 일도 없었으므로 정말로 인생의 의미를 어느 정도 음미하며 보낼 수 있었다. 나는 현대의 은자(隱者)처럼 세상과 다툴 일이 없는 주변인(邊緣人)이 되는 것도 나름대로 좋은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가족이 생기고 나니 생활에서 사소한 문제들이 약간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버텨나갔다.
이렇게 2년을 보내고 나니 나의 마음속에 차츰 뭔가 떨떠름한 기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뭐라고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허전한 기분이었다. 마치 두 다리가 공중에 매달려 있는 듯했고, 두 발을 땅에 디디고 서 있을 때의 그런 안정감을 느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이런 느낌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귀찮은 일들이 생기지 않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했다. 귀찮은 걸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자 나의 이런 생각들이 그리 믿을 만한 게 못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일이 없다는 것은 바로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상에서 필요 없는 존재라는 느낌이 뚜렷해지자 점점 더 견디기 어려워졌다.
매일 출근하고 난 뒤에는 기본적으로 아주 한가했다. 이것저것 찔끔거리다보면 하루가 다 지나갔다. 무료할 정도로 한가해서, 나한테도 어떤 일이든 주어져서 이처럼 음침한 절망의 상태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이전에는 이런 여유야말로 인생의 큰 행복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점점 더 이 행복이 사실은 일종의 고통임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물밑에 가라앉아서 생활 속의 풍랑을 느끼지 못했지만, 나날이 더해 가는 무료함을 피할 길이 없었다. 무료하다는 느낌이 가슴속에 가득 차 있었으나, 나는 거기에서 벗어날 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느낌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져서 가슴속에 묵직한 납덩이처럼 매달려 있었다. 주변으로 밀려났다는 떨떠름한 기분, 남들에게 잊혀졌다는 느낌, 정말이지 재미없는 느낌이었다.
나는 무료함을 달래려고 논문 몇 편을 썼고, 그것을 북경에서 발간되는 잡지에 싣기도 했다. 하지만 글을 써서 발표해도 그뿐이었다. 나를 찾아와서 글을 잘 썼다고 칭찬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잘못된 점을 비판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마치 인적이 끊어진 벌판, 사방을 둘러보아도 끝없이 흰눈밖에 보이지 않는 광야에 홀로 서서 바람을 맞으면서 저 멀리 하늘 끝에서 불어오는 신비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밤에는 동류와 함께 텔레비전 연속극을 봤다. 이십 회, 삼십 회짜리 연속극을 날마다 봐나갔다. 몇 달 동안 브라질의 텔레비전 연속극 <비앙카>를 한 회도 안 빼먹고 다 봤다. 칠십여 회로 끝났으나, 다 보고나니 조금은 아쉬웠다. 그 후에는 또 <혈의(血疑)>라는 연속극을 보았는데, 보고 나니 그 주인공의 운명이 걱정되었다. 정말로 황당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욕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나는 점점 더 일종의 심리적 공황상태로 빠져들었다. 시간도 생명도 흘러가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처음 출발하던 그 자리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나도 세월 따라 전진하고 있음을 증명할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매일 먹고, 마시고, 자고, 한마디로 살아갔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단순한 생존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평생 동안 이렇게 살 거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마음이 아파서 더 깊이 생각해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한가할 때는 어김없이 무료하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럴 때는 나 자신을 진지하게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 어떤 때는 이런 느낌에서 벗어나 보려고 큰길로 나가서 걷기도 했다. 일부러 아주 멀리까지 걸어갔다가 완전히 지친 다음에야 돌아왔다. 나는 고대의 성현들도 틀림없이 이런 기분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도 이런 느낌에서 벗어나려고 글을 썼고, 천하를 돌아다니며 구경했고, 근거 없는 인생에서 근거를, 뿌리를 찾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게 허전하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나는 감찰실로 놀러갔다가 막(莫) 여사 책상 옆벽에 문서철이 꼽혀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표지에“인사”라고 적힌 문서철 한 권을 꺼내 들고 손이 가는대로 펼쳐보았다. 금년 들어와 있었던 인사이동 관련 문서였는데,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기자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이면서 아주 익숙한 글자 몇 개를 포착했다. 검은 글씨의 그 제목은 “정소괴 동지의 임면(任免)에 관한 통지”였다. 정소괴가 청 사무실의 부 주임이 된 것이다. 순식간에 내 얼굴에선 열이 났고, 가슴도 심하게 뛰었다. 나는 문서를 다시 꽂아 놓으면서 중얼거렸다.
“정소괴가 올라갈 줄은 생각도 못했네.”
그러면서 아주 자연스런 태도로 웃었다. 막 여사가 말했다.
“그 문서 내려온 지 벌써 며칠 됐어. 자넨 몰랐어?”
“중의학회에는 문서 보내주는 사람도 없어요. 여태 온 것 다 해도 몇 장밖에 안 돼요. 윤옥아씨가 인사통인데, 요 며칠 아파서요….”
막 여사가 말했다.
“정 주임이야, 지금은. 지금은 모두 정 주임이라고 불러. 요즘 그 사람 이전보다 훨씬 더 우쭐거려.”
“적어도 남들이 부를 때 직접 이름으로 부르지는 않을 거 아닙니까. 나이 수 십 살이나 먹고서도 남들한테 직접 이름으로 불리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아시겠어요?”
막 여사가 말했다.
“자네도 노력해봐. 우리 여자들이야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행복하지만, 자넨 남자잖아. 자네는 어쨌거나 다르잖아. 남자라면 야심이 좀 더 커야지. 사실 자네 조건 어디가 안 좋은가? 좋더라도 그걸 표현해야만 하는 거야. 한번 부딪쳐봐. 겁날 게 뭐야?”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키는 이렇게 큰데 키를 재는 자가 너무 짧아요. 그렇다고 몸을 낮게 구부리자니 그것도 재미없는 일이고.”
막 여사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다가 한참 후에 말했다.
“기회는 기다린다고 해서 반드시 오는 것은 아니야.”
사무실로 돌아와서 열쇠 구멍에 열쇠를 집어넣는 순간, 금속끼리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마치 일종의 신비한 계시처럼 내 마음 속에서 갑자기 폭탄 터지는 소리처럼 크게 울려왔다. “기회는 기다린다고 해서 반드시 오는 것은 아니다.” 방금 전에는 왜 이 말을 건성으로 듣고 그냥 넘겼는지 이상했다. 나는 거기에 앉아서 나 스스로에게 분명히 해두고 싶었다. 정소괴가 얻어낸 것이 나에게도 필요한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나는 왜 그것에 대한 강렬한 갈망이 없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오늘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큰 충격을 느낀 것일까?
평소에 다른 사람들이 승진했을 때는 자세히 생각도 않고, 그들은 모두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소괴는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해, 연설하고 있던 마 청장 팔꿈치 아래로 담배 갑을 밀어 넣던 그 모습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지금 승진해서 부 처장급이 되었다. 나는 애써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낙담한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저녁때 안 선생님 댁에 가서 바둑을 두었는데,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한 판을 졌다. 내가 한숨을 짓자, 그가 말했다.
“자네 오늘 마음이 별로 편치 않은 것 같은데….”
내가 말했다.
“지고 나서도 마음이 편하다면, 그게 어디 사람입니까?”
그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다시 한 판?”
바둑판을 준비하며 저절로 또 한숨이 나왔다.
“왜 그래, 지군 자네 오늘?”
그러면서 손을 멈추었다. 나도 따라서 손을 멈추었다.
“이런 염량(炎凉) 세태에 어떻게 기분 좋을 수가 있습니까?”
“지군, 여태까지 그걸 한탄하고 있다면, 그건 바로 자네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거야. 진작 그걸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지. 세상이 염량한 지는 이미 몇 천 몇 만 년이야. 마치 우리 몸에 손발이 있는 것처럼 자연스런 일인데, 자네가 한숨쉰다고 세상이 자넬 위해 변해줄 것 같은가? 1 더하기 1은 2야!”
“역시 한숨을 쉬어서는 안 되는 거였어요. 다른 사람이 잘 나가는 것은 그의 능력인데, 내가 한숨을 쉬어본들 어쩌겠어요? 생각해 보니, 아직 제 수련이 덜 된 것 같네요.”
“참선(參禪)을 한다고 누구나 다 무념무상의 경지에 들 수 있는 건 아니야. 도대체 사람이 뭔가, 사람이? 자네가 만약 사람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자넨 평생 동안 고생 안 끝날 거야. 사람에 대해, 세상에 대해 희망을 품지 않으면 오히려 희망이 생기지.‘사람들과 싸우니, 그 즐거움 한이 없다’. 이런 말이 왜 생겼겠나? 내가 젊었을 때는 자네보다 더 청렴하고 고상했어. 하지만 그 결과 지금은 청렴만 하고 고상하지는 못해. 완전히 공짜로 다른 사람들의 발판이나 돼주고 말았어. 결국 이루어 놓은 거 하나 없고, 벌어 놓은 돈 한 푼 없고, 가진 거 하나 없는, 철저하게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말았어."
그의 말을 들으니 나의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그걸 감추기 위해 나는 일부러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안 선생님, 말씀 끝까지 해 보시죠.”
“내가 한평생 살면서 실패하고 나서 깨달은 것이 바로 이것이야. 만약 실패하고 깨달은 것도 깨달은 것으로 친다면 말이야.”
그는 또 이런 말도 했다.
“지군, 자네를 보고 있으면 어떤 때는 계속 참고 봐줄 수가 없을 때가 있어. 자네 고생할 날은 아직도 뒤에 남아 있어. 앞으로 몇 년 지나면 자네보다 훨씬 젊은 사람들이 자네 상관이 될 거야. 진짜 고생은 그때부터 시작되는 거야.”
“저도 상황 돌아가는 걸 전혀 모르는 건 아닙니다. 어떤 때는 물을 만난 고기처럼 대세에 따라서 그 판에 끼어들고도 싶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그 대세를 따라가 주지 않아요. 성격 때문에 그 판에 낄 수가 없는 걸 어떻게 해요. 그 판에 끼어드는 고통이 거기서 얻을 수 있는 행복보다 훨씬 크다면, 내가 뭣 때문에 그런 작은 행복을 위해 큰 고통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대소의 구별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경중을 재는 저울도 각각 다르므로, 정말로 마음을 편안하게 가질 수만 있다면야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그러나 사람은 어쨌든 사람이야(人總是一個人啊)!ꡓ
“역사상 큰 인물들은 대세에 역류(逆流)하며 살았어요. 그 사람들이야말로 정말로 인물들이에요!”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해 보게. 자네의 그런 성격으로 해낼 수 있겠나? 자네는 대세에 따르는 것과 남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은 별개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자네가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고통 축에도 들지 못해. 남에게 고개를 숙이지 못할 바엔 자네 일찌감치 위생청을 떠나서 한의(漢醫) 실무에나 종사하게. 그렇게 되면 평생 동안 지금처럼 관리도, 상인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공중에 매달려 있지 않아도 되잖아.”
“안 선생님은 역시 경험자시네요. 공중에 매달려 있는 듯한 그런 기분을 다 아시고. 그런 좋은 점이 정말로 있느냐 없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나에게 연달아 고개를 끄덕이고 웃는 얼굴을 꾸미느냐 아니냐도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건 바로 그렇게 공중에 매달려서 땅을 밟지 못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 더럽다는 것이고, 뭐를 해야 좋을지 모른다는 것이며, 세상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자기가 살아 있음을 증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 세상과 올바른 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요? 여태껏 걸어왔던 길로 계속 그냥 걸어가야 하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옛날의 과거시험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전부 한 장소에 모아놓고 시험 한 번 보고 나면 끝이고, 내가 얼마나 깨끗하고 고상한지 증명해 보일 필요도 없고 말이에요.”
“지군, 자네 입장을 분명히 정해야 하네. 자네가 원하는 게 도대체 뭔가? 담장 위에 올라타고 앉아 이쪽저쪽 쳐다봐서는 안 돼!”
“안 선생님 말씀은, 제 말이 분명한 것 같기도 하지만 또 애매모호하기도 하다는 것이군요.”
나는 고개를 숙이고 나에겐 확실히 나 자신을 드러내 보여줄 무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배운 사람일수록 그런 무대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무대가 없다면 두렵고 불안해서 하루도 견딜 수 없다. 안 선생님은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
“이 차는 천천히 마셔야 그 맛을 알 수 있네.”
“저는 아무 맛도 모르겠는데요.”
“그건 자네 감각이 너무 둔해서 그래. 군산모첨(群山毛尖)이란 차야. 찻잎을 보면 하나하나 다 서 있지. 호남(湖南)의 친구가 보내준 거야.ꡓ
찻잔을 들고 살펴보니 과연 모든 찻잎들이 다 서 있었다.
내가 말했다.
“좋은 찻잎은 모두 성깔이 있네요. 일어 서 있고….”
“옛날 그분들의 성격을 우러러보고 흠모하는 거야 괜찮지만 따라서 배우려고 하면 안 돼. 나도 평생 동안 우러러보고 평생 동안 배웠지만,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자네가 보고 있잖아.”
그는 말을 하면서 자기 손목을 비비고 팔뚝을 주물렀다. 마치 자기 자신을 애석해하는 듯, 스스로 아쉬워하는 듯 보였다. 한참 있다가 그가 말했다.
“다시 한 판 때릴까?”
그날 안 선생님 댁에서 나오면서 문 입구에 이르렀을 때 나는 농담 한 마디를 했다. 그도 나를 따라서 농담을 했다. 마치 우리가 무슨 심각한 얘기는 나눈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달관한 듯한 태도로 마음속의 떨림을 감추려 했다. 놀랍게도 나 자신의 신념이 그리 강인하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부친으로부터 받은 나의 피 속에 흐르고 있는 것도 알고 보니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부친의 한 평생은 값어치 있는 삶이 아니었던가? 나는 감히 더 이상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미 선택한 이상, 자꾸만‘왜’라는 질문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신념은 어디까지나 신념이고, 지금의 문제는 일종의 감정의 선택이다. 감정의 선택을 이성으로 계속 되짚어 생각하고 끝없이 질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숭고하고 신성한 것도 끝없는 질문을 견뎌낼 수는 없다. 일체의 것들을 궁극까지 묻는 것은 필연적으로 일체의 것들을 파괴하는 것이다. 나는 내 마음속에 있는 회의 정신에 겁이 났다. 발아래의 땅이 흔들리면 사람은 공중에 둥둥 떠다니게 된다. 나는 감히 더 이상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다시 더 깊이 질문해 들어가고 생각해 들어가면 나 자신을 완전히 부정하게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지? 그러나 나는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다. 나는 지식인이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또한 생각할 권리도 있다. 이성이 있는 한, 나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이 두려워졌다. 일종의 음습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런 음습한 기운이 점점 더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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