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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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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20>

안지학(晏之鶴) : 약소국엔 외교가 없다

***20. 안지학(晏之鶴) : 약소국엔 외교가 없다**

나는 위생청에 있을 때보다 중의학회에 있을 때가 기분이 더 좋았다. 출근해서도 책을 볼 수 있었고, 한두 시간 외출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별로 해야 할 일이 없기도 했고, 내가 사무실을 나가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 천하가 다 알도록 나의 이름을 불러대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징계의 의미만 들어 있지 않았다면, 오히려 나를 이곳으로 옮기자는 의견을 꺼낸 사람에게 고맙다고 했을 것이다.

나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윤옥아(尹玉娥)는 서른 살이 넘었는데, 그녀 남편은 재정처의 팽(彭) 부처장이었다. 그녀는 원래 현(縣)에서 근무했는데, 부부 사이임이 배려되어 청으로 전근되어 온 사람이었다. 그녀는 아주 가늘게 눈썹을 그리고 새빨갛게 립스틱을 바르고, 얼굴은 하얗게 분칠을 했다. 아무리 봐도 어색했으나 그녀는 매우 만족해하는 듯했다. 내가 출근한 첫 날 그녀가 말했다.

“어쩌다가 새들조차 똥 누러 오는 일 없는 이곳으로 왔지?”

“새들조차 똥 누러 오지 않는다면 조용해서 좋지요. 새들이 와서 시끄럽게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와서 시끄럽게 할 일은 더욱 없겠지요.”

“그래도 나는 당신을 매우 환영해. 요(廖) 군이 전근 가버리자 어떤 때는 나 혼자 마치 사당을 지키는 느낌으로 하루 종일 보내기도 했어. 입에 곰팡이가 돋을 지경이었어. 여기는 늙은이들이 있기에는 오히려 좋은 곳이지만, 당신 같이 젊은 사람들은 바삐 뛰어다니는 걸 좋아할 텐데, 이런 자리에 어떻게 앉아 있으려고 그래? 청에 석사 출신이 몇 명이나 있다고 말이야. 청에서의 인사이동이 당신한테는 너무 불공평해. 당신 누구한테 미움 산 일 있어?”

“내가 누구한테 잘못했는지 나도 모르겠어요. 좀 가르쳐 주세요.”

“사실은 당신이 누구한테 미움 샀는지 모두 다 알고 있어. 다른 사람들은 아첨을 떨어도 모자랄 지경인데, 당신은 윗사람한테 덤벼들어 화나게 했잖아.”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나니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 남편도 마 청장하고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생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윤옥아는 다 알고 있었다. 누가 곧 임명되거나 파면 당하게 될지, 누구와 누구는 어떤 관계인지 그녀는 다 알고 있었다. 나는 청에 온 지 이렇게 오래 되었어도 사람을 만나면 그저 고개나 끄덕이고 인사나 나누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데에도 다 의미가 있고, 똑같은 인사말 한 마디에도 그 어감에는 차이가 있으며, 눈빛에도 차이가 있다고 했다. 나는 여태 그것을 충분히 터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 방면에 상당히 조예가 깊었다. 만약에 대학 졸업장만 있었다면 틀림없이 대단한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항상 청의 인사이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듣고 싶건 듣기 싫건 나는 전부 들어주어야 했다. 그녀는 매번 말을 마치고 나서는 나한테 밖에 나가서는 말하지 말라고 재삼 부탁했다.

“밖으로 말이 새 나가면, 그건 바로 자네한테서 새나간 거라는 것 자신도 알 거야.”

내가 말했다.

“그러면 나한테 말하지 않으면 되잖아요. 말이 다른 데서 새 나갔는데도 나를 그 원흉으로 생각할 거 아니에요.”

그녀는 내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했는지, 아니면 말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없었기 때문인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다른 사람한테는 많은 얘기를 할 수 없잖아, 안 그래? 자네는 말이야, 자네는 예외야, 안 그래?”

윤옥아는 수다 떠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이것이 정소괴와 다른 점이었다. 듣고 싶으면 듣고, 듣기 싫으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았다. 또는 안지학(晏之鶴) 선생을 찾아가서 바둑 한두 판을 두었다. 그러고도 남는 정력이 있으면 기보(棋譜)를 빌려다가 바둑을 파고들었다. 덕분에 얼마 가지 않아 바둑실력은 크게 늘었다. 세속(世俗)의 일은 다 놓아버렸고, 욕심도 많지 않아서 천하의 일들이 이미 아득하게 느껴지자 시간은 날아가듯 빨리 지나갔다.

위생청 안의 많은 사람들이 힘 있는 자를 둘러싸고 시시각각 주판알을 굴리고 날마다 초조해하면서 사는 것이 우스웠다. 나는 연극을 구경하는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시간관념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코앞에 있는 것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져버릴 것들을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눈을 크게 뜨고 멀리 볼 줄 몰랐다. 설령 조그만 이익을 차지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세숫대야 속의 폭풍우, 깨 한 톨, 빈대 방귀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인간으로 살면서 언제나 그 빈대 방귀 같은 것에만 집착할 수 있는가? 여러 차례 나는 똑같은 질문을 다른 사람들에게 던져 봤다.

“마 청장 앞의 청장은 누구였지요?”

모두 다 시(施) 청장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면 시 청장 앞에는? 그 앞은 섭(聶) 청장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섭 청장 앞은 누구였는지는 나도 모른다. 섭 청장은 이미 작고했다. 당시에는 그 분 또한 위세가 대단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일이란 연기 같은 게 아닌가?

시간은 일체의 중대한 사건들까지 그 의미를 애매모호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이 사실은 나로 하여금 기쁨과 위안을 느끼게 했다. 저 한 무리의 속인(俗人)들은 매일 자그마한 머리를 굴리고, 잔꾀를 부리고, 매일 얻어터져 가면서 처장도 되고 청장도 되지만, 그래봐야 바람 따라 날아가 버리는 운명은 피할 수 없다. 그렇게 남의 눈치만 살피고, 굽실거리고, 패거리를 만드는 일이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무엇인가를 굳게 지키기 위해서 생전에는 온갖 시달림을 다 당했으나 시간이 지나도 영원히 그 이름이 썩지 않고 빛나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사람들이 입으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복종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다시 그들의 책을 찾아서 거듭 읽어보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 방대하고 심오한 맛이 무궁무진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높은 곳에서 멀리 바라볼 때의 편안함”(登高望遠的安寧)을 맛보게 되었다. 내가 나 자신의 코끝만 쳐다보면서 신변의 자질구레한 일로 마음 졸일 필요가 어디 있는가? 나는 마음의 문을 열고 하늘가에 펼쳐진 풍경들을 바라보고, 멀리 있는 곳의 일들을 생각하고 싶었다.

그날 오후 나는 도서실에 가서 책을 읽었다. 안지학 선생은 그의 바둑친구가 기다려도 오지 않자, 나를 찾아왔다.

“지군, 와서 한 판 안 할 거야?”

“근무시간에는 감히 못 두겠어요. 다른 사람들이 보면 또 찍힐 텐데요 위생청 안에서 자유인은 안 선생님 혼자뿐이잖아요.”

“그러면 내가 기다리지. 오늘은 바둑에 중독된 것 같아.”

퇴근시간 무렵, 그는 이미 바둑판을 준비해 놓았다.

“와, 와, 이리 와.”

조(趙)씨는 우리에게 갈 때 문을 잘 잠그고 가라고 부탁하고는 먼저 갔다. 첫 번째 판은 그가 졌다.

“먼저 자네한테 한 판 양보했네. 정신 바짝 차리게. 안 그러면 감히 내 적수가 되지 못할 거야.”

두 번째 판은 그가 이겼다.

“삼 판 이승으로 하세.”

“마누라가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은 제가 진 걸로 칩시다. 안 선생님이 이겼어요.”

“이겼다고 치긴 뭘 이겼다고 쳐? 자네가 나한테 기분상의 승리를 양보하려는 모양인데, 나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네.”

다시 한 판 더 두었다. 나는 일부러 악수를 두었다. 그가 이기고 나서 말했다.

“이 사람아, 첫째 판을 시작하면서 정면승부로 기선을 잡았다고 해서 그 수가 계속 통할 거라고 생각했나? 자네는 교조주의(敎條主義)의 우(愚)를 범한 거야.”

그 후부터 그는 바둑에 중독되어 버렸다. 저녁때에도 아래층에서 내 이름을 불러 자기 집으로 가서 바둑을 두자고 했다. 내가 말했다.

“저녁때 바둑 한두 판 두는 거야 괜찮지만, 오후에는 감히 둘 수 없어요. 나는 결코 자유주의(自由主義)의 우(愚)를 범할 수는 없어요.”

그가 말했다.

“그러면 좋아. 자네 앞길을 막지는 않겠네. 그 대신 오후에 둘 그 두 판을 저녁으로 옮겨서 저녁에 몇 판 더 두세.”

안지학 선생님은 과장도 못 되었지만 나이는 상당히 지긋했다. 처음에 나는 그를 어떻게 불러야 좋을지 몰랐다. 그를“안 씨(老晏)”라고 부를 수는 없었고, 그렇다고 그의 이름을 부를 수는 더욱 없었다. 안 선생님(晏老師)이라고 부르는 것도 매우 어색했다. 위생청 안에는 그런 관례가 없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직위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난처한지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를“안공(晏公)”이라고 부르기로 결정했다. 다행히도 중국어에는 단어가 풍부해서 각종 미묘한 차이까지 그에 걸맞는 칭호를 찾을 수가 있었다. 동방이 어두우면 서방이 밝다는 식이었다. 그렇게 몇 번 불렀더니 그가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해서, 그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결국 연배가 달랐던 것이다. 한번은 그가 이기고 나서 말했다.

“지군, 자네 바둑 공부 더 해야겠네.”

“그러면 선생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앞으로 많이 지도해 주십시오.”

그는 곧바로 이 칭호를 받아들였다.

어느 날 저녁에 바둑을 두면서 안 선생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

“보아하니 자네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각각 따로 있지요.”

“자네는 나중에 뭘 할 생각인가?”

“전, 안 선생님한테 자유인이 되는 걸 배우려고 합니다. 남의 눈치 볼 것도 없고, 남한테 억울하다고 하소연하지도 않고, 어깨를 쭉 펴고 살아야 사나이라 할 수 있지요.”

그가 한 수 더 놓고 나서 말했다.

“틀렸어. 나는 화를 너무 많이 냈어. 다시 이십년 전으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일을 한번 크게 해보고 싶어.”

“저는 오히려 안 선생님이 부러운데요. 얽매임 없이 사셨잖아요.”

“틀렸어. 그러나 자네가 나를 부러워한다는 건 우린 역시 서로 뜻이 맞는다는 걸 말하지. 나이 차이를 뛰어넘은 친구라 할 수 있지. 그러나 위생청 안에서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자네 말고 또 있던가? 내가 조금 자유롭기는 하지만 그건 작은 자유일 뿐이야. 나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아. 욕심이 없으면 강직해져.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지. 지도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을 제일 무서워하지. 하지만 진정한 대 자유는 그것을 손 안에 쥐고 있을 때 비로소 생기는 거야. 그것을 말이야! 알겠나?”

그는 다섯 손가락을 쫙 폈다가 다시 힘을 주어 꽉 쥐면서 위로 치켜 올렸다. 나도 주먹을 꽉 쥐면서 말했다.

“바로 그것 말이죠. 그것만 있으면 모든 걸 다 갖는 거지요.”

“사람이 세상을 산다는 건 바로 이 세계와 교류하는 거야. 말로는 모두가 헛된 물거품이라고 하지만, 그것만 있으면 진짜가 되는 거야.”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또 주먹을 꽉 쥐었다.

“내 딸이 작년에 전문 의대를 졸업하고 교외 지역으로 배치되었어. 내가 그 애를 다시 시내로 불러오고 싶은데 내 수중에 그것이 없는 거야. 내 수중에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 가지고는 모자란단 말이야. 그런데도 내가 자유롭다고? 부모로서 부끄러워.“약소국에는 외교가 없다”고 했네! 자네, 내가 사는 집을 보게. 위생청 안에 나처럼 쉰 살도 넘은 사람이 여태껏 방 두 칸에 거실 하나인 집에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나? 그런데도 나에게 자유가 있다고? 작은 자유는 있지만 큰 자유는 잃어버렸지. 큰 자유를 얻기 위해선 작은 자유를 그 대가로 지불해야 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는 거야.”

“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저도 생각해 봤는데요, 하지만 그것은 한 사람에게 자신의 근본을 뽑아버리고 완전히 새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과 같아요.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그의 혈관 속에 이미 몇 십 년 동안 흐르고 있던 피인데.”

“자네는 학교 졸업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혈기가 왕성하고 서생 기질이 남아 있어. 그러나 그것을 뒤집어 말하면 교조주의 성향이 매우 강하다는 거야. 몇 가지 원칙을 고수하면서 그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인간의 진실이라는 것은 원칙에서 비롯된 적이 없어. 이해관계야말로 참된 것이고, 원칙이란 건 일종의 장식, 일종의 구실에 불과해. 이렇게 몇천 년 몇만 년을 흘러왔어. 어느 한 개인에 의해 변하지는 않아.”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정소괴가 옳고 제가 틀렸다는 건가요?”

그는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얘기는 말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져.”

“저도 바보는 아니에요. 단지 저는 그렇게 못할 뿐이에요. 죽을 힘을 다해 나 자신을 굽혀보려 해도 굽혀지지가 않아요. 고통스럽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그 녀석 같은 낯짝을 꾸미는 일은 정말이지 너무나 고통스러워요. 정소괴 그 녀석이 윗사람과 같이 걸어가는 꼴을 보면, 몸을 비스듬히 기울이고 목은 해바라기처럼 하고 걷는데, 그 꼴을 보고 있으면 내 눈알까지 다 파내 버리고 싶다니까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안 선생님의 말은 나에게 일종의 자극, 일종의 각성을 주었다. 나는 계속 이렇게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 나는 이미 현재의 생활에 익숙해졌고, 동류 역시 이에 대해 이의가 없다. 하지만 내 마음속의 평화는 깨져버렸다. 마음속에 일종의 욕구가 불타기 시작했다.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생각해보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우연히 내가 좋아하는 수필가의 글을 보게 되었다. 그는 현대인들의 욕망은 모두 뒤틀려져 있는데, 그것은 상업문화의 오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장사꾼들이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에게 필요도 없는 물건을 사도록 유혹하려고 설치해 놓은 함정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은(殷)의 주왕(紂王)은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를 매달아 나무숲처럼 만들었지만, 그 역시 보통 사람들과 같은 크기의 위를 가졌을 뿐이고, 진시황(秦始皇)은 아방궁(阿房宮)을 지었지만, 그 역시 보통 사람들과 같은 다섯 척 체구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상적인 인생은 심미적(審美的)인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이 글을 읽고 감동을 받은 나는 옛 사람들의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자신의 심지 약함과 형편없는 분별력이 창피할 따름이었다. 몇 마디 말에 욕망이 동하다니, 도저히 선현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구나.

그 후부터 나는 안 선생님과 바둑만 둘 뿐 그날의 화제를 더 이상 꺼내지 않았고, 그도 얘기하지 않았다. 나는 회피하고 있었는데 그 점이 또 나의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했다. 나는 점점 바둑에 중독이 되어 하루라도 몇 판 두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서 못 견딜 지경이었다. 다행히도 동류가 마음이 넓어서 밤에 외출해도 말리지 않았다. 그녀는 혼자서 그 십이 인치짜리 흑백텔레비전을 끼고 연속극을 끝도 없이 봤다. 내가 청에서 아무런 발전이 없어도 그녀는 아무런 원망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그녀가 말했다.

“나는 당신의 결점을 알고 있어요. 너무 민감하다는 거예요. 이렇게 평온하게 살아가는 것도 좋아요.”

이런 이해가 있었기에 나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이해 만세! 나는 아내 된 사람에게 있어 이해보다 더 큰 장점은 없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나 또한 살아가는 데 있어 나의 위치를 잘 이해하게 되었다. 청춘의 격정은 이미 스러지고 자기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이리하여 스스로 청렴과 고귀함을 지켜 하나의 참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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